84화
도로를 질주하던 잘빠진 차량 한 대가 빌딩 앞에 멈춰 섰다. 우반희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며 차에서 내려 차 옆에 기대 담배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이제 막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고 하는 순간,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얀 머리가 먼저 보였다. 우반희는 샐쭉하니 눈을 휘며 웃었다. 백루찬이 탐탁잖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급한가 봐?”
묻는 말에 백루찬은 대답이 없었다. 먼저 우반희에게 연락을 한 건 백루찬이었다. 한일고 게이트 뒤처리를 할 때 송류진에게 차해준을 맡기고 네가 어쩔 거냐며 비웃더니,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우반희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그새를 못 참고 말이다. 우반희는 그게 너무 웃겼다.
“왜, 연락이 안 돼?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씹나?”
“…….”
“우리 길드장님이 어디 가서 거부를 당해 보셨겠어. 어쩌냐. 보는 사람 고소해 미치겠다? 손절이 이런 느낌이에요. 알겠어요?”
“호출기, 연결이 아예 안 돼요.”
“뭐?”
“나는 혹시… 각본에 따로 숨겨 놓고 가둬 놓은 건 아닌가 싶어서. 우 팀장님이 집착이 심했잖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정말 참고 있거든, 내가?”
우반희는 픽 웃으며 들고 있던 담배를 꺾어 버렸다. 장난스럽게 대꾸했지만 우반희는 직감적으로 차해준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걸 느꼈다.
송류진이 한동안 계속 이상한 모습을 보여 왔으니까…. 웬만해선 송류진의 편을 들어 주고 싶은데, 차해준이 걸린 문제면 좀 찝찝해진다. 일단 송류진이 차해준에게 보통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걸 자신이 알아 버렸으니. 그것뿐만은 아니다. 케이든의 세뇌 이후부터, 송류진은 이상했다. 아주.
무언가 짐작 간다는 얼굴로 생각에 빠진 우반희를 빤히 보던 백루찬이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그럼 어디다가 숨겨 놓은 걸까요?”
“차해준이 숨긴다고 숨겨지는 놈인가? 그놈은 네가 가장 잘 알다시피-.”
우반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대꾸했다가 표정을 굳혔다. 방법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각성자 관리 본부에서 각성자인 극악의 범죄자에게만 쓰는 방법이 떠올랐다.
“뭔가 알고 있는 표정인데.”
백루찬이 스산하게 웃었다. 우반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백루찬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게, 휴가계를 냈더란 말이지.”
“뭐요?”
“송류진.”
일주일 동안 서류는 처리되지도 않았는데, 한일고에서 차해준을 데리고 간 이후로 연락 두절이 되어 버렸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했다. 자신이 아는 송류진은 그런 짓을 할 놈이 전혀 아니니까. 백루찬이 쯧- 혀를 찼다.
“너무 뻔해서 짜증 나네.”
백루찬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기분이 무척이나 저조해졌다. 송류진이 그런 식으로 나왔을 때 억지로라도 정리하고 데려올 것을 그랬다.
우반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호출기를 꺼내 들었다. 전화번호를 한번 쭉 훑고는 익숙한 이름을 찾아 눌렀다.
“나야.”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지금 모르젠트 빌딩으로 당장 튀어 와라.”
-예? 저 지금….
“장난해?”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10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반희는 통화를 종료했다. 옆에서 백루찬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우반희를 쳐다봤다.
“뭐 하는 거예요?”
“있어. 사람 잘 찾는 놈.”
“본인이 하시지?”
“나랑 범위가 좀 다르지. 사람 찾는 일은 찾기 전문인 사람한테 맡기는 게 좋고. 그게 우리 길드장님의 애타는 마음에도 좋고.”
우반희는 입꼬리를 비틀며 백루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백루찬이 더러운 것이 닿은 것 같은 표정으로 우반희의 손을 쳐 냈다. 우반희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맞다. 길드장님 결벽증 있는 거 내가 깜박했네.”
깜박은 무슨. 알면서 저러는 거 뻔히 보였다.
“다음부턴 손목을 부러트릴 테니까, 알아서 조심해 주세요.”
백루찬은 싱긋 웃었다. 우반희도 웃었다.
두 사람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모르젠트 입구에 서서 그 모습을 보던 홍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송류진은 나에게 정말 지극정성이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각본에 안 나가 봐도 되는 거야?”
“그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어서, 이번에 휴가계 처음으로 내 봤어. S급이 몇 없으니까, 그래서 좀 걱정되기는 하지만, 너랑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하긴 길드보다 각본이 더 빡빡하게 돌아가긴 하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류진이 소파에 늘어진 내 옆에 앉아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머리카락을 비비며 들러붙는 것이 꼭 한솔이나 백루찬을 보는 것 같았다. 백루찬도 자주 이랬는데, 그놈은 왜 날 서운하게 만들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하다가, 순간 머리가 아파 인상을 찡그렸다. 송류진이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괜찮아?”
“어, 어. 그동안 무리했더니 부작용인가 봐. 이곳저곳 다 아프기 시작하네. 그런데, 내가 물어봤었나? 호출기는 언제 줄 거야?”
“사람 시켜서 사 오게 했어. 알잖아, 호출기도 각성자 확인이 되어야 살 수 있는 거. 절차가 좀 복잡해.”
“아, 그래?”
그런 소리는 못 들었었는데, 홍희도 쉽게 던져 줬고 말이다. 애들은 푹 쉬고 있으려나. 새벽이 잘 챙겨 주고 있겠지?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내 얼굴을 보던 송류진이 주방으로 가 물 잔과 약을 가지고 왔다.
건네주는 약을 받으면서, 기분이 이상한 걸 느꼈다. 이걸 꼭 먹어야 하나? 거북스러운데 챙겨 주는 걸 안 먹을 수도 없고…. 그래도 자꾸 몸에서 힘이 빠지고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는 게 느껴져서, 나는 약을 먹기로 했다. 설마 약 때문에 몸 상태가 나빠지는 건 아니겠지? 명현현상 그런 말도 있으니까 좀 걱정되긴 하지만, 송류진이 의사한테 받아 온 약을 의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송류진은 유일하게 나를 챙겨 주는 사람이니까.
나는 물 잔을 받아 약을 먹으려다 말고 멈칫했다.
유일하게? 의문이 들었다. 그때 송류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먹어. 약 먹고 우리 산책 나가자.”
“아아, 응.”
산책 좋지. 햇빛도 쐬고. 나는 약을 한 번에 삼켰다. 송류진이 내게서 물 잔을 받아 가며 웃었다.
물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다시 내 옆에 앉은 송류진이 나를 끌어안았다. 허리를 감고 목덜미를 끌어안은 손의 온기는 따듯했다. 틈만 나면 이렇게 들러붙는다니까. 닭살이 돋을 만한 행위였지만 익숙해져서 내버려 두었다. 기분 나쁘지도 않았고…. 나는 송류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복슬복슬한 강아지 같다.
“해준아, 나는 너랑 이렇게만 있어도 좋아.”
뭐가? 이런 식으로 붙잡아 두는 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픽 웃었다. 아니지. 송류진은 나를 위해서 휴가계까지 내며 나를 살펴 주고 있었다. 직장인이 휴가계를 남을 위해 쓴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데…!
“나도 좋아. 네가 잘해 주니까. 솔직히 그동안 힘들었었으니까….”
게이트도… 사람들도.
누군가를 대한다는 건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사람들을 구해 왔다. 죽는 건 볼 수 없었으니까. 내 죄를 씻기 위해선……. 그것만으로 부족하니까.
그래서 쉴 틈 없이 몰아쳐서 게이트 처리를 해 왔다. 악마의 눈동자에서 튀어나온 나탈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지금.
그때, 눈앞에 붉은색이 번쩍이며 떴다. 텍스트가 나열되는 환상이 보였다. 뭐야, 이건? 눈살을 찌푸리며 글씨를 읽으려 했지만 읽히지가 않았다. 그건 몇 번이나 눈앞에서 붉은색으로 번쩍거리다 사라졌다.
“우리 산책 나가자.”
송류진이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있다가, 나를 올려다보며 수줍게 웃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움직이는 게 귀찮았지만, 그래도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걷는 게 낫겠지. 그런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
거실을 나서려는데, 나도 모르게 다리에서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옆에서 송류진이 단단하게 받쳐 주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나를 향했다.
“괜찮아? 그냥 쉴까?”
“아냐. 아냐. 나가고 싶어.”
송류진이 잠깐 굳었다가 내 팔을 꽉 붙잡았다. 나는 의아하게 송류진을 쳐다봤다.
“아픈데.”
“아, 미안.”
너무 세게 움켜쥐어서, 손목이 아팠다. 송류진은 금세 다시 풀어진 얼굴로 웃었다.
우리는 타운 하우스 주변 산책로를 걸었다. 날이 더운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 한기를 느꼈다. 옆에서 송류진이 내 손을 잡고 걸으면서 한적한 주변을 고요히 감상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대로 오래오래 같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픽 웃었다.
“지금도 같이 있잖아.”
“누구도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송류진의 바람이 담긴 말은 진득하게 느껴졌다. 그런 송류진을 바라보다,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송류진이 평소의 송류진이 아닌 것 같은…. 이래도 되나? 라는 그런 생각이….
나를 챙겨 주는 건 류진이밖에 없어.
나는 다시 생각을 돌렸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송류진은 나를 무척이나 잘 챙겨 주고 있었다. 연인에게도 이렇게까진 못할 거다.
송류진이 내 손에 깍지를 껴 왔다. 어색해서 움찔했지만, 송류진이 웃자 나도 따라 웃었다.
나를 유일하게 생각해 주는 친구는… 송류진뿐이다.
***
우반희가 부른 각본 소속 각성자 현태웅은 금방 도착했다. 현태웅은 혹시나 늦을까 봐 빠르게 뛰어와서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며 물었다.
“그, 근데 이렇게 급하게 무슨 일 때문이십니까?”
우반희 팀장의 옆에는 하얀 머리의 모르젠트 길드장까지 함께 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인 거지. 현태웅은 마른침을 삼켰다. 우반희는 심히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현태웅에게 말했다.
“사람 좀 찾자.”
“예? 범죄자입니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일반인에겐 스킬 사용 불법인 거 아시죠? 걸리면 진짜 저 잘립니다. 저번에도 이렇게 부르셔 가지고….”
우반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현태웅은 그 표정을 보고 움찔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책임지라고 했었냐?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넌 찾기나 해.”
“그…렇긴 하죠. 네. 그런데, 누굴 찾습니까?”
우반희는 착잡한 얼굴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며 대답했다.
“송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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