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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70화 (70/201)

70화

송류진과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각성자 차해준의 남은 수명: 292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남은 수명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시나리오는 진행도 되지 않고 있는데 수명은 팍팍 줄어들어 간다.

한숨을 내쉬고 출근 준비를 했다. 게이트는 대체 언제 열리는 거지. 이렇게 되니 되레 게이트가 빨리 열려 해결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제 교생 실습 하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 동안 출근 도장 찍듯 한일고 앞에 진 치고 있던 기자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가 한두 개 열리는 것도 아니고 이슈는 금방 사그라들었다. 헌헌에서도 알음알음 올라오긴 하지만 유명한 각성자가 좀 많아야지. 나는 홀가분하게 학교 교정을 걸었다. 오늘도 일찍 나온 새벽이가 가장 먼저 교실 문을 열고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는 새벽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다. 그때, 때맞춰 새벽이가 휙 몸을 돌렸다. 나는 어정쩡하게 굳어 버렸다. 천새벽은 나를 보더니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고 인사를 해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안녕,”

기척을 죽였는데 어떻게 알아챘지. 뻘쭘해서 큼큼 목을 가다듬고 들고 온 가방을 뒤적였다. 새벽이에게 주려고 사 온 샌드위치와 우유를 꺼내 건넸다.

“아침 안 먹고 오는 것 같아서, 먹어야 쑥쑥 자라지. 어… 키는 그만 커도 되고.”

“아하하, 그게 뭐예요.”

새벽이는 내가 건넨 샌드위치와 우유를 받고 환하게 웃었다. 새벽이는 카디건을 입었는데도 어깨가 뾰족해서 마른 게 티가 났다. 점심시간 때도 급식실에 잘 안 보여서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다. 보면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먹는지 안 먹는지 모르겠고…. 나는 손을 뻗어 새벽이의 앞머리를 쓱쓱 넘겨주었다.

“조금 늦게 와도 아침 챙겨 먹고 와. 남자는 25살까지 크는데 영양분 없으면 그것도 안 큰다?”

새벽이는 내 손길에 눈을 깜박이더니, 옅게 웃었다.

“…눈치 보여서, 먹기 힘들어요.”

“…밥 먹는데 눈치를 봐?”

은연중에 꺼낸 말인 듯 새벽이는 내 되물음에 입을 꾹 다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니에요.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무슨 사정이 더 있나…. 이것 참 또 신경 쓰이네. 새벽이는 더 말할 생각이 없는 듯 시선을 피했다. 말하기 싫어하는 티가 나는데 더 물어볼 수도 없고. 나는 그냥 새벽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일찍 오셨네요?”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우영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새벽이가 흠칫 놀라며 내 손을 떼어 냈다. 덕분에 나도 기분이 이상해져서 손을 내렸다. 아, 혹시 저번에 지우영이 협박한 내용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살짝 인상을 쓰고 새벽이를 살폈다. 새벽이는 굉장히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지우영은 그런 새벽이를 빤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어처구니없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실소한 지우영은 나를 지나치려다, 걸음을 멈췄다.

“쌤도 요즘 일찍 오시나 봐요. 누구랑 단둘이 만나는 시간이라도 필요하신 건가.”

각성자의 위대한 체력으로 눈이 일찍 떠진 것뿐이란다, 이놈아. 나는 무슨 헛소리를 하든 말든 여상하게 웃고는 지우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교실을 나섰다. 지우영의 시선이 따갑게 등 뒤로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이제 아주 죽일 듯이 노려보는구나. 돌아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시선이. 그래, 어린애랑 다툰 내 죄가 크다….

***

권 쌤과 함께 조례를 하고, 오전에 체육 선생님을 대신해 3학년 다른 반 아이들에게 게이트 안전 교육을 진행했다. 수업은 별 탈 없이 진행이 되었지만, 어쩐지 애들 표정이 어수선했다. 평소엔 대답도 칼같이 따박따박 해 주던 애들이 오늘은 눈을 피하거나, 혹은 따분한 얼굴로 제 옆자리 친구와 속닥거렸다.

이런 상황은 또 다른 반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시선이 어쩐지 영 따가웠다. 뭐지? 학교에 무슨 일이 있나? 나는 수업을 마무리하고 교생실로 향했다. 이제 점심시간이었다.

노트북과 수업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교생실 문이 벌컥 열렸다.

“문 좀 살살 열고 다니세요, 조 쌤. 이러다 부수겠어요.”

들어온 사람은 조하영이었다. 장난스럽게 타박했는데, 조하영의 반응이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킬킬대며 받아쳤을 조하영이, 지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지, 저 눈빛. 굉장히 기분 나쁜데. 내가 한마디 꺼내려 했지만, 조하영이 먼저 말했다.

“일 터졌다.”

“뭐?”

“너 시험지 훔쳤어?”

“…뭔 소리야.”

“어제 누가 시험지 훔쳐 갔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조하영은 난감하단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니, 어제 누가 시험지를 훔쳤는데, 시험지가 있던 실습실, 특정한 선생님이 아니면 알람이 울리도록 인챈트가 발라져 있었대. 근데… 이번에 시험지 도둑맞으면서는 그게 안 울렸다는 거야. 그리고.”

조하영은 나를 보고 어딘지 찝찝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침입하려면 각성자여야 한다고.”

이 무슨…. 얘기를 듣자마자 벌써부터 느껴지는 피로감에 이마를 짚었다. 한일고에서 각성자는 딱 두 명이었다. 나와 현길용 상주 헌터. 그리고 현길용은 이 학교에서 3년이나 일을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의심받을 만한 사람은….

“지금 교무실 뒤집어졌어. 설마 싶긴 한데….”

조하영은 말꼬리를 늘이며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조하영이 하는 말을 들었다.

“눈치가 지금 다들 너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어쩜 이렇게 하루도 순탄하지가 않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당연히, 학교는 난리가 났다. 내가 눈치 못 채고 있었던 게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힐끔대는 시선을 느끼며 교내 학생 지도실로 향했다.

조하영은 용의자로 의심을 받고 있는 학생은 3학년 1반 학생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나는 무언가 직감을 느꼈다. 그리고 빌어먹게도, 그것은 맞아떨어졌다.

천새벽. 의심이라고 말하지만 모두가 확정 지어 말하는, 시험지를 훔친 범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천새벽을 도와 시험지를 가지고 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으로 공범이 되었다.

오전에 권 쌤과 조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자리를 비운 천새벽의 책상에서 시험지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공교롭게도, 발견한 사람은 지우영이었고.

내 옆을 졸졸 따라오던 조하영이 쓰읍- 입맛을 다셨다.

“희한하네.”

“뭐가.”

“어떻게 딱 너를 노린 것처럼 이런 일이 터지냐?”

그래….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건 뭐 엿 먹으라고 대놓고 뻐큐를 날린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대충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심증이 잔뜩 들었지만, 그렇다고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 새벽이의 책상에서 증거물이 나와 버렸으니까.

머리가 복잡했다. 잔득 꼬인 실타래에 엉켜 있는 기분이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지. 시나리오대로 게이트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이런 복잡한 상황이라니.

학생 지도실 앞에 멈춰 서서, 걱정이 되는지, 무언가 못마땅한 건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조하영은 내 등을 툭툭 두드렸다.

“따져 보면 이상해. 각성자가 딱 두 명밖에 없는데, 이렇게 특정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교생 실습을 나왔는데 시험지를 훔칠 수 있게 내버려 둔다? 그것도 말이 안 되잖아.”

“어떤 상황이었는지 일단 들어 보고 확인을 해 봐야지.”

조하영의 파이팅을 받으며, 나는 학생 지도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학생부장 선생님과 천새벽이 이미 와서 앉아 있었다.

새벽이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수그렸다. 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니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는 시험지가 발견되고 나서 이곳에 와 신문 아닌 신문을 계속 받고 있었다.

“차 선생 왔어요? 이쪽에 앉으세요.”

학생부장 선생님은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해서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선생님이었다. 말투도 공격적이고 압박하는 투라, 좋아하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

눈을 부릅뜨며 훑어보는 시선에서 적대적인 감정이 묻어났다. 이 선생님도 확신을 가지고 계신 거 같은데… 말이 통하려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얘기를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학생부장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며 양손을 깍지 껴 잡았다.

그는 길게 침음성을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은 합니다. 아직 정식으로 교사가 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각성자인 게 특정되는 상황에서 시험지 훔치는 걸 도왔다는 게 말이죠.”

“…그런 적 없습니다.”

“일단 들어 보시고요. 사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말입니다. 각성자라서, 더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라는 겁니다. 각성자니, 학교 시험이나, 이게 일반 학생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을 못 하신 거죠. 그래서, 유달리 예뻐했던 학생에게 장난식으로 기회를 주자 싶으셨던 건 아니었는지… 말입니다.”

학생부장은 ‘유달리 예뻐했던’이라는 말을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어디서 오는 확신인 거지.

“제가 학생들을 차별해서 대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문밖에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학생부장이 말했다.

“증거 삼을 만한 심증도 있고, 또 직접 봤다는 학생이 있습니다.”

“…뭘 봤다는….”

학생부장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들어오라고 외쳤다. 문이 열리고….

“안녕하세요, 쌤.”

지우영이 느긋한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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