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엉망진창 와장창 학교생활
오랜만에 오르는 언덕이 나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왔더니 별게 다 반갑다. 병실과 게이트에만 처박혀 있다가 다시 학교에 나오니 기분은 상쾌했다. 그래… 송류진도, 백루찬도, 우반희도 그 외 기타 등등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나는 괜찮다 이거야.
나는 씩씩하게 걸어서 한국대 언덕을 올라갔다. 저번에 게이트 이해 과목은 A+를 받았다고 조하영이 말해 줬고, 그 외 수강 신청해 놨던 것들 출결 때문이라도 과사에 한번 들러야 했다. 홍희가 대충 말은 해 놨다고 하지만 그래도 교수님들 얼굴은 봐야 더 잘해 주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느긋하게 걷는데, 이상하게 얼굴이 따가웠다. 나는 호출기로 수강표를 확인하면서 슬쩍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나처럼 저마다 등산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저들끼리 대화하면서도 한 번씩 나를 힐끔거리다가, 그러곤 또 귓속말로 속삭인다.
그 미묘한 시선들에 나는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딱 봐도 다들 나를 보고 있었다. 뭐지, 이렇게 관심 받던 학생이 아니었는데.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일부러 뺨을 쓸어내리며 모자를 다시 눌러써 봤지만 여전히 얼굴이 따갑다.
“저, 체교과 차해준 맞죠?”
“예…?”
“맞아. 맞아.”
여학생들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걸어 왔다. 이 상황 뭐지? 주춤대고 있자 옆에 있던 여자애 한 명이 갑자기 팔짱을 끼더니 사진을 요청했다.
“사진이요?”
“브이! 브이 해 주세요!”
“브… 브이?”
얼떨결에 손을 올려 브이를 했다. 그러자 찰칵하며 순식간에 사진이 찍혔다. 그러자 무리 지은 학생들이 저마다 달려들어 번갈아 가며 내 옆에 서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거 뭐 하는 거냐….
갑작스러운 행동에 불쾌하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휩쓸리듯 당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등에 강스매시 공격을 날렸다.
“억-.”
순간 등짝이 저릿해졌다. 절로 몸이 앞으로 숙여져서 나는 닿지도 않는 등을 붙잡고 쿨럭 기침했다. 미친, 누구야. 각성자냐! 공격이냐고!
끙끙대며 뒤를 돌아보니, 조하영이 당당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야! 너 나한테 빚졌다!”
“미친, 조하영. 왜 때리고 난리야!”
“밥 사! 밥 사!”
“뭔 소리야….”
“나 때문에 너 확실하게 떴잖아!”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조하영은 들리지도 않는지 허리에 손을 올리곤 파하하 웃어 댔다. 너 그렇게 장군처럼 웃지 마!
그리고 누가 빚을 져… 네가 나에게 빚졌으면 몰라도. 누가 뜨고 싶댔냐!
조하영이 등장하자 내 주변에 몰려왔던 학생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갑자기 몰려와서 갑자기 사라지는 게 당혹스럽다. 아니, 딱히 관심이 좋진 않은데 이건 좀, 너무 그렇잖아.
조하영은 내가 당황하든 말든 눈을 부릅뜨며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차해준! 앞으로 사부라 모실 테니 날 각성자로 만들어라!”
“무슨 개소리야….”
“어허! 개소리라니! 나의 신성한 부탁을 거절할 셈이냐!”
“얘 이상해!”
맞은 등짝에 손이 안 닿아서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조하영이 눈을 반짝이며 들러붙었다. 아쒸, 좀, 왜 이래.
“안 떨어지냐.”
이마를 밀치며 떨어트리자 조하영이 팔을 휘둘러 댔다. 행동이 꼭 성난 황소 같다. 내가 그렇게 조하영을 막고 있자 조하영이 떨군 가방을 들고 온 김수민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해준아, 왔어?”
“오랜만이다. 근데 이거 왜 이래?”
“저번 사건 이후로 각성자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녀. 네가 이해해.”
“사부!”
“누가 사부야!”
질색하며 조하영을 떨어트리자 김수민이 조하영의 팔을 붙잡고 한 방에 진정시켰다. 야수와 조련사도 아니고 진짜. 어후.
“학교에서 다시 보니 반갑네. 몸은 괜찮아? 병원에 있었다면서.”
“어, 어. 이젠 괜찮아. 근데, 어떻게 알았어?”
“길드에서 기사 냈던데? 모르젠트 말이야. 너 거기 소속이라며?”
딱 봐도 홍희 짓이다. 계약서의 계 자도 안 꺼냈으면서 이게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아니 내가 돈으로 저당 잡히긴 했는데 그쪽 소속은 아니거든. 하지만 이걸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김수민은 다시 꽥 소리치려는 조하영의 입을 틀어막고 하하 웃었다.
“학교에 소문 쫙 났어. 너 몰젠 소속 각성자라고. 아니 애초에 헌헌에서 나온 얘기니까… 학교뿐만은 아니지?”
“…….”
헌헌에 일부러 안 들어갔더니, 역시 그랬었냐. 한숨이 나온다, 한숨이…. 근데 뭐 어차피 A급 헌터로 등록을 마쳤고 그렇게 알려졌으니까, 일단 괜찮지 않을까? 한야라는 것만 안 들키면 되잖아. 속 편하게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김수민이 조하영을 붙잡고 나를 재촉했다.
“우리 이제 수업까지 10분 남았어.”
“…그걸 왜 이제 말해.”
아직 산 중턱도 못 올랐는데! 김수민이 중얼거렸다. 이미 포기했거든. 해탈한 그 표정에서 많은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이미 너무 많이 빠져 버렸기 때문에 양심상 뛰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애들 가방을 내가 대신 들고 나는 김수민과 조하영을 독려하며 산을 올랐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수업 시작 전에 세이프는 성공했지만, 나는 또다시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
아무래도 그동안 나오지 못한 날이 꽤 많아서 놓친 게 너무 많았다. 그래도 게이트 닫은 공로가 출석으로 인정되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오랜만의 수업은 몸만 쓰던 나에게 수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졸려, 졸리다고…!
나는 그렇게 꾸벅꾸벅 졸다가, 조하영이 끌고 가는 대로 가서 김수민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오후엔 실기 수업이 하나 남아 있었다. 오랜만의 학교생활 너무 빡센데.
겨우 수업 두 개를 듣는 중인데도 다크서클이 내려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후 수업은 체육관에서 진행이 되었다. 과목은 구기 종목으로 선택해서 시험을 보는… 뭐 그런 거였다. 역시 이론보다 실기지. 체육관에서 농구공을 가지고 튕기다 보니 멍했던 정신이 좀 드는 거 같다.
시험은 각성자와 일반인이 구분되어 치러진다. 각성자는 입학할 때부터 따로 커리큘럼이 진행되는데, 나는 도중에 각성한 케이스로 되어 있어서 일반 학생들과 같이 시험 준비를 하게 되었다. 전공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론 각성자라 실기 부분에서 점수가 다르게 반영될 거라곤 얘기하셨는데… 자세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오랜만에 만지는 농구공을 가지고 놀며 조하영 김수민과 함께 노닥거렸다. 애네도 보니까 몸을 워낙 잘 써서 실기 시험은 껌일 거 같다. 본인들도 걱정을 아예 안 하는구만.
“저녁 내기 콜?”
조하영이 내가 튕기던 농구공을 뺏어 들고 딜을 걸어 왔다. 아아, 이렇게 걸어 주면 뺄 수 없지. 김수민도 합류하고, 지난번에 나에게 커피를 사 줬던 남자애도 얼떨결에 이 시합에 합류했다. 남자애 이름은 노경서였다.
“조하이 리리, 덩크 슛 갑니다.”
조하영이 웃기지도 않는 예명을 쓰며 공을 튕겼다. 키도 안 되는 게 무슨 덩크 슛이야…! 라고 놀리고 싶었지만, 조하영은 말도 안 되는 점프 실력으로 덩크 슛을 성공시켰다.
“…역시 체대.”
“하영이 예전부터 운동 잘했지.”
김수민이 옆에서 기특하다는 얼굴로 조하영을 바라봤다. 조하영이 신나서 폴짝폴짝 뛰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봤지? 봤냐? 내가 이 정도야! 각성하면 나 날아다닌 다고오!”
오냐, 그래…. 너 정말 끈질기다. 저놈의 각성하면 소리를 벌써 열 번 이상 들은 거 같다. 시큰둥하게 넘기며 너 최고라는 표시로 엄지를 들어 주려고 했는데, 그 순간, 농구 골대 반대편에서 조하영을 향해 농구공이 날아왔다.
“이거 5점은 줘야 한다!”
날아오는 공은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조하영은 아직 보지 못한 듯 뒤로 돌고 있었다. 나는 조하영의 팔을 잡아당겨 뒤로 숨기고, 그 공을 낚아챘다. 농구공을 받자 가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받아 낸 팔이 저릿하다. 이거, 일반인이 받으라고 던진 게 아닌데?
“뭐야?”
조하영이 놀라서 나를 쳐다봤고, 나는 던진 놈을 쳐다봤다.
키 큰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던진 놈은 가운데 있던 험악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놈은 내가 그 공을 가로채서 받아 내자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실수.”
뻔뻔하게 웃는 놈은 누가 봐도 고의였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 새끼들, 지나치게 악의를 담고 던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놈들의 상태창을 불렀다.
[이름: 장휘열
칭호: 로열 가드
클래스: 나이트]
[이름: 고형욱
칭호: 세례 받은 자
클래스: 성기사]
[이름: 나여래
칭호: 기도하는 순례자
클래스: 사제]
역시나, 이놈들 각성자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대충 봐도 B급은 될 것 같은 놈들이었다. 기분이 싸하다. 이놈들 일부러 노리고 이런 거 같은데.
“실수? 너 지금 이게 실수라 그랬냐?”
공이 워낙 세게 날아와서 가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하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멈칫했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얼굴을 구겼다.
나는 앞으로 나서려는 조하영을 말렸다. 조하영이 씩씩대고, 놈들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때 가만있던 노경서가 다가와서 조용히 속닥거렸다.
“쟤네 라온 길드 소속 각성자야.”
“라온 길드?”
“5대 길드보단 아니지만, 꽤 유명한 길드 중 하나야. 네가 모르젠트라고 하니까 온 거 같은데.”
“…내가 모르젠트인 거랑 쟤네가 라온인 거랑 무슨 상관이야?”
“라온이 모르젠트 진짜 싫어해.”
“…응?”
“거기 길마가 국산 피… 아니 백루찬 길드장한테 얻어터진 적이 있거든…. 랭킹도 그때 쭉 내려가고.”
아아, 그러니까, 일방적인 원한 관계다…?
노경서는 걱정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사람, 가운데 장휘열이라는 사람인데… 저사람 A급 각성자야. 나이가 스무 살이랬나. 어린데 벌써 A급이라고 학교에서 현수막 달고 그랬거든. 별명이 장휘혈이야. 피 보는 거 좋아한다고 해서.”
나는 놀랐다. 저놈이 A급이라서가 아니라, 저 얼굴이 스무 살이라는 거에.
스물다섯 살인 나보다 형 같은데? 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이쿠, 손이 미끄러져서. 공 좀 주워 주려고 했더니, 실수해 버렸네?”
장휘열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시비가 졸렬하기 짝이 없다. 이런 것에 일일이 반응해 줘야 하나.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장휘열 무리가 체육관을 가로질러 내 앞으로 걸어왔다. 뒤에 있는 놈들은 표정이 영 좋지 않아 보이는데….
체육관에서 같이 실기 수업을 하고 있던 학생들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슬쩍 주변을 살펴봤지만 교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
“야.”
나여래라는 여자애가 나를 보고 중얼거렸다가 장휘열에게 째림을 받았다. 장휘열은 건들거리며 말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차해준? 만나서 반갑다. 학교에서 같은 각성자들끼리 친하게 지내자고.”
장휘열이 웃으며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손에 쥔 농구공을 튕겼다.
“아 손이 없네. 어쩌냐.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일부러 공을 가지고 놀며 악수를 거부하자 장휘열이 열 받는다는 얼굴로 후 심호흡을 했다.
나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놈을 쳐다봤다. 여기서 내가 이놈하고 투닥거리면 안 좋게 찍히는 건 나다. 가뜩이나 명동 게이트 사건으로 보는 눈이 집중되어 있는데 뭐라고 또 얘기가 나돌지 뻔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공 주워 준 건 고맙다. 그래도 힘 조절은 좀 하지 그랬어.”
아프지 않았지만 아픈 척 손을 털자 장휘열이 비릿하게 웃는다. 뭐냐, 저 웃음은. 지금 내가 좋게 넘어가려고 하고 있잖아. 야, 시비 걸지 말고 꺼져. 제발.
그러나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장휘열은 드라마에서도 안 나올 법한 말들로 시비를 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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