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 크르륵!
그 순간 바로 짓쳐들어오는 몬스터를 피해 뒤로 몸을 날렸다. 바닥을 딛자마자 다시 앞으로 쏘아졌다. 몬스터는 멍청하지 않았다. 하긴 처음 마주하는 1++급 게이트다. 제로급은 내가 되기 이전의 차해준이 홀로 해치웠으니 나로선 이렇게 급 높은 놈들을 처음 마주하는 거였다.
놈이 무어라 중얼거리며 팔을 휘둘렀다. 두껍고 혈관이 도드라진 팔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에게 휘둘러졌다. 주먹에 파르스름한 마력이 맺힌 게 보였다.
이 새끼들 스킬도 쓰네.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고 놈의 팔뚝을 따라 몸을 뒤집었다. 순간적으로 창문 밖에서 난리 피우는 괴물들을 훑다가 그대로 마주한 몬스터의 뒤로 돌아서며 한야를 휘둘렀다. 등을 베어 내는데도 텅- 하는 느낌과 함께 살가죽이 베이는 느낌이 아니라 무언가에 막혀서 검로가 흔들리는 느낌이 났다.
몬스터가 나를 따라 상체를 돌린다. 동시에 얼어붙은 칼날을 시전하면서 붙잡는 암흑 스킬을 전개했다. 놈은 발이 딱 붙은 것처럼 휘청거리다 넘어지려 했다. 바로 얼어붙은 칼날을 통해 새하얗게 변한 검신에 마력을 씌웠다. 너만 마력 쓸 수 있냐? 나도 할 수 있다?
바닥을 딛고 한야를 뒤로 뺐다가, 바로 들어 올려 몬스터의 머리부터 위에서 내려쳤다. 까앙-! 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한 번 막히는 듯했지만, 잠깐이었다.
검은 그대로 놈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터지는 뇌수와 붉은 피. 그 사이를 가르고, 나는 복도 끝에서 쿵쿵대며 뛰어드는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몬스터가 중얼거리자 이번엔 놈의 눈이 붉게 빛났다. 눈앞에 시스템이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식인종 루가루가 ‘광폭화’를 발동했습니다!]
[‘가라앉는 의지’, ‘새어 나오는 공포’ 광역 디버프가 퍼집니다!]
[디버프 무력화!]
[디버프 무력화!]
디버프가 발동했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전혀 둔해지지 않은 몸으로 놈에게 검을 내질렀다. 검신에 어린 마력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놈의 상반신을 갈랐다. 그러나 이 몬스터는 허리를 뒤로 숙여 피해 내고 그대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나는 몬스터를 피해 몸을 띄웠다.
그대로 공중에서 반 바퀴 돌며 한야를 내려찍었다. 몬스터의 팔뚝에 있던 낡고 거뭇한 건틀릿에 검이 막혔다. 퉁- 하는 느낌이, 마력으로 아까 몬스터와 같이 배리어를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을 뒤로 빼며 바닥을 딛고 다시 빠르게 달려들었다.
- 카앙! 캉!
검과, 건틀릿이 연속으로 부딪친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한야를 놈은 힘겹게 막아 내고 있었다. 몬스터가 주둥이를 벌리며 포효한다. 썩은 이빨, 날카로운 송곳니, 길게 늘어진 혓바닥이 보였다.
그때, 깨진 창문과 계단 쪽에서 다른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놈들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포효하는 걸 듣고 모인 건가?
- 크어어억!
덩치 크고 더러운 놈들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썩은 내가 코끝을 찔렀다. 나와 마주하며 내 검을 받아치던 놈의 건틀릿이 무참히 깨져 바닥을 뒹굴었다. 앞뒤로, 싸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을 뚝뚝 흘리는 놈들이 나에게 덤벼든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몬스터의 등을 밟고 선 몬스터가 날이 다 빠진 칼을 휘둘렀다. 뒤로는 다른 몬스터가 달려들고 있었다. 몸을 피하기엔 천장도 낮다. 나는 그대로 뼈대만 남은 창문틀을 붙잡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공중에 몸이 떠올랐다가 바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바로 스킬을 전개했다.
[속삭이는 밤(Lv.99)]
순간 추락하던 내 몸이 멈췄다. 세상이 무채색으로 변하고,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칼을 던지려는 몬스터의 팔도, 이를 드러내는 몬스터도.
나는 허공을 박차고 다시 창문 틈새로 몬스터들을 파고들었다. 칼날을 피해 한 놈의 목을 썰고, 또 한 놈을 사선으로 베고 몸을 돌려 다른 놈의 목을 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상이 연결된 계단에서 내려오는 놈에게 한야를 던졌다.
푸른 마력이 담긴 한야가 느리게 날아간다. 중간쯤 갔을 때, 스킬이 깨지고, 한야는 순식간에 복도 끝에 있는 몬스터의 머리에 박혀 들어갔다.
“하아….”
다시 시끄러운 비명과 함께 세계의 색이 돌아왔다. 한숨을 내쉬며, 쓰러지는 몬스터에게 박힌 한야를 어둠의 포식 스킬로 다시 불러들여 손에 쥐었다. 핏물이 검신을 타고 흐른다.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몬스터들의 심장에 검을 꽂고 비틀어 빼냈다.
하, 체감상 10분 넘은 거 같은데 각본 왜 안 오냐, 모르젠트는 또 어디 있고…!
게이트가 허공에서 열렸고 운동장을 통해 빠져나가는 몹들이 있었으니 그놈들 잡는 데 시간이 걸릴 거란 건 대충 예상할 수 있었지만 늦어도 너무 늦다. 희생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현길용! 그 새끼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몰려드는 몬스터가 느껴진다. 2층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가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복도를 메우는 몬스터들을 다시 스킬을 사용해 도륙 냈다.
그때 또 4층에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화들짝 놀라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위로 올라가자, 이번엔 굳게 닫혀 있던 3학년 1반 앞문이 벽과 함께 부서져 있고 침입한 몬스터가 보였다.
“아, 아으아악 꺼져 씨팔!”
“으아아악!”
비명 소리를 마중 삼으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 한 명을 붙잡고 이를 드러내는 몬스터가 보였다. 하, 잡힌 아이는 천새벽이었다. 천새벽이 몬스터의 아가리에 금방이라도 찢길 것 같았다. 바닥에 넘어져 있는 지우영이 보였다.
지우영은 넋이 나간 얼굴로, 천새벽을 보고 있었다.
순간 제멋대로 스킬이 전개되었다.
[붙잡는 암흑(Lv.99)]
그림자처럼 바닥을 덮은 검은 어둠이 몬스터의 행동을 지배했다. 놈은 내 의지에 따라 천새벽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물어뜯으려는 모습 그대로 멈췄다.
- 크륵, 크르르르!!
고개를 어떻게든 뻗어서 앞의 살점을 뜯으려는 몬스터를 마주한 천새벽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나는 바로 망설임 없이 몬스터의 상체를 베어 냈다.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천새벽을 붙잡았다.
“서, 선생님.”
“괜찮아?”
하, 씨.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허리를 끌어안은 천새벽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내려 주고, 교실 안을 살폈다. 밀쳐진 것처럼 쓰러진 지우영이 천새벽과 똑같이 질린 얼굴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왜?”
이놈은 왜 어울리지 않게 얼빠진 얼굴로….
아,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다. 이 상황을 안다. 나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시나리오에 나왔던 상황이다. 천새벽이 지우영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고, 지우영은 당황한 얼굴로 쳐다본다. 새벽이가 저놈 대신 잡혔던 건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거였어?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은 창가 앞에 모여 있었다. 하 얘들아, 거기도 위험하다….
“쌤…!”
“으아아앙, 쌤…!”
기겁한 아이들이 나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그중에 인하랑 시현이도 보였다. 주춤대며 내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와. 창문에서 떨어져.”
몬스터들이 보고 달려들지 모른다. 뒤집힌 책상들을 보니 어떻게든 교실 문을 막고 있었던 것 같은데 소용이 없었던 거 같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2반 아이들은 괜찮은가. 옆 반에도 가 봐야겠다. 마력을 넓게 펼쳐 건물 안을 샅샅이 살피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1층엔 별로 없는 거 같고….
그때였다.
- 쿵!
또다시 지면을 울리며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건물이 요동치며 흔들리고, 아이들이 기겁하며 몸을 다닥다닥 붙였다.
[위기!]
[위기!]
[※경고: 심상치 않은 기류 포착! 게이트 ‘식인 섬의 제단’에서 보스 몬스터 ‘웬디고(Wendigo)’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위기!]
[위기!]
띠링. 띠링. 연속으로 알람이 울리듯 귓가를 자극하는 소리가 이어지고, 눈앞에 빨간 경고창이 연속으로 띄워지기 시작했다. 뒷목부터 온몸으로 소름이 돋았다. 순간 건물 전체에 뻗어 나갔던 마력이 튕기는 느낌이 들어서, 숨을 훅 들이켰다.
“아아악!”
그때,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옆 반이다. 나는 아이들을 헤치고 뼈대만 남은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창틀을 움켜쥐고 반동을 이용해 옆 반의 창가에 착지했다. 입을 벌린 몬스터가 학생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선생님!”
정소은이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창문으로 넘어온 것 같은 괴물의 목에 한야를 박아 넣고 그대로 체중을 실어 놈을 넘어트렸다. 박힌 검을 빼며 목을 베어 내자 핏물이 촤아악 퍼졌다.
“흐억… 헉….”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뻔한 학생 하나가 뒷걸음질 친다. 나는 아이들이 무사한지 한 명씩 훑어갔다. 문 쪽은 책상과 사물함 등으로 잘 막아 놨다.
그때… 등 뒤로, 마치 해를 가리는 것처럼,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발밑 천천히 감싸는 그림자.
“아… 아….”
“으윽….”
두려움에 흔들리는 아이들의 얼굴.
나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거대한….
“…하.”
창문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괴물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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