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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44화 (44/201)

44화

백루찬과의 대치는 한솔이가 침대맡에 놓인 베개를 집어 던지는 것으로 진정이 됐다. 백루찬이 곱게 그것을 받아 툭툭 털어 놓았고, 한솔이는 씩씩댔다.

홍희가 옆에서 눈치 없이 뭐? 왜? 뭔데 그래? 하면서 눈을 빛냈지만, 정희수도 그렇고 나도 아무런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한솔이가 왜 내 옆에 꼭 붙어서 백루찬을 그렇게 경계하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병문안 왔던 그들은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어쩐지, 정희수가 유독 나를 힐끔대며 살피더라니. 이런 맥락이 숨어 있을 줄이야.

“뭔데 이렇게 기가 죽어 있어?”

홍희가 내 등을 팍팍 치며 호탕하게 웃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옆에 꼭 붙어 있던 한솔이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나는 다급하게 피자 조각을 들어 한솔이의 입을 막았다.

어떤 여지도… 그 무엇도 홍희에게 남겨서 놀림감이 되지 않으리. 내 결심을 눈치챈 정희수가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피자 조각을 집어 홍희에게 건네주었다.

“와. 이거, 너, 너무 맛있다!”

희수야 넌 남 속이면 안 되겠다….

어색하게 웃으며 피자를 우걱우걱 먹는 정희수를 보며 짜게 식은 나는 겨우 진정하고 고개를 슬쩍 들어 백루찬이 앉은 맞은편을 바라봤다.

“바로 먹어도 되려나 모르겠네.”

백루찬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죽도 사 왔는데, 형은 죽 먹는 게 어때요?”

그렇게 말하면서 일회용 용기가 담긴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래, 아픈 환자가 피자를… 아니 피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놈에게서 죽이 담긴 봉지를 받았다. 뺨이 뜨끈뜨끈하다…. 너무 쪽팔려서.

백루찬에게 왜 그랬냐 화내고 싶어도 먼저 애먹인 게 나라서 입을 열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에 반해 백루찬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백루찬은 받은 봉투를 탁자에 도로 내려놓는 나를 보고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하더니,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팔을 허우적댔다.

“먹어! 먹는다고! 거기 꼼짝 말고 서라, 너!”

나의 과민 반응에 피자를 철근같이 씹어 먹던 홍희가 엥- 하는 얼굴로 돌아봤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야 불타는 고구마 같네.”

윽. 나도 안다. 백루찬은 아주 여유로운 표정과 몸짓으로 천천히 자신의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한마디도 하지 마라.”

백루찬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더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수치사 할 것 같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저녁 시간이 지나갔다. 나를 백루찬에게서 지켜 주려 애쓰는 한솔이를 간신히 떼어 내 정희수와 함께 집으로 보냈다.

하, 그 어린아이에게 몹쓸 꼴을 보이다니…. 다시 생각해도 쪽팔림의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나는 피곤함을 느끼며 침대에 늘어졌다. 병실 한가운데엔 여기가 제 사무실이라도 되는 양 소파에 누워서 패드로 서류를 보는 홍희가 있었고, 백루찬은 그 옆에서 코트를 벗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이것들은 왜 안 가고 여기서 난리니.

“안 가냐.”

내가 툭툭 던진 말에 홍희가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난 우리 길마 감시~.”

“웬 감시….”

“응, 한야가 잠든 사이 길마가 또 덮칠 수도- 읍-!”

난 마치 게이트에서 몹을 마주친 것과 같은 몸놀림으로 홍희에게 다가가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너 모르는 것처럼 굴더니 알고 있었어!?

“읍, 웁!”

“하하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픈 환자는 이제 쉬어야 하니까 다들 얼른 꺼져 줘. 얼른.”

그대로 홍희를 일으켜 세우고 백루찬의 목덜미를 잡고서 병실 문을 쾅 열어 둘을 내쫓았다. 갑자기 쫓겨나게 된 홍희가 열렬하게 항의했다. 백루찬이 빤딱빤딱한 얼굴로 옆에서 웃고 있었다. 하 진짜, 이놈들이….

“덮친 건 길마인데 왜 내가-!”

-쾅!

나는 더 듣지 않고 문을 닫았다. 미치겠다. 얼굴을 가리고 터덜터덜 침대로 가 풀썩 누웠다. 베개로 얼굴을 덮은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쪽팔려 뒤질 것 같다……. 덮친 건 백루찬인데 왜 내가 쪽팔려 뒤질 것 같냐고!

머리에 베개를 덮고 침대에 고개를 쾅쾅 박았다. 그때 케이든의 약물에 당해서 솔직히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뭐 했지? 뭐 했더라? 설마, 끝까지 같나? 나흘이나 누워 있어서 내가 뭘 못 느끼는 건가?

‘형, 아파요?’

‘으… 응, 헉…!’

“으아악!”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씨발 뭐냐! 뭐냐고! 어디까지 했냐고!

아니 아무리 약물에 당해서 그렇고, 그런… 그, 그런 상황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저놈이 왜 그걸…!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 동안 괴로워하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게 다 빌어먹을 케이든 개새끼 때문에….

하, 쪽팔려도 어쩌겠냐. 이미 지나간 일인데.

근데 웃기게도 수치사 할 것 같은 기분은 그대로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백루찬이 존나 미인이라 그런가. 그 얼굴로… 큼큼, 무엇보다 놈이 아무렇지 않게 대하니까 나도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는 무슨. 나는 불타오르는 내 뺨과 귓불의 열을 식히기 위해 열심히 손부채질을 하며 숨을 골랐다.

일단 이 일은 그렇다 쳐도, 지금 혼자 있는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일단 시스템을 불러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수_수정_최종본)

-클리어런스(clearance)가 시나리오의 첫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게이트, ‘오염된 지하 도시’가 알 수 없는 오류로 인해 등급 변화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미치광이 박사 케이든은 없고 키메라가 된 진짜 미친 ‘케이든’이 등장해 버렸어요!

-오염된 지하 도시의 미치광이 박사 ‘케이든’을 처치하세요!

(NEW)클리어런스의 활약으로 게이트 ‘오염된 지하 도시’의 레퍼런스가 대폭 수정됩니다!

난이도: 2++

보상: 생존, 메인 캐릭터 송류진과의 각인, 추가 보상 수령 바랍니다!(NEW)]

퀘스트창엔 처음에 나와 있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어 있었다. 메인 캐릭터 송류진에 대한 것도 나와 있었다. 각인이 보상이야? 그리고 난이도도 올라가 있었다.

레퍼런스 수정이라…. 무슨 말인지 이것도 참 불친절하다.

퀘스트창의 내용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건 케이든이 ‘오류’로 인해 키메라가 되어 버렸고, 등급이 올라갔다는 것.

처음에 들어갔을 땐 분명 2급 게이트였는데 말이지.

그리고 내가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도 시스템은 저 말을 했었다. 클리어런스라고. 나는 그것을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았다.

클리어런스(clearance).

불필요한 것을 없앤다, 라….

빙의 초반에 분명, 초전 박살 게이트의 클리어런스로 발탁된 것을 축하한다고 했었다. 이 세계에는 알 수 없는 오류가 생기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이 세계에 떨어졌다는 말인 듯했다.

케이든은 첫 ‘오류’였고.

근데 오류 기준은 뭐고, 왜 하필 내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책 몇 페이지 읽은 게 다인 내가 왜 하필 이 세계로 떨어진 걸까?

“에휴.”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 봤자 답이 없다. 시스템을 불러 확인하려 했지만 시스템은 또 불합리하게 추궁당할 만한 일이 생기자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하여간 이 시스템 놈 진짜 약아 빠졌어.

나는 한숨을 쉬고 이제 메인 퀘스트를 확인했다.

[퀘스트: 초전 박살의 메인 캐릭터들을 구하라!

다섯 명의 메인 캐릭터! ‘신’인 작가가 만들어 낸 이 캐릭터들은 세계를 구축하는 기둥이다. 이들이 죽으면 초전 박살 게이트! 세계는 부서지고 마는데-!

: 원래 시나리오를 통해 캐릭터들의 주요 에피소드를 보고 그들의 죽음을 막으십시오.

메인 캐릭터 –백루찬, 송류진, ●Å■,■■■….

보상: 세계 평화, 귀환

실패 시: 세계 멸망, 죽음]

메인 캐릭터 목록에 송류진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백루찬이 메인 캐릭터인 것을 확인했을 땐 분명 메인 캐릭터를 확인했다고 떴는데 송류진을 확인했을 땐 그런 게 뜨지 않았다. 이것도 오류인가? 내가 잘못 봤었나. 시스템아, 너 왜 이랬다 저랬다 해?

물어도 시스템은 대답이 없다. 그럼 그렇지. 불친절한 새끼….

송류진, 확실히 임팩트가 있긴 했다. 주인공인 차해준과도 오랜 친구 사이고 S급 각성자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메인 캐릭터를 설마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겠어? 라는 생각도 하긴 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어색하게 대하지 말고 더 잘 붙어 다닐걸. 좀 후회되네.

[‘송류진’이 당신에게 강한 ---을 느낍니다.]

[※각인 주의: 대상의 각인 상대에게 가지는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컨트롤 비정상 확률: 50%]

[각인 대상: 백루찬, 정한솔, 송류진]

각인창에는 세 명의 이름이 나란히 떠 있었다.

송류진이 나에게 무엇을 느끼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건 뭐 제대로 알려 주는 게 없어.

나는 턱을 괴며 생각했다. 각인으로 이놈들이 나에게 느끼고 있는 게 무슨 감정일까. 일단 한솔이는 애착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고, 백루찬은 좀 애매모호하게 들러붙고, 송류진은…. 사실 좀 불안하다. 이놈이랑 각인했을 때 상황도 다급했어서 제대로 정신 차렸는지 확인도 못 했었다.

케이든의 세뇌를 깨트리긴 했지만, 나도 이렇게 부작용 때문에 쓰러졌는데 송류진이라고 멀쩡했을 리 없다.

괜히 좀 걱정이 되었다. 각본에서 치료비 지원 제대로 해 줬겠지…. 물론 병원장 아드님을 그냥 두진 않을 것 같지만.

일단 송류진은 지금 당장 내가 어쩔 수 없으니 차차 찾아가 보기로 하고, 일단 시나리오가 얼마나 진행이 되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종전의 기록’ 현재 페이지 수: 23/451

※!주의!※: 종전의 기록에 걸린 저주가 스킬 시전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현재 초전 박살 게이트의 스토리 진행률: 25%]

[시간 내로 일정 이상 스토리를 진행하지 못할 시, 당신의 수명이 단축됩니다.]

[각성자 차해준의 현재 남은 수명: 340일]

…수명 씨발 실화냐.

어느새 15일이 싹 사라져 있었다. 가장 최근에 확인했을 땐 355일이었는데!

페이지 수는 시나리오에 나온 사건이 진행되어야 넘어가기 때문에 큰 진전은 없었다. 오염된 지하 도시에서 첫 오류를 해결했다고 진행률은 급격하게 올라갔다. 이것으로 만족을 해야 하나… .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게이트도 들어갔다 왔고, 그 전엔 학교에도 가느라 시간을 좀 썼지. 그리고 기절도 삼 일이나 했고…. 아니 그래도 저번엔 수명 좀 올려 주더니 이번엔 왜 그대로 깎인 거냐고!

아, 이거 일주일이나 병실에 눌어붙어 있어야 하는 게 너무 아까워지는데. 조급한 마음도 들고.

다행히 스토리 진행률이 확 올라 있었지만, 페이지 수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저 말인즉슨, 시나리오를 통해 닥칠 사건 사고가 많다는 얘기 아냐.

아니 그래도 이번엔 오류도 수정했는데! 보상으로 수명이라도 좀 늘려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갑자기 훅 다가온 현실에 머리가 차게 식었다.

혹시 뭐가 잘못된 건 아닌가? 시나리오대로 진행이 안 돼서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다든가 그런 건가? 나는 바로 독서 스킬을 사용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보다 일어났었던 내용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려고 연 것이었다.

[‘종전의 기록’ 앞 페이지에 수정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종전의 기록’은 다시 돌려 보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런 무자비한 창만 내 눈앞에 띄웠다.

[모든 페이지를 열람 후 확인 가능!]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다 진행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다는 거 아냐.

나는 한참 동안이나 시스템창을 노려봤다. 이것들이 대충 멀쩡한 사람 보내 놓고 이것저것 제한 걸어 놓기는 진짜….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으니 일단 이것도 패스.

[수령하지 못한 보상이 있습니다!]

시스템창이 알림을 보내왔다.

그래, 일단 보상부터 받고, 시나리오 진행 내용을 확인을 해 봐야겠다. 게이트와 시나리오 진행을 하면서 보상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거 제대로 주는 거 맞겠지. 시스템창이 하도 뒤통수를 쳐 대서 이것도 믿기지가 않는다. 나는 의심 섞인 눈으로 그것을 훑어보다가, 빨갛게 반짝이는 창을 클릭했다.

[대출혈 서비스~\\\\٩(˃̶͈̀௰˂̶͈́)و ////]

[급속 상태 이상 해제 이용권 2매!

‘종전의 기록’ 열람 시 발생하는 상태 이상을 빠르게 해제할 수 있습니다.

사용 방법: 이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급속 상태 이상 해제♥ 외치기

※주의 사항: 시나리오 읽기 전 외치세요!]

[추억 속으로… 과거 시간 속으로의 여행! 1매

차해준의 숨겨진 과거를 탐험할 수 있습니다.

사용 방법: ‘차해준’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추억 속으로~ 해제♥ 외치기]

…X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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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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