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아, 미치겠네.”
홍희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앞을 바라봤다. 꽉 막힌 도로는 버려진 차들과 도망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일고에 게이트가 터졌다는 호출 알람을 받자마자 출발했으나 가는 도로는 이미 대피하는 사람들로 인해 앞뒤로 오갈 수 없이 막혀 버렸다.
차라리 헬기를 타고 올걸. 홍희는 후회했다.
길만 막힌 거라면 그냥 날아가면 될 텐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으, 으악!”
“사, 살려…!”
살점이 썩은, 좀비와 비슷한 몬스터가, 도로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게이트 탐지 시스템으로 인해 측정된 게이트의 등급은 1++급. 그럼 거기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적어도 A급 이상이란 소리였다. 2년 전 제로(0)급 웨이브가 터진 뒤 처음 겪는 특급 재난 상황이었다.
- 삐----!
헬기가 날아다니고, 사방에서 대피를 알리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귀가 따가워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렸다. 홍희는 주먹을 꽉 쥐고 양손을 맞댔다. 화려한 건틀릿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걷다가, 주춤대며 물러서고 있는 모르젠트 길드원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각본 어디래?”
“네, 네. 출발했는데 똑같이 한일고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때문에 지체되고 있다고-.”
“아, 빌어먹을 새끼들.”
이 새끼들은 헬기든 뭐든 동원해서 당장 달려가야 할 거 아냐! 하여간 엉덩이를 땅에 딱 붙이고 사는 느려 터진 놈들! 홍희는 짜증을 내며 잡고 있던 모르젠트 길드원의 멱살을 던지듯 놨다.
그때 호출기가 삑삑 소리를 내며 울었다. 홍희는 귀에 꽂아 놓은 이어링을 툭 눌렀다.
- 어디야?
백루찬의 목소리였다.
“세 블록 남았는데 막혔어.”
- 나도.
“하 이런…. 또 우리 한야가 혼자 감당해 버리는 거야?”
피실피실 웃음이 어린 목소리였으나, 표정은 서늘했다. 백루찬은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
- 또 다치는 건 싫은데.
“그럼 빨리빨리 왕자님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라고. 잔챙이는 길드원들에게 맡겨.”
- 잔챙이라기엔… 등급이 너무 높은데?
그렇긴 하다. 홍희는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퍼뜩 놀라서 양 주먹을 맞부딪쳤다.
“경험 삼아 가는 거지! 뒤져도 별수 있나!”
-흐응. 그래. 먼저 가 볼게, 희야.
“가라고!”
홍희는 호기롭게 외치고 통화를 종료했다. 앞에선 길드원들이 질린 얼굴로 홍희를 보다가,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었다. 몬스터들이 차량을 밟고 훌쩍 뛰어오른다. 입가에 침과 피를 줄줄 흘리는 게, 비위를 상하게 만들었다. 홍희는 마력을 일으켰다. 바람 한 점 안 부는 날씨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
“미친 거 아냐….”
“엄마….”
지우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를 딱딱 부딪쳤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세상이 공포로 잠식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사실 기분만은 아니었다.
- 쾅!
- 크르륵!
하늘에서 괴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깨져 버린 창밖으로 온갖 비명과 괴수의 울음소리가 밀려들었다.
“애들아, 침착, 침착해라.”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반으로 들어왔던 국어 선생님이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떨리는 진동음과 함께 반파된 교실은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학생들은 힘을 모아서 책상과 사물함, 교탁 등을 끌어 교실문과 창문을 막아 놓은 상태였다.
반 아이들은 절반가량이 빠져 있었다.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밖으로 도망친 아이들이 대다수였으나, 식인 괴물이 복도를 점령한 것을 보고 다시 돌아온 학생들도 있었다. 지우영은 후자에 속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왜, 그동안 단 한 번도 게이트가 열린 적 없던 학교에 게이트가 터졌는지 그는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손끝에서부터 피가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떡… 어떡하죠?”
다들 공황 상태로 아무것도 못 하고 공포에 질려 있을 때, 그나마 차분한 이시현이 국어 선생님한테 물었다. 국어 선생님은 다분히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차분한 척하며 대답했다.
“그, 그래. 아직 경보음이 안 울렸어. 우리, 배, 배웠잖니? 게이트가 터지고 나면 일단 건물이나 비상 대피소로 대피… 하….”
떨리는 한숨이 튀어나온다. 비상 대피소. 지역마다 지정된 대피소는 지하철역이었다. 학교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경보음이 울리고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지도에 따라 대피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다인 방어 결계가 설치되어 있는 학교는 최상의 비상 대피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소용없었다. 학교, 교실 위에 게이트가 열렸으니까.
“으으아악!”
쿵쿵대는 발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곧이어 무언가 끔찍하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다. 지우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정신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입 안이 바짝 말라와 마른침을 삼켰다.
“바, 반장! 어떻게, 우리 어떡해?”
지우영은 제팔을 붙잡고 들러붙는 노태연을 힐끔 바라봤다. 저만큼 하얗게 질린 얼굴, 먼지와 땀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지우영은 거칠게 팔을 빼냈다.
“씨발, 어떻게 하긴! 왜 나한테 지랄이야!”
노태연이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놀라는 녀석을 보며 지우영은 한참을 씩씩댔다. 반장? 기가 막힌다. 이럴 때에도 기대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멍청한 새끼들. 지우영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거나, 찢겨 죽을 수밖에 없다. 지우영은 제 주변으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헤치고 교실 문 앞으로 다가갔다. 쌓아 놓은 책상을 짚어 옆으로 던졌다.
“꺄악!”
“뭐 하는 거야!”
김인하가 놀란 얼굴로 지우영을 향해 소리쳤다. 지우영이 말없이 교실 문을 막아 놓은 교탁을 밀어 버리자 황급히 김인하가 지우영을 붙잡았다. 지우영이 거칠게 김인하를 쳐 냈다.
“그럼 여기서 이렇게 처박혀서 괴물 먹잇감이나 될 거냐고!”
“일단 막아 놔야 한다고! 너 괴물들 뚫고 도망칠 수는 있어!?”
“지랄하지 마, 확실해? 여기 처박혀 있으면 무사한 건 확실하냐고, 병신아! 네가 뭔데 명령질이야?”
지우영은 제 팔을 붙잡고 잡아당기는 김인하를 거칠게 쳐 냈다. 김인하가 밀쳐져서 바닥에 넘어지자, 지켜보고 있던 천새벽이 다가와 김인하를 부축했다. 지우영은 뒤도 안 돌아보고 제 앞을 가로막는 책상을 옆으로 집어 던졌다.
“그냥 있는 게 나아. 하지 마.”
의자를 들고 있던 지우영이 멈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김인하를 부축한 천새벽이, 담담한 얼굴로 지우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우영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새끼가….”
“죽으려면 혼자 죽어. 창문으로 뛰어내리든가. 너 하나 살자고 지금 숨어 있는 게 아니잖아.”
“야, 천새벽.”
“각본도 이제 곧 올 거야. 조금만 버티면- 큭!”
지우영은 천새벽에게 성큼 다가가 멱살을 움켜잡았다. 천새벽이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좆같은 새끼가… 너 지금 이런 상황이라고 혓바닥이 존나 가벼워졌다?”
“큽… 이거 놓고.”
“너 씨발, 차해준 그 새끼 믿고 이러는 거야? 아, 맞다. 게이트 열린 거. 네가 알람 해제해서 그런 거잖아. 빌어먹을 새끼야.”
지우영의 말에 천새벽은 헛웃음을 쳤다. 차갑게 질린 얼굴은 평소 지우영을 대하는 표정과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서늘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지우영이 움찔했다.
“네가 그런 건 아니고?”
“…뭐?”
천새벽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제 책상에서 시험지를 꺼내 든 지우영. 그리고 차해준과 자신의 관계를 오해하도록 옆에서 선생님들을 부추기는 지우영.
평소 공부 잘하고 집안도 좋으니 학교의 무한 신뢰를 받을 수밖에 없는 학생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의 집에서 빌어먹는 자신의 처지론 지우영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당하고만 산 시간들이 눈앞을 스쳐 갔지만, 천새벽은 집에 계신 어머니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서 꾹 참았다. 무엇보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자신의 말을 들어 주려는 사람이 생겼다. 딱 한 사람. 지저분하게 얽혀 버린 일에 죄송해서 피해도, 자신을 찾고 걱정해 주던 사람.
천새벽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지우영을 똑바로 쳐다봤다.
“시험지 있던 교실의 알람이 해제된 게 게이트 터진 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 너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냐?”
“뭐… 이 씹… 네가 그딴 짓을 했으니까…!”
“그것 때문에 다인 방어 시스템이 해제된 거야? 지우영, 똑바로 말해.”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지우영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천새벽은 환멸 어린 표정으로 지우영을 노려봤다.
“네가, 한 거잖아. 시험지 훔친 것도, 알람 해제한 것도. 그 알람이, 게이트 방어 결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그래서 아는 거 아니야?”
“무, 무슨… 개소리를… 씨발….”
지우영이 헛웃음 쳤다. 멱살을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지우영은 바싹 말라 오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
“너, 웃긴다. 지금 누구한테-.”
그때였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막아 놓았던 교실 앞문이 마치 폭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갔다. 앞문뿐 아니라 벽 일부가 박살 나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지우영의 눈이 커졌다. 반파된 입구 사이로, 괴물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 크르르
썩은 피부와 충혈된 눈. 뺨까지 드러나 있는 이빨. 괴물이 교실 안으로 짓쳐들어왔다.
“꺄아악!”
“위험해!”
가장 앞에 있던 지우영을 움켜쥘 것처럼 뻗어지는 팔.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천새벽이 지우영의 몸을 돌려 힘껏 밀쳤다. 낚아채려는 듯 다가온 팔이 지우영 대신 천새벽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크윽…!”
신음이 터져 나왔다. 지우영은 바닥에 나동그라져 뒤로 기어가며 자신 대신 잡힌 천새벽을 멍하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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