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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39화 (39/201)

39화

[게이트 내부가 비정상적인 오류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정화석을 부수고 게이트를 탈출하세요!]

[제한시간: 09:46]

시스템창이 깜박이고, 천장이 우르릉 울리며 벽이 흔들렸다. 공간이 무너지고 있었다. 케이든이 광소한다.

-폐기물 따위가 이 정도 힘이라니! 실험체로서 만족스럽기 그지없어. 마음에 들어.

케이든이 개소리를 또 지껄였다. 나는 헹- 소리를 내며 웃었다. 헛소리도 정도껏이지 계속 들어 주면 짜증만 난다. 그리고 계속 얻어터지고 있으면서 허세 부리기는. 나는 놈을 무시하고 한야를 든 손목을 한 바퀴 돌리며 한 발을 뒤로 뺐다.

제한 시간이 몇 분 안 남았다. 일단 저 거대한 괴물 새끼들을 30초 이내에 쓸어버리고, 케이든을 해치워야 한다. 잊고 있었는데 정화석도 찾아서 부숴야 했다.

시간이 좀 부족할 수도 있겠는데? 그 생각을 하며, 나는 단숨에 튀어 갈 수 있도록 숨을 훅 들이켰다. 딱 한 방에 처치할 생각으로 한야에 검기를 씌웠다.

그리고 몸이 나가려 움찔한 순간, 옆에서 굉음과 함께 번쩍이며 전류가 몰아쳤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순간 스친 전류에 볼이 따끔거렸다.

“아이고, 실수. 마력이 좀 뻑뻑하게 나가네요.”

“…….”

백루찬이, 전류가 흐르는 손가락을 꿈틀 움직이며 싱긋 웃었다. 놈이 던진 번개가 벽을 파헤치고 그을렸다. 시꺼먼 연기가 풀풀 피어 나오는 곳과 백루찬을 번갈아 보다가, 나는 뺨을 씰룩거렸다.

이 새끼 이거, 일부러 이랬어! 일부러야!

뭐라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름 멀쩡한 모양새에 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한 번도 무력하게 당한 적 없을 것 같던 놈이 기절한 채 실험실 수조에 갇혀 있던 것을 봐서 더 그랬다.

빌어먹을… 성질머리 여전해서 다행이다.

“야…. 괜찮냐?”

내가 힐끗 보며 물었다. 백루찬이 손안에서 전류를 일으키며 대답했다.

“빨리빨리 하죠. 저- 흉측한 근육 덩어리들은 제가 맡을 테니까, 미친놈을 맡으세요.”

말하는 톤이 여상해서 나는 픽 웃었다. 귀찮았는데, 혼자보단 둘이 더 낫긴 하지.

-아아, 내 실험체들이 다 쓰레기가 되어 버렸어. 그래도 괜찮다, 한 놈만 있으면 되니까.

케이든은 백루찬을 보고 비웃으며 나에게 덤벼들었다. 그에 맞춰, 나도 몸을 날렸고, 내 뒤로 백루찬이 전류를 일으키는 게 느껴졌다. 발밑으로 리히텐베르크 모양으로 퍼지는 전류가 보였다.

----!!

괴물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덤벼들고, 나와 케이든도 부딪쳤다.

간 보기는 이쯤에서 끝내자.

공중으로 도약한 나는 바로 스킬을 전개했다.

[속삭이는 밤(Lv.99)]

시야가 순식간에 무채색으로 물든다. 모든 것이 슬로모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날리는 먼지도, 부서진 파편들도 떠올라 느리게 떨어지고, 백루찬이 날리는 전류가 느리게 뱀처럼 바닥을 기어가며 퍼졌다.

내 몸은 순식간에 케이든의 앞까지 도착했다. 한야에 무게를 실어 휘둘렀다. 아까 배리어같이 케이든을 감싼 게 한발 늦게 텅- 하며 검을 막아 낸다. 나는 연속으로, 더 빠르게, 움직였다.

놈이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리고, 나는 횡으로 베어 낸 한야를 다시 사선으로 휘둘렀다. 케이든을 감싼 배리어는 한야를 막지 못하고 틈을 허용했다.

케이든의 상체를 가른 한야를 다시 위로 쳐올렸다.

케이든의 몸도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놈의 목을 베었다.

쑤컹- 하는 느낌과 함께, 한야가 지나간 후 불투명한 막이 생성되었다가 꺼졌다.

그리고 속삭이는 밤의 지속 시간이 끝났다. 나는 무너지는 케이든의 몸을 보며, 한야를 거둬들였다.

“끝이다, 지겨운 새끼야.”

퉁- 떨어진 목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확장된 동공과 경악한 표정이 그대로인 상태였다. 무너지는 놈의 몸에서 뒤늦게 녹색 피가 뿜어졌다.

내가 케이든을 처치하는 동시에, 백루찬은 실험체 A- 확대 버전 놈들을 아주 숯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타는 냄새가 실험실에 진동한다. 그리고 내 귀에 익숙한 효과음이 들렸다. 시스템창이었다.

[따다단따다단!! ♡˖(⁎ᐙॢ*)ॢ(*ॢᐕॢ⁎)♡॰ॱ 클리어런스의 성공적인 첫 오류 제거를 축하합니다!!]

아까부터 오류, 오류 하더니….

근데 뭐가 오류였냐?

해결했다는데 정작 나는 뭐가 오류였는지 몰랐다. 케이든?

[게이트, ‘오염된 지하 도시’가 알 수 없는 오류로 인해 등급 변화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미치광이 박사 케이든은 없고 키메라가 된 진짜 미친 ‘케이든’이 등장해 버렸어요!]

시스템창은 마치 동화책처럼 텍스트를 나열했다.

뭐야, 그럼 케이든은 원래 키메라가 아니었다는 말이 되는 건가?

제 몸을 실험체로 삼아 자신이 그렇게 만든 거 아니었어? 여러 가지 약물로 괴상한 실험체를 만들고 나와 다른 놈들도 실험체로 쓰려고 했던 놈이니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아니었다고?

[ヾ(´▽`;)ゝ]

시스템창은 당황한 표정을 만들어 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노려봤다. 뭔가 수상한데…?

[클리어런스의 활약으로 게이트 ‘오염된 지하 도시’의 레퍼런스가 대폭 수정됩니다!

주인을 잃은 폐기물들이 날뛰기 전에 정화석을 부수고 탈출하세요!]

[제한 시간: 06:05]

이게 짜증 나게 제한 시간으로 말을 돌려?

나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당장 몸을 돌렸다.

너무 수상했지만, 일단 여기서 나가고 시스템창을 더 파 봐야겠다.

백루찬이 비틀대며 한 손으로 젖은 코트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송류진과 우반희를 찾았다. 다행히 우반희도 정신을 차렸는지, 송류진의 부축을 받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말도 안 되게 일그러졌지만 나는 씩 웃어 줬다.

우반희까지 무사히 정신 차려서 다행이다. 안도감이 갑자기 확 퍼졌다.

진짜 다행이다.

저놈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면, 솔직히 조금 죄책감이 들 뻔했다.

물론 내가 게이트에 끌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자기들 멋대로 따라 들어온 거긴 한데, 그래도 어쨌든 말이다….

[게이트 붕괴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정화석을 부수고 탈출하세요!]

시스템이 다시 또 안내 방송을 날렸다. 그래, 고뇌할 때가 아니었다. 정화석을 찾아야 했다. 케이든의 스킬에 당했을 때, 환각을 헤매며 마주쳤던 실험체 A- 확대 버전이 있던 곳이 떠올랐다. 거기에 정화석이 있었지.

거기가 어딘지 복잡한 미로 같은 터널 속이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마력이 활성화된 지금은 조금만 기감을 넓혀도 정화석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일단 백루찬에게 다가갔다.

“루찬아, 괜찮냐?”

놈에게 다가가 어깨라도 두드려 주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걸음을 옮기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밑으로 훅 꺼졌기 때문이다.

“어?”

나는 어리둥절하게 멍청한 소리를 내뱉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이마를 땅에 박기 전에 순식간에 다가온 백루찬이 내 허리를 붙잡아 줬다.

“…어?”

근데, 어딘지 좀 이상하다. 눈앞이 흐릿해지며 백루찬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황했다. 뭐지? 왜 이래 갑자기?

“…형?”

백루찬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순간 아랫배부터 격통이 싸하게 올라오며 목구멍을 막았기 때문이다.

“컥…!”

“형, 왜 그래요? 형?”

백루찬이 내 몸을 붙잡는다. 놈이 잡은 부분부터 뜨끈한 열감이 느껴졌다. 이게 대체 무슨…!

그때, 나는 몸 안에서 움직이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력과는 다른 그것은 마력을 다시 활성화시킬 때 간과했던 것이었다. 별거 아니고 좁쌀만 한 기운이라 그냥 내버려 뒀는데, 그것이 갑자기 몸집을 부풀리며 온몸을 잠식해 가기 시작했다.

척추를 타고 기이한 열기가 싸하게 밀려 올라온다. 나도 모르게 백루찬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잡았다. 미친, 이상해…! 그리고 그때, 시스템창이 눈앞에 떴다.

[과도한 약물 복용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위기!]

[위기!]

[마력 사용으로 인해 뭉쳐져 있던 약 기운이 온몸에 퍼지고 있습니다!]

[신체의 기능이 절반 이하로 하락합니다!]

[상태 이상 중첩으로 인해 스킬 사용 불가!]

[위기!]

시스템창이 빨간 불빛을 깜박이며 눈앞에서 빛났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케이든 이 개새끼를… X발…!

“야… 루, 루찬아.”

목이 턱턱 막힌다. 가쁘게 숨을 내쉬기 시작하자 백루찬이 답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백루찬에게 거의 매달리는 자세로 엉겨 붙어서, 이제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 손으로 놈의 멱살을 붙잡아 당겼다.

백루찬이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 파악하고 제 귓가를 내 입술에 붙였다.

나는 간신히 입술을 달싹여 말했다.

“당, 장… 정화석부터 찾아…!”

머리가 들끓는 느낌과 함께, 생각이 뚝 끊겼다. 머릿속을 주무르는 것 같은 고통이 잇따랐다.

그리고 그게 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

“…형!”

백루찬은 당황했다. 멀쩡하던 차해준이 갑자기 쓰러지더니, 이제 한마디를 남기고 정신을 잃었다.

새하얗다 못해 창백하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벌게진 귓가와 뜨끈한 입김이 그가 정상이 아닌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백루찬은 제 옷깃을 잡았다가 힘없이 떨어지는 손을 붙잡았다.

축 처진 고개로 드러난 목덜미가 열이 올라 울긋불긋했다. 그리고….

“해준아!”

송류진이 급하게 다가와 백루찬에게 안긴 차해준의 어깨를 감싸 끌어당겼다. 제 품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백루찬이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주며 차해준의 고개를 제 어깨에 기대게 만들며 송류진의 손짓을 제지했다.

등허리를 감싼 손이 송류진의 손을 쳐 냈다.

붉게 충혈된 눈이 백루찬을 노려본다. 백루찬은 태연한 얼굴로 송류진과 시선을 마주했다.

송류진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어쩐지 평소의 송류진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자마마로 불리면서도 물러 터졌던 놈이… 전과 다르게 날카로워진 것 같다.

묘한 기분을 느낀 백루찬은 저 어깨에 기댄 차해준의 머리를 감싸며 웃었다.

“내가 챙길 테니까 남은 정화석부터 찾아 줄래요?”

“…….”

송류진이 매서운 눈길로 백루찬을 노려봤다. 눈길이 차해준의 뒤통수를 감싼 백루찬의 손에 가 있었다.

송류진은 무언가를 꾹 참아 내는 것처럼 주먹을 꽉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빨리 빠져나가야죠. 지금 형 상태가 말이 아닌 거 같은데.”

“…제가 데리고 있죠.”

“당신 좀 맛 간 거 같아서, 싫어요.”

백루찬은 싱긋 웃었다.

“보는 눈이 이상한데. 환각 말고 다른 것도 당했나?”

“…내가.”

송류진은 백루찬의 말에 살짝 당황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백루찬은 눈치가 빨랐다. 차해준의 목덜미에 난 잇자국과 까득 깨물어 남긴 상처와 어딘지 맛이 간 송류진. 약을 쓴 케이든. 실험체.

백루찬은 차해준을 들쳐 안은 채 몸을 돌렸다.

지켜보던 우반희가 다가와 송류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나랑 류진이가 찾을 테니, 모르젠트 길드장은 그놈을 챙기기로 하지.”

“시간 없어요. 우반희 팀장님, 마력 사용되죠? 그 정도로 고장 나진 않았을 거라 믿을게요.”

백루찬은 밉살맞게 말하고는 게이트 입구 쪽으로 오라고 말했다.

마력만 사용할 수 있다면 정화석이 어딨는지는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

기분이 나쁘다. 송류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차마 백루찬에게서 차해준을 뺏어 내지 못했다.

손안에 들어왔다면 다시는 놔주지 않을 것 같았다. 송류진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우반희는 그런 송류진의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단 정화석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터널이 무너질 것처럼 계속해서 우르릉 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백루찬은 차해준을 들쳐 안고 길었던 터널을 빠져나왔다.

환각에서 오랫동안 헤매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터널은 짧았다.

도착해서 마나 파장을 뿌리는 게이트를 확인할 때, 열에 들떠 기절했던 차해준이 달뜬 얼굴로 백루찬의 뒷머리를 잡아챘다.

“…아파요.”

고개가 뒤로 꺾였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냥 꺼내 본 말에 차해준이 반쯤 감긴 눈을 깜박이다가, 백루찬의 목덜미에 고개를 부볐다.

머리카락이 간지럽다. 백루찬은 괴로운 듯 몸을 틀어 대는 차해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차해준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제한… 시간….”

“네?”

“빨리… 흑….”

제한 시간이 있으니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말 같은데….

안 그래도 터널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닫혔던 게이트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다.

정화석을 다 부숴야 열리는 것 같았다.

백루찬은 토닥이며 대답해 줬다.

“걱정하지 마요. 곧 나갈 거야.”

“읏….”

옅은 신음이 들린다. 차해준이 괴로워하며 몸을 떨었다.

백루찬은 들썩이며 차해준을 바로 안았다.

그러다 바짝 붙은 몸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멈칫했다.

“……형 왜 흥분했지?”

“…으윽… 응….”

차해준이 이젠 흐느끼면서 백루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온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웠다. 눈치 빠른 백루찬은 거기서 또 눈치를 채 버렸다.

주삿바늘로 멍들었던 팔목이 떠오른다.

백루찬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웃었다.

“보스 몹 때문이구나, 형.”

백루찬은 차해준의 얼굴에 뺨을 비볐다. 계속 피식,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짜증 나는데, 좀 꼴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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