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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51화 (51/201)

51화

모르젠트에 도착한 나는 삼엄한 감시 속에 로비를 지나쳤다. 아무래도 각본이 쳐들어오고 나서부터 경계가 지나치게 강화된 거 같은데. 괜히 나 때문인 거 같아 힐긋힐긋 쳐다보는 길드원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러고 도착한 곳은, 응접실처럼 꾸며진 곳이었다. 가운데 소파가 있고, 회의실에서나 쓸 법한 투명한 패널과, TV. 그리고 커다란 컴퓨터들이 중앙을 중심으로 둥글게 놓여 있었다.

중앙 소파에는 백루찬과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이 한국대 체교과 출신 헌터인가?

“왔어요?”

백루찬이 나를 보고 먼저 인사했다. 굳어 있던 얼굴이 순간 갈아 끼운 것처럼 화사해졌다. 피곤했나?

“잠은 잤냐?”

어딘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백루찬이 옅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애교 부리는 것 같다. 피식 웃으면서 백루찬의 뺨을 툭툭 쳤다. 이 얼굴로 귀엽게 굴면 보는 사람 마음 약해지는 거 뻔히 알고 있는 거지, 이거.

나는 그대로 백루찬 옆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훑어봤다. 꽤나 앳된 얼굴을 한 남자였는데, 나보다 더 어려 보였다. 백루찬이 분명 졸업생이라고 했는데?

“안녕하세요.”

남자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는데, 내 인사에도 대답 없이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하더니 백루찬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고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라, 좀… 적대적인데. 더 어색해질까 티 내진 않고 그냥 웃었다.

“형, 내가 말한 체교과 졸업생. 머리가 좋아서 학교 일찍 갔다 온 친구예요. 그래서 형보다 어려요, 21살. 그 뒤론 각성자라 군대 프리 패스 받고, 우리 길드로 영입되었고…. 우리 길드 공략 1팀 간판이라고 해야 할까?”

“강영원입니다.”

[이름: 강영원

칭호: 소리 없는 발자국

클래스: 나이트 워커]

이젠 부르지 않아도 시스템창이 먼저 알려 줬다.

강영원은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하며 나를 스윽 훑어봤다. 눈초리가 사뭇 날카롭다. 머리도 부슬부슬한 곱슬에 인상은 순둥하니 귀엽게 생겼는데…. 나는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차해준입니다. 저도 한국대 체교과예요, 이제 졸업반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도움받게 되네요.”

어린애한테 부탁하기엔 염치없어 보이지만 도와준다니 어쩌겠어. 받아먹어야지. 사람 좋은 척 실실 웃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강영원은 내 손을 빤히 보더니 눈썹을 구길 뿐 마주 악수하지 않았다. 그는 백루찬을 쳐다봤다. 마치 꼭 ‘내가 이런 사람과 악수를 꼭 해야 해요?’라는 눈빛 같았다. 하하, 어린놈의 자슥이… 띠껍기도 하다.

강영원은 마지못해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손아귀를 꽉 움켜잡는 게 확실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팍팍 티 내고 있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데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냐…. 바빠 죽겠는데 불러서 그래? 그럼 인마, 네가 길드장 하든가. 속으로 열심히 삐죽대며 욕했지만 겉으론 내색 하나 하지 않은 채 나도 손에 힘을 팍 주었다가 손을 놨다.

강영원이 코웃음을 친다.

백루찬은 옆에서 우리 둘의 신경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너무 친하게 지내진 말고.”

“무슨 소리야. 친해져야 잘 배우지.”

“질투 나게 하지 말라고요.”

백루찬이 열심히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웃으면서 실없는 소리나 내뱉는 걸 보니 진짜로 피곤한가 보다. 나는 백루찬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 소리 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피곤하면 가서 쉬어.”

“진심인데. 형은 맨날 내 진심을 헛소리로 듣는 거 같아.”

“너 지금도 헛소리하고 있다.”

“형이 무릎베개 해 주면 안 돼요? 그냥 조용히 잠만 자고 있을게.”

백루찬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강영원이 충격 받은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나는 백루찬을 밀어내며 가방에서 두꺼운 전공 책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안 돼. 진짜 공부해야 돼. 방해할 생각 하지 마.”

“왜 방해라고 생각해?”

“네 얼굴은 옆에 있기만 해도 방해야.”

“잘생겼단 얘기예요?”

“아니야.”

“아닌데. 그 말 같은데.”

백루찬이 실실 웃으며 몸을 늘어트렸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이놈아 무릎베개는 무슨…. 넌 옆에서 숨만 쉬어도 눈길이 가는 놈이라고! 내가 주접을 부리는 것 같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백루찬을 일으켜 빨리 나가라고 손짓했다.

“어렵게 강영원 씨 소개도 시켜 줬는데 뽕 뽑아야지. 공부하게 네 집 가서 잠이나 자. 끝나고 들를게.”

“나 보러 오는 거지, 형.”

“한솔이 보러 가는 거다.”

“에이.”

백루찬이 능글맞게 웃으며 내 손짓에 응접실을 벗어났다. 느릿느릿하게 가는 꼴을 보아하니 진짜 잠을 못 잔 거 같았다. 저렇게 피곤하면 좀 쉬지. 맨날 할 일 없어 보이더니… 역시 길드장이라 그건 또 아닌가 보네.

백루찬이 나가자, 나는 시험 볼 내용들을 체크한 프린트지를 꺼내 놓고 강영원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정신이 너무 없었네요. 루찬이가 소개해 준다고 해서 냉큼 왔어요. 너무 민폐 같지만 제가 급해서….”

“민폐란 건 알고 있었나 봐요.”

“네?”

“민폐라고요, 그쪽.”

…이건 또 뭐야. 강영원은 굉장히 짜증 난다는 얼굴로 다리를 꼬았다. 백루찬이 나가니까 몸가짐이 바뀌었다. 턱을 들고 내려다보는 시선이 거만하게 느껴졌다. 이 새끼가…?

“아하하, 죄송합니다. 저는 또 도와주신다고 허락하셔서 나오신 줄 알았어요.”

“길드장님 부탁인데 어떻게 허락을 안 합니까?”

“그… 그렇죠.”

권력이란 게 그런 거지. 하물며 대한민국은 사수에게도 찍소리 못 한다. 근데 백루찬이 억지로 끌고 오는 타입은 아닐 텐데….

“오늘 쉬는 날이었거든요. 한 일주일 됐나. 갑자기 길드장님한테 연락 와서 기대했더니…….”

강영원은 나를 아래위로 살펴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사람 소개해 주려고 부르셨다니.”

아니, 쉬는 날 부른 건 좀 미안한데 말이지.

어, 좀 불쾌해진다…? 강영원은 웃는 채로 굳어진 내 표정은 신경도 안 쓰고 제 말만 늘어놓았다.

“저기요. A급 헌터라고 했죠? 명동 게이트에서 활약해서 명성 얻은 사람. 긍휼의 기사였나…. 진짜 오그라드는 이명이다. 그런 거 붙기 쉽지 않은데… 근데 게이트 들어갔던 거 맞아요?”

“…예?”

“저도 거기 파견 나갔는데, 댁이 나오는 건 못 봤거든요. 흐음, 아님 길드장님 붙잡고 그렇게 기사 내 달라고 하신 건가….”

강영원은 다 안다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렇게 명성이 얻고 싶었냐?’라고 하는 거 같았다. 아니 내가 게이트 들어간 것도 맞고, 보스 몹 처치한 것도 맞긴 한데….

나는 더 말할 수가 없었다.

내 입으로 백루찬 품에 안겨서 나왔어요, 라고 어떻게 말해…. 썅…. 뭐 딱히 드러내고 싶었던 일도 아니고, 나는 그냥 웃었다.

“예, 뭐….”

“모르젠트 이름에 빌붙어서 명성이 그렇게 얻고 싶어요? 다음 타자는 공략 1팀인가? 여기 들어오고 싶어요?”

“예? 아뇨?”

“들어오고 싶어서 지금 일부러 부른 거잖아요. 길드장님을 얼굴로 꾀어낸 건지, 뭘로 꾀어낸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 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저기, 저기요.”

이봐. 혼자 너무 앞서 나가는데. 그리고 뭐? 꾀어내? 뭔 소리야 이건 또!

강영원은 혼자 어떤 생각을 했던 건지 못마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실력도 안 되는 게…. 길드장님은 대체 이런 사람을 왜….”

아니 저기요. 저는 단순히 시험공부 때문에 왔거든요? 어이가 털리면 대꾸도 나오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내가 어벙벙하게 있자 강영원은 내가 가지고 온 프린트물을 뒤적였다.

“일부러 꾸민 거치고는 요약본은 제대로 가지고 오셨네요.”

“…진짜 공부하려고 온 거라서요.”

“아, 예.”

강영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표정이었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괜히 더 피곤한 일 만든 거 아냐?

***

내 예상은 너무나 들어맞았다.

“…기초인데, 이건.”

“…….”

“orstein 과 Levine의 각성자의 부주의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감소시키는 효과적인 행동 6가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사상가들은 신체를 유기체라고 정의하며 여러 의미로 확대 해석 하고 있죠. 그럼 여기서 본질적으로서 어떻게….”

지금 강원영이 가르치고 있는 건 체육 교육론인데… 말하는 것마다 존나 어렵게 설명을 해 온다. 왜 사상가가 나오며…. 이 세계는 특히 각성자의 등장으로 신체 능력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더 추가되어야 했다. 강영원은 전공에 대해 이해력이 하나도 없는 나를 봐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루찬아 이 새끼 데려가….

시간은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이놈 틱틱대면서 끈질기게 핵심 요약 중에서도 쏙쏙 문제를 뽑아 알려 줬다.

“바비와 스와싱의 학습 유형은?”

“시각형, 청각형, 신체 운동형!”

내 대답에 강영원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나는 숨을 죽이고 놈의 입술을 쳐다봤다.

“정답.”

“예스!”

겨우겨우 스물다섯 문제를 모두 맞혔다. 폴짝 뛰며 기뻐하자 강영원은 한심하단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물론 나는 놈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공부하는 두 시간 내내 말로 쏘아붙이던 놈에게서 드디어 해방이다!

강영원은 순한 얼굴과 반대로 독하기 짝이 없었다. 뭐만 하면 꼬투리 잡고 이것도 모르냐며 비웃는데… 하, 네가 기억도 안 나는 전공 붙잡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나처럼 안 될까? 응?!

그래도 이제 끝났다. 나는 신나서 프린트물과 전공 책을 챙겨 넣었다. 물론 입으로는 감사 인사를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와, 진짜 고맙습니다. 쫙 요약해 준 덕분에 시험 잘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당연히 못 보면 안 되죠. 누구 시간을 끌어다가 썼는데.”

“하하… 그, 그죠.”

하여간 한마디 한마디에 인성이 부족한 게 그대로 보인다. 강영원은 저도 모르게 열의에 차 도와준 게 짜증 나는지 머리를 쓸어 넘기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너 말하는 거랑 다르게 열심히 하긴 했다. 그것으로 나는 놈의 부족한 인성을 용서해 주기로 했다. 그래 인마, 주둥이로만 세상 각박하게 살지 마라….

“고생하셨어요~!”

“아, 예….”

못마땅한 얼굴을 한 놈을 보며 환하게 웃어 주며 가방을 챙겨 들었다. 가려고 벌떡 일어나는데, 강영원이 그런 나를 붙잡았다.

“근데요.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궁금해요?”

“진짜 어떻게 우리 길드장님 꼬셨어요?”

“…안 꼬셨는데요.”

“아까는 막, 스… 스킨십도 하고.”

내 표정이 짜게 식었지만, 강영원은 그게 보이지도 않는지 말하면서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대체, 우리 길드장님을 어떻게 했길래….”

야, 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보다 내가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막 만지고…. 감히 그 용안을…. 나는 손도 못 잡아 봤는데!”

“…….”

“진짜 A급은 맞아요? 우리 길드장님이 등급으로 사람 판단하는 분은 아닌데, 이 정도면 뭔가 있는 거 같거든요?”

강영원이 흥분했는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휴, 키가 나보다 크네. 나는 헛웃음을 쳤다. 이 자식, 왜 이렇게 거슬리나 했더니 백루찬 때문이었냐. 백루찬 팬이야 뭐야.

“뭐 S급도 아니면서 왜 우리 길드장 옆에 달라붙고…. 솔직히 말해 봐요.”

강영원이 입매를 비틀며 다가왔다.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강영원이 눈을 빤히 노려보며 말했다.

“혹시 환각, 유혹, 뭐 그런 저급한 스킬이라도 썼나…. 우리 길드장님이 당할 분은 아니신데, 걱정돼서. 아니면 딴 거?”

강영원이 몸을 숙이며 더 조그맣게 속삭일 때였다. 갑자기 응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 몸이 왔도다!”

홍희가 등장했다. 강영원은 빠른 속도로 나에게 팔짱을 끼더니 홍희를 보고 수줍게 웃었다. 나는 당황했다.

“희 님! 오셨어요?”

강영원은 무슨 변장하는 것마냥 낯빛 하나 안 바뀌고 표정을 바꿨다. 마치 나랑 재밌게 놀았다는 것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사람처럼. 내가 당황하며 쳐다보자 강영원은 뭐가 문제냐는 듯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둘이 있다길래 사무실을 도망쳐 나왔지!”

홍희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홍희는 강영원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실소했다.

와, 이 새끼… 연기 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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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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