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나는 새벽이 옆에 놓인 책상에 걸터앉았다.
“이 자리에서 보는 학교 풍경이 좋다. 조용하고. 그래서 일찍 오는 거야?”
“네. 조용한 걸 좋아해서요.”
“아까 올 때 노래도 부르던데?”
“예? 아, 그냥 노래가 좋아서.”
내 말에 새벽이가 한껏 당황했다. 부끄러운 건가.
“어쩌다가 걸어오는 걸 봐서 그냥 말한 거야.”
혹시나 훔쳐봤다고 생각했을까 봐 서둘러 변명했다. 내 말에 새벽이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가지런한 손끝을 쳐다봤다. 쑥스러움도 많이 타고, 조용한 성격이구나. 이런 애가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앞에 나설 수 있었을까.
새벽이는 그냥 딱 봐도 착한 게 느껴졌다. 기운이 청량하다고 해야 하나.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도 귀여웠다.
“여기서 커피나 마시고 느긋하게 자고 싶다.”
“커피 먹으면… 잠 안 오잖아요.”
“나는 잘 자. 각성자라서 그런지 카페인이 안 받거든.”
“아.”
이른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창밖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좋았다. 옛날 어렸을 적 학교 다녔을 때도 떠오르기도 하고. 차해준도 이렇게 이른 아침에 학교 나오는 걸 좋아했었다. 교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다니지 않아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걸리는 걸 피하기 위해 일찍 나온 거였지만…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고요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걸 즐겼다.
차해준의 과거를 생각하니까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는 것 같았다. 학창 시절 때도, 송류진이 아니면 차해준은 항상 혼자였었다. 어디에도 친구도 없고, 놀러 다니거나 했던 기억이 없었다. 어휴, 짠한 새끼. 그러고서 혼자 몰래 사람들이나 구하러 다니고.
내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자, 새벽이가 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새벽이를 보고 씩 웃었다. 너는 그러지 마라. 차해준처럼.
“…애들이 좀, 예민하죠?”
슬쩍 꺼내는 말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좀 많이 예민하던데.”
“다들 원래 안 그러는데… 그게.”
“원래 다 착하지. 알아.”
각성자가 아니면 일반인으로서 고3은 미래 걱정에 한창일 때였다. 한국은 대학교 가는 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여기니까. 여기저기서 부담감도 많을 테고.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너도 혹시….”
내가 가늘게 눈을 뜨고 쳐다보자 새벽이가 퍼뜩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절대. 진짜요. 저는 처음 오셨을 때부터-.”
“때부터?”
“그때부터… 그…. 네….”
말을 잊지 못하고 얼굴이 벌게지는 아이를 보고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귀엽네, 짜식.
새벽이를 보다가, 머리끝에 걸린 나뭇잎을 발견했다. 나는 천천히 새벽이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새벽이가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뺀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머리카락을 툭 건드리는 손길에 새벽이가 흠칫 놀란다. 나는 붙어 있는 나뭇잎을 떼어 새벽이에게 보여 줬다.
“뭐가 붙어 있길래.”
갑자기 다가와서 놀랐나. 나는 경직된 새벽이 앞에 나뭇잎을 흔들고 그것을 창밖에 놓았다. 밖에선 이제 슬슬 한 명씩 등교를 하기 시작했다.
“슬슬 오기 시작하네.”
새벽이는 대답이 없었다. 돌아보자, 날 쳐다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새벽이는 목울대를 꿀렁이며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귓바퀴가 벌겠다.
음,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그렇다고 말하기엔 안색은 괜찮았는데. 내가 책상에서 일어나자 새벽이도 벌떡 일어났다.
“저, 저는 좋아요!”
“응?”
“아니, 그게….”
아, 내가 좋다고? 아 귀여워. 부끄러웠는지 새벽이는 고개를 휙 돌렸다. 와, 진짜 오랜만에 보는 순진한 반응이었다. 내가 소리 내서 웃자 새벽이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 근데.
“열나는 건 아니지? 얼굴 빨개.”
“읏-.”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고 이마에 손을 얹자 새벽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끈하긴 하지만 열은 아닌 거 같았다. 갑자기 손 올려서 놀랐구나. 미안. 나는 새벽이의 어깨를 짚고 말했다.
“혹시 아프면 꼭 보건실 가고.”
“…네.”
“근데 새벽이 너 키가 크네.”
“…….”
“나랑 비슷해.”
나와 눈높이가 얼추 맞았다. 하복에 카디건을 입어서 좀 여리여리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덩치도 있었다. 얼굴과 매치가 안 되네. 누구처럼. 나는 백루찬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나는 이만 가 볼게. 아침 조례 때 보자.”
“…네.”
조용하게 대답하는 새벽이의 머리를 한번 흐트러트리고, 교실을 나섰다. 시나리오가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겠지만, 저 애는 꼭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만이 아니라… 학교에 있는 애들 모두.
게이트가 학교에서 터지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그런 고민을 하면서, 나는 교무실로 향했다.
***
오전엔 교생실에서 피피티와 수업 계획안을 짜야 했는데, 나는 조하영 거 좀 베끼면서 시간을 보냈다. 얼마 후 머리를 쥐어짜며 간신히 수업 계획안을 완성했다.
실습 만만하다고 누가 그랬냐, 진짜. 작년에 나갔다던 노경서였나. 할 만해요~ 하면서 실실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쩐지 웃는 게 수상쩍더라니…. 실습 끝나면 보자, 친구야.
내 자리 맞은편에는 조하영이 앉아 있었다. 꾸벅꾸벅 조느라 책상에 계속 이마 박치기를 하고 있는 조하영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다리를 툭 쳤다.
“조 쌤,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조하영이 머리를 번쩍 들고 벌떡 일어났다.
“예, 예! 자긴 누가 자요! 심도 있는 학습… 엥…?”
“심도 있는 숙면 잘 봤습니다.”
금세 상황 파악을 한 조하영이 짜증을 내며 이마를 문질렀다. 이마 한가운데가 벌겋게 되어 있었다. 너 인마, 엄청난 꿀잠을 잤구나.
혀를 쯧쯧 차며 조하영의 머리를 대강 정리해 주곤 교생실을 나왔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었다.
“이제 겨우 일주일 됐는데 씨바… 존나 힘들다….”
“제발 말 좀 곱게 해라. 학교야, 여기.”
“아앗, 실수.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였군.”
“항상 부족하셨으니까 어쩔 수 없죠. 정진하세요.”
“아, 손맛이 부족한 참이었는데, 차 쌤. 갑니다.”
조하영이 내 등짝을 퍽-! 내려쳤다. 나는 상체를 비틀며 이를 악물었다. 아오, 진짜 뭔 놈의 손이 이렇게 매워! 고통에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고 조 쌤이 신나서 달려간다. 저게 진짜! 잡히기만 해 봐. 이를 으득 갈고 빠른 걸음으로 조하영의 뒤를 쫓았다. 어차피 갈 곳은 급식실 하나였다.
“거기 서세요, 조 쌤.”
“하하하, 차 쌤 같으면 서겠어요?”
그래 봤자 조하영은 내 손안이었다. 다리 길이가 십 센티가 넘게 차이 나는데 못 잡을 리 만무했다. 금방 뒷덜미를 잡힌 조하영이 놔라- 하며 씩씩댔다.
마침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애들이 우르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멋지게 급식실로 뛰던 학생들이 조하영과 나를 보고 놀리기 시작했다.
“뭐야, 쌤들 사귀어요!?”
“악! 조 쌤! 구해 줘야 돼!”
난리 법석을 떠는 아이들을 따라 조하영이 잔뜩 울상을 짓는다. 그래 봤자 소용없다. 급식실까지 이 모양 이대로 간다. 어떻게든 쪽을 주겠다는 단단한 내 마음가짐을 조하영도 느꼈는지… 어라.
나는 앞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조하영의 뒷덜미를 놓아주고 손을 털었다.
“먼저 가서 먹고 계세요, 조 쌤.”
“차 쌤?”
조하영이 불렀지만, 나는 급식실로 향하는 길목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떨어진 앞, 건물과 건물 사이 틈새로 사라지는 천새벽이 보였다. 언뜻 보이는 표정은 무척이나 굳어 있었다. 그 뒤로, 지우영과 다른 남자애 한 명이 주변을 살피더니 골목을 따라 들어간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지우영의 패거리가 천새벽과 같이 있다는 게 이상했다. 천새벽은 혼자 벽을 쌓고 있는 것처럼 항상 혼자 있던 아이였다. 지우영은 반을 주도하며 다른 무리와 어울려 다녔고.
나는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그 뒤를 따랐다. 이쪽 골목은 분리수거장이 위치한 인적 드문 곳이었다. 학생들은 거의 오지 않을뿐더러, 미화원분들이나 가끔 드나드는 그런 곳이었다. 현길용과 같이 결계석을 확인하러 갈 때 잠깐 돌아서 알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걸었다. 하얗게 칠해진 벽 모퉁이 너머로, 둔탁한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까지. 잠깐 걸음을 멈춰 섰다.
“한 번만 봐 달라고 했잖아.”
지우영의 목소리였다. 평소처럼 부드럽고 여유가 넘쳤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퍽- 소리가 났다.
“그렇게 공부한다고 대학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사람 부탁을 안 들어줘. 문제 몇 개 틀려 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나는 다급하게 모퉁이를 돌았다. 돌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쓰레기 더미에 넘어진 천새벽과 그 애의 배를 발로 짓누르고 있는 1반 남학생의 모습이었다. 저 애 이름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눈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김인철.
“거지 새끼가 씨발-.”
김인철이 한 번 더 천새벽을 발로 차려다가, 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지우영은 아직 내가 온 것을 발견하지 못한 거 같았다. 김인철이 샐쭉하니 웃으며 턱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제야 지우영이 뒤를 돌아봤다.
따분한 표정으로 천새벽을 보던 지우영은 이내 나를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차 쌤? 식사 안 하세요?”
말을 거는 말투가 느긋했다. 이 상황을 들킨 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을 보다가, 그들을 지나쳐 천새벽을 부축했다. 뺨을 맞은 건지 입술이 터져 있었다. 천새벽의 눈이 잔뜩 흔들렸다.
“괜찮아?”
묻는 말에 대답은 없었다. 나는 새벽이를 일으키고, 발자국 자국이 찍힌 교복을 털었다. 김인철이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물러났다. 지우영은 뻔뻔하게 다가와 천새벽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천새벽이 움찔했다. 목을 억지로 당겨 몸을 붙인 지우영이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교내 생활에 왜 참견하시고 그러세요. 완장 달아서 티 내고 싶으신 건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떫은 표정으로 천새벽의 어깨를 감싼 지우영의 팔을 쳐 냈다. 지우영은 내가 친 팔이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아야-.”
“와… 쌤 각성자라고 티 내는 거예요? 일반인한테 힘 막 쓰네?”
김인철이 옆에서 덧붙이며 낄낄댔다. 이놈들이… 하. 기가 찼다.
“수업 끝나고 남아. 학생 부장 선생님께 말씀드릴 테니까.”
“와~ 쌤. 무슨 소리세요. 우리 친목 다지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와서 친 건 선생님이신데….”
지우영이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김인철은 눈썹을 늘어트리며 지우영의 어깨를 감쌌다. 일부러 오버하는 게 티가 났다.
“각성자가 어디 학생에게 손을 대!”
이것들이 진짜…. 의도가 뻔히 보여서 더 화가 난다. 내가 지우영의 팔을 쳐 낸 것을 가지고 힘을 썼다. 스킬을 썼다 하며 몰아갈 것이 뻔했다. 나는 천새벽을 바라봤다. 천새벽은 우울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더 하려고 할 때였다. 천새벽이 내 팔을 붙잡았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59)============================================================
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