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 ---!
괴성이 사방을 강타한다. 그 소리에 새들이 놀라서 푸드득 날아오르고 멀리 보이는 한일고 운동장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괴물이 포효하고 있었다.
“이것 참….”
한일고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빌딩 옥상, 난간 끝에 선 백루찬은 펼쳐 든 우산 손잡이를 잡고 빙그르 돌리며 보스 몬스터를 바라봤다.
블랙홀처럼 생성된 게이트가 하늘에 있고, 마나 파장이 눈에 띄게 일렁이고 있었다. 크기가 빌딩만 한 몬스터는 멀리서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백루찬은 힐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가 몰고 온 짙은 회색 구름이 층층마다 쌓이고 있었다.
“우리 형은 게이트를 몰고 다니나 봐.”
혼자 작게 중얼거린 그는 잠시 빌딩 밑을 내려다보다가, 도로를 누비고 있는 몬스터를 확인했다. 놈의 손엔 사체 조각이 들려 있고, 놈은 콧김을 씩씩 뿜으며 주변의 먹이를 탐색하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백루찬은 몬스터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낙뢰]
스킬이 손끝에서 발동했다. 섬광처럼 바닥에 꽂힌 번개가 놈에게 명중하자 스파크가 튀며 단숨에 태워 버렸다.
백루찬은 주변을 한번 쓸어 보고 다시 한일고 쪽을 바라봤다. 울리는 괴성.
입꼬리가 미미하게 위로 올라갔다.
이번엔 또 얼마나 다쳐 올까.
이런 생각부터 드니 자신의 기대감을 높이는 차해준이 문제였다. 꼭 가학성을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천천히 갈게요.”
기대돼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백루찬은 우산을 빙그르르 돌리며 천천히 활보하듯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
강제로 초월자의 눈이 켜졌다.
[(now!) 상태창
이름: 천새벽
칭호: 벽 안의 수호자
클래스: 결계사
등급: S
스킬: 세상을 가두는 방패(Lv.12), 이중 결계(Lv.1), 완전한 원(Lv.1), 구역 설정(Lv.5)….]
[초월자의 눈 사용으로 상태 이상이 중첩됩니다!]
[위기!]
[위기!]
“큽-.”
목구멍으로 핏물이 올라왔다. 하, 씨발 시스템아… 이런 때에도 상태 이상은 해제 안 해 주냐!! 아니 내가 켠 것도 아니고 자동으로 켜진 건데 이게 뭐냐고 진짜….
나는 속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배를 움켜쥐었다. 하 씨 욕 나오게 아프다. 입 안에선 온통 쇠 맛이 났다.
“쿨럭-.”
“선생님!”
내가 피를 토하자 새벽이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천새벽의 손에서 발현된 결계가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괜찮아, 그러니까-.”
“뭐가 괜찮아요!”
새벽이는 황급히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결계는 새벽이가 움직여도 유지가 되고 있었다. 물러났던 보스 몬스터가 쿵쿵대며 분노를 터트렸지만 결계 안쪽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넋을 놓고 결계를 바라봤다. 바닥과 천장을 뚫고 세워진 그것은 마치 비눗방울로 만든 것 같았다. 김인하가 멍하니 제 앞에 생성된 결계를 톡 건드렸다. 손가락이 닿은 부분부터 오색 빛이 물감 퍼지듯 퍼져 나갔다. 나는 복부를 강타하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결계는 아름다웠다. 모두를 지키려 했던 천새벽의 마음처럼. 시나리오에서 봤던 내용이 떠올랐다.
입 안을 채운 피를 퉤 뱉어 냈다. 시뻘건 피가 바닥에 튀자 새벽이는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덜덜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새벽이의 머리를 쓰윽쓰윽 쓰다듬었다. 안심해라. 상태 이상은 고통이 심하긴 하지만 죽지는 않으니까…. 응… 죽진 않겠지.
“선생님, 저는-.”
“상황이 좀 그렇지만… 축하한다, 각성.”
“선생님….”
나 혼자였다면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텐데,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였다. 근데 새벽이의 각성으로 인해 한시름 덜었다. 하, 네 덕분에 다들 살았다 인마. S급 결계사라니.
그때였다.
- 쿠웅!
흥분한 웬디고가 핏발 선 눈으로 교실 안을 노려봤다. 놈은 씩씩대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쳤다.
- ---!!
“으윽-!”
“아흐…!”
큰 소리에 고막이 나갈 것 같았다. 다들 귀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아무래도 결계가 막는 것은 물리적인 것뿐인 듯싶었다.
웬디고는 신경질을 잔뜩 내며 소리치다가 건물을 향해 무지막지하게 손을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 쾅! 콰앙!
진동이 울리며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진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건물을 감싼 결계가 요동치긴 했으나 무리 없이 놈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결계가 요동칠 때마다 새벽이가 움찔거렸다. 나는 나를 부축하려 하는 새벽을 떼어 내고 말했다.
“버틸 수 있겠어?”
“네, 가능… 윽-!”
-콰앙!
결계를 깨부수려는 웬디고 덕에 새벽이는 마치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허리를 굽혔다. 이제 막 각성했는데 저런 괴물 새끼를 막고 있으니 무리가 안 될 리 없다.
나는 한야를 꽉 쥐고 웬디고의 손바닥을 가르며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얼어붙은 칼날을 전개하니 검신이 새하얘지며 한기를 풍긴다. 새벽이가 무리를 하고 있지만 그가 있는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위험할 확률이 대폭 줄어들었다. 한마디로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보스 몬스터를 빨리 쓰러트려서 게이트를 닫는 것뿐.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비강으로 피 냄새가 맡아진다. 목구멍은 따갑고, 두통이 일기 시작했다. 어지럽다.
그때, 나는 교실 밖 보스 몬스터 주위를 날고 있는 헬기를 발견했다. 안력을 높여 바라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보였다. 각본이다.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아, 진짜 이 새끼들 빠져 가지고… 존나 늦었어, 이놈들아!
그리고 그때, 갑자기 우르릉 땅이 울리며 운동장이 뒤집어졌다. 웬디고는 푹 꺼지는 바닥에 비틀대며 중심을 잡고선 포효했다. 교문 쪽에 모여 있는 인영들이 보였다. 그중에 커다란 원형 창을 든 남자.
송류진이었다.
송류진이 땅을 뒤엎은 덕에 웬디고가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주변이 초토화되는 게 보였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새벽이에게 물었다.
“결계, 혹시 구역을 지정해서 만들 수 있어?”
“모, 모르겠어요. 하지만….”
새벽이는 다부진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해 볼게요.”
나는 씩 웃었다. 할 수 있을 거다. 아까 초월자의 눈으로 봤을 때 그런 스킬이 있었던 것 같으니까. 보스 몬스터를 끝내 버릴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포효하는 웬디고를 바라봤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부서져 바닥도 깨지기 시작했다. 한 발 딛기도 아슬아슬하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천새벽을 부축하며 바닥에 앉혔다. 그러곤 웬디고를 가리켰다.
“보스 몬스터만 감싸 줘.”
“네.”
천새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새하얀 빛이 바닥을 짚은 손바닥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새벽이의 안색이 더욱 하얘졌다.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조금만, 조금만 힘내 줘라.
결계가 보스 몬스터의 머리부터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집중하는 새벽이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쌤 이름 알아?”
사각형의 결계가 완전히 웬디고를 감쌌다. 천새벽은 웃었다.
“모를 리가 없잖아요.”
나는 한야를 집고 몸을 일으켰다. 천새벽은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들어. 쌤 이름은 차해준이야.”
한야를 꽉 움켜쥐고, 새벽이가 만든 보스 몬스터를 가둔 결계를 쳐다봤다. 한 방. 단 한 방에 끝낼 거다.
새벽이는 내 말에 옅게 미소 지으며, 조금은 힘겹게 대답했다.
“저는 천새벽이에요.”
“그래. 새벽아, 앞으로.”
그 얼굴을 마주 보며 나는 웃었다.
“형이라 불러.”
그리고, 새벽이가 만든 결계를 향해, 보스 몬스터를 향해 몸을 날렸다.
***
보스 몬스터를 감싼 정사각형의 결계 안이 온통 검게 물들었다. 마치 어둠이 갇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어둠은 이내, 폭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차해준의 스킬, [폭야 (Lv.99)]였다.
어둠이 터져 나가자 결계가 버티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숨통이 끊어진 보스 몬스터의 사체가 허물어지며 깊게 파인 운동장 한가운데 쓰러진다.
단 한 번의 공격. 그것으로 끝냈다. 천새벽은 숨을 몰아쉬었다. 건물을 감싸고 있던 오색 빛 결계가 천천히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천새벽은 쓰러진 몬스터를 뒤로한 채 서 있는 차해준을 바라봤다. 앞섶은 피로 엉망이 되었지만, 멀쩡하게 서서 검을 든 그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았다.
소름이 돋는 것 같은 전율이 온몸을 때렸다. 천새벽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저렇게 강하고, 빛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대고 있었다. 차해준이 고개를 돌려 피가 묻은 뺨을 닦아 내고 고개를 들었다. 천새벽은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벅찬 감정이 물밀듯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신기했다.
이런 감정이, 그리고 저 남자가.
차해준이 웃었고, 그 미소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천새벽은 생각했다.
저 사람 옆에, 계속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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