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기다란 더듬이가 수로 내부를 훑고, 칼날같이 날카롭게 뻗은 다리가 시멘트 바닥을 긁어 댄다.
거미 같은 몬스터였다. 거미를 좀 더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킨. 그리고 거대한 수로를 꽉 메울 것처럼 크기가 컸다. 털로 뒤덮인 몸뚱이가 매우 징그러웠다.
“와….”
우반희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백루찬이 헛구역질을 하는 것처럼 입을 가렸다.
“저 벌레 극혐해요.”
“어쩌라고!”
네놈이 결벽증이 있는 건 흰 코트를 매번 갈아입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이 자식아.
몬스터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 뒤로 새끼 거미 같은 놈들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앞을 더듬으며 오는 걸 보니 눈앞이 보이는 것 같진 않았다. 작은 소음에 머리로 보이는 게 더듬이를 쫑긋거린다. 소리를 인지했다는 거다.
백루찬이 질색한 표정으로 우산을 꺼내 앞을 겨눴다. 그래, 네가 한 방에 날려 버려라.
우산이 빙그르 돌아가며 활짝 펴졌다. 뾰족한 끝에서 전류가 지직거리며 튀기 시작했다. 백루찬의 눈이 순간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면서, 마력이 백루찬의 손에서 요동쳤다.
그리고 우산 앞에 둥글게 맺히는 강한 마력구.
이놈 싫다더니 정말 전심을 다하는구나….
마력구가 팽창하며 전류를 생산한다. 거미를 닮은 몬스터가 마력을 느꼈는지 입을 벌리고 울었다. 그와 동시에 놈의 뒤를 따라오던 새끼 거미들이 기다랗고 날카로운 다리를 놀리며 빠르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백루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피슈웅— 치지직-.
“…….”
백루찬이 우산을 흔들었다. 전류가 튀던 마력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소리를 내며 꺼졌다.
-피슈우웅-.
백루찬이 다시 시도해 봤지만, 이번엔 아예 뭉쳐지지도 않았다.
“…뭐 하냐?”
우반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실소했다.
백루찬이 뒤를 돌아보고 상큼하게 웃었다.
“스킬이 안 써지는데요?”
“뭐?”
-끼이익-!
칼날 같은 다리가 벽을 짚고 성큼성큼 다가와 우리를 덮쳤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한야를 빼 들어 금방이라도 백루찬을 후려칠 것 같은 몬스터의 다리를 잘라 냈다.
앞다리가 잘리며 진득한 초록색 액체가 허공에 흩날렸다. 핏물 같지도 않은 것을 몸을 숙여 피하곤 바닥을 디딘 상태로 도움닫기 해 훌쩍 몸을 띄웠다.
이놈들, 한 방에 조져 주마!
즉시 그림자 밟기 스킬을 전개했다. 검기를 날리기 위해 마력을 모으며 몸을 날리는 준비를 하는데.
“어?”
스킬 시전은커녕, 몸 안에 도는 마력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다시 제자리에 착지했다.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로.
“해준아, 뒤로.”
내 목을 채 가기 위해 몬스터의 다리가 짓쳐들었다. 가르덴의 송곳을 꺼내 든 송류진이 그런 내 앞을 가로막고 창을 휘둘렀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몬스터의 다리가 튕겨 나갔다.
“마력이 안 움직여.”
“나도 그래.”
송류진이 담담하게 대답하며 가르덴의 송곳을 빙글 돌려 앞을 막았다. 바람개비처럼 몸을 날린 몬스터에 의해 까가강- 하며 다리와 창이 맞부딪쳤다.
빈틈을 노리고 성인 남자 몸통의 반만 한 새끼 거미가 튀어나왔다. 송류진이 메인 몬스터를 막고 나는 새끼 몬스터를 베어 냈다.
“여기 게이트, 뭐가 있나 본데요?”
백루찬이 뒤로 물러서며 웃었다.
태평하게 웃을 때냐, 이 자식아!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니 온전히 몸으로 때워야 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여기서 육체파는 나와 송류진뿐이었다.
이거 설마 게이트에 퍼져 있다는 오염 물질 그거 때문인가?!
-끼이이!
새끼 거미가 괴성을 내지르며 덤벼든다. 우반희가 인상을 쓰며 내 뒤로 피했다.
“민간인 살려.”
이크- 하면서 새끼 거미가 내지른 다리를 피한 우반희가 감흥 없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우반희에게 달라붙은 새끼 거미를 베어서 몸통을 걷어찼다.
우와 짜증 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게이트에서 마력을 사용 못 하면 어쩌자는 건데. 여기 시스템 네놈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들어온 거잖아!
오류를 해결하라며! 그럼 스킬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해 줘야 할 것 아냐!
속으로 개발새발 욕을 난사하며 시스템을 부르자 눈앞에 창이 떴다.
[오염된 실험체 B342가 등장했습니다!]
[오염 물질로 인해 디버프가 걸립니다. 스킬 제한. 마력 사용 불가.]
[위기!]
[위기!]
[케이든 박사의 ‘오염 물질’이 게이트 내부에 퍼져 있습니다! 빠르게 정화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상태 이상’에 빠지게 됩니다.
오염된 정화석을 찾아 파괴하세요.
파괴된 오염된 정화석: 0/3
현재 오염도: 47%]
몬스터가 나타나서인지 수치가 갑자기 팍 올랐다. 다다다 등장한 시스템창을 읽으며 정신없이 달려드는 새끼 거미들을 베어 냈다.
오염된 정화석 부분이 강조되며 빨갛게 번쩍인다. 빨리 정화석을 찾으라는 말 같은데, X발 그게 대체 어디 있는 건데!
송류진이 몸을 띄워 가르덴의 송곳을 큰 거미 몬스터에게 내던졌다. 허공을 찢고 작살처럼 쏘아진 창에 거대 몬스터가 뒤로 밀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스킬을 못 써도 S급은 S급이다 이거지!
근데 이 자식들은 왜 이렇게 쓸모가 없냐고! 나는 뒤에서 손 놓고 구경 중인 백루찬과 우반희를 힐끔 보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송류진이 만들어 낸 빈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바닥을 쓸듯 크게 원을 그리며 한야를 휘둘렀다. 난자되는 몬스터들 사이로 길이 뚫렸다. 우반희와 백루찬이 눈치껏 뛰었다.
나는 소리쳤다.
“정화석부터 찾아!”
“정화석?”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빨리 찾아! 무조건 이 안에 있어!”
“어떻게 생긴 건진 알아야 찾지!”
“나도 몰라!”
어디서 몰려오는지 모를 거미 새끼들을 튕겨 내며 앞서 뛰는 놈들을 따라 달렸다. 앞에 우반희, 백루찬, 그리고 나, 송류진 순서대로 어두컴컴한 수로를 달렸다.
중간에 꺾어지는 길목이 나왔다. 앞과 양옆, 이렇게 세 갈래로 갈라진 터널을 보며 소리쳤다.
“왼쪽!”
새끼 거미가 오른쪽 터널에서 튀어나왔다. 백루찬이 허리를 숙이고 내가 한야를 휘둘렀다. 모두가 왼쪽 터널로 향했다.
송류진의 뒤로 따라붙은 거미의 숫자가 배로 늘어났다. 수로 천장까지 가득 차 기어 오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했다.
모두가 이를 악물고 뛰었다. 나는 앞서 나가며 터널 앞을 확인했다. 바닥이 찰박인다. 언제부터인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정화석, 정화석 어디 있는 건데!
그때였다.
나는 달리던 것을 멈춰 섰다. 그와 함께 다른 놈들도 멈춰 섰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살폈다.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쪼르륵이 아니다. 콸콸 쏟아지는 듯한.
“이거….”
송류진과 눈이 마주치고, 백루찬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우반희가 뒤를 확인하다가 우리가 달리던 앞 방향을 보고 난감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잠깐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이런… 좆같은 경우가 다 있나.
“X발 뛰어!”
우리는 다시 달려왔던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쏟아지는 물소리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밑창을 적시던 물이 어느새 발목까지 차올랐다. 새끼 거미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덮치는 놈들을 헤치고 뛰었다.
세 갈래로 갈라진 길목에 들어서기 전, 터널 벽면에 홈처럼 파인 수로가 보였다. 물살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벽면에 파인 홈으로 몸을 날렸다. 그다음 송류진과 백루찬이 들어오고 마지막으로 우반희가 들어올 차례였다.
우반희가 발을 내딛는 동시에, 기다란 몬스터의 다리가 눈앞에 뻗어졌다. 칼날 같은 그것이 우반희의 등을 찢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앞에 거센 물살이 앞을 쓸고 나갔다.
“아…!”
우반희가 휩쓸려 간다. 나는 손을 뻗어 우반희를 잡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송류진이 내 뒷덜미를 잡고 뒤로 당겼다.
물줄기가 짓쳐들어온다. 벽면에 붙은 파이프를 붙잡아 물살을 버텼다. 밀물처럼 들이닥친 물줄기가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졌다. 나와 모두가 흠뻑 젖은 채로 수로에 주저앉았다.
“…….”
눈을 깜박이자 속눈썹에 맺힌 물기가 떨어졌다. 젖은 채로 숨을 고르면서,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미친. 우반희를 놓쳤어.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막혔던 숨통이 트여 숨을 몰아쉬면서,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아니 분명, 아까까진 그렇게 여유로웠는데? 그리고 우반희 그놈도 S급이라고. 비록 보조 계열이긴 하지만, 근데.
이렇게 쉽게.
“안 죽었어.”
송류진이 내 뺨을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푹 젖은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린다.
“안 죽어. 저 정도로.”
송류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굳은 눈빛에 나는 눈을 깜박이다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누가, 누가 S급을 걱정해.”
내 말에 나를 빤히 보던 송류진이 엄지로 내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 냈다. 자기 손도 젖어서 소용없는데도 송류진은 눈꺼풀을 문지르고 떨어졌다.
그리고 그때였다. 우리가 있는 수로 끝 쪽, 굳게 막혀 있던 원형 뚜껑이 과자 봉지처럼 으스러지더니, 안에서 기다란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내 앞에 서 있던 송류진을 덮쳤다. 촉수 같은 것은 내게서 송류진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촉수가 빠른 속도로 송류진의 몸을 감았다. 내가 송류진의 팔을 붙잡았지만 물기에 잔뜩 젖은 손은 너무 손쉽게 내 손을 빠져나갔다.
“류진아!”
다급하게 한야를 빼 들었지만 나는 무력하게 송류진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순간 공기에 추가 달린 것처럼 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열린 통로로 송류진이 어둠 속에 빨려들어 가듯 사라졌다.
“…허.”
이게 뭐야.
나는 멍청한 얼굴로 한야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원래 같았으면, 당하지도 않았을 기습이다. 저 촉수가 나오기 전에 눈치챘을 텐데, 마력도 쓰지 못하고 스킬도 잠긴 상태에, 알 수 없는 오염 물질 때문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몸이 내 몸 같지 않게 무거웠다. 나는 한야를 쥔 손을 바라봤다. 형편없이 떨리는 손이 보였다.
“씨발… 이게….”
어이없어서 숨 쉬는 것도 잊고 송류진이 사라진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니, 멍청한 새끼가, 왜 뒤에서 덮치는데 그것을 가만히 당하고 있어!
S급이나 된 놈이! 왜!
속으로 한탄하는데 미칠 것처럼 짜증이 치솟았다. 스킬만 쓸 수 있었다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이런 좆같은 상황에 처할 리가 없었다. 축축하게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욕을 짓씹었다. 그때, 나를 보던 백루찬이 눈치 없게 말했다.
“와, 나랑 형만 남았네요?”
백루찬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웃었다. 나는 놈을 노려봤다. 뭐가 좋아서 웃냐, 이놈아.
“조용히 해.”
숨을 몰아쉬고, 나는 송류진이 사라진 입구를 살폈다. 어두컴컴한 터널이 또 쭉 이어진다. 씨발. 진짜 토할 것 같아.
나는 입술을 깨물고 입구를 넘었다. 백루찬이 내 뒤를 따라 걸었다.
어두컴컴한 터널은 방금까지 있었던 지하 수로보다 더 어두웠다. 아니 이건 오염 물질 때문에 몸 상태가 이상해져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터널에선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물소리와 백루찬과 내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벽을 짚으며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그래도 보이는 게 없었지만, 뭐라도 찾아야 했다.
자꾸 어금니를 꽉 물게 된다. 가슴이 뛰며 한없이 초조해졌다.
이거 뭐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냐.
“와… 이렇게 무력하게 당한 적은 처음이네요. 한야가 있는데도 당해 버리네. 형도 스킬 못 쓰니까 별거 없네요? 나 좀 많이 기대했는데.”
“…….”
“뭐… 기대에 못 미쳤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어요. 게이트 안이고, 특수 상황이니까. 이해는 해요.”
백루찬이 태평하게 말했다. 어조가 심각한 상황에 맞지 않게 나긋나긋하다.
“형, 왜 우울해하고 있어요? 우반희랑 송류진, 죽었을까 봐 그래요?”
“…야.”
“각성자가, 그것도 S급이 설마 그렇게 쉽게 죽겠어요? 둘 다 각본에서 엄청 유명한 놈들이에요. 형 앞에서만 가면 쓰는 거야. 아까도 봤잖아. 약한 척하는 거. 송류진 헌터도 말이죠. 어디서는 아기 사슴 이러는데 말도 안 돼요. 맹수라니까, 그 새끼도. 위험한 놈이에요. 범죄자 잡을 때는 사람도 찢어. 막.”
“…….”
“모르젠트 입장에선 아쉬운 거 없어요. 각본 전력이 줄면 길드에 기대는 게 많아질 테니까. 오히려 이득인가? 하하, 여기서 제가 죽으면 볼만한 상황이 펼쳐지겠네요. 기사가 우르르 쏟아지겠다. 백루찬, 그렇게 안 보였는데 사실 피죽이 있는 인간이었다?”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백루찬을 뒤로한 채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걸었다. 백루찬은 여유롭게 나를 따라왔다.
“근데 형.”
“루찬아.”
“네.”
“좀 닥쳐.”
“싫은데.”
바닥에 깔린 물 때문에 걸을 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백루찬이 미묘한 얼굴로 웃었다.
“형 근데, 그거 알아요?”
“…….”
“나 사실.”
“백루찬.”
“죽으려고 꽤 노력을 많이 해 봤거든.”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백루찬은 눈치채지 못하고 느긋하게 나를 따라왔다.
태평한 목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나는 다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근데 영 안 되더라고. S급 각성자는 제 몸에 상처도 못 내는 거 알아요? 다 각자마다 특징이 있어요. 누구는 강철같이 단단하고, 누구는 독 같은 건 하나도 안 통하고.”
이런 순간에 왜 자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해 대지. 백루찬답지 않게. 나는 짜증이 나 대답하지 않았다.
“…….”
“나 같은 경우는 회복력이 미쳐 버린 거야. 칼로 긋는 순간부터 낫기 시작해 버리니까.”
“…….”
“소름 돋죠?”
백루찬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각성자는 인간이 아닌 거죠. 각성자는 인간이라 부를 수가 없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 능력이 있는 놈들이 인간일 수가 없어.”
“…….”
놈은 좀 흥이 난 듯, 신나게 혼자 떠들었다.
“게이트를 신의 부름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있는 거 알아요?”
“…….”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생사람을 제물로 삼아 게이트에 가져다 바치는 놈들이. 이 새끼들 사상이 돌아 버렸어. 거기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래. 게이트 안에선 이런 S급도 종잇조각처럼 찢기는데.”
나긋나긋하던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백루찬은 희미하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웃긴 게 나는 각성자들에게 붙는 신인류라는 말도 존나 싫어요. 일본에는 S급 각성자를 신처럼 모시는 교단도 있어요. 진짜 웃기죠. 저는 정말 징그러워요. 꼭 부정하는 거 같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백루찬은 이제 거의 성토하듯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이놈 왜 지금 급발진이냐. 나는 한숨을 쉬고 대답해 줬다.
“뭘 부정해.”
헛소리하지 말고 뭐라도 있는지 찾기나 하라고 한 소리 하려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뒤엔, 어둠으로 물든 검은 터널만이 나를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
백루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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