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아이들은 조용했다. 다들 입을 꾹 다물고 나를 흘기거나, 몇 명은 고개를 푹 숙인다. 나는 어색하게 웃고는 교탁 앞으로 갔다. 분위기 진짜 개오바다…. 뭐지 뭐 때문에 그러지. 하하….
“쌤, 뉴스 봤어요! 진짜 대박!”
맨 뒤에 앉아 있던 김인하가 싸늘한 분위기에서 혼자 나섰다. 그러자 뒤에 앉아 있던 이시현과 몇몇 아이들이 책상을 두구두구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개멋있다, 우리 쌤!”
“차해준! 차해준!”
환호하며 연호해 주는 것에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그만하라는 듯 설레설레 저었지만 입가에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이상한 분위기에서 그나마 나를 위로해 주는 건 너희뿐이구나….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창가에 앉아 있던 천새벽이 나를 보며 입술을 움찔하는 게 보였다. 뭐라 말하려 하는 것 같아 주시하자 천새벽은 우물쭈물하다 고개를 팍 숙였다. 말 안 해도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옅게 웃었다.
일부러 밝게 분위기를 띄우며 노력하는 김인하와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 반은 초상난 것처럼 조용했다. 맨 앞에 앉아 있던 노태연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지우영은 조용했다. 뒤돌아서 뭐라 지적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책상에 시선을 내리깔고 펜을 돌리고 있었다.
뭐… 눈치 볼 필요는 없지.
나는 빠르게 출석을 부르고, 조례를 마쳤다. 밝게 오늘도 파이팅 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교실을 나섰다.
“차 쌤.”
복도에서 인사하는 애들에게 손을 흔들며 교무실로 가려는데, 언제 따라 나온 건지 지우영이 따라 나와 나를 불렀다.
“어, 왜? 무슨 일 있어?”
반 분위기가 이상했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먼저 물어봤다. 진짜 문제가 있는 거면 권 쌤에게도 말씀드려야 하니까. 하지만 한숨을 푹 내쉰 지우영은 다른 말을 꺼냈다.
“쌤, 정말 죄송한데요.”
“어, 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적당히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으응…?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순간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미묘한 내 표정을 보고도 지우영은 골치 아프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희 다음 시험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소란을 벌이시면, 솔직히 집중력이 흐트러져요. 찾아오는 애들도 너무 많고요. 우리 반이 모의고사 1등 반인 거 알고 계세요?”
“하….”
“저희 반 애들, 다 전국권이에요. 시험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다녀 주실 순 없을까요? 교생 실습도 얼마 안 남으셨잖아요. 반 애들이 예민해서요… 죄송합니다, 쌤. 그래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한마디로 나대지 말란 소리였다. 지우영은 뻔지르르한 얼굴로, 눈썹을 늘어트리며 무척 죄송하다는 듯 말했다.
좀 기가 막혔다. 아무리 교권이 낮아졌다지만, 선생님이 학생한테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나?
말만 들으면 내가 무슨 큰 문제라도 일으킨 줄 알겠다. 내가 한 짓은 그냥 게이트 닫은 것뿐이고. 학교 앞에 기자들이 몰려든 건 내 탓이 아니었다. 물론… 책임은 어느 정도 통감하고 있긴 한데.
나는 씩 웃으며 지우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시험, 중요하지.”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우영은 싱긋 웃고 교실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교실 문을 열었다.
“근데… 우영아.”
내 부름에 지우영이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지우영은 내가 저자세로 나오는 게 마치 당연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 이놈이 진짜….
“적당히 해야지. 선 좀 넘었다, 반장.”
“…네?”
“게이트 웨이브 터진 걸 내가 알아서 피할 순 없는 거 아니겠냐. 내가 알다시피 그냥 민간인도 아니고, 각성자에다가 길드도 길드고. 무엇보다 내 이익을 위해서 한 일은 아니잖아.”
천천히 굳어 가는 얼굴을 보며, 나는 지우영에게 한발 다가갔다. 지우영은 눈썹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난다. 지우영의 뒤로, 열린 교실 문 사이에서 내 말을 듣고 있는 듯 굳은 반 애들이 보였다.
분위기가 싸하더라니… 자기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였어? 이런 이기적인 친구들을 보았나.
나는 다시 지우영에게 웃어 보였다.
“너희가 무사히 공부에 전념하길 바라니까 나선 마음도 있어.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게이트가 터졌는데 어떻게 안 갈 수가 있겠니. 선생님이 A급 각성자인데.”
“…….”
“알다시피 A급 각성자는 게이트를 더 쉽게 닫을 수 있거든. 물론, 공부 중요하지.”
“…….”
“하지만 무사히 공부하려면 선생님 같은 각성자가 게이트 닫는 것도 필요하잖아. 안 닫으면 시험이고 뭐고 없는데. 그렇다고 그걸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게이트 닫혀서 시험도 원래 날짜에 원래대로 치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치? 일반인과 각성자 비교하면서 심술부리지는 말자.”
나는 서늘하게 굳어서 나를 노려보는 눈을 마주 보며 웃어 주었다.
“나야 이해하고 넘어간다 쳐도, 다른 곳에선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마. 요즘은 성적이 다가 아니잖아.”
지우영의 뺨이 움찔거렸다. 서늘하게 치켜뜬 눈을 마주 보면서, 나는 지우영의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려 주고는 등을 돌렸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수군대는 게 느껴졌지만 이번엔 진짜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너무한 거 아냐, 목숨 걸고 가서 싸웠는데 하는 말이… 하. 진짜 어이가 없네.
하여간 요즘 애들 기가 세다 못해 아주 싸하다. 우리 반 애들만 그런 건지, 지우영이 다른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제 말대로 반 주도권을 잡고 흔드는 건지 구분을 못 하겠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지우영을 힐끔 보곤 걸음을 옮겼다.
***
아침부터 지우영과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하고 나니 하루 종일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쌓여 있던 게 있어서 그런지 속은 후련했다.
반 애들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 몇몇 아이들과 지우영이 주도해서 만들어 낸 적대감일 것이다. 다른 반 아이들은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소란을 벌였다니, 게이트를 내가 열었나?
게이트 안 닫으면 인명 피해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몬스터는 변형까지 가능한 변이체들이었고, 그것 때문에 강영원도 당할 뻔했잖아.
보답을 바라고 했던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게이트로 인한 피해가 큰데 시험공부에 집중 못 하겠다고 조심해 달라는 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자존심 때문에 할 말 못 할 말 안 가리고 내뱉는 건 알겠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어린애한테 너무했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 이미 벌어진 일.
수업 자료를 정리하며 노트북을 닫았다. 때마침 교생실 문이 벌컥 열리며 조하영이 들어왔다. 조하영은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며 맞은편 의자를 빼 앉았다. 뭐야, 저 눈빛은?
“차 쌤, 한 건 했다며.”
“뭔 소리야, 또.”
조하영은 내 띠꺼운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지 책상에 바짝 기대 얼굴을 들이밀었다.
“복도에서 1반 반장이랑 싸웠다던데? 소문 쫙 났어.”
“…싸우긴 뭘 싸워, 학생이랑.”
“참교육 시전했다고 자자해~. 차 쌤 참지 않아?”
능글맞게 웃더니 그런 얘기였냐…. 떫은 얼굴로 조하영을 쳐다보자 조하영은 팔을 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럼. 호구 같고 자주 보면 멍청해 보여도 차 쌤은 각성자- 악!”
참지 못하고 조하영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각성자의 딱밤이라 존나 아플 거다. 쓸데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떠들고 있어.
“참교육은 무슨, 어린애랑 싸우긴 뭘 싸워. 너 또 그런 소문만 주워듣다가 실습 평가 나가리 된다.”
“저주를 해라, 저주를!”
조하영이 눈물 맺힌 얼굴로 이마를 움켜잡고 소리쳤다. 저주는 무슨. 네 앞길 뻔히 보인다, 아해야. 쯧쯧 혀를 차며 책상에 늘어진 물건들을 정리했다. 조하영은 입을 삐쭉 내밀다가, 다시 또 책상에 바짝 기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근데, 지우영 걔 유명하더라. 어머니가 무슨 기업 사모님이라던데. 학교에 기부도 많이 하고. 이번 일로 너 쫓아오는 거 아냐?”
“그러라고 해. 그게 무섭겠냐?”
“하긴,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A급 각성자에 모르젠트 소속이면 찍소리 못할 만도 하지.”
아니 그 소리가 아니라…. 에휴, 말을 말자. 나는 그냥 조하영을 무시했다. 조하영이 찡얼대며 자료 좀 보여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닿고 씩 웃었다. 보여 주겠냐, 이놈아!
조하영이 야박한 놈이라 타박했지만 타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게 수업 비는 시간에 나처럼 틈틈이 해치워야지. 물론 저번엔 조하영이 보여 줬지만 내 마음의 도량이 넓지 않아 허튼소리 하는 조하영이 얄미워서 보여 주기 싫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와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섰다. 나서면서 내 노트북 가방을 잡아당기는 조하영에게 선심 썼다는 듯 노트북을 건네줬다.
“비번 있다.”
“치졸한 놈…!”
조하영이 크흐흑거리며 눈을 흘겼지만 나는 홀가분하게 교실을 나왔다. 종례 때는 반 애들이 조용했다. 나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뭐 어쩌겠어….
교문을 나오는데, 도로 맞은편에 검은색 외제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차가 잘빠졌네. 감상하며 지나치려 했으나, 나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멈칫하고 말았다.
담벼락 쪽에서, 송류진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우와… 각본이다.”
“송류진….”
학교에서 나오는 학생들이 속닥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거리를 지나치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송류진과 나를 번갈아 가며 구경하고 있었다.
와, 당황스럽네. 학교는 또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밝게 인사하는 송류진을 보고 당황해서 주춤대며 뒷걸음질 치다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송류진에게 팔이 잡혔다.
“해준아, 끝난 거야?”
해맑게 웃는 얼굴이 순둥순둥한 강아지 같았지만, 나는 껄끄러웠다. 아, 이렇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마주친다고?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 어… 오랜만이다. 하하….”
“네가 연락이 없어서, 기다리기 힘들어서 찾아왔어.”
송류진은 내 팔을 잡아당기며 어깨동무를 해 왔다. 순간 움찔했는데, 송류진은 그걸 느끼고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내 몸을 바짝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어… 그래.”
“해준아, 너는 나 안 보고 싶었어?”
조용하게 말하긴 했지만 주변에 다 들릴 만큼 컸다. 시선이 더 주목되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며 말을 돌렸다.
“저 차 네가 가지고 온 거야?”
“응, 너랑 같이 저녁 먹고 싶어서 끌고 왔어.”
아하하. 이렇게 눈에 띄는 차를 저녁을 먹기 위해…. 재벌 집 아들의 심리를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
나는 한껏 주변을 의식하며 재빠르게 송류진을 끌고 차로 향했다. 이왕 끌고 온 거 빨리 타고 사라질 생각이었다. 송류진은 그 와중에도 내 옆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아, 피하고 싶다. 예전엔 손잡고 그러는 것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이젠 너무 의식되어 미칠 거 같았다.
송류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차 문을 열어 주기까지 했다. 이거 진짜 타야 할까…. 혼자 마른침을 삼키다가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 결국 얌전히 올라타고 말았다. 아, 피하고 싶다. 아니야. 정신 차려, 차해준. 무려 세계의 기둥이라는 메인 캐릭터를 찾아내고 피하겠다니 무슨 개소리야. 엉엉.
나는 당황과 미치겠는 껄끄러움 콜라보로 속으로 눈물 찔끔 훔치고 옆 운전석에 올라타는 송류진을 힐끔 쳐다봤다.
얌전하게 정리된 갈색 머리. 소의 눈망울처럼 온순해 보이는 눈꼬리. 불그스름한 입술이 환하게 말려 올라간다. 송류진은 정말 환하게 웃었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도 되는 거지?”
이후에 길드에 가야 하긴 한다만 저 녀석의 눈빛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밥만 먹고 가자, 밥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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