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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60화 (60/201)

60화

“선생님, 아무것도 아니에요.”

“…새벽아.”

“그냥 같이 놀던 중이었는데, 제가 넘어져서, 그래서….”

“봐봐요, 쌤. 우리 친목 다지는 중이었다니까?”

“차 쌤, 뭔가 오해하셨나 봐요. 우리 그런 사이 아닌데. 그치, 새벽아.”

“…….”

천새벽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우영의 눈썹이 일순간 꿈틀했지만, 지우영은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무리 교생 선생님이셔도 그렇지. 그렇게 학생 막 몰아가는 거 아니에요. 고작 교생이면서. 아… 각성자 헌터라서, 자부심이 좀 대단하셔서 그런가….”

나는 짜증 났음을 숨기기 위해 웃었다. 천새벽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이들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다는 거였다. 새벽이는 입을 다물었고, 지우영은 기고만장했다.

“이번 한번은 용서해 드릴게요. 어우, 제 팔 떨어질 거 같아요. 아이 아파라. 각성자는 진짜 다르다.”

지우영이 팔을 털며 비아냥거렸다. 머리가 차게 식는 거 같았다. 내 얼굴을 보던 지우영은 빙글빙글 웃었다.

“점심시간이라,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새벽이랑~ 깊고 진한? 뭐 그런 얘기 하실 테니까 비켜 드려야죠. 새벽아 나는 편견 없어. 응원한다.”

“요즘에 교생하고 학생 러브 라인이 유행인가? 쌤 입 다물고 있을게요~. 파이링, 파이링~.”

이것들이 은근슬쩍 이상한 협박을 곁들였다. 나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무슨 자신감이지? 이놈들은 지금 자기들이 한 짓에 대해선 전혀 죄책감이 없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그들이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천새벽이, 내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우영과 김인철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새벽은 내 옆에서 깊게 숨을 몰아쉬더니 나를 한번 보고는 고개를 떨궜다. 눈시울이 붉어진 것도 같다.

“왜 거짓말을 해.”

“…소용없어요.”

“새벽아.”

천새벽은 굉장히 미안한 얼굴로 부축하고 있는 팔을 뿌리쳤다.

“죄송합니다.”

“천새벽.”

“못 본 척해 주세요.”

“도와줄게. 가서 권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아뇨. 다 알고 계실 거예요. 말을 안 꺼내는 거지.”

“…뭐?”

처연한 미소가 입가에 맺혔다. 천새벽은 물기 어린 눈가를 쓰윽 닦아 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알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도 안 한다고? 권 선생님이? 그럴 분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아니, 새벽아.”

“진짜 괜찮아요. 진짜. 그냥, 저 때문에 선생님이 불편한 상황 되신 게 더 죄송해요.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새벽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황급히 등을 돌렸다. 나는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차마 잡지를 못하고 보냈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냐….”

골이 울린다. 천새벽과 지우영, 모두 시나리오에 나오는 아이들이었다. 아니, 이런 사이였는데 천새벽이 각성을 하고 반장과 다른 애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한다고?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

“요즘 애들 졸라 살벌하다, 야. 끼어들지 마.”

점심시간. 조하영이 식판을 앞에 두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날이 있은 후로 하루가 지나고, 나는 조하영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한 참이었다.

조하영이 밥을 우걱우걱 먹으며 또 한 숟갈을 푹 떴다. 나는 불편한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너라면 그런 상황에 가만히 있을 거냐?”

조하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씩 웃었다. 입 안에 가득한 걸 꼭꼭 씹어 삼킨 조하영이 말했다.

“가만히 있겠냐? 원래 세상은 힘으로만 돌아가지 않는 법이란다, 아해야.”

뭔 개소리야. 뚱하게 쳐다보니 조하영이 한심하단 눈으로 나를 보며 젓가락을 든 손을 흔들었다.

“요즘 애들은 보통이 아니라고. 머리를 써야 해, 머리를. 본색을 드러내게.”

“…어떻게?”

“걔들이 자극받는 게 뭐일 것 같아?”

“…성적? 외모? 공부? 집안?”

“요즘 애들 눈치가 빨라서 아주 기똥차게 네가 말한 그것들을 캐치해 내요. 학교가 말이야, 말은 안 해도 다들 은연중에 그런 것들로 급을 나눈단 말이지. 네가 말한 애들은 분명 위에서 노는 애들일 테고.”

“…그래서?”

“그럼 뭐겠어. 자존심 강한 애들 어떻게 해 줘야겠어?”

뭔 개소리를 이렇게 장황하게 떠들지. 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조하영은 쯧쯧 혀를 찼다.

“넌 멀었다, 이놈아.”

“똑바로 말해 봐.”

“너 집안 좋아?”

“…아니.”

“빽… 은 네가 각성자니까 일단 이건 됐고. 얼굴은…….”

“말 끝까지 해라.”

“으으은…….”

“끝까지 하라 했다.”

조하영이 말끝을 흐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야, 나도 잘생겼다고 나름 듣거든? 이게 진짜…. 아오, 막 울컥하게 만드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고!

조하영이 쩝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자존심을 건드리라고. 그놈들이 본색을 드러낼 만하게.”

“…그걸 어떻게 하지?”

“그건 네가 찾아봐야지.”

“…….”

할 말이 없다. 아니 좀 도와줄 순 있잖아. 그렇게 쳐다봤지만 조하영은 나를 힐끔 보고 무시하고는 소시지를 두 개씩 퍼 먹었다. 그러다 못해 내 것을 노리는 조하영을 젓가락으로 막아서 소시지를 사수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넌 잘 지내냐?”

“나?”

조하영이 씩 웃었다.

“어때 보여?”

나는 얼굴을 구겼다. 하, 조하영 좀….

“다 씹고 말해라, 다 씹고. 삼키고.”

“에베베베-.”

“에이씨-!”

입을 더 쩍 벌리고 음식물이 찬 입 안을 보여 준다. 나는 진저리 치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도움이 안 돼요….

***

“흐으음~ 음~.”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가 가운데, 한 남자가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방방 뜨는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 흩어지고, 햇빛을 받은 속눈썹이 연한 색으로 물들었다.

부드럽게 뻗은 눈매가 살포시 휘어지며 매력적인 눈웃음을 만들어 냈다. 남자, 진마하는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사방이 고급 주택들로 가득 찬 곳은 높은 담벼락으로 인해 어디가 어디인지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웠다. 진마하는 양 갈래로 갈라진 길목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고민하다가, 오른쪽 길을 택해 올라갔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

이런 날에는 무언가 부숴야 기분이 나아졌다. 누군가의 머리라든가, 아니면.

진마하는 어느 한 집 앞에 도착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누군가의 정신이라든가.

진마하가 바라보고 있는 주택은 담벼락이 높았고, 검고 커다란 대문은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진마하는 무구한 얼굴로 주변을 한 번씩 살펴보고는 잔뜩 기대에 찬 발걸음으로 저택의 대문을 밀었다.

콧노래가 계속 흘러나온다. 오늘은 정말 재밌는 날이었다. 지난번 오염된 지하 도시 게이트를 열었을 때 작업해 둔 것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누구를 고를지 게이트에 들어온 S급 중 고민을 많이 했지만, 개중 두드러지는 욕망을 가진 놈을 선택했다.

우리 해준이에게도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모르게 케이든을 비호해서 몇 번이나 지켜 줬지만, 역시 나탈리스를 죽인 각성자에겐 케이든도 역부족이었다. 너무 쉽게 죽어 버렸지, 그놈. 진마하는 아쉬운 얼굴로 눈썹을 늘어트렸다. 케이든이 말한 504가지 실험 내용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는데….

닫혀 있던 대문은 원래 잠겨 있던 적이 없는 것처럼 손쉽게 열렸다. 붉은 입술이 한껏 올라갔다.

“뿌려 둔~ 씨앗은~.”

대문을 넘고 어느덧 저택의 현관 앞에 도착한 진마하는 아무렇지 않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지도 않고, 커튼을 겹겹이 쳐 놔 어두운 거실을 가로질렀다.

“잘 자라고 있을까요~?”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고요한 집 안을 가로지르듯 흔적을 남겼다.

진마하는 어느 방 앞에 도착해,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정말 설렌다는 얼굴로, 한껏 기대에 찬 얼굴로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한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달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송류진이었다.

“…형, 나중에-.”

당연히 우반희라고 생각했던 송류진은 문 앞에 서 있는 낯선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당신 뭐야.”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분명히 잠겨 있었을 집 안으로 침입한 남자.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요.”

어둑한 집 안, 가만히 선 진마하의 두 눈이 다른 색으로 빛났다.

“매일 귓가에 속삭여 주긴 했지만 말이야.”

진마하는 속삭이듯 읊조렸다.

“내가 말했잖아, 류진아.”

“너… 뭐….”

진마하와 눈을 마주친 송류진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소름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가만히 굳어 버린 송류진을 보는 진마하의 얼굴에 기이한 웃음이 맺혔다.

“원하는 건 마음대로 가지라고.”

진마하는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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