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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50화 (50/201)

50화

“모르젠트라더니, 길드 명성 다 죽었나 봐. 존나 비리비리해 보이는데, A급? 너 A급은 맞아?”

“길드 이름이 왜 나와, 여기서.”

“아니, 궁금해서. 나는 나보다 못한 새끼들이 나대는 거 진짜 싫어하거든. 주제도 모르고 꼴깝 떠는 꼴 좀 역겨워 가지고.”

“아….”

장휘열은 본격적으로 시비를 털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하영이 나보다 더 화가 나서 나서려 했지만 김수민이 붙잡아 챙겼다.

장휘열 뒤에 있던 고형욱이 슬슬 흥분하기 시작하는 장휘열을 말리기 위해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장휘열이 짜증 내며 손을 쳐 냈다.

“씨발, 어디다가 손대고 지랄이야.”

“…야.”

“가만히 좀 있어 봐.”

“휘열아, 이러다 라온에서 한 소리 또 듣는다.”

고형욱은 걱정된다는 듯 말렸지만 장휘열은 듣지 않았다. 저 새끼 저거 싸가지 없는 것 좀 봐라. 나는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놈이 하는 말을 다 들어 줬다.

“라온이 씨발, 네 말을 더 듣겠냐. 내 말을 더 듣겠냐? 주제 파악 안 돼?”

고형욱에게 일갈한 장휘열은 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주먹을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게, 아무래도 마력을 쓰려는 거 같았다. 흐음, 이 체육관에 민간인이 몇 명인데 지금 마력을 쓰고 난동을 부리실까….

“하지 마.”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장휘열에게 경고했다. 놈이 벌써 몸에 마력을 돌리는 게 느껴졌다. 놈이 주먹을 꽉 움켜쥔다.

“이딴 새끼도 모르젠트면, 내가 거기 못 갈 이유도 없잖아? 야, 한번 내기할까? 붙어서 지는 새끼가 여기서부터 기어서 길드까지 가기로. 가서 말하는 거야. 주제도 안 되는 놈이 길드 이름에 먹칠을 했다고 말이야-!”

한숨이 절로 나온다. 놈은 그렇게 말하다가 별안간 나에게 마력을 실은 주먹을 꽂았다. 내 등 뒤에는 조하영을 말리고 있는 김수민이 있었고, 김수민 뒤에는 노경서가 있었다. 피하기도 뭣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쾅!

“하지 말라니까.”

장휘열이 마력을 품고 뻗은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은 다음 그대로 손목을 꺾었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걸어 넘어지는 놈의 몸을 반동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모든 건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졌다.

이딴 식으로 나오는 놈들에게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지.

체육관 나무 바닥이 장휘열 중심으로 폭삭 깨져 버렸다. 장휘열이 커억- 기침하며 몸을 움츠렸다. 나는 놈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간인 대상으로 폭력 금지. 위협 시 각성자 등록증 자격 박탈. 이런 기초적인 상식도 잊으면 어떡하니, 친구야.”

체육관이 적막에 잠겼다. 공이 통통 튕기는 소리만 적막 속에서 미끄러지듯 들려왔다. 장휘열은 쿨럭이며 기침했다. 그래도 각성자니 허리를 다치거나 내장이 상하거나 그러진 않았을 거다. 놈은 이를 갈며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공격을 가할 것처럼 움직였다.

“어허.”

나는 놈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한 손으로 저지했지만 장휘열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큭- 무슨 힘이…!”

그러게. 난 그냥 가볍게 쳤는데 넌 휙 넘어가더라. 나는 환하게 웃었다.

“더 좆 되고 싶으면 말만 해. 가능해. 근데 여기선 아니다.”

“이 새끼가…!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어허.”

이놈의 주둥이. 엉? 나는 놈의 입술을 찰싹 내려쳤다. 쨉도 안 되는 게.

“그러게 왜 힘 조절을 못하고 갑자기 넘어져서 바닥을 부숴 놓냐? 흥분을 이렇게 잘해서 어쩌려고 그래. 자 얼른 일어나. 일어나.”

“개새끼야, 네가 그랬잖아…! 어억-!”

나는 가볍게 놈의 어깨를 잡고 힘을 주며 웃었다.

“어휴, 아프다고? 알겠어. 야, 야, 얘랑 같이 온 친구.”

“어…? 어.”

고형욱이 넋을 놓고 있다 내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응답했다. 나는 손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친구가 왜 혼자 넘어졌는지 의문이다. 그치? 잘 챙기고. 체육관 수리비 내려면 돈도 좀 깨지겠네. 어떡하냐. 파이팅.”

내 말에 뒤에 있던 조하영이 거들었다.

“와, 역시 각성자는 달라. 넘어져서 체육관도 막 부수고! 역시 대박!”

“와, 정말 대단해.”

노경서가 감정 없는 어조로 박수를 짝짝 쳤다. 그래, 모든 건 네가 한 거다. 장휘열. 나는 숙덕대기 시작하는 주변을 힐끔 보며 농구공을 골대를 향해 던졌다. 단번에 골이 들어갔다. 장휘열이 이를 악물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때맞춰 체육관 밖에서 소란을 듣고 교수님이 오셨다.

“무슨, 이게 무슨 일이니?!”

깜짝 놀란 교수님을 보며 김수민이 눈썹을 축 늘어트리고 말했다.

“교수님, 이 친구가 중심 못 잡고 넘어지더니 체육관 바닥이 깨졌어요! 각성자라더니…!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했어요!”

한술 더 떠서 이마에 손을 올리고 휘청거리는 김수민을 조하영이 받쳐 줬다. 하하, 우리 친구들… 너희 다들 연기는 하지 마라.

***

체육관 소동은 장휘열이 벌이고 장휘열 탓으로 끝이 났다. 옆에서 잘 동조해 준 학생들 덕분에 나는 손톱만큼의 피해도 없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하, 하늘이 맑구나.

하지만 하늘은 맑아도 내 마음은 맑을 수가 없었다. 다음 주가 시험이라는 안내를 받아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중간고사가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거였어?

미친, 차라리 그 주에 알았으면 핑계라도 대고 공부라도 안 하지…. 일주일 남겨 두고 알게 되는 건 뭐냐고! 내가 지금 시험공부 할 때야?! 세계 평화를 위해서 시험보다 더 중요한 게 내 앞에 있다고!

“응, 딴생각 금지.”

김수민이 내 앞에 전공 책을 펼쳐 놓고 경고했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올 뻔했다.

그렇다. 애들과 사이좋게 저녁을 먹고 나서 집으로 귀가는커녕 학교 도서관으로 붙잡혀 왔다. 하필 조하영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는 차마 내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전공 책은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전 세계에서 했던 공부와 비슷하지만 완전 달랐다. 나는 넋 놓고 그것들을 훑어보다가 김수민이 쥐여 준 핵심 요약만 정리된 프린트물을 번갈아 보며 손톱을 씹었다.

그렇게 저녁 9시까지 학교에 잡혀 있어야 했다. 탈탈 털린 나를 보며 김수민은 7시쯤 알바 하러 갔고, 노경서도 약속 있다며 사라졌다. 조하영은 내 옆에서 어느 순간부터 퍼질러 자고 있었다.

“…잘 잤냐. 이제 일어나. 가자.”

“어우… 허리 아파.”

“그 자세로 잠이 오냐?”

“몰랐냐. 여기 명당임. 불면증 한 큐에 해결 가능.”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있던 조하영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나는 조금 인정했다. 사실 아까 앉자마자 자고 싶더라고….

조하영과 함께 터덜터덜 도서관을 빠져나올 때쯤, 호출기로 연락이 왔다. 홍희였다.

-한솔이가 기다려! 왜 안 와!

“어엉… 형아가 공부하느라고….”

-와 한솔아, 한야가 거짓말한다.

“진짜야, 인마….”

거짓말하지 말고 모르젠트에 들르라는 말에 나는 알겠다고 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하영이 옆에서 ‘야식 콜?’을 외쳤지만 나는 진이 빠져 고개를 내저었다. 조하영은 아쉽다며 입맛을 다시고는 금세 다른 친구에게 연락해 사라졌다. 이놈… 인싸구나.

“해준이, 아직 안 갔어?”

교문을 나서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차량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서더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과사에서 뵌 교수님 중 한 분이셨다.

“아, 공부하느라…. 이제 들어가세요?”

머쓱하게 대답하자 교수님은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그래, 이제 슬슬 공부 다시 잡아야지. 그동안 바빴지? 고생도 많이 하고. 볼이 쑥 패었네.”

교수님은 굉장히 살갑게 대해 주셨다. 나는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네가 다시 마음잡고 공부하는 모습 보니 좋다. 너도 잘 알겠지만, 헌터는 불안정하고 위험해. 해준이 너도 알지? 그러고 보니 저번 학기엔 장학금 놓쳤더라. 이번엔 꼭 받아.”

익숙하다는 듯 다독이던 교수님의 얼굴을 힐긋 보고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미소 지었다.

“그럼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해준아. 조심히 가고.”

기억이 난다, 저 교수님. 차해준이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챙겨 주시던 교수님이었다. 집안 사정이 안 좋고 혼자 큰 것도 알고 계셔서, 장학금 탈 수 있게 도와주시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분이셨다.

나는 그대로 뒤돌아 가려다가, 무언가가 생각나 다시 교수님을 붙잡았다.

“교수님! 한 가지 여쭤 볼 게 있는데요.”

“응, 어떤 거?”

나는 진마하를 떠올렸다. 교수님이시니 교내 학생들에 대해서 좀 더 아시지 않을까? 그때 게이트 이해 과목을 들었던 학생들도 다 체교과였고 말이야.

“학생 중에… 진마하라고, 혹시 아시나요?”

“진마하?”

교수님은 한참을 생각하시는 듯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처음 듣는 이름이네. 마하라니, 봤다면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했을 거야.”

“아…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나는 교수님을 보내고 등을 돌렸다. 미소가 걸렸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아무도 진마하에 대해 기억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진마하에 대한 것들만 골라서 지운 것처럼.

그놈, 사실은 무언가를 알고서 일부러 나에게 접근한 건가? 한야에 대해 내 앞에서 사칭한 것도 나를 떠보려고 한 말이었다든가….

더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빌어먹을 새끼…. 그 새끼 진짜 뭐지?

수상해 미치겠는데 내 기억 빼고는 남아 있는 게 없으니 답답했다.

뭐가 나와야 조사라도 해 보지…. 이건 뭐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 기분만 들고… 하.

***

오늘은 강의가 없는 날이었지만, 나는 집에서까지 전공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으으음….”

이게 한국말이냐. 한국말인데 왜 못 알아먹겠지? 나는 허허롭게 웃으며 책을 덮었다가 다시 폈다. 씨바아알 진짜 미치겠다.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머릿속에 온통 걱정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일단 1번, 송류진.

이놈은 전화도 안 받고, 그 이후로 병원에서 치료는 받았는지 아직도 집에서 혼자 처박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우반희에게 연락해서 물어보기엔 내가 전화번호를 모르고.

그렇다고 집을 찾아가기엔 지난번 일이 너무… 그래서 얼굴 보기 민망하고.

2번. 지난 시나리오에 고등학교가 등장한 걸 보니 그곳이 배경인 듯한데, 어디에 있는 학교인지는 조사를 했다지만 대체 어떻게 들어가서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상황을 체크해야 할지 난감하다.

무엇보다 중간에 끼어 있는 사이비 사건. 하, 이것도 너무 걱정되는데 종전의 기록을 다시 펼쳐 봐도 언제 어디서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대한민국에 있는 폐아파트를 다 돌아다닐 수도 없고….

하지만 여태껏 게이트가 터진 양상으로 보아 시나리오에 뜰 만큼 중요한 사건일 경우 내 앞에서 일어났으니까, 나는 일단 그걸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3번. 이 빌어먹을 시험.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이 빌어먹을 중간고사가 문제였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대충 봐도 문제가 없긴 했다. 하지만… 차해준이 이 학교에 엄청나게 애정을 품고 열심히 다녔다는 점이 문제였다.

군대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시험에서 장학금을 타 낼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내가 이제 와서 그걸 망쳐도 될까? 퀘스트를 수행한단 명목으로 원작 차해준의 삶을 이렇게 헤집어도 괜찮은 걸까?

내 안에 남아 있는 아주 작은 양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호출기로 백루찬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뭐 하고 있어요.

“공부한다, 공부.”

-와, 진짜 안 어울리는 짓을 하고….

“뭐라 했냐.”

-시험 기간이에요?

“어. 지금 나 골 빠개질 거 같으니 말 걸지 마라.”

-공부가 잘 안 돼?

“잘되겠냐. 어?”

-형 바보야?

“이게….”

-체교과 필요해요? 거기 졸업생 불러 줄게. 길드원 중에 한국대 체교과 출신 있는데, 성적이 좋았더라고.

“선생님,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꿀 빨라는 신의 계시가 내려왔다. 나는 당장 모르젠트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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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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