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나는 그냥 웃었다.
“네. 그러시군요. 한야시군요.”
미친놈에겐 예의 차릴 필요 없지만 또라이에겐 차릴 필요가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한야 네 앞에 있다, 새끼야. 어디서 되지도 않는 구라를 치고 다녀?
나는 울컥해서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입꼬리를 올리며 놈을 무시할 수 있었다.
가슴이 선득? 아오 감 다 죽었다. 무섭긴 개뿔 진짜…. 하…. 한숨이 나온다.
내 반응에 진마하가 눈을 크게 뜨고 날 본다.
“안 놀랐어? 놀랄 줄 알았는데.”
놀라길 원했구나. 그런 관심을 원했던 거구나.
나는 티베트 여우 같은 표정으로 놀랐다고 말하며 손뼉을 짝짝 쳤다.
“대박, 한야셨어요? 대박! 미쳤다리, 미쳤다! ……라는 반응을 원했나 봐요, 미안. 내가 그쪽엔 관심이 없어서.”
“아 그랬구나. 어쩐지….”
자칭 한야 진마하가 쑥스럽게 웃는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 당황스러웠나 보다. 실망하진 않는 게 더 미친놈 같았다.
나는 그냥 적당히 비소를 날려 주고 몸을 돌렸다. 추모비를 한 바퀴 돈 김수민과 조하영이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둘은 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생각만 해도 두렵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만 갈까? 나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야.”
김수민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수업이 더 있어서 학교로 가야 되는 나와 하영, 그리고 진마하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김수민만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힐끔 보고 나는 하영을 가운데 두고 진마하와 같이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 옆을 걸었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고, 진마하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힐끔 보며 웃기만 하니까, 가운데 있는 하영의 표정이 뭐 씹은 것처럼 이상해졌다.
“뭐냐, 이 분위기. 싸웠냐?”
“에이, 어떻게 싸워.”
진마하가 손을 내두르며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하, 하늘이 높구만, 가을같이….
조하영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뭐야 그럼? 이상한데? 누가 고백했냐?”
“뭔 개솔- 아니, 무슨 이상한 소리야.”
“그럼 뭐야. 간질간질하고 미묘한 이 분위기는?”
간질간질? 내가 필사적으로 또라이를 외면하고 있는 게 간질간질하게 느껴지냐?
내가 욱해서 한마디 하려는데 진마하가 또 수줍게 웃는다. 씨바알, 왜 저렇게 웃어! 썅!
내가 표정으로 욕하며 진마하를 쳐다봤지만 진마하는 쑥스러워할 뿐이었다. 아 개짜증 난다.
나와 진마하를 번갈아 본 조하영이 헹- 하고 콧김을 뿜고는 씩씩하게 앞서 걸어간다.
옆으로 메는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가는 폼이 한따까리 하는 형님 같다.
“따까리들, 택시비는 형님이 내시겠다. 잘하면 가는 길에 밥도 사 주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형님.”
나는 바로 조하영 옆에 붙어 허리를 굽히며 손바닥을 비볐다.
돈이 있든 없든 물주에겐 고개 숙이는 게 세상의 진리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는데, 따라오고 있던 진마하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우리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야, 진마하….”
나는 빨리 오라고 놈을 부르려 했다. 택시비 내준다는데 안 오고 뭐 하냐.
근데 진마하가 나와 조하영을 빤히 보며, 웃었다.
…어 그래. 웃었는데. 웃음이 마치-.
그때였다.
-콰콰강!
-꺄아악!
폭발음같이 거대한 소음이 거리를 가득 울렸다.
움찔 떨며 어깨를 움츠렸던 나와 조하영이 여자의 비명에 걸어왔던 방향을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
몬스터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
“젠장…!”
조하영이 들고 있던 가방을 집어 던지고 왔던 길을 되돌아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가 들린 방향은, 김수민이 가고 있던 방향이다.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일대에 흐르는 마력이 갑자기 이상하다.
자꾸 몸 안에서 활성화되려는 마력을 짓누르려는 무언가가 있다. 이건, 대체 뭐지.
잠깐 생각하다가 아직도 가만히 서 있는 진마하를 바라봤다.
진마하는 여전히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묘하게, 이질적이다. 이상했다.
놈이 안경을 천천히 벗어 던졌다.
“이제 나서야지.”
“뭐?”
이상하다, 정말. 놈은 씩 웃었다. 휘어지는 눈꼬리가,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기묘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진마하의 양쪽 눈 색깔이, 다른 빛을 품고 일렁이고 있었다.
진마하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한야’가.”
-쿠쿠궁!
헐, 저 또라이가- 하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
인근 패널이 쳐져 있던 공사장 한쪽에서 공사용으로 비치되어 있던 드러그 라인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나는 더 이상 놈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단번에 스킬을 써 몸을 날렸다.
[이형환위(Lv.99) 발동]
몸이 단번에 앞으로 쏘아진다. 전력 질주하는 조하영이 보였다.
그 옆으로 커다란 기계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기계가 조하영이 달리고 있는 방향과는 반대로 쓰러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몬스터의 괴성이 연달아 울린다.
저기에 사람들 있으면 위험할 텐데, 라는 생각은 하지만 직접 몸을 날려 가지 못했다.
저 앞에 김수민이 있고, 조하영이 달리고 있다.
일단 이들을 먼저 챙겨야 한다. 이도 저도 못 해서 양쪽 다 못 구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는 선택해야 한다.
입 안을 너무 깨물어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진다. 제발, 제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없기를- 부질없어도 제발!
나는 한 발 더 바닥을 굴러 몸을 날렸다.
훅훅 쏘아져 나간 내 몸은 어느새 김수민이 있는 곳 바로 앞에 도착했다.
편의점이 있는 건물 한 면이 통째로 파괴되어 있다.
그리고 구부러진 가로등 옆에, 김수민이 주저앉아 있었다.
“끄… 윽…. 윽….”
경악과 공포로 질린 얼굴이 바들바들 떨며 앞에 있는 괴생물체와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
무어라 말을 하듯, 3미터는 될 법한 검은 근육 덩어리 괴물이 한 발을 옮겼다.
밟는 곳이 움푹 파였다. 민둥한 둥근 머리에, 턱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타X스 짝퉁이냐!
나는 바로 놈에게 몸을 날리며 그림자에서 한야를 빼 들었다.
기다란 검신이 날카로운 빛을 번쩍이고 나는 몬스터를 향해 사선으로 검을 그어 내렸다.
-----!
검은 근육 덩어리 괴물이 순식간에 반으로 쪼개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는 멍청한 표정을 보고 나는 몸을 돌려 한 번 더 한야를 휘둘렀다. 목이 댕강- 하며 잘려 나간다.
“으어… 윽….”
나는 바로 한야를 던지고 김수민을 향해 다가갔다.
어깨를 감싸며 두려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내 품에 묻었다. 매달리는 김수민의 팔이 느껴졌다.
“괜찮아. 나 각성자야. 괜찮아, 수민아.”
김수민이 몸을 떨며 흐느꼈다. 엄청 놀란 거 같은데, 놀랄 만도 하다.
그 등을 다독이면서 나는 주위를 살펴봤다.
도로가 온통 몬스터의 발자국으로 군데군데가 무너지고 파여 있다. 게이트가 대체 어디에 열린 거지.
“허억…! 헉, 수민아!”
달려온 조하영이 비명을 지르듯 김수민을 불렀다.
나는 조하영에게 무사한 김수민을 보여 줬다. 조하영이 바로 달려와 김수민을 끌어안았다.
“하영아…!”
그제야 실감이 난 건지, 김수민이 조하영을 끌어안고 엉엉 오열하기 시작했다.
조하영도 정말 다행이라는 얼굴로 김수민을 감쌌다. 일단 둘은 무사하고, 진마하 이 또라이 새끼는 무사히 피했나 몰라.
나는 둘을 가리듯 앞에 서서 사방을 경계했다. 몬스터가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니다. 부서진 건물이 곳곳에 보였다.
발견하지 못한 게이트가 터졌거나, 몹이 튀어나왔거나, 둘 중의 하나다.
나는 감각을 집중했다. 마력 파장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찾기 위해 사방에 거미줄을 뻗어 내듯 마력을 뽑아내는데, 눈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게이트, ‘오염된 지하 도시’의 문이 열렸습니다.]
[지하 도시의 쓰레기 처리반이 인간을 청소하기 위해 달려 나옵니다! ]
[긴급! 퀘스트! ヽ〳 ՞ ᗜ ՞ 〵ง
-오염된 실험체 A-000을 처리하세요!
(A-0327/A-000)
난이도: 2급
보상: 생존, ????]
씨팔 또 물음표야! 물음표 애착증이냐!
시스템창이 뜨면서 땅이 또 쿵쿵 소리를 내며 울렸다.
몬스터가 다가온다. 달려오는 소리가 빠르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야, 너 각성자야?”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김수민에게 붙어 있는 조하영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조하영을 보곤 대답했다.
“뭐 같아 보이냐?”
“씨발….”
조하영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김수민의 머리에 얼굴을 묻고 무어라 중얼거리다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조하영은 겁에 질린 김수민과 달리 단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조하영은 침착했다.
“너… 저거 다 해치울 수 있어?”
-쿵! 쿵! 쿵!
달리는 발소리가 들린다. 여러 개체가 일대를 돌아다니며 파괴하는 소리와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이 난무한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다 구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나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척하면 척이라고, 그림자 속에서 한야가 삐져나와 내 손에 잡힌다.
손잡이를 잡자마자 얼어붙은 칼날을 시전했다. 검게 물들었던 검날이 손잡이 부분부터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한기가 일고, 봄인 날씨에도 뜨거운 입김이 육안으로 보인다.
나는 조하영을 보며 웃었다.
“당연하지.”
안 돼도, 되게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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