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송류진은 말이 없었다. 굳어진 표정이 장난 아니다. 잡힌 팔목이 슬슬 아파져 와서,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여긴 어떻게…?”
송류진은 내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백루찬을 뚫어질 듯 노려봤다.
아무런 말 없이 노려보던 송류진은 이내 나를 붙잡고 몸을 돌렸다.
“가자.”
목을 긁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송류진은 그렇게 말하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는 당황한 채로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어?
“류진아?”
나는 멈추려고 팔을 잡아당겼지만, 송류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문 앞까지 마지못해 송류진을 따라갔을 때, 이번엔 또 뒤에서 내 팔을 붙잡는 손이 있었다. 백루찬이었다.
졸지에 양 틈에 껴서 오고 가도 못 하는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송류진은 뒤를 돌아보고 실소했다.
평소 온화해 보이던 표정은 어디 가고 차갑게 굳은 얼굴이 백루찬을 쏘아봤다. 백루찬은 웃고 있었다.
“각본의 개새끼 주제에 남의 길드원에게 손대면 안 돼요. 특히 당신 같은 사람은 위협적인 거 몰라요?”
“모르젠트에는 제멋대로 사람을 구속하고 감금하는 법이라도 있나 봅니다. 시민 안전엔 하등 도움도 안 되고 게이트나 공략하는 길드 주제에. 차라리 한 번씩 발전기 전력이라도 충전해 주지 그래요. 그럼 욕이라도 덜 먹을 텐데.”
“게이트를 공략하는 게 인류의 가장 큰 숙제 아닌가요? 각본이 힘이 달려 하지 못하는 일들을 나서서 처리해 주고 있는데 비겁하게 욕하시다니. 썩 기분이 좋진 않네요. 그리고 감금이라뇨. 엄연한 치료를 위한 입원 행위였습니다만.”
“그래서 찾아왔는데도 얼굴도 못 보게 막고 쫓아낸 겁니까. 치료를 위한 입원 행위가 참 수상하네요. 각본에 정식으로 조사 요청 올리겠습니다.”
“…….”
송류진은 딱딱하게 굳어서 싸늘하게 맞받아치고, 백루찬은 실실 웃으면서 맞받아친다.
둘 다 기가 세서 어느 하나 지지를 않는다. 나는 가운데 서서 좀 질린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야, 이놈들 입 잘 턴다.
근데 약간 이거… 좀 구도가 이상한데. 안 그래도 로비에 몰려 있던 헌터들이 슬금슬금 우리의 눈치를 보면서도 대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다들 좀 흥미진진해 보이는 게 팝콘이라도 가져다 드려야 할 것 같다….
나는 일단 둘을 진정시키기 위해 잡힌 양손을 풀어 달라고 털었다.
그러자 둘 다 시선이 나에게 꽂히면서 더 세게 손목을 꽉 쥐어 잡았다.
“형 가만히 있어 봐요.”
“넌 가만히 있어.”
둘 다 동시에 말하고는 또 눈을 마주친다. 살기가 이는 눈빛이 서로를 노려본다.
나는 잠깐 높다란 천장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 새끼들이 지금 뭐 하냐.
나는 빡침이 슬슬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제멋대로 휘둘리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요즘 따라 이리저리 떠미는 대로 날리는 갈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갑자기 환멸이 느껴졌다.
끼어든 놈들이 자꾸 멋대로 구는데-우반희가 떠올라 짜증이 팍 올라왔다- 이거 봐주면 안 되겠네.
나는 먼저 백루찬이 잡은 손목을 비틀어 빼내고, 송류진에게 붙잡힌 팔목도 팔꿈치를 굽혀 당기면서 놈의 팔뚝을 때리고 쳐 냈다.
탁, 탁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순간 어리둥절한 시선이 나를 향했지만 나는 무시하곤 송류진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정문으로 향했다.
송류진이 살짝 당황한 채 나를 따라왔다.
“형.”
“간다. 다음에 보자.”
백루찬이 나를 불렀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대충 작별 인사를 백루찬에게 건네고 나는 송류진을 끌고 모르젠트 빌딩을 빠져나왔다.
내게 목덜미를 붙잡힌 놈이 엉거주춤 따라 걸었다. 힐끔 옆을 보자니 불안한 표정으로 미간을 잔뜩 좁힌 놈이 입술을 달싹였다가 꾹 다문다.
할 말 있으면 그냥 해라, 좀.
근데 어째 표정이 곧 죽어도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떻게 알고 왔어? 나 몰젠에 있던 거 아는 사람 별로 없을 텐데.”
“…뻔하지. 백루찬이 데려갔었잖아. 분명 널 잡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음. 맞다. 조금 생각 없는 질문을 던져 버렸다. 물론 백루찬이 잡고 있던 건 아니고 치료를 받으려고 이 길드에 붙어 있던 거긴 한데….
나는 빌딩에서 빠져나와 한참을 걸은 후 잡았던 목덜미를 놔줬다.
송류진이 어쩐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옷깃을 정리했다. 나는 후드 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볍게 물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냐? 나 찾으려고?”
“…응.”
“뭐 타고 왔어? 걸어왔어? 너 집이….”
나는 기억을 되새기며 송류진을 바라보다 입을 다물었다.
…차해준 이 새끼 어떻게 지 유일한 친구 놈 집도 기억 못 하냐.
뒷말을 더 잇지를 못해 머뭇대는 꼴을 보고 송류진이 가련한 표정으로 슬쩍 웃었다.
“너 원래 주변에 관심 없잖아. 나 걸어오진 않았어. 금방 오기도 하고.”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서 내가 더 대역 죄인이 된 거 같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대로변 한가운데 멀뚱히 서 있으려니 좀 그래서 나는 걸음을 옮겼다. 알아서 따라오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송류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여기 계속 있었던 거야?”
“어? 어.”
“…왜?”
“엉?”
“왜 나한테는 연락 안 하고.”
“그, 딱히 연락할 상황이….”
“문자도 할 시간이 없었어?”
“…치료받는 동안 핸드폰은 신경도 못 썼어. 정말이야.”
송류진이 원망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충혈된 눈동자에 붉게 물든 눈가. 파리한 안색이 걱정을 많이 했음을 알려 주고 있어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게. 그렇게 헤어졌으면 연락이라도 해 주는 게 도리인데 나 너무 내 생각만 했다, 그치.
송류진은 성큼 걸어와 내 손목을 다시 잡았다.
부드럽게 움켜쥔 손이 천천히 손등을 쓸고 내려와 이내 깍지를 꼈다.
나는 당황했다. 나를 쳐다보는 송류진의 눈빛도 너무 울먹울먹해서.
야, 왜, 왜 울려고 그래? 근데 이상하게 살짝 눈빛이 맛이 간 것처럼 돈 것 같기도 해서 나는 뒤로 슬쩍 몸을 물렸다.
“내가 정말, 아무 말도 안 하니까 그런 거지?”
“으응?”
나는 대답하고도 거리 주변을 힐끔힐끔 살폈다.
송류진의 눈빛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주변의 시선이 하나씩 꽂혀 들어와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아, 이놈 각본에서 황태자 소리 듣는데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지. 얼굴부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얼굴이다.
내가 눈치를 보는데도 송류진은 전혀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있잖아…. 지금 나는 꽤 쪽팔리거든?
속으로 말하면서 송류진을 쳐다봤다. 송류진은 말을 이었다.
“내가 정말,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너는 나를 생각도 안 했던 거지.”
“아니- 정말 아팠잖아.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정신없던 거야. 너 왜 그래. 아니야.”
“우반희한테 들었어. 각성자 등록하러 왔다가 너 또 기절했었다며. 그거 우반희 때문에 그런 거야?”
너… 원래 형이라 꼬박꼬박 하지 않았냐. 왜 또 말이 짧아졌어.
송류진은 묘하게 번뜩이는 눈으로 나의 대답을 종용했다.
처연한데 삔또가 잔뜩 상한 거 같은 느낌이 든다면… 착각인가. 지금 좀 화난 거 같은데.
그리고 그때 얘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트라우마에 눌려서 기절했다고 하면 좀 그렇잖아.
그리고 뭔가 그 얘기까지 하면 송류진이 살기도 터트릴 거 같았다.
건드리면 주옥 될 것 같은 기분이 확 몰려온다.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보노보X와 같은 표정으로 송류진을 달랬다.
“그땐, 아직 몸이 좀 다 안 나아서 그랬고. 지금은 괜찮아. 각성자 등록도 했고. 백루찬이, 아니 모르젠트가 많이 도와줬어.”
“…각성은 언제 한 거야?”
나는 모르젠트와 맞췄던 말을 꺼냈다. 거짓말도 얼굴에 철판 까니 술술 나온다.
“우연히 하게 됐어. 게이트 지나다가-.”
“혹시 너 아팠을 때, 각성해서야?”
각성할 때 마력이 터지면서 몸 안에 돌기 시작해 초반엔 마력 열로 앓는 사람도 더러 있긴 했다.
송류진은 그걸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땐, 그냥 상태 이상-.”
“뭐? 너 설마, 게이트 들어갔었어? 등록도 하기 전에?”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송류진은 진짜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라 그런지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것만 물어보는데 일일이 거짓말하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지고.
송류진이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을 듬뿍 담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깍지 낀 손을 꽉 붙잡고 당겼다.
내 몸이 놈의 손길에 앞으로 끌려갔다.
가까이 선 송류진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코앞에 선 걱정스러운 얼굴에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멋쩍게 웃었다.
“…그래. 묻지 않을 테니까. 그런 표정 하지 마.”
음, 내가 어떤 표정이었는데?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송류진은 자꾸 애가 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조금 부담스러운데 미치겠다.
“피하고 싶다고, 나를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마. 난….”
송류진은 울먹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시들시들 축 늘어지는 고개가 마치 강아지 같기도 했다.
아 이런, 나는 그제야 어색함을 버리고 놈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었다.
나는 픽 웃었다. 귀여운 놈. 나는 걱정하는 송류진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별일 아니었어. 그냥 우연히 게이트 앞을 지나다가 각성했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또 게이트가 터졌을 뿐이야. 신당동 2급 게이트도 피시방에 잠깐 들렀다가 마주친 거고…. 다행히 한솔이가 S급으로 각성해서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거야. 다치긴 했지만, 지금은 다 나았어.”
다쳤다는 내 말에 그때 내 모습이 떠오른 건지 송류진은 얼굴이 울상으로 찡그려졌다가, 다시 나를 보곤 간신히 표정을 폈다.
그래, 네 앞의 나는 무사하다, 이놈아.
“알았어. 믿어, 해준아.”
“응. 진짜야.”
“믿을게.”
송류진은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어 고쳐 잡더니, 팔을 들어 올려 겹쳐진 손가락에 입술을 묻었다.
느껴지는 희미한 온기에 나는 움찔했지만, 손을 빼내진 않았다.
친구끼리 이런 짓도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금까지 들러붙어 있던 백루찬과 한솔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류진이 질끈 눈을 감고 말했다.
“나는 진짜 네가 잘못됐을까 봐 두려웠어. 연락도 없고, 어디 있는지 아는데 갈 수 없는 곳에 있고.”
모르젠트 병동이 외부인 출입 금지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송류진이 각본이라 홍희랑 백루찬이 막은 거 같다.
길드는 각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기도 하고.
잠시 가만히 눈을 감고 그러고 있던 송류진은 아까보단 좀 밝아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아냐, 금방 가. 너도 얼른 가서 쉬어라.”
“걸어갈 생각이잖아. 지하철은 또 타기 싫어하고. 기사 불렀어.”
송류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 앞으로 벤츠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빛내며 다가왔다.
송류진이 부른 개인 기사였다. 맞다 이놈, 부잣집 아들내미였지. 잊고 있었다.
나는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송류진은 계속 나를 쳐다보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런 녀석 때문에 나는 닭 털이 날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름이 돋는다는 뜻이다….
나 멀쩡한데 혼자 왜 이렇게 애달프게 쳐다보는 건지.
신당동 2급 게이트 때 내 상처가 심각하긴 했었지. 워낙 피투성이였고,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가 되긴 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살아 있다, 이놈아. 안 죽었어.
“학교 이제 나올 거지?”
“응. 가야지.”
송류진은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제 손으로 눌러 줬다.
집까지 쫓아올 기세기에 내가 여기서 이만 가 보라니까 아쉬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학교에서 봐, 해준아.”
“그래. 잘 가!”
닫히는 엘리베이터 사이로 손을 흔들며 밝게 웃어 주곤 문이 닫히자마자 안색을 굳히며 손을 내렸다.
와우, 피곤해.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멈칫했다.
손등에 입을 맞췄던 게 떠오른 탓이었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다. 친구 사이에… 이러는 경우도 있는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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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