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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38화 (38/201)

38화

손목을 한 바퀴 돌리곤, 나는 그대로 케이든에게 쏘아졌다.

쾅-! 쾅-!

한야를 휘두르며 몰아붙이는 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케이든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뒤로 밀려났다.

놈은 기이하게 꺾어진 손으로 힘겹게 한야를 막아 냈다. 손과 검이 부딪치는데 쇳소리가 난다.

못 베어 내? 그럼 부수지, 뭐.

한야에 시퍼런 검기가 맺혔다. 단숨에 쪼개 버릴 듯 아래로 내려친 것을 케이든이 양팔을 교차해 막아 냈고 나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렇게 하면 밑이 비잖아.”

멍청한 새끼야. 고맙다.

검을 들지 않은 왼손에 마력이 뭉치고 나는 그대로 주먹을 쥐어 놈의 명치를 후려쳤다.

-커흑!

충격이 좀 있는지 놈의 몸이 살짝 떴다가 뒤로 밀려났다.

나는 그대로 한야를 던지고 주먹으로 놈을 쥐어 패기 시작했다.

쾅-! 연달아 터지는 마력과 마력의 충돌음. 귀가 먹먹할 정도다.

마지막을 어퍼컷으로 장식하자, 케이든은 바닥을 굴렀다.

놈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나는 양옆으로 목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에 마력이 제대로 활성화되었는지 확인했다.

뭔가 기묘한 기운이 느껴져 거슬리긴 했다. 케이든이 주입한 약 기운인가….

그것을 빼고는, 몸은 한없이 가벼웠다.

케이든이 벌떡 일어났다. 마력으로 방어했으나, 놈의 팔뚝엔 톱날로 파헤쳐진 것 같은 자상이 나 있었다.

흐르는 피는 실험체들처럼 녹색이었다.

-폐기물 따위가 감히--!!

케이든이 흉흉하게 충혈된 눈알을 굴리며 양팔을 뻗었다.

의사 가운이 펄럭이고 그 사이로 암막 같은 연기가 퍼졌다.

보랏빛이 감도는 분홍색 연기. 약을 쓴다 이거지, 지금?

놈은 까득거리며 길어진 손가락을 움직였다. 잔상이 이는 속도로 다가온 케이든이 무시무시하게 팔을 휘둘렀다.

덮쳐 오는 놈을 손쉽게 피하며 나는 뒤로 물러났다. 숨 쉴 틈 없는 공방이 이어졌다.

케이든은 엄청난 속도로 체술을 선보였고, 나는 일일이 막아 냈다. 막고, 쳐 내고, 막고, 쳐 내고, 생각보다 재밌다.

머리를 꿰뚫을 것처럼 손톱을 세워 찔러 오는 손을 옆으로 살짝 비껴가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느려 터졌잖아.”

그와 동시에 놈의 팔목을 붙잡아 그대로 엎어치기 했다. 쾅-! 소리와 함께 바닥재가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나는 그대로 케이든을 던지고 한야를 빼 들었다.

그대로 얼어붙은 칼날을 시전하며 검기를 두르고 앞을 막았다.

까가강-! 마찰이 일며 놈의 꺾어진 손톱이 짓쳐들어왔다.

“참을성이 좆도 없구요. 어쩌려고 그래. 이 정도로 흥분하면.”

-빌어먹을 실험체 따위가-!

적당히 중얼거려 주자 케이든이 눈에 불을 켜며 덤벼든다.

몸을 뒤로 빼며 피하자 실험실의 기기들이 케이든의 공격에 터지고 쓸려 갔다.

가로막는 책상에 있는 약병들을 쓸어버리고 미끄러지듯 반대편으로 피하자 놈은 책상을 반으로 갈랐다.

그사이 나는 갈라진 책상 조각을 받침 삼아 밟고 허공에 몸을 띄웠다.

그리고, 동시에 스킬을 전개했다.

[붙잡는 암흑(Lv.99)]

나와 동시에 튀어 오르려던 케이든의 발목이 잡혔다. 놈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잡힌 듯 바닥에 척 들러붙어 버둥댔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스킬을 전개했다.

[그림자 밟기(Lv.99)]

떠오른 몸이 순식간에 빗살처럼 놈의 주변으로 파고들었다.

다중 공격에 특화된 공격이지만 한 놈만 패니까 더 효과적으로 족칠 수 있지 않을까?

허튼 생각을 하며 검을 휘둘렀다.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움직이면서 한야로 케이든의 대가리를 노렸다.

일단 한 곳만 조져 주겠다, 이거야.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잡하게 울린다.

케이든은 스킬을 발동한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한야에 의해 이마가 터졌다.

녹색 피를 줄줄 흘린 케이든이 괴성을 지르며 나를 피해 도망쳤지만, 그런다고 쉽게 피할 수 있나.

나는 뒷걸음질 치는 놈을 따라서 움직이며 검을 놀렸다.

-으아아아악!!

분노를 참지 못한 케이든의 괴성이 울린다. 이대로 목을 베어 내며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한야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때, 무언가가 텅- 소리를 내며 한야를 막았다.

무형의 장막 같은 게 케이든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잠깐 당황한 내가 멈춰 서자 케이든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

-훌륭한 완성작이 될 것 같아 기대를 걸고 참아 주려 했건만… 쓰레기보다 못하구나.

“거참, 쓰레기에게 쓰레기 소리 듣는 쓰렉… 이 아니지. 엉? 멀쩡한 인간 생각도 해 줘야지, 이 폐기물 자식아.”

-크아아악! 네놈의 몸을 통해 할 수 있는 504가지 실험을 모조리 해 버릴 테다! S-23을 어떻게 깨워 냈는지 모르겠지만 네놈이 특별한 건 인정해 주마!

“응, 키메라에게 받는 인정 따위 필요 없고요.”

-절대 네놈을 그냥 보내지 않겠다. 차해준…! 아주 끔찍하고도 다양한 실험을 경험하게 해 주지. 504가지 실험 말고도 다른 실험체들에게 돌려 가며 교배를 경험하게 해 주마. 네놈의 강함을 보건데… 아주 강한 실험체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아.

케이든이 흉측하게 길어진 혀로 입술을 핥았다.

놈의 눈이 위험하게 번뜩였고 나는 순식간에 속이 나빠졌다. 번식 X발, 징그럽게 진짜.

-넌 이미 끝났어. 내 특제 비약이 이미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놈은 양손을 펼치며 광기에 휩싸여 대소했다. 그러고 보니 실험실 내부가 옅은 보랏빛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다분히 귀찮은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특제 비약?

짙어지는 연기가 내 주변을 감싸들면서, 눈앞엔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미치광이 키메라 케이든이 금지된 약물 ‘광마의 피눈물’을 사용했습니다!]

시스템창이 깜박이며 메시지를 보냈다. 무언가 쓴 거 같은데, 이름 가지곤 도통 모르겠다. 아무튼 디버프용인 거 같긴 한데….

나는 한야를 휘둘러 내 주변의 연기를 흐트러트렸다. 애써서 코를 막거나 호흡을 멈추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미 퍼질 대로 퍼져서 막기도 애매하기도 했고.

그때, 쿵, 쿵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 실험실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지면을 박차는 듯한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콰앙-!

실험실 입구가 날아갔다.

“…….”

두꺼운 철제문이 으스러지고, 툭 튀어나온 두꺼운 팔이 그것을 잡아 뜯었다.

나는 쯧 혀를 차곤 한야를 어깨 위에 얹었다.

모습을 드러낸 건, 케이든의 몽중몽에 빠졌을 때 깨기 전 마지막에 보았던 그놈이었다. 실험체 A- 어쩌고 확대 버전으로 생긴, 그놈.

3미터는 넘을 듯한 거인 같은 놈이 입구를 부수고 난입해 괴성을 질렀다.

오, 씨발.

나는 실소했다. 놈 뒤에 똑같은 실험체가 한 놈 더 있었다.

-사지가 찢겨도 다시 살려 낼 수 있지. 나에겐 아주 쉬운 일이다. 찢기면 더 좋아. 그 육체를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차해준. 네놈은 어떻게든 내가-.

케이든이 개소리를 지껄이는 때, 내 눈앞에는 연속으로 시스템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디버프 무력화]

[디버프 무력화]

[디버프 무력화]

공중에 자욱한 연기가 예상대로 디버프용이었던 거 같다. 나는 일부러 숨을 훅 들이켜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근데 어쩌냐.

“이게 다냐?”

내가 랭킹 1위라서 말이야. 디버프 따위 1도 안 먹히거든.

***

아, 미치겠다.

송류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꾸, 이상하게 목이 마르다. 한번 얼어붙었던 몸이 계속 간질거렸다. 목구멍은 타들어 갈 것 같고, 시선은 계속 차해준을 좇았다. 송류진은 뒷걸음질 쳤다. 등에 벽이 닿자 그제야 자신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키고 싶다.

드러난 목덜미를 씹고, 핥고 싶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싸하게 아래서부터 올라온다. 케이든의 목소리가 귓가에 자꾸 어른거렸다.

‘네 거야.’

‘네 마음대로 해도 돼.’

‘네가 원한 거잖아.’

오싹. 목 뒤로 소름이 돋았다. 말도 안 되게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송류진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멋대로 차해준을 넘어트리고, 그 목에 고개를 묻고, 마음대로 엉망으로 흐트러트리고 싶다고 생각할 리가-.

송류진은 우뚝 멈춰 섰다.

-콰앙!

실험실에 굉음이 울린다. 키메라로 변한 케이든과 차해준이 부딪치는 소음이었다.

빗살처럼 움직이는 차해준은 일반인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에 반응하는 케이든도 2급 게이트의 보스 몹이라고는 볼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미친.”

벌겋게 핏줄 선 눈이 둘을 노려봤다. 송류진은 정신을 다잡았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차해준은 케이든과 싸우고 있었고, 함께 들어왔던 백루찬과 우반희는 아직 쓰러져 있다.

둘을 챙겨야 했다. 해준이 둘을 챙겨 달라고 부탁했다.

송류진은 명령이 입력된 로봇처럼 삐걱대며 쓰러진 백루찬과 우반희에게 다가갔다.

반쯤 정신을 차린 건지 백루찬이 꿈틀대며 몸을 움직였다.

송류진은 일단 백루찬부터 부축했다.

이들을 대피시켜 놓고, 빨리 차해준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간신히 이어 가며 자꾸 차해준에게 쏠리는 정신을 바로잡았다.

“…떨어져.”

백루찬이 완전히 정신을 차린 건 그때쯤이었다.

괴성과 폭발음, 실험실이 무너지면서 내는 먼지로 눈앞이 자욱할 때, 부축했던 백루찬이 비틀대며 송류진을 밀어냈다.

송류진은 백루찬의 말을 무시한 채 부축을 도왔다.

백루찬이 잔기침을 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눈앞이 몽롱하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송류진이 닿는 것을 질색하는 것을 보면 제대로 깨어난 것 같긴 했다. 자신처럼 정신이 사로잡힌 게 아니라.

송류진은 우울한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백루찬에게 물었다.

“기억합니까.”

송류진이 묻는 건 케이든의 환각 ‘몽중몽’에 대해서였다.

연결돼서 꾸는 꿈. 송류진은 흐릿한 기억처럼 남은 환각을 되새겼다.

마치 진짜로 있었던 일처럼 눈앞에서 생생했다. 망연자실한 차해준의 얼굴과, 힘없이 끌려가던 자신이. 그리고 자신을 보던 백루찬의 얼굴이.

백루찬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옆에서 자신을 부축하는 송류진을 쳐다봤다.

쳐다보는 눈이 기억한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백루찬이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송류진을 밀쳤다.

“…상황 파악은 제대로 되었을 테니, 잠시 기다리세요.”

송류진은 백루찬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이제 우반희를 챙겨야 했다. 우반희도 깨어날 기미가 보였다. 일어서려는 듯 팔로 바닥을 짚는다. 송류진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백루찬은 몇 번 비틀거리다가 바로 섰다. 젖어 버린 코트를 벗어 버리고, 머리를 쓸어 올린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든 몸짓이 상황에 맞지 않게 쓸데없이 우아했다.

“…기분이 이렇게 거지 같은 건 오랜만인데.”

백루찬은 인상을 찡그리며 허공을 올려다보다 케이든과 싸우는 차해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온통 검고 푸르고, 보랏빛 나는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차해준이 검을 휘둘렀다.

키메라로 변이한 케이든이 한쪽 벽에 처박혔다. 순간 차해준의 검이 새하얗게 번쩍인다.

백루찬은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흔들다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제야 현실인가?”

케이든의 환각에 걸렸을 때, 우반희가 물살에 휩쓸려 사라졌을 때부터 백루찬은 어딘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움직이지 않는 마력. 어딘지 모르게 깊이 가라앉은 듯한, 멍멍하게 울리는 정신.

그리고 송류진이 납치당하듯 사라지고 난 뒤 실험체에게 난 손등의 생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 깨달았다. 꿈이구나.

백루찬은 웃었다. 그래서 한순간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마음대로 떠들었던 거 같다.

송류진은 우반희를 깨우고 있었다. 백루찬은 송류진을 돌아보고 몸속의 마력을 돌렸다.

마력이 유약하게 흐르며 전깃불이 튀다가, 어느 순간 황금색 전류가 치직 소리를 내며 맺혔다.

백루찬은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다른 건 다 둘째 치고라도, 저 케이든이란 보스 몹의 스킬이 너무 괴랄하고 짜증이 났다. 몸에 유독 기운이 없는 것도 기분이 나쁘고…. 무엇보다, 백루찬의 눈이 잠깐 멈춰 선 차해준을 훑었다.

묶여 있던 끈들이 풀려 등허리를 고대로 보여 주는 환자복을 입은 차해준은 자신의 몰골이 어떤지 감도 못 잡고 있는 거 같았다.

한야를 든 팔뚝 위로 찢긴 소매가 나풀거렸다. 하얀 피부에 군데군데 시퍼렇게 남은 멍들이 보였다.

백루찬은 인상을 찡그렸다. 거슬린다. 저 상처들.

차해준은 제 몸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스킬을 전개했다. 눈 깜박하는 순간 사라진 차해준이 다시 케이든과 부딪쳤다.

-콰광!

검과 육체의 부딪침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굉음이 울린다. 백루찬은 휘청대며 한숨을 내쉬다가, 옆의 벽을 짚었다.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짜증 나게.”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휘둘리다니. 정신이 일순간 몬스터 따위에게 먹혔다는 게 그의 기분을 더욱 잡치게 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다.

차해준과 단둘이 있었던 그 순간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그것도 케이든이 만든 환각이었으니 그 영향도 있었을 터다.

마력이 점점 더 활기를 띠며 몸 안을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었다 펴며, 백루찬은 케이든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방은 먹여야 매스꺼운 속이 좀 진정될 거 같았다.

그때였다. 입구가 부서지며 검은 근육 덩어리 실험체 A- 확대 버전이 나타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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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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