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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53화 (53/201)

53화

교생 실습

[각성자 차해준의 현재 남은 수명: 333일]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아 수명을 확인하니, 벌써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괜히 시간제한이 있으니 마음이 더욱 불안해진다. 아직 메인 캐릭터라곤 고작 2명 알아냈는데.

모르젠트에서 나온 나는 시나리오 속 학교를 찾기 위해 인근 고등학교들을 쓱 돌고 밤늦게 귀가를 한 상태였다. 나는 방금 씻고 나와 덜 마른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탈탈 털며 고민했다.

차라리 시나리오를 한 번 더 열람할까.

하지만 내일부터 시험 기간이다. 상태 이상을 감수하기엔 내일이 시험이고, 한 장 남은 상태 이상 해제 이용권을 쓰자니 나중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데 지금 또 쓰는 건 낭비 같다.

일단 시험 기간 동안은 그냥 시험에 집중하기로 하자.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는 호출기를 집어 들었다. 메시지 창을 켜 송류진에게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동안 꽤 많은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전히 송류진은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골방에 처박혀서 혼자 침울해하고 있는 걸까. 갈수록 걱정이 된다. 몸도 그대로 방치하면 더 안 좋아질 텐데….

일단 꾹꾹 자판을 눌러서 메시지를 전송했다.

[내일부터 시험이야.]

다른 별말은 안 했다. 걱정된다고 말해 봤자 소용도 없고…. 나는 현재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침대에 벌러덩 눕자, 스르륵 눈이 감겼다.

***

“하- 드디어….”

끝났다-!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열심히 자제하며 뿌듯한 표정을 모자로 가렸다. 드디어 시험이 모두 끝났다. 잔인한 시간이었다. 현타가 팍팍 오는. 그래도 무사히 치러 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백루찬이 주선해 준 과외는 효과가 좋았다. 선생님은 아주 싸가지가 없었지만, 효과만 좋으면 됐지, 뭐.

밤샘 공부를 해도 각성자라서 체력도 짱짱했고, 다크서클도 내려오지 않았다. 삼 일 밤을 연달아 새워도 그냥 조금 졸린 정도가 다였다. 크, 이런 건 진짜 각성자가 편리하다. 실기? 실기야 뭐 껌이고.

옆에서 좀비가 된 조하영이 비틀대며 걸어 나왔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었지만 조하영은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어 보였다.

“씨앙… 드디어 끝났다….”

“야, 앞 보고 걸어.”

조하영이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피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혀를 차며 조하영의 머리를 정리해 주고 놈의 뒷덜미를 잡아 넘어지지 않게 도왔다.

조하영이 비틀대며 걷다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노려봤다.

“싸부, 나는 언제 각성자가 되나?”

“아해야, 아직 멀었느니라.”

“졸라 부럽다…. 밤은 같이 새웠는데 왜 나만 이 모양 이 꼴…?”

조하영은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봤지만 나는 그냥 입꼬리를 잔뜩 올려 미소 지었다. 더 재수 없어 보이게.

어쩌겠냐. 인생이 원래 공평하지가 않단다.

“그러고 보니 이제 우리 교생 실습 나갈 때 됐네.”

조하영이 하품을 쩍 하며 말했다. 나는 놀라고 말았다.

“교생 실습?”

“체교과인데 그럼 교생 실습 안 나감?”

“졸업반이잖아?”

“너 실습 안 하지 않았냐? 뻔하지, 뭐. 근데 졸업하려면 실습 이수는 필수야.”

헐. 맹렬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실습 나갔던 기억은 없다. 아, 혹시 시나리오에 고등학교가 나왔던 게… 이래서였나?

조하영이 벙찐 나를 데리고 과사로 갔다. 게시판에는 실습 명단이 나와 있었다.

“차해준, 한일 고등하교. 와, 고등학교… 요즘 애들 개빡센데, 너 괜찮겠냐?”

“님도 같은 학교인데요.”

“…….”

조하영의 이름을 찾아 지적해 주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개빡센 애들 어디 한번 같이 케어해 보도록 하자꾸나.

하 근데, 실습, 실습이라….

시나리오에서 고등학교가 나오자마자 교생 실습이라니. 이거 역시 주인공이라고 해야 하나.

기껏 밤늦게까지 서울 근교 고등학교를 뒤졌는데 이렇게 ‘여기’라고 표시를 해 주다니 감사…는 무슨. 미리 알려 주든가.

벌써부터 스트레스로 위장이 살살 아파 오는 것 같다. 그럼 여기서 시나리오에 나왔던 사고가 난다는 거 아냐.

초반에 동작역 사건도 그렇고. 악몽의 참견 게이트도 그렇고. 시나리오에 나왔던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진행이 된다. 결과와 과정에서 좀 바뀔 뿐이지 진행된다는 건 변함이 없다.

애들이 있는 학교에서 무언가 벌어질 것을 미리 알고 있으려니 찝찝한 기분이 드는데. 저걸 미리 막는다고 막을 수도 없고 말이지.

고민하는 나를 힐끔 본 조하영이 내 등짝을 퍽 내려쳤다.

“쿨럭-!”

미친! 힘이 왜 이렇게 세! 아니 그보다 왜 때리냐? 내가 어이없는 눈으로 노려보자 조하영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쨔샤. 걱정하지 마라. 누님이 평탄한 실습으로 만들어 주마.”

“뭐래….”

“쓰읍, 너는 내 말만 믿고 따라오라고. 학생들 다루는 건 내 전문이다 이 말이야!”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개무시했다.

“차해준 학생? 잠시만요.”

그때 과사에 있던 조교가 나를 불렀다. 다가가자 조교가 나를 힐끔 보더니 손가락 한 마디 분량의 프린트물을 집어 나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요?”

“각성자가 교생 실습을 나갔을 시 알아 두어야 할 안전 교육과 규칙들 정리한 거예요.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일단 한일고는 이 정도고….”

“…….”

규칙이 무슨 필기시험 분량만큼 많은데요? 내 얼빠진 표정에도 조교는 시큰둥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 갔다.

“혹시나 실습 중 인근에서 게이트가 터질 시 상주 헌터가 가지는 통제권 일부를 넘겨받아요. 그리고 각성자 안전 교육, 게이트 안전 교육, 비상시 대처 교육 등등을 진행을 해 주셔야 하거든요.”

“제가요?”

“네. 나중에 각성자 신분으로 교권 잡게 될 시 상주 헌터 권한이 함께 넘어가서 그래요. 일단 프린트 참고해 주시고, 모르는 건 과사로 와서 물어보세요.”

조교는 내게 넘긴 두꺼운 프린트물 위로 또다시 두꺼운 책을 얹어 주었다.

“…….”

“할 말 끝. 가도 됩니다.”

옆에서 조하영이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나를 힐끔댔다. 비웃는 거다, 저거.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시험 끝났는데 또 공부….

“감사합니다….”

핼쑥한 얼굴로 돌아서려는 그때 조교가 깜박했다는 듯 덧붙여서 말했다.

“아, 모르젠트 길드 소속인 건 확실하죠? 각성자는 등록도 되어 있어야 하지만 각본 아니면 소속 길드에게서 신원 보증이 되어야 실습 가능해요~. 보통은 각본 쪽에서 서류 받아 오는데, 차해준 학생은 이미 길드 소속이니까.”

“보증 못 하고 실습 못 하면 어떻게 돼요?”

“졸업 못 하는 거지, 뭐~.”

조교가 마우스를 달깍이며 대답했다. 나는 허허 웃었다. 어째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죠….

“야, 역시 인생은 공평해. 그치?”

조하영이 옆에서 비웃었다. 나는 우울한 얼굴로 프린트물을 껴안았다.

***

“…그렇다는데.”

“오웅. 이렇게 날로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면 그냥 대놓고 부려 먹을걸.”

과사에서 들었던 얘기를 해 주니 홍희가 눈을 반짝이며 수줍게 손을 모았다. 아주 기뻐 보이는 구나 짜식아.

내 옆에 앉아 있던 백루찬이 또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뭐 하는 거냐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백루찬은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피곤해, 형.”

요즘 계속 피곤해 보이던데… 길드 일이 많이 바쁜가? S급이니 건강 문제는 아니겠지만…. 하, 송류진도 그렇고 메인 캐릭터라는 놈들이 왜 이렇게 골골대. 괜히 걱정이 된다. 이놈들을 멀쩡하게 살려 놓는 게 내 목적이라서.

“아까까지 잠만 잤으면서….”

홍희의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나는 그냥 한숨을 쉬고 놈이 기대게 놔뒀다. 실타래같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쓱쓱 만져 주자 백루찬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놈 얼굴에 넘어가서 이러는 건 아니다. 밀어내 봤자 다시 들러붙을 걸 알아서다. 진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냐?”

“신원 보증은 길마가 직접 해 줘야 해. 요즘 하도 사칭이 많아서 길드 가입 증명이 많이 바뀌었거든.”

“맞아요, 형. 우리 길드에선 나랑 홍희만 할 수 있어.”

“그럼 홍희가 해 줘.”

“길마 질투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고작 길드 가입시키고 증명 방법만 알려 주면 되는데 무슨 질투까지야.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홍희는 백루찬과 함께 쑥덕거렸다.

“봐봐. 전혀 모르는 얼굴.”

“그러게.”

“둘만 얘기하지 말고 나에게 설명을 해 줘.”

백루찬이 기댔던 머리를 떼고 내 팔을 잡아당겼다. 느릿한 손짓으로 손목을 덮는 소매를 올리고, 손등이 위로 가게 하고 손바닥을 겹쳐 잡아 깍지를 꼈다.

“…뭐 해? 가입시켜 준다며.”

“가입시켜 주려고요.”

백루찬은 요망하게도 웃었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내 손등 위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진다. 손가락이 피부에 스치는 감각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이 무슨… 야살스러운 행위냐.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빼내려 하자 백루찬이 깍지 낀 손을 꽉 잡아당기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손등에 입을 맞췄다.

피부에 닿아 오는 말캉한 감촉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움찔 떨었다.

“너, 뭐 하는-.”

그리고 백루찬이 입술을 떼자, 손등 위에 빛으로 만들어진 얇은 선이 생겨나더니, 글자의 형태를 갖추며 피부 위로 스며들었다. 진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글귀가 손등에 새겨졌다. 문신처럼 손등에 남은 글귀는 마력을 넣으면 글자가 드러나는 형태였다.

“언제든 희망을 마주할 것.”

새겨진 글귀는 이런 글귀였다. 언제든 희망을…. 이런 것을 백루찬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좀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었다. 오그라든다 해야 하나. 홍희가 씩 웃으며 자신이 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요즘 사칭이 많아서 이런 식으로 증명을 하거든. 평소엔 보이지도 않아.”

간단한 마법 스킬이었다. 나는 기분이 묘해졌다. 이렇게 입을 맞춰서… 한다고?

내 표정을 보고 무엇을 읽은 건지 백루찬이 설명했다.

“보통은 길드 인챈트(enchant) 스킬 가진 길드원이 처리하지. 내가 해 본 건 처음이에요.”

“…아까는 홍희랑 너만 할 수 있다며.”

“이러려고 거짓말했지.”

거짓말이 참 쉽다? 응? 백루찬은 그렇게 말하고는 깍지 낀 손을 풀지 않고 거기에다가 또 입을 맞췄다. 넋 놓고 보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손을 휙 빼냈다. 아니 왜 자꾸 뽀뽀를 해? 그 모습을 보던 홍희가 음흉하게 웃었다. 너 인마 그렇게 웃지 좀 마!

“형 부끄러워요? 귀가 빨개졌어.”

백루찬이 내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런 놈을 밀어냈다. 괜히 민망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어 버렸다. 백루찬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얼굴로 웃었다. 하여간 눈치만 빨라서.

“길드 가입도 마쳤으니, 이제 일을 해야겠죠?”

“…살살 시켜 줄래?”

“빚진 거 갚으려면 소처럼 일해야 한다고! 닳도록 뛰어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라!”

“뜬금없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몸으로 안 뛰면 어떻게 갚으려고! 유료 서비스를 받았으면 서비스 값을 내야 하는 법!”

홍희는 병실비, 입원비, 치료비 값을 계산하며 눈을 부라렸다. 애초에 선택권이 없었지 않냐고 따지려 했다가 참았다. 그래, 그래도 받아먹은 게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왕이면 게이트 공략해서 돈도 좀 더 벌면 좋고.

홍희는 어떻게든 나를 굴릴 생각에 신나했다.

“공략팀에 배정해 줄게! 드디어 한야의 활약을 내 눈으로 담을 수 있겠구나! 음화하핫!”

나는 떫은 표정으로 그런 홍희를 바라봤다. 이거 괜히 목줄 잡히는 기분인데. 백루찬도 옆에서 오묘하게 웃고만 있어서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일단은 넘기기로 했다. 그래 소시민인 내가 뭘 할 수 있겠니… 까라면 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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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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