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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31화 (31/201)

31화

오염된 지하 도시

검은 근육질 덩어리가 괴성을 지르며 팔을 휘두른다.

나는 가볍게 점프해 피한 후 놈이 뻗은 팔을 딛고 다시 한번 공중으로 솟아올라 한 바퀴 돌며 검을 휘둘렀다.

기다란 한야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근육 덩어리를 두 동강 냈다.

[-처리한 오염된 실험체 32/327]

그러자 뜨는 시스템창.

이런 놈이 300마리가 넘게 더 있다는 말이다. 게이트를 다 통과해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도로는 쿵쿵대는 발소리와 비명 소리, 숨죽인 흐느낌, 부서진 잔해들로 을씨년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모든 곳에서 마력이 진하게 느껴졌다.

하나하나 다 살펴봐야 하나? 그러기엔 갑자기 튀어나오는 오염된 실험체들이 너무 많았다.

“이것들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반파된 편의점을 기지 삼아 사거리를 훑어보고 돌아왔다.

편의점엔 이놈에게 맞아 죽은 시체가 한 구 있었다.

부서진 문가의 유리 잔해 속에 있었던 것을 보면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를 피하지 못하고 당한 것 같았다.

나는 시체를 구석으로 옮기고, 진열장을 쌓아 그 앞을 가려 놨다. 그리고 김수민과 조하영을 안으로 피신시켰다. 둘은 군말 없이 내 말을 잘 따라 주었다.

오염된 실험체들은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인간의 냄새를 맡고 쫓는다.

냄새를 쫓으니 숨는 건 사실 의미가 없었지만, 앞을 내가 막고 있다면 달라졌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한야를 내 앞 바닥에 꽂아 세웠다.

무협지의 고수가 기감을 여는 것처럼, 나는 마력을 움직였다.

그물같이 퍼지는 감각이 손끝에 맴도는 것 같아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비상 대피를 할 새도 없이 출현한 몬스터 때문에, 건물 곳곳에 사람들이 남아 있다.

오염된 실험체들은 기둥을 부수고 철근을 휘어 가며 그런 사람들을 노렸다.

무언가 손끝에 닿는 것처럼 마력에 놈들의 기운이 닿았다.

세 마리의 오염체가 한 블록 너머 카페로 돌진하고 있다.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바로 한야를 잡고 이형환위 스킬을 전개했다.

몸이 쏘아지고, 나는 단 세 걸음으로 놈들 앞에 도착했다.

놈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덮치기 직전이었다.

유리창이 산산이 조각나며 비산한다.

나는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바로 그림자 밟기를 시전했다.

-----!!

“으아악!”

한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려는 근육 덩어리의 팔을 절단하고, 다시 몸이 허공에 1초 정도 떠올랐다가 오염된 실험체들을 양분 냈다.

피가 찐득한 타르처럼 흐르는 놈들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나는 세 마리를 도살하고 다시 이형환위를 전개했다.

이번엔 사거리 앞, 김수민과 조하영이 있는 편의점 앞이다.

달려드는 실험체가 두 마리. 조금 아슬아슬했다.

닿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며 몸을 날리는 그 순간.

-콰아앙-!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공사장이 늘어진 인근, 기다란 건설용 크레인에 놈이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비 냄새가 난다. 백루찬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나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백루찬이 씩 웃으며 우산을 펼쳤다. 하늘에 번개를 동반한 구름이 모여들고 천둥이 요란하게 울렸다.

‘조심.’

백루찬이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스킬을 시전했다.

-쾅-! 쾅-! -쾅!

지면에 때려 박는 낙뢰.

사방에 노란 전류가 튀는 번개가 내리쳤다. 번개는 정확하게 오염된 실험체들을 향해 꽂혔다.

몬스터를 단 한 줌으로 녹여 버리는 번개 비의 향연에 나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미친놈, 졸라 강해.

다인 공격 만만세다. 나도 이런 번개 쇼-는 못 하지만 한 번에 여럿 박살 낼 수는 있다고!

여긴 장애물이 많아서……. 둘러댈수록 쪼잔해지는 것 같으니 그만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놈이 죽을 위기에 처한다는 건 상상도 되지 않는다.

대체 어느 레벨이어야 이놈을 죽일 수 있다는 거냐…. 이놈을 죽음까지 모는 위험이라면 나도 그냥 꿱- 아닐까.

라는 잡다한 생각을 좀 하는데, 편의점 안에서 창백한 얼굴로 밖을 쳐다보는 조하영과 눈이 마주쳤다.

눈을 부릅뜬 그녀의 표정은 이상하게 광기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하영이 환희에 들어찬 얼굴로 소리쳤다.

“X발, 나도 각성자 할래!”

…하여간 정상적인 놈들이 없어요!

***

[-처리한 오염된 실험체 A-0178/A-0327]

백루찬은 등장과 동시에 실험체를 절반 이상 해치워 버렸다.

우산을 편 놈은 두둥실 떠올라 사뿐히 내 옆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번개 맞은 오염된 실험체가 있었던 자리를 살펴봤다.

놈은 시멘트 바닥에 까맣게 눌어붙어 있었다.

“너 혼자 왔어?”

“일단은.”

그렇게 대답한 백루찬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유심히 살펴본다. 왜 이래.

“뭐 묻었어?”

“아니. 오늘은 멀쩡하네요?”

“다치길 바랐냐.”

백루찬이 내 말에 말없이 미소를 보낸다.

뭐야, 진짜 다치길 바랐어? 나는 속으로 투덜대면서 놈을 흘겼다.

백루찬이 주변을 느리게 훑어본다. 몸짓 하나하나가 괴물들을 순식간에 태워 버린 헌터의 움직임 같지 않게 우아했다.

내가 물었다.

“게이트, 찾았어?”

“못 찾았어요. 마력이 뭉쳐 있는 곳이 너무 많아서. 공사장마다 있어요. 애초에 일부러 작업이라도 쳐 놓은 것처럼….”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꼭 방해하려는 것처럼 마력이 군데군데 뭉쳐 있어서 어디가 게이트인지 모르겠다.

마력을 이렇게 다룰 수 있는 각성자가 있기라도 한 건가.

게이트가 터질 것을 예측하고 이런 걸 만들었다? 말이 안 된다.

아니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가…?

이 가정은 더욱 끔찍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각본과 연락됐어요. 경안구 일대 2급 게이트 경보 및 재난 대피령 내려졌고요. 아직 못 피한 민간인들 구출을 위해… 오고 있겠죠?”

“…….”

“물론 많이 늦었지만 말이죠.”

백루찬이 아직도 아지랑이가 군데군데 올라오는 도로를 배경으로 화사하게 웃었다.

“원래 항상 터지고 나서야 수습하죠. 그래서 각본을, 길드는 아주 싫어한답니다.”

“…너도 늦은 건 마찬가지야.”

“그거야 형이….”

백루찬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터지기도 전에 매번, 그 장소에 있으니까.”

수상하단 소리를 돌려 말하는 거냐. 좀 억울하다. 단지 학교 조별 과제로 조사하러 왔는데 게이트가 터진 거라고!

씩씩대며 말하기엔 좀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바닥이 울린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쿵- 쿵 소리.

오염된 실험체의 발걸음 소리다. 나는 한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100마리 넘게 있어. 네 덕에 좀 줄긴 했지만.”

“흐응.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있대.”

“잡소리는 그만하고, 내가 잡을 테니까 위에서 게이트나 찾아봐.”

“우반희 팀장님 오면 금방 찾아요.”

백루찬이 나서려는 나를 붙잡아 세웠다. 우반희? 그러고 보니 각본의 탐정이었지. 그놈.

흔적을 금방 알아채는 스킬이 있을 것이다. 마력 냄새도 맡는 놈이니까.

백루찬은 나를 붙잡고 무언가 말하려 입을 벙긋하다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왔네요, 각본.”

대기가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백루찬이 바라본 도로 한쪽에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저건 또.”

나는 3층 높이를 가뿐히 넘기는 벽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저건 또 뭐냐….

갑자기 땅이 밀린 것처럼 솟아난 것은 괴성을 지르며 뛰어오는 오염된 실험체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이 있었다.

남자가 쥐고 있는 거대한 창에 마력을 뒤집어씌웠다.

새파란 빛으로 뒤덮인 것을 어깨를 틀어 바닥으로 가볍게 내던진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리꽂힌 창끝에서 마력이 폭발하고, 오염된 실험체들이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짜부라졌다.

남자는 다시 돌아오는 창을 회수하고는 지면에 발을 디뎠다.

백루찬이 손뼉을 짝짝 쳤다.

“역시 각본의 황태자. 멋져.”

숨을 몰아쉰 송류진이 고개를 들고, 사거리 반대편에 있는 나와 백루찬을 발견했다.

나를 인지하고 흠칫 놀란 송류진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해준아?”

“하하, 류진아.”

“너 왜 여기 있어?”

그러게, 말이야. 내가 왜 여기 있을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온 송류진이 내 어깨를 턱 붙잡더니 내 몸 곳곳을 훑어봤다.

다친 곳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거 같은데, 오늘은 멀쩡하니 안심해라, 이놈아.

내가 녀석의 손을 떼며 괜찮다고 말했다.

송류진이 온 방향은 방금 들렀던 카페가 있는 방향이었다. 내가 물었다.

“저쪽 카페에 사람들 있어. 피신시켜야 하는데.”

“다른 요원들도 왔어. 대피시키고 있을 거야.”

“편의점에도 두 명 있어. 야- 조하영!”

나는 편의점으로 가 숨어 있는 두 사람을 찾았다.

곧이어 창백하게 질린 김수민을 부축한 조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수민은 백루찬과 송류진을 보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흐엉, 살았어….”

그런 김수민을 다독이면서, 조하영은 눈을 빛냈다. 반짝반짝하는 것이… 위기감이라곤 하나도 없는 눈빛인데, 저거. 또 이상한 소리 하는 거 아냐?

“씨발, 나도- 읍!”

나는 재빨리 조하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까도 내내 각성자 할래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또냐!

“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 어?”

“우으읍!”

“조용히 해, 인마. 수민이랑 빨리 피할 생각을 해야지. 태평하다 못해 정신 나간 거냐고.”

조하영이 내 손을 떨치고 퉤퉤거렸다.

“야, 네 손바닥 뭔데 이렇게 짜?”

“아 설마, 물컹한 게 네 혓바닥이냐? 윽- 졸라 찝찝해.”

내가 손바닥을 조하영 팔뚝에 닦자 조하영이 질색하며 내 손을 치고 수민이 옆으로 피했다.

“닿은 거지, 새꺄. 그러게 누가 막으래?”

나와 조하영이 아웅다웅하자, 김수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둘 다 그만해. 뭐 하는 거야, 이런- 분들 앞에서.”

김수민이 송류진과 백루찬을 의식하며 말했다. 이런 분드을? 어째 취급이 다른 기분이지만 나는 그냥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김수민은 나와 조하영이 평범하게 대화하자 긴장이 좀 풀려 보였다.

노림수가 잘 먹혔다. 조하영도 잘 받아치고.

“형, 모르젠트 도착했어요.”

백루찬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마스터, 다 대기 중입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여기 둘부터 챙겨 줘.”

내 말에 백루찬이 김수민과 조하영을 힐끔 보고는 다시 나를 보곤 웃었다.

“질투 나니까 빨리 보내 드려야겠네. 길드원님, 이분들부터 챙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남자는 꾸벅 고개를 숙이곤 김수민과 조하영을 데리고 갔다.

조하영이 김수민에게 착 달라붙어 있으면서 이쪽을 형형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김수민이 눈치채고 조하영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아휴, 진짜 넌!’

‘아 왜에에.’

걱정 가득한 김수민이 째려보자 애교를 피우며 달라붙는 꼴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아주 절친이구먼.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 혹시나 한솔이 같이 다치는 경우가 생길까 봐, 좀 많이 불안했다.

자력으로 안 되는 게 있으니까… 혹시나.

그런 나를 보고 송류진이 말했다.

“해준아, 너는?”

“난 여기 있을 거야. 게이트 찾아야지.”

일단 동기 두 명은 안전하게 보냈고….

진마하는… 잘 도망쳤겠지? 그놈 영 또라이 같긴 한데, 설마 몬스터가 나오는데 나서진 않겠지….

나는 백루찬과 송류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백루찬은 메인 캐릭터 중 한 명이고, 송류진은… 아직 메인 캐릭터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살펴볼 필요가 있는 친구다. 특수 각성자에다가 S급이고.

무엇보다 해준의 유일한 친구다. 둘 다 다치거나 죽으면 안 되지.

나는 한야를 쥔 손목을 돌렸다가 잠깐 흠칫했다.

아- 혹시, 송류진이 이 검을 알아보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나는 포기했다.

씨벌 모르겠다. 들키든 말든. 일단 내 목표에나 충실하자. 메인 캐릭터를 찾고, 지키는 거!

송류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낑낑대는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했다.

뭐라 말하고 싶지만 내가 열의에 넘치는 거 같으니 말을 못 꺼내는 거 같은데, 괜찮다. 내가 너보다 더 강해.

그때, 송류진의 호출기가 소리를 내며 울렸다. 송류진이 호출기를 확인하곤 안색을 굳혔다.

“게이트, 찾았어.”

연락을 한 게 우반희인가. 마력 파장으로 등급을 측정하니까-.

“…2+급 게이트야.”

송류진은 나를 쳐다봤다. 이래도, 있겠냐고 묻는 표정이다.

“해준아, 이제라도 제발.”

“형은 괜찮아요. 제가 있으니까.”

백루찬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신경 끄고 할 일부터 하시죠? 태자마마.”

싱긋 웃으며 말하는데 꼭 놀리는 거 같다. 송류진이 표정을 단단히 굳혔다.

둘은 지금 서로를 아주 짜증 나 하고 있었다. 대체 왜 둘이 사이가 안 좋냐….

“괜찮아. 모르젠트 길마도 있고, 일단… 모르젠트 소속이니까.”

내가 덧붙이며 말하자 송류진이 좀 분해하는 눈길로 백루찬을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운차게 말했다.

“가자, 투쁠 조지러.”

내가 휙 앞장섰다. 백루찬이 그런 나를 보며 요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송류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쪽 방향 아냐, 해준아. 이쪽.”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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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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