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엉망진창 와장창 교생 생활
“특수 시설 다뤄 본 적은 있어요?”
어젯밤 늦게까지 달렸는지 안색이 불그죽죽한 현길용이 술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나는 지금 졸지에 한일고 상주 헌터인 이 사람과 학교 주변을 순찰 중이었다. 교장이 아침부터 교무실로 찾아오기까지 해서 내 손을 잡고 ‘직접’ 부탁해 왔기에 거절하지 못했다. 존나 부담스럽게 말이다.
현길용은 술 먹고 뒤집힌 속 때문에 혼자 헛구역질하며 숙취에 골골댔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현길용을 따라 걸었다. 이러고서 미성년자가 있는 학교에 출근이라니, 존나 각본 뭐 하냐. 이런 놈들 안 자르고.
“특수 시설이 뭡니까?”
“그것도 몰라? 하, 모르젠트 이름이 울겠네.”
“…….”
고작 그거 모른다고 모르젠트 이름이 울 것 같진 않은데요.
현길용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특수 인챈트와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석으로 만든 결계석이 들어간 다인 방어 실드 기계요. 돔 형태로 학교를 감싸고 있는 건데 헌터면 이거 필수로 알아야 할 텐데?”
“아….”
“학교 같은 시설들은 비싼 돈 들여서 결계석을 사서 쓰지. 근데 그게 뭐 많이 나오나. 마석이 들어갈 데가 얼마나 많은데. 솔직히 그거 하나 나오면 인생 편 거라고 봐도 무방해. 하, 예전엔 내가 말이야. 마석이 나오는 게이트라면 다 들어갔었어요. 근데 한 번도 안 뜨더라니까. 마석도 사람 차별하나.”
현길용이 설명하면서 은근히 제 자랑과 불만을 늘어놨다.
마석으로 결계석을 만든다라…. 게이트에서 매번 기절만 해 가지고 뭐가 보상으로 나오는지도 몰랐다.
이럴 때 헌터 교육 못 받은 게 티가 난다. 백루찬이 헌터 교육 한솔이랑 같이 들으라고 했었는데, 중간에 게이트 또 터지고 흐지부지 넘어가 버렸다. 에이씨, 시간 좀 내서 들어 볼걸.
학교 주변을 느리게 걷던 현길용은 중간중간 결계석이 박힌 기계가 놓인 곳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확인하라고 말했다.
나는 네모난 컴퓨터 모듈 박스처럼 생긴 기계를 살펴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확실히 마력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오, 신기하네.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어째 마력이 계속 끊어지는데. 이거 맞나?
기계와 연결된 결계석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나는 현길용을 불렀다.
“이거 좀 이상한데요.”
현길용이 중얼거렸다.
“뭣도 모르는 새끼가… 참나.”
현길용은 귀찮다는 얼굴로 휘적휘적 다가와 기계를 대충 훑고는 몸을 돌렸다.
“예산상 문제로 마력이 적은 놈을 써서 그래요. 원래 이럽니다.”
…아닌 거 같은데. 그러나 정말 뭣도 모르는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교장이 이사장까지 겸한다면서 돈을 어디다가 쓰는 거냐. 이런 데나 좀 팍팍 쓰지.
다들 그거 믿고 이 학교 다닐 텐데.
“그래도 좀 불안하니까 윗선에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예, 예.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끄쇼.”
귀찮다는 대답에 좀 빡쳤지만 그냥 한숨을 한번 내쉬고 꾹 참았다. 어차피 담당자는 저 사람이고 내 말보단 저 사람 말을 더 들을 거다. 무엇보다 저런 놈들은 질척거려서 뭐라 하면 말대꾸한다고 지랄할 새끼들이었다.
학교 뒤편까지 싹 돌고 나서, 이제 교무실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현길용이 대뜸 말을 걸었다.
“몰젠은 어떻게 들어갔나?”
“예?”
“A급이라면서. 능력이 뭐요?”
…각성자 능력을 물어보면 다 대답을 해 주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검 좀 씁니다.”
“아-.”
현길용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별것도 아니네.”
…그럼 씨발 지는. 날다람쥐 사냥꾼이면서? 존나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학교에서 괜히 싸움 낼 필요 없다. 난 교생이다. 실습 중이다. 그렇게 계속 혼자 마인드 컨트롤 했다. 하지만 현길용의 조동아리는 멈출 줄 몰랐다.
“내가 말이야. 왕년에 마탄의 사수라고까지 불린 사람이야.”
“랭커 마탄의 사수요?”
“걔가 나보다 늦게 떴어.”
…본인은 뜨긴 하셨나.
“A급이라 좋긴 하겠수다. 근데 모르젠트는 어떻게 들어갔나?”
“…아는 사람이,”
“허어, 아는 사람? 아는 사라아람? 인맥발이야? 역시 이 나라는 인맥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니까. 학연 아니면 지연! 이게 나라냐!”
아직 말도 다 안 끝났거든…?
“…….”
“어쩐지 암만 A급이라도 어떻게 모르젠트에 들어갔나 했네.”
그러면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예… 네 말 다 맞아요.
“게이트는 몇 번 들어가 봤어?”
이제 아주 그냥 말을 놓으시고요.
“…몇 번.”
“내가 서울 근방 게이트란 게이트는 모두 털고 다녔어. 경험으로는 비교가 안 돼. 근데 A급 헌터가… 영 못미더워 보여서. 모르젠트도 다 죽긴 했나 봐. 인맥으로 헌터를… 허, 참.”
기가 찬다는 얼굴로 나를 훑어보다가 짜증 난다는 얼굴로 몸을 돌린다.
“상주 헌터는 거저먹는 자리라 노리는 인간들 많지. 그렇다고 내 자리 뺏으려 하진 말고. 모르젠트에 나 찔러 넣어 주면 생각은 해 볼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웃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가던 현길용이 등을 돌려 다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싱긋 웃었다.
“B급 정도가 인맥발 타기엔, 등급이 부족하잖아요.”
“…뭐라고?”
“그럼 수고하십시오.”
현길용이 뒤에서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무시하고 내 갈 길 갔다. 등급으로 급 나누는 게 진짜 저속하지만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개빡쳐서.
진짜 여기 와서 별 개소리를 다 듣겠네….
***
너덜너덜한 프린트지를 한번 살펴보고 나는 심호흡했다. 첫 수업으로 게이트 발생 시 대처 방법에 대한 내용을 수업하게 되었다. 내가 아마 가장 빠르게 실습에 들어가는 선생님이 될 거라고 권 쌤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조하영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뭐 물론 이것저것 배우고 있느라 바쁘겠지만. 그래도 이건 부담감이 다르다.
한숨을 쉬고, 3학년 1반 명패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소란스럽던 반이 조용해졌다.
씩씩하게 걸어서 교탁에 준비물을 내려놓고 씩 웃었다.
“애들아 안녕. 오늘 쌤 첫 수업이야. 잘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답이 없을 줄 알았는데 뒷자리에 있던 학생 한 명이 손을 번쩍 들고 인사해 줬다. 이름이… 김인하. 인하야 고맙다.
인하가 인사를 하자 여기저기서 인사가 나왔다. 나는 웃으며 받아 주고는 노트북으로 피피티로 준비한 오늘 수업 내용을 띄웠다. 오늘 분위기 좋네. 이러면 잘 끝낼 수 있겠다.
“오늘은 게이트 터질 때 대비해서 안전 교육을 하려고 해.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뭐 궁금한 거 있어?”
김인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각성자 언제 되셨어요?”
“응? 그런 게 궁금해?”
“능력 보여 주시면 안 돼요? 너무 신기해요. 이렇게 가까이서 각성자는 처음 봐요!”
“아, 나는-.”
“인하야.”
대답해 주려고 입을 열려 할 때, 갑자기 지우영이 끼어들었다. 지우영은 인하를 향해 뒤를 돌아보더니,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나를 바라봤다.
“쌤, 저희 대처 방안 교육은 1학년 때부터 10번 이상 들었는데, 꼭 필요할까요?”
“…어?”
순간 당황했다. 지우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는 각성자가 아니다 보니, 필요한 건 알지만… 이제 곧 기말이 있어서요.”
“아… 그런데, 대처 교육이 게이트 양상에 따라 다 달라지거든.”
어색하게 웃으며 다른 애들을 살펴봤다. 앞자리 몇몇이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가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그때, 뒷자리에 있던 다른 아이가 기가 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존나 빡빡하게 군다. 지만 공부하나.”
시스템창에 이름이 떴다. 이시현.
이시현의 말에 반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시현이 잔뜩 비아냥거리며 지우영을 꼬나봤다.
“너 뭐 돼? 존나 지랄한다. 쌤이 하신대잖아. 게이트 터졌다가 못 피해서 뒤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지우영은 잠시 표정이 굳었다가 아무렇지 않게 뒤를 돌아보고 이시현을 확인했다. 이시현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지우영은 반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괜히 나섰고. 쌤, 죄송해요.”
그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노태연이 입을 열었다.
“저는 반장 말에 동의하거든요.”
노태연은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각성자라 모르시겠죠, 뭐. 저는 제 공부 하고 싶은데요.”
이유 없이 적대적인 눈빛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와, 입이 안 떨어지네. 곱게 말을 돌려 하고 싶은데 애들한데 내가 뭐라고 해야 되지.
“쌤, 의견이 나뉘는 거 같은데… 애들아, 다른 공부 하고 싶은 사람?”
지우영이 손을 들라는 듯 표시했다. 눈치를 보던 반 아이들이 하나둘 슬금슬금 손을 들기 시작했다. 거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었다.
맨 뒤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천새벽이 그때 고개를 들었다. 천새벽은 조용히 나를 살피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쳐서, 얼떨결에 나는 살짝 웃어 줬다.
뒤에서 이시현이 말했다.
“나는 쌤 수업 들을래.”
“나도.”
김인하가 덧붙였다. 지우영은 눈썹이 꿈틀하는 듯하더니, 다시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쌤, 반반 갈리는데… 괜찮으시면 수업 진행하실 때, 공부 급한, 애들은 문제집 풀어도 될까요? 아무래도 저희가 각성자가 아니다 보니… 이번 시험이 중요해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예의 바르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지우영의 눈빛 속에서 다른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가만히 작게 한숨을 내쉬고 교탁을 짚었다.
“그래, 그럼.”
나는 그냥 웃었다. 지우영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김인하가 무어라 말하고 싶은 듯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들었지만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시작할게. 따로 묻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좋아. 꼭 질문해 줘.”
불만 있거든 말로 해라… 라고 하고 싶지만 어린애들한테 뭐라 하기도 그렇고. 어차피 진짜 선생님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지금 나는 애들보단 시나리오가 중요했다. 지금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보고 있는 천새벽 말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그냥 그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
“여기까지! 얘들아 수고했어!”
“네, 쌤! 재밌었어요!”
김인하를 비롯한 몇 학생이 목청을 높여서 외쳐 줬다. 고맙다 자식들. 내가 기죽을까 봐 너희가 노력하는 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기 안 죽어 얘들아. 씩 웃어 주고 노트북과 짐을 챙겨 교실을 나왔다.
“와악! 진짜다!”
그러다가 교실 문을 열고 나서 깜짝 놀랐다. 종 치고 바로 온 건지 다른 반 아이들이 문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미친, 존나 잘생겼….”
“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쌤! 쌤 진짜 존나 멋져요. 와.”
“형이라도 불러도 돼요?”
“A급 각성자 차해준 맞죠. 대박이다 어떻게 내 앞에.”
애들이 저마다 정신없이 말하며 나를 둘러쌌다. 뭐, 뭐냐 이 반응. 처음에도 이렇게 반겨 줬으면 좀 좋았니. 내가 놀라서 눈만 끔벅거리자 애들이 소리 지르며 더 달려들었다. 야야, 누구야, 팔뚝 쓸어내린 사람.
“어, 안녕 얘들아. 맞아. 응.”
와아악 달려드는 애들 때문에 정신없이 인사해 주고 받아 줬다. 반응이 반 애들하고는 완전 달라서 더 정신없었다.
“쌔엠~~~사진 찍어도 돼요?”
“긍기사 진짜 개신기하다.”
“쌤, 필살기 한 번만.”
와, 진짜 정신없다. 아이들은 각성자 교생을 처음 본다며 더 신기해했다. 긍기사는 긍휼의 기사 줄임말이었다. 나도 그걸 홍희를 통해 알았다.
아니 무슨 연예인 된 기분이네. 얼떨떨하게 받아 주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에서 지우영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휴대폰 안 냈어? 너 2반이지? 하여간 성희 쌤은 무르시다니깐.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데 조그만 조용히 해 주라. 미안해!”
휴대폰을 들이대던 몇 애들이 멈칫했다. 지우영은 나를 보더니 싱긋 웃고 다시 들어가 버렸다. 둘러싸고 있던 여자애들이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더니 속닥거렸다.
“쟤는 분위기 파악 존나 못하더라.”
“시끄럽긴 씨발….”
욕하는 게 살벌하다. 나는 애써 그 말들을 흘려듣고는 웃으면서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사진은 안 되고, 나중에 수업 때 보자.”
“기다리고 있을게요!”
“게이트 내부 얘기해 주세요!”
조잘조잘 떠들며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대답해 주면서 복도를 벗어났다. 이런 인기는 처음이라… 좀 쑥스럽고 그러네. 그래도 아이들에게 최대한 맞춰 주려 애썼다.
각성자라 무서워할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나는 수업할 때 분위기를 떠올렸다.
이시현이 지우영 노려보는 게 아주 살벌했지….
끼어들어 한 소리 하기에도 너무 애매한 상황이었다. 지우영은 버릇없는 것 같으면서 예의가 발랐다. 애들 핑계도 잘 대고.
아니 권 쌤은 이런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다루셨지… 갑자기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그보다 천새벽과 좀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천새벽은 아주 얌전한 아이여서 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눈을 빛내며 수업 듣는 태도는 아주 좋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얘기 좀 해 봐야겠다.
어휴, 게이트에서 몹 써는 것보다 아이들 대하는 게 더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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