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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42화 (42/201)

42화

으. 머리가 쪼개질 것처럼 아프다. 마치 간밤에 소주와 그밖에 등등등의 술을 입에 처넣었을 때의 숙취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희끄무레한 빛을 발하는 시야에 눈을 한참 동안 깜박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초점이 돌아와 눈앞에 환한 병실의 풍경이 보였다.

모르젠트 병동에 있는 익숙한 개인 병실이었다. 벌써 두 번째로 보는 병실은 집처럼 아늑하고 익숙했다. 나는 능숙하게 이불을 끌어 올리며 다시 드러누우려다가 벌떡 일어났다.

맞다. 게이트 어떻게 됐지?

순간 떠오른 생각 뒤로, 게이트에 들어가서 있었던 일들이 차례차례 기억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케이든을 상대하며 부순 정화석과, 이상하게 세뇌당해 변했던 송류진과 각인하여 다시 제정신으로 돌려놓았던 일.

케이든을 쓰러트리고 나서 갑자기 몰려오는 약물 부작용 증세에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고, 어찌어찌 무너지는 지하 통로를 무사히 빠져나왔고….

뜨문뜨문 떠오르는 기억은 약물 부작용이 생길 때부터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백루찬을 붙잡고 뭐라 말했던 거 같은데….

끄응. 머리가 심하게 아파 생각을 멈췄다. 이마를 움켜쥐고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어쨌든 잘 빠져나왔으니 이 병실에 누워 있었던 거겠지. 나는 태평하게 생각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번엔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걸까.

비틀비틀 걸어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니 얼굴이 말도 안 되게 핼쑥했다. 거뭇한 눈 밑과 목덜미에 점… 점?

나는 거울을 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입고 있는 환자복 옷깃을 들췄다. 목덜미가 얼룩덜룩했다. 군데군데 잇자국도 나 있었고. 허참, 망측해라. 이건 꼭 그런, 크흐흐흠. 무슨 야한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아무래도 정신 잃은 송류진이 한 짓 때문에 생긴 거 같았다. 그날 이후 눈을 뜬 지 하루도 안 지났는지 흉터처럼 남은 자국들이 그대로였다. 나는 턱 인근을 벅벅 긁으며 그것을 보다가, 세면대에 물을 틀고 세수를 했다. 정신이 멍한 것을 보니 세수라도 해야 정신 차릴 것 같았다.

차가운 물로 어푸어푸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대충 닦으며 화장실을 나왔다.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홍희가 눈을 매섭게 부릅뜨며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 이!”

“홍희? 뭐야. 왜 그래.”

입을 여는데 목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갈라진 목소리가 여간 흉한 게 아니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홍희를 피해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그 거리에도 단숨에 내 앞에 선 홍희가 내 뺨을 붙잡아 당겼다.

졸지에 허리가 푹 숙여졌다.

“야아, 왜.”

앓는 소리를 내자 내 뺨을 양손으로 짝 내려친 홍희가 입술을 꾹 깨물더니 울먹울먹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아니 왜 그래?

“이제야 깨어나면 어떡해! 걱정했잖아! 교주로서 내 지위를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고!”

맹렬한 기세로 소리친 홍희가 다시 한번 내 뺨을 짝 내려쳤다. 아야, 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도무지 저 얼굴을 두고 피할 수가 없었다. 뭐야, 걱정했던 거야?

손을 들어 잘 정돈된 홍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홍희가 울상을 지으며 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나를 놔주고 한숨을 쉬었다. 그보다 이제야라니, 나는 멀뚱거리며 얼굴에 남은 물기를 닦아 내다가 물었다. 어쩐지 목도 며칠은 말 안 한 것처럼 쩍쩍 갈라지는 게 이상했다.

“나 늦게 일어났어?”

“이번엔 무려 나흘이라고!”

홍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기함했다. 뭐 나흘? 당황해서 떡 벌어진 내 턱을 홍희가 다물어 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우리 한야가 무려 나흘 동안 침대 신세를 졌다고. 이게 말이 돼? 고작 2급 게이트 때문에?”

“허허….”

“나중에 1급이라도 터지면 진짜 한 달 누워 있겠네. 너 한야 맞아? 우리 한야가 이렇게 약해 빠졌을 리가 없어.”

홍희의 중얼거림에 나는 내 턱을 닫아 준 홍희의 손을 떼어 내곤 말했다.

“2+급이었어.”

“2급이나 2+급이나. 하위권이나 중하위권이나 뭐가 달라.”

“그건 아니지, 인마. ‘중’ 자 붙은 게 얼마나 중요한데. 달라.”

“어쨌든!”

홍희가 불만족스럽다는 얼굴로 팔짱을 꼈다. 나는 가볍게 항변했다.

“그래도 보스 몹 내가 잡았는데….”

“그래서 상태 이상 중첩 맞고 기절해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그보다 네가 왜 이렇게 화를 내면서 걱정해?”

“신도가 신을 걱정하는데 왜!”

“차라리 팬이라고 해 줘라…. 누가 들으면 신종 사이비라고 신고한다.”

홍희가 기가 찼는지 코웃음을 쳤다.

“나 몰젠 부길마거든?”

그래. 누가 부길마님을 신고하겠어요.

나는 한숨을 쉬며 홍희의 어깨를 다독였다.

“예. 부길마님… 이제 진정 좀 하시고요.”

“앞으로 일주일 동안 여기 처박혀 있어. 나갈 생각도 하지 마. 문 잠가 버릴 거야.”

“일어났으니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뭔 일주일씩이나….”

“쓰읍- 병원비 다 물고 싶어?”

이상한 협박에 나는 웃고 말았다. 아니 왜 이래. 병원비가 그래서 얼마인데. 내 웃음에 홍희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힐러 시간당 5억 3천. 상태 이상 디버프 해제 3억 3천. 약품 중독 빼느라 추가 진료비 4억. 그밖에 들어간 포션 치료제 등등 5억. 더 말해 줄까?”

“…….”

무슨 X발 진료비가 억대냐고! 난 당장 홍희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 같아? 헌터 치료는 각성자 특수 비용 더해져서 금액이 껑충 올라. 걔네가 받아먹는 돈이 얼마인데. 아아, 한야는 잘 모르지? 헌터 생활 제대로 안. 해. 봤. 으. 니. 까. 참고로 병실비까지 전부 다 해서 20억 2천. 전부 현금으로 받는다!”

뭐야, 몰라 무서워. 너 그렇게 음흉하게 웃지 말라고! 나는 홍희의 찹쌀떡 같은 볼을 양손으로 붙잡고 짜부라트렸다. 아, 손에 힘 조절이 안 되는 거 같은데. 홍희가 벗어나려고 버둥대며 소리쳤다.

“지난번 건 붙이지도 않읏그든! 힌이는 이제 못 븟으느(한야는 이제 못 벗어나)!”

양 볼이 짜부라져서 뭉개지는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히 홍희의 볼에서 손을 뗐다.

“일주일 딜. 얼마까지 까 줄래.”

“웃겨. 그건 나중에 내가 몰젠 이름으로 다 받아 낼 거라고. 자고로 부길마는 손해 보는 짓 안 한다 이 말이야.”

“양심 챙겨! 너랑 백루찬이 데리고 온 거잖아!”

“한야부터 양심 챙겨. 죽을 뻔한 거 살려 줬더니!”

“아으아악-.”

나는 머리를 싸맸다. 이거 뭐 꼼짝없이 몰젠에 묶이게 생겼잖아! 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겨우 돈 가지고 나를! 차해준 계좌에 얼마 있었지. 나는 급히 휴대폰을 열어 연결된 계좌를 살폈다.

그리고 숙연해졌다.

“…일주일 꾹 참고 눌어붙어 있을게.”

“그래야지. 갚는 건 그 뒤로 생각해도 돼. 어떻게든 굴려서 받아 낼 테니까. 음화하하핫!”

이 악마….

나는 수건을 물어뜯으며 가련한 자세로 눈물을 뽑아냈다….

그때 또다시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문 앞에선 한솔이가 정희수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어, 한솔이 왔어?”

정희수의 손을 잡은 한솔이가 나를 보곤 울망울망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에 나는 당황해서 손을 뻗었다.

“아이고, 왜 그래. 이리 와.”

“흐윽… 흐엉…!”

한솔이가 정희수의 손을 놓고 내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작은 몸이 여간 긴장한 게 아니었는지 잔뜩 굳어 있었다. 나는 한솔이를 끌어안고 들어 올렸다. 내 품에 코알라처럼 달라붙은 한솔이는 어깨에 고개를 묻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흐으… 흑… 형이, 형이….”

“응, 응.”

등을 토닥여 주며 정희수와 눈을 맞추자 그가 애잔한 눈빛을 보냈다.

“무서웠어. 형이, 흐윽… 죽을까 봐….”

“응, 응. 형 안 죽어. 한솔이도 알잖아.”

“다, 다음엔 내가 형이랑 갈 거야…. 혼자 두고 가지 마, 나 두고 가지 마….”

한솔이가 품에 얼굴을 부비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을 꽉 끌어안은 팔도 두려움 때문인지 떨리고 있었다. 무언가 집착적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각인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 나는 한솔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우리 한솔이 겁먹었어요? 형아 짱 세니까. 그만 울어.”

“그래, 한솔아. 해준 형 무사해.”

정희수도 다가와 한솔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는 한솔이 몰래 입 모양으로 물었다. 계속 이랬어? 정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죄 많은 인간이다, 내가. 악마의 번견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트라우마가 도진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각인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동안 한솔이는 나에게 과하게 집착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까.

어느 모로 봐도 안쓰러운 건 똑같았다.

우는 아이를 열심히 달래 주다 어느 정도 울음이 그쳤다 싶을 때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혔다. 한솔이가 벌게진 얼굴로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작게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따듯해졌다. 진짜 차해준에게 이런 사람은 없었는데.

“나, 나랑 야, 약속해…. 혼자 안 가겠다고.”

“당연하지. 자, 약속.”

손가락을 걸고 엄지를 맞댔다. 한솔이는 이런 말로만 하는 약속이 아쉬운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계약서라도 쓰자고 하려고 했었던 거같이 말이다. 이 약속이 잘 지켜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안심이 된다면 이런 거라도 해 줘야지. 나는 한솔이의 젖은 뺨을 엄지로 닦아 주었다. 으휴 귀여운 자식…. 내가 낳은 놈도 아닌데 더 마음이 쓰인다.

“진짜 약속. 한솔이 걱정 안 시킬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인 것 같지만, 애를 더 걱정시킬 수는 없으니까.

나는 찔리는 양심을 부여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어느 정도 한솔이가 진정하자, 우물쭈물하며 지켜보던 정희수가 말했다.

“저… 뉴스 봤어요.”

“응? 뉴스?”

“형 혹시….”

정희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한 발 다가오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명동역 겐지남이… 혹시 형이에요?”

“…엉?”

겐… 겐쥐남?

정희수는 내 얼굴을 보고 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럼 명동역 존잘 짭한야라고 불리는 건….”

“…….”

“…못 들어 보셨어요?”

너 무슨 얘기 하는 거니?

한껏 당황하는 내 얼굴을 본 정희수는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 줬다.

액정에 뜬 건 헌터X헌터 게시 글이었다. 명동에서 나타난 실험체를 순식간에 베어 버리고 바람같이 몸을 날리는 내 모습이 움짤로 찍혀 있었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 같은 그것은 화질이 뭉개졌지만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빠르게 움직여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과 후드 티, 피 묻은 청바지. 그리고 긴 검. 바람처럼 나타나 몬스터를 베어서 쓰러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데 날렵한 턱 선이 도드라진다. 화면 속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찍는 사람을 힐끔 보고 바로 몸을 날린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와, 이거 딱 봐도 한야인데.

그냥 내가 한야라고 광고하고 있는데.

“존잘 짭한야…?”

“…워낙 사짜들이 판을 쳐서요. 사람들이 못 믿는 거죠.”

그렇게 말한 정희수는 자신이 더 화난다는 듯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겐지남도 아니고 짭도 아닌 진짜 한느님이 등장했는데 다들 알아보질 못한다는 게….”

“뭐, 나야 신상 드러나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괜찮아. 알아 달라고 한 짓도 아니고-.”

정희수는 혼자 중얼거리다 내 말에 고개를 휙 치켜들었다. 어라 이놈 눈빛이 좀 이상하다. 번뜩거리며 나를 보는 눈빛은 무언가에 감격한 것 같기도 하고, 울분에 찬 것 같기도 했다.

야, 야아 네가 왜 그렇게 반응해?

“역시… 우리 형…! 정의와 대의는 숨기는 게 맞는 거죠.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람을 구하는 거죠…! 유명세는 찰나 같은 거니까…! 물론 한느님은 영원히 한느님이겠지만.”

“…너 무섭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어,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정희수는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보다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언제나 한느님을 응원합니다.”

“그, 그래….”

지존 우주 최강 한야를 경배하라 우수 회원이었다던 정희수의 전적이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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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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