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두통과 이명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그때 송류진과 함께 우반희가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왔다.
“이거, 이거… 이러면 각성자 폭행 혐의로 잡아갈 수밖에 없는데.”
우반희가 중얼거리자 얼굴이 다 얻어터져 새빨갛게 부어오른 현길용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나 죽네! 헌터라는 새끼가 사람 죽이려고!!”
저 새끼가 정신을 못 차리고…! 욱해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백루찬이 내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나를 말렸다.
“형, 형.”
“아이고오!! 빌어먹을 헌터 새끼가!! 애먼 사람 잡네!!”
현길용은 각본이 앞에 와서 더 지랄하는 거 같았다. 우반희가 턱을 쓸며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옆에 있던 송류진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를 보곤 백루찬을 노려보는데…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 시선을 피했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각성자 관리 본부가 왜 있겠어! 저런 무뢰배들 잡아가라고 있는 거야! 너 이 새끼 잘 걸렸다. 어? 감히 주먹을 써?”
“…허어.”
우반희가 피식 웃으며 현길용을 지나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우반희 등 뒤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지우영이 보였다.
“상황 설명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차해준 헌터.”
우반희가 말을 걸어 왔지만,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하얗게 두려움에 질린 지우영의 얼굴만 눈에 들어왔다. 지우영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뒷걸음질 쳤다.
“하….”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제야 지금의 난리가 왜 일어났는지, 심증이 굳어졌다. 이 모든 게 지우영이 한 짓이다. 지우영은 그동안 새벽이를 유독 괴롭혀 왔고, 이번 시험지 사건도 가장 먼저 발견했다. 증인이라면서 조사 위원회에 참석하기까지 했다.
놈이 뻔뻔한 얼굴로 비웃던 모습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자리를 벗어나려는 지우영을 쫓아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백루찬이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헉…!”
지우영은 누가 봐도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피해 도망쳤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는 지우영을 쫓았다. 시험지를 몰래 빼내기 위해 현길용을 꼬셔서 다인 방어 시스템을 해제해 버렸다.
“씨… 씨발…!”
욕설을 내뱉으며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밀치고 빠져나가려 한다. 그러나 그때, 지우영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비틀대며 걸음을 옮기던 지우영이 제 앞에 선 천새벽을 보고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뭐, 뭐야.”
등 뒤로 다가오는 나를 연신 힐끔대던 지우영이 천새벽을 밀치려 했으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망가지 마.”
“도, 도망? 뭔 개소리야!”
담요를 어깨에 두른 천새벽은 창백한 얼굴로, 지우영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 묵묵한 눈빛에 지우영이 되레 화들짝 놀라며 손을 들었다.
“이,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비켜, 씨발…!”
“네가 한 짓이잖아.”
“개, 씨발… 뭔 소리야, 너? 하나도 못 알아듣겠잖아.”
욱하면서 때릴 것처럼 손을 들었으나,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천새벽을 차마 때리지 못한 지우영이 주변 눈치를 보며 손을 내렸다.
지우영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이마엔 어느새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놈에게 다가갔다. 학생이다. 현길용은 의무를 저버렸다 해도 헌터에 각성자지만, 저 애는 아직 학생이고 각성자도 아니다. 참아야 한다.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아이고 여기 있었구만!”
“우영아!”
교장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쭉 훑어보니, 아이들이 걱정되어 달려온 학부모들 같았다. 그중 가장 앞에 있던 여자는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뒤에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둘을 대동했다. 그녀가 지우영을 부르자 하얗게 질렸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엄마!”
아… 그 어디 사장이라던, 그 어머니. 시스템창이 켜졌다.
[이름: 나경옥
칭호: (비어 있음)
클래스: 비각성자]
“너 괜찮아?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아니 세상에 학교에 기부금을 얼마나 때려 부었는데 게이트가 열려!? 이게 말이 돼?”
“아이고, 사모님…. 그게….”
“다친 거 봐! 세상에… 교장 선생님! 대체 어떻게 책임지실 거예요!”
교장이 나경옥에게 쩔쩔매며 허리를 연신 숙였다. 나는 자기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려는 지우영을 붙잡아 돌렸다. 멱살을 잡자, 지우영의 어머니가 놀라서 소리쳤다.
“저, 저! 뭐 하는 거야!”
“반장아.”
“끄윽….”
“네가 저지른 개 같은 짓이 무슨 사달을 벌였는지, 알아?”
흥분한 나경옥이 소리를 질렀지만, 무시했다. 반장은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꺽꺽 신음을 삼켰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냐고.”
“뭐… 뭘… 크윽!”
“아니, 차 선생!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그만 놓지 못해?”
“차 선생님!”
교장이 버럭 소리치며 다가왔다. 그는 나경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화가 났다. 학생들이 죽어 갔는데, 그 아수라장에선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교장이.
그러면서 다른 학생들 안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저 사장이라는 나경옥에게만 굽신거리고 있다.
그래,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각성자가 아니라면 대피부터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런데 씨발 왜 이렇게 분노가 차오르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다 죽을 뻔했습니다.”
“차 선생! 그걸 누가 몰라? 누가 와서 좀 말려 봐요! 각본, 각본!”
“선생님, 다 죽을 뻔했고, 아이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이곳은 교육을 이렇게 합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사람 목숨쯤은, 개미처럼 여겨도 된다고 가르칩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쩐지 모두 위기의식이 없더라고요. 가르쳐도 배우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되레 책망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이게 맞는 겁니까?”
“차 선생!”
“상주 헌터가 학생 한 명과 결탁해서 다인 방어 시스템을 해제했습니다. 시험지를 훔쳐서, 다른 학생을 매장시키려는 명목으로요.”
“뭐요?”
“상주 헌터가 시험지가 있는 교실 알람을 해제한 것을 제가 봤습니다. 마석을… 돌려놓지 않았더라고요. 그리고 그건 어떤 학생의 부탁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냥 하진 않았겠죠? 분명 무언가를 받았거나, 이득을 취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죽은 피해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무엇으로 보상받습니까?”
“뭐라는 거야, 저 사람이! 지금 그걸 우리 애가 했다는 거야, 뭐야?”
나경옥이 빽 소리 질렀다. 조사 위원회도 저분 덕에 열렸다고 들었다. 그래, 조사는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부모가 나서서, 다른 말은 듣지도 않고 힘없고, 도와줄 사람 없는 아이 한 명을 몰아붙이는 게, 그게 맞는 건가?
나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보는 지우영을 빤히 응시하며 멱살을 잡아챘던 손을 놨다. 네가 인간이고, 그래도 사람이라면 희생된 아이들도 생각해서 자수해라. 제발, 그 정도라도 보여라. 미안해라도 해라.
“내, 내가 안 훔쳤어요. 훔친 건 저, 저놈인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선생님, 진짜 너무하시다. 이러시기예요?”
지우영은 비틀대며 천새벽을 가리켰다. 나는 밀려오는 두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 빌어먹을 놈이….
“시험지? 그게 무슨 문제라는 거야. 그 사건, 학교에서 따로 조사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요? 범인은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그런 걸로 우리 아들을 몰아가는 거야?”
나경옥이 삿대질을 하며 덤벼들려 하는 것을 교장이 막아섰다.
“아이고, 사모님. 참으세요. 차 선생! 아니, 차 헌터!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교생으로 왔으면 교생답게 아이들부터 챙겨야지 엄한 애를 모함하면 어떡해요!”
교장은 내 말에도 나경옥의 눈치를 보며 나를 나무랐다. 하, 더 이상 힘 빠져서 말도 섞기 싫다.
“교생? 어디서 교생 따위가 지금 내 아들을 모욕하고 난리야! 네가 뒤 봐줘서 천새벽이가 시험지 훔친 거 다 알아! 지금 멀쩡한 거 봐! 애들이 죽어 나갔는데 각성자가 자기 몸만 챙기고! 당신 내가 신고할 거야!”
“제가 봤는데요. 새벽이가 안 그랬어요.”
나경옥이 버럭 소리 지를 때, 나서는 한 아이가 있었다.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노태연. 지우영 옆에 붙어서 적대적이던 아이였다. 그 뒤로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이 나섰다.
“그때, 상황이 조금 이상했어요. 시험지 발견한 것도 지우영이었고, 솔직히 같은 반 애들 책상을 누가 뒤져 봐요? 이유도 없이?”
김인하도 나섰다. 같이 반에서 살기 위해 구르던 아이들이었다.
“새벽이 그럴 애 아니에요. 차 선생님도 우리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셨어요.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거, 차 쌤이랑 새벽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어요. 지우영 쟤도.”
“하, 이것들 봐라.”
나경옥을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니들이 이 학교에서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게 누구 덕분인데 지금! 너희 학교에서 먹고 입고 받았던 거 다 우영이 덕분이었어! 알아?”
“참나, 누가 보면 학교 지으신 줄.”
“누가 보면 지우영 때문에 학교 다니는 줄.”
나경옥의 말에 이시현이 질린 얼굴로 대꾸했다.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그의 말을 받아쳤다.
“하. 교장 선생님, 교육을 대체 어떻게 시키신 거죠? 이게 그동안 내가 투자했던 결과예요?”
“아니, 사모님… 아니…”
교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우영은 나경옥에게 쪼르르 가 붙어 섰다. 반성 없는 얼굴. 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
그때,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우반희가 나섰다.
“어우 나는 이런 상황이 제일 싫더라.”
나는 움찔했다. 이놈은 또 왜 옆에서 신경을 긁고 난리야. 우반희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 고개를 돌렸다.
“제가 조사하겠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읽어 보면 나오겠죠.”
“당신은 뭐야?”
“저요?”
우반희는 싱긋 웃었다.
“각본 팀장 우반희입니다. 제가 이런 상황에서 유용한 소소한 능력이 있거든요.”
우반희가 빙글대며 꺼내는 말에 나는 실소했다. S급 각성자가 뭐라는 거야, 지금.
그의 이름을 들은 지우영과 현길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각성자 관리 본부 우반희라면 못 들어 봤을 리가 없다. 그는….
“상황을 잘 읽어요, 제가. 현장에 있었던 일이라면 과거도, 현재도.”
라스트레아도르(rastreador). 수색자. 현장에 일어났던 일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각성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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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