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71화 (71/201)

71화

한일고 게이트

지우영은 자연스럽게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학생부장이 지우영에게 물었다.

“네가 목격자라는 얘기를 들어서 불렀다. 이미 한번 들었지만, 확인이 필요하니까.”

“아, 네. 제가 본 건….”

지우영은 나와 천새벽을 힐끔 보더니,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늘어트리며 우물쭈물했다. 그동안 봐 왔던 지우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학생부장의 눈에 지우영이 어떻게 보일지 선해서 빡이 쳤다. 가식적인 놈… 하.

“이런 말 하기, 새벽이한테 좀 미안하지만…. 새벽이가 저희 집에 살아요. 새벽이 어머니가….”

천새벽이 고개를 휙 들었다. 지우영은 그런 천새벽을 빤히 보면서 미묘하게 눈썹을 구기다가, 학생부장을 향해 말을 이었다.

“저희집 가정부…시거든요. 형편이 어려우셔서, 몇 년째 저희 집에서 살고 계세요. 제 어머니께서 사정 아시고 챙겨 주시고 계셨거든요. 아,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새벽이가 언제 등교하는지 제가 알 수밖에 없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학생부장은 흥미롭단 얼굴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곤 급격히 친절해진 어투로 지우영에게 말했다.

“어쩐지 친해 보이더라니 그런 사이였어? 우영이 네 어머님은 학교에 기부도 많이 하시는데, 참 좋으신 분이야. 나도 알고 있다. 더 말해 보렴.”

“새벽이가 근래 들어 등교를 일찍 하더라고요. 원래 아침도 같이 먹었었는데… 안 먹고. 근데 그 시점이 차해준 선생님께서 오시고 나서부터였어요.”

나는 새벽이를 바라봤다. 새벽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아침에 샌드위치를 건넸을 때 눈치 보여서 먹기 힘들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우영과 천새벽의 관계. 그리고 지우영이 새벽이를 폭행하던 장면도.

지우영은 뻔뻔하게, 이런 말 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쩐지 둘의 관계와 상황을 대충 알 것 같았다. 나는 작게 실소했다.

“저… 저는 원래 일찍 나와요. 차 선생님이 오셨을 때부터 일찍 온 게 아니라-.”

“오늘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저도 새벽이 따라 일찍 나왔어요. 매번 혼자 가고… 같이 가자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따로 학교에 왔지만…. 사실 새벽이가 저와의 관계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걸 알아서, 저는 그냥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천새벽이 뭐라 항변하려 했지만, 뒤이어 끼어든 지우영의 말에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학생부장은 그런 천새벽에겐 관심도 없는지 지우영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있었다.

“아침에 와서 보게 됐어요. 차해준 선생님과… 얘기 나누는 새벽이를요. 선생님과 새벽이는 많이 친해 보였고, 그 분위기에 제가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아서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지우영은 말을 줄였다. 그 뒤로는 학생부장도 다 안다는 듯 그의 어깨를 다독이더니 다시 나와 천새벽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 지우영을 대할 때완 완전히 다른 게 느껴졌다.

“이제 왜 차 선생을 의심하고 있는지 아시겠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여기서 무슨 말을 꺼냈다간 더 안 좋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학생부장은 이미 그렇게 오해를 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내일, 정식으로 조사 위원회가 열릴 겁니다. 제대로 된 조사도 내일부터 할 예정이고요.”

“…새벽이는 그럴 애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조사해 보면 다 나오겠죠. 차 선생은 아무래도 각성자이고, 소속 길드도 유명한 곳이고 하니, 대외적으론 비밀로 해 두겠습니다. 그래야 선생 이미지도 챙길 테니.”

학생부장은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다시 보도록 합시다. 이만 가 보세요. 너희도 가 봐라.”

지우영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꼬여 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게이트도 터질 판국에 말이다. 속이 답답했다. 내가 일어서자, 새벽이도 나를 쫓아 학생 지도실을 나왔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위축된 새벽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음울하게 잠긴 표정이 안쓰럽다. 시험지를 훔쳤다니, 그럴 애가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새벽이는 스스로 희생해 아이들을 구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비록 시나리오에서 나온 장면이라 나 혼자 아는 사실이지만….

“적당히 하셨어야죠. 왜 티를 내고 다니셔서 문제를 일으키세요. 각성자답지 않게 경솔하시네요.”

새벽이에게 무어라 말할까 고민하는데, 지우영이 말했다. 학생부장 앞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말투였다. 지우영은 싱긋 웃으며 천새벽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새벽아, 집에서 보자?”

픽 웃는 지우영은 나를 한 번 더 쳐다보고 웃더니 먼저 복도를 걸어 나갔다. 뒷모습을 보다가, 나는 새벽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새벽아.”

“…죄송합니다.”

새벽이는 괴로운 낯으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뭐가 죄송해, 뭐가.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런 말 안 해도 돼.”

“저 때문에… 제가… 제가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숙이며 사죄한다. 천새벽은 상처 받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어린 건 포기와 자책이었다.

나는 그런 새벽이를 붙잡아 다독이려 했지만, 새벽이는 내 손을 뿌리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마치 도망치려는 것 같은 모습에 잡아 세우지 못하고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하.”

입 안이 썼다. 가뜩이나 상처 났을 마음에 지우영이 소금을 뿌렸다. 지우영과의 관계에 대해서 나도 물론 학생부장, 아마도 다른 선생님들까지 다 알게 되었으니 다른 학생들에게 소문나는 것도 순식간일 것이다. 이미 났을지도 모르지.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나야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이지만… 새벽이는 이 학교를 계속 다니며 집에서도 지우영을 마주쳐야 한다. 학교를 계속 다닐 수는 있을까. 시험지를 훔친 게 아니라고 변명해 봤자 믿어 주긴 할까.

각성자만 알람을 해제할 수 있는 교실. 이 학교에 각성자는 두 명이다. 현길용, 그놈이 얽혀 있을 테니 따로 확인을 해 봐야겠다.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자꾸 든다. 비웃는 지우영의 모습에서도.

나는 퇴근하며 바로 현길용을 찾아갔지만, 그는 오후 내내 자리에 없었다. 비어 있는 보안 관리실을 보자 한숨이 일었다.

상주 헌터가 내내 자리를 비우다니… 그것도 딱 맞춰 나를 피하려는 것처럼.

상황이 더럽게 꼬인다.

***

그 뒤로, 수업 참관은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학생 지도실에 붙잡혀 조사를 받아야 했다.

한일고는 성적이 좋은 학교라서 시험지를 훔쳤다는 소리에 반발이 심하게 일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나서는 부모들이 많았고, 결국 조사 위원회에 학부모 회장도 참석하게 되었다. 학부모 회장은 공교롭게도 지우영의 어머니였다. 참 어이가 없지, 정말.

조사 위원회가 열린 지 이틀째가 되는 날이었다. 빌어먹게도 속은 타들어 가는데 하늘은 더럽게 맑았다. 조하영과 점심을 먹고 나서 교정을 잠깐 걷는데, 쳐다보는 시선들이 참 따가웠다. 쑥덕대며 욕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조하영이 떫은 얼굴로 속닥거렸다.

“야, 진짜 짜증 나. 빨리 해결 안 하냐?”

“방법을 모색 중이다. 넌 이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사건 같냐?”

“왜 못 해, 각성자가.”

“각성자 만능설 신봉자야, 뭐야.”

“뭐래.”

조하영이 나를 흘겨본다. 아니 누구는 해결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있겠냐고.

시선들이야 익숙하고, 욕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있었다.

나도 이런데 새벽이는 더 심할 것 같아서 점심 먹을 때도 보이지 않던 천새벽을 찾아 뭐라도 얘기를 해 볼까 싶었다.

“나 그냥 들어가 있을게. 쉬다가 와라.”

조하영을 따로 보내고 나는 천새벽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이 녀석은 어디로 숨은 건지 찾지 못했다.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밥이라도 먹으라니까… 말도 안 듣고.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제각기 교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마저 조사를 받기 위해 학생 지도실로 향했다.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때였다. 나는 멈칫했다.

갑자기 눈앞에 시스템창이 파파박 떠올랐기 때문이다.

[위기!]

[위기!]

[※경고: 심상치 않은 기류 포착. 클리어런스는 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보는 경고 내용이었다. 경고는 연이어 한꺼번에 쏟아지듯 눈앞에 떠올랐다. 뭐야, 설마…!

그리고 그때.

- 쿵!

지면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과 함께, 발밑이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쿵!

귓가를 때리는 육중한 소음이 연달아 이어진다. 다급하게 창문으로 밖을 확인했다. 교실이 모여 있는 건물 옥상에서 일렁이는 마나 파장이 보였다. 나는 그대로 복도를 뛰쳐나갔다. 눈앞에 시스템창이 번쩍였다.

[긴급 퀘스트!]

게이트였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1)============================================================

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