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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24화 (24/201)

24화

“큭-.”

팔이 아파서 잠깐 몸을 틀자 우반희가 바로 내 목을 죄어 온다.

나는 신음을 내뱉으며 힐끔 우반희를 쳐다봤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은 여전한데, 묘하게 희열에 차 보였다. 이놈 이제 대놓고 한야라고 하네. 아니 뭐, 내가 맞긴 하지만.

이걸 단번에 넘어트릴 수도 없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좀 선 씨게 넘었다는 생각 안 드세요? 각본이 민간인을 덮치다니-.”

“민간인?”

우반희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 등 뒤로 상체를 바짝 붙인 우반희가 대뜸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냄새를 훅 들이켰다. 아, 미친. 소름 돋아!

당장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는 주먹을 꽉 쥐며 참아 냈다. 혹여나 각성자 전용 수갑을 부서트리고 놈에게 어퍼컷을 날리면 알리바이고 뭐고 그냥 한야 맞아요~ 라고 하는 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각성자 전용 수갑은 S급은 되어야 혼자 풀 수 있었다.

이놈에게 이 이상 수상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수갑을 부수는 대신 그냥 주먹을 꽉 쥐었다. 혹시 반사적으로 수갑을 부셔 버릴까 봐 힘을 잔뜩 준 채였다.

우반희는 코를 킁킁거리다 훅 냄새를 들이켜고는 내 뺨이 짓눌리도록 세게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번뜩이는 눈빛이 참으로 형형하다.

“민간인이, 마력 냄새를 이렇게 풍기고 다녀?”

“므슨 개소리….”

“너, 냄새난다고.”

아, 혹시 아까 기계로 마력 뽑아내서 그런가. 근데 그건 검사 때문이었잖아….

어쨌든 마력을 활용하는 것 같으니 냄새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급격히 억울해졌다.

“…각성자 검사해서 그런 겁니다.”

“각성자 검사까지 하고, 그럼 민간인이 아니잖아, 이 친구야.”

아, 나 각성자 등록했지. 그럼 우반희 말이 맞잖아.

우반희가 나와 눈을 맞췄다. 순간 그의 눈이 새파랗게 마력을 머금더니, 왼쪽 눈앞에 기계음과 함께 모노클이 씌워졌다.

렌즈가 여러 겹이 겹치며, 그 위로 빠르게 글자가 지나간다. 이건 우반희의 스킬이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걸 마주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억지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자세가 자세인 만큼 우반희를 볼 수밖에 없었다. 마트에서 물건 값을 찍는 센서처럼 모노클에서 새어 나온 마력 불빛이 내 눈을 스캔했다.

나는 순간 눈물을 찔끔했다. 눈이 너무 부셨다.

“아프다고…!”

“내가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 어떻게 송류진 옆에 일반인 친구가 있을 수 있을까. 일반인이라면 S급 각성자 옆에선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텐데.”

우반희가 서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태자마마 옆에 친구라고 붙어 있는 놈들 중에 오직 차해준만 아무렇지 않아 해서 신기했지. 보통은 다들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 인간도 동물이라 자신에게 쉽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놈이 옆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피하게 되는데 말이야. 응? 차해준. 아니….”

“…미친….”

“한야.”

빛이 너무 세서 생리적인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반희 말이 맞다. 각성자는 일반인과 다르다. 특히 등급이 높을수록 더 인간 같지 않은 싸한 기운을 내뿜는다.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 그래서 정희수도 한솔이가 각성하고 나서부터 묘하게 어색해하고 은근히 회피했다.

어린 한솔이에게 혹여나 안 좋게 인식이 될까 봐 스스로 노력해서 붙어 있긴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가 한야라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아니, 한야가 맞긴 한데, 아니…. 아무튼.

나는 수갑이 채워진 팔에 힘을 줬다. 마력을 억제하는 인챈트가 새겨진 특수 수갑이었지만 나에겐 소용없는 물건이다.

구속한 수갑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내가 제대로 힘을 줘 우반희에게서 벗어나려 하는 그때.

“우리 형은 참, 이런 게 잘 어울려서 탈이야.”

송곳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진 우산의 끄트머리가, 우반희의 목을 향해 겨눠졌다.

유난히 길게 제작된 꼭지 부분에 전기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튄다. 어느새 나타난 백루찬이 웃었다.

“팀장님도 그걸 잘 알아서 이렇게 집착하고 질척거리는 건지.”

전류가 튀는 우산에 우반희가 천천히 고개를 뒤로 빼며 백루찬을 바라봤다. 시선이 영 싸늘하다.

“…주변엔 관심도 없는 인간이, 차해준 일엔 왜 이렇게 나서대?”

“모르젠트 길드원의 일에 길드 마스터가 관심이 없으면 안 되죠.”

“길드는 지랄….”

우반희가 실소하며 되물었다.

“너도 아니까, 이러는 거야. 차해준이 그놈이라는 걸.”

“흐응.”

“너 또한 그렇게 찾지 않았나? ‘한야’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를 찾았다고? 어리둥절하며 귀를 쫑긋 세우는데, 목을 죄던 우반희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바짝 주던 힘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백루찬이 뒤로 가라는 듯 우산으로 우반희를 찌를 것처럼 위협했다. 우반희는 쳇, 소리를 내며 몇 걸음 물러났다.

나는 몸을 돌려 벽에 머리를 기댔다가, 그대로 주르륵 주저앉았다. 씹, 기 빨린 것 같다…. 졸라 힘드네.

“각성자는 인간 아닌가…. S급은 친구도 없어야 합니까? 왜 이렇게 사고가 편협한지 몰라.”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지만 우반희도 백루찬도 내 말을 듣는 기색은 아니다.

둘이 기 싸움 하기 바빠 보였지만 나는 꿋꿋이 말했다.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면… 예? …요즘 말로 그거라고요, 그거. 그거 뭐야.”

“꼰대.”

백루찬이 웃으며 덧붙였다. 나는 옳다구나 맞장구쳤다.

“맞아! 그거 개꼰대라고 부른다고요.”

우반희가 뭔 개소리냐는 듯 삐딱하게 서서 나를 노려봤다. 눈빛이 참 불량스럽고 서늘하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왜, 왜요. 맞는 말인데.”

“정말,”

“예?”

“아예 잊어버렸나 보네?”

“…뭘요?”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우반희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쳐다보곤 아직도 목에 겨눠진 백루찬의 우산을 툭 밀쳤다.

그러곤 주저앉은 내 앞으로 와 쭈그려 앉았다. 아직도 마력이 넘실대는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백루찬 이 새끼야, 도와줬으면 끝까지 도와줘야지, 뭐 하냐….

내가 백루찬을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뜬금없이 머릿속이 번뜩이면서, 웬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백루찬을 부르려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곧, 경악에 가득 차 자연스럽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미친! 이게 뭐야!

우반희가 그제야 피식거리며 엄지로 입가를 쓸어내렸다.

“이제 좀 머리가 굴러가나 보다?”

순간 눈앞으로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진 한 동네가 그려진다.

영상처럼 재생되는 기억은 마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돌리는 것같이 재생되었다.

한라동 달동네 일대를 터트린 각성자 마력 폭주 사건.

반파된 동네에서 나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초조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우연히 폴리스 라인 안에서 현장을 살피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법한 젊은 남자다. 그는 이상하게 혼자 먼지를 뒤집어쓴 내 몰골을 보곤 말을 걸기 위해 다가온다.

천천히 다가오던 남자는 무언가 감지한 듯 인상을 찡그리곤 킁킁대다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손가락질했다.

무어라 소리치는 그를 보고 차해준은 화들짝 놀라 골목길로 달렸다.

다 뜯어진 삼 선 슬리퍼가 달리면서 벗겨진다.

시멘트 바닥에 긁히고 뛰면서 발이 까지고 상처가 나는데도 차해준은 미친 듯이 달린다. 그리고 그 뒤를, 남자가 빠르게 쫓았다.

한쪽 벽이 막힌 골목길. 차해준은 담벼락을 넘어 도망치려 했다가 남자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스킬을 사용하게 된다.

어둠의 포식.

검인 한야를 넣고 다니던, 검은 그림자가 둘을 덮친다. 그리고.

곧이어 계단이 가파른 골목 위로 이동한 차해준은 제 멱살을 잡은 남자를 계단 쪽으로 밀쳤다.

-…!

뭐라 뭐라 소리치던 남자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계단을 구르고, 차해준은 그 모습을 충혈된 눈으로 끝까지 응시했다.

차해준은 다시 어둠의 포식 스킬을 사용하여 몸을 숨겼다.

“…!”

나는 내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마음 같아선 머리도 쥐어뜯고 싶은데 손이 묶여 있어 그러질 못했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이 기억 대체, 왜, 이제야!

“기억나? 그날, 그때.”

한라동 각성자 폭주 사건. 그때 당시 꽤 규모가 큰 게이트가 터져 묻혔던 사건이었지만, 한라동 일대를 싹 뒤엎었던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나, 차해준은.

“네가 날 계단에서 밀었었잖아.”

그 폭주 사건의 용의자였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눈 한번 깜박이지 못하는 나를 보며 우반희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너 그때 그놈이랑 똑같은 냄새가 나거든? 근데, 그놈은 말이야.”

우반희는 내 멱살을 잡고 당겼다. 코앞에서 마주치는 얼굴이 살벌하다.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범인을 찾은 환희인가. 기쁨인가, 흥분인가. 나는 우반희의 표정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보다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어떻게…. 나는 아무도 모를 줄 알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목격자가 없을 거라고. 나, 아니 차해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년 전 나탈리스를 잡았던 한야와 똑같은 마력 냄새를 풍겼단 말이지. 이건 쓰는 스킬이 똑같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데.”

“…….”

분명, 아무도 모를 거라고.

“어떻게 생각해?”

자신이 폭주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친 살인자라는 것을.

***

이게 뭐야.

씨발, 이게 뭐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리를 모았다. 차해준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몸을 강타하는 충격에 몸이 벌벌 떨린다.

나는 간신히 심호흡하며 우반희를 쳐다봤다.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집착적으로 한야를 따라다닌 거야? 지 어렸을 적 놓친 범인이, 한야라서?

“무… 무슨 개소리신지 도무지 모르겠네.”

“모르는 얼굴이 아닌데?”

우반희가 짐짓 자상한 척 내 이마를 쓸어내렸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나는 트라우마 같은 차해준의 기억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왜 이러지. 자꾸 식은땀이 나고, 근육이 경직되면서 고개가 뒤로 뻣뻣하게 젖혀진다.

아, 멱살이 붙잡히고, 손이 뒤로 묶여서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데, 나는 숨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수갑이 반으로 동강 나서 내 손목에서 달랑거렸다.

나는 내 멱살을 움켜쥔 우반희의 손을 붙잡았다.

우반희가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너-.”

“-아니라고.”

“야, 차해준. 윽-.”

나는 이를 악물며 우반희의 손목을 으스러트릴 듯 꽉 움켜쥐었다. 우반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흐윽- 숨이 막힌 내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나는 분명 아무렇지 않은데, 목구멍이 틀어막혀 내뱉는 듯한 울음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뭐야, 이건 대체.

버럭- 고함이라도 지르려는 순간이었다.

우반희를 붙잡은 내 손을, 살포시 덮는 다른 손이 보였다. 하얀 손등. 나는 눈을 깜박였다.

“괜찮아요, 형.”

“허억-.”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막힌 목구멍이 트이듯, 나는 숨을 내뱉었다. 어느새 다가온 백루찬이 내 손을 붙잡고 우반희에게서 떼어 냈다.

푹 수그린 내 얼굴을, 백루찬은 턱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자신을 보게 했다.

옅은 동공이 바스러질 것 같은 연약한 빛을 발한다.

그럼에도 휘어지는 눈꼬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나는 그 와중에도 넋 놓고 백루찬을 바라봤다.

백루찬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는, 내 머리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힘없이 끌어당기는 대로 백루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힘주어 부릅뜬 눈이 점점 감겼다.

나는 제대로 숨도 못 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우반희 개새끼.

***

차해준은 백루찬의 품에 안겨서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기절했다.

축 늘어진 손이 우반희는 어이가 없었다.

범인을 찾은 건 자신인데, 어째서 잘못된 일의 원인이 된 기분을 느껴야 하지. 이건 꼭 내가 용의자 같은데.

“혀… 형!”

복도 끝에서, 검사를 마치고 한참 찾아다녔는지,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정한솔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한솔은 백루찬의 품에 쓰러진 차해준을 보고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너, 이…! 이번-에, 도!”

힘겹게 몇 마디를 꺼낸 한솔이가 으득 이를 악물었다.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정한솔에게 모여든다. 우반희는 성가신 표정으로 정한솔을 쳐다봤다.

“자, 잘도- …으… 우, 우리, 혀, 형을!”

모여든 마력에, 정한솔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에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정한솔의 뒤로 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나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육식 나비가 정한솔의 동요에 따라 귀 따가운 소음을 일으켰다.

-키이이!

육식 나비가 사납게 울부짖는다. 징그럽게 이를 드러내는 나비들을 우반희는 짜증스럽게 쳐다봤다.

“어쩌나, 우리 팀장님. 또 선택을 못 받으셨네.”

“개소리 한다.”

“질척대면 원래 인기 없어요. 나처럼 타이밍을 잘 맞춰야지.”

우반희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하는 백루찬을 힐긋 쳐다보곤 몸을 일으켰다.

경기를 일으킬 것처럼 기겁하던 차해준은 꿈적도 하지 않고 백루찬의 품에 안겨 있었다. 끌어안은 폼이 익숙해 보인다. 하긴, 저번에도 백루찬이 둘러업고 갔지.

백루찬. 참 난놈이긴 난놈이었다. 교묘하게 제멋대로 사람 휘두르는 데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놈이다.

지금도 그렇다.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와, 차해준이 자신에게 기대게 만들었다. 우반희는 짜증이 났다.

“…모르젠트가 막아도, 영장 발부해서 정식으로 조사할 거야.”

“남의 트라우마 건드려 놓고 뻔뻔하네요, 참. 맞아, 팀장님 이런 사람이었지. 나쁜 사람.”

하하 웃는 백루찬 때문에 우반희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5년 전, 한라동 각성자 폭주 사건은 우반희가 각본에 들어와서 맡은 첫 번째 사건이었다.

그때 용의자를 놓치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난 다음 얼마나 이를 갈고 있었는지 모른다.

꼭 찾아서 내 손으로 처넣겠다 다짐했었다.

그런 마음으로 놈의 흔적을 오 년 동안 쫓아다녔고, 덕분에 한라동 각성자 폭주 사건의 용의자가 한야와 같은 마력 냄새를 풍긴다는 것을 알아챘다.

우반희는 그것을 혼자만 알고 한야의 뒤를 쫓았다. 원체 만성 귀차니즘의 소유자였지만 한야에 대한 일에선 달랐다.

집착과 광기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그 행위를 우반희도 뭐라 불러야 할지 아직도 감을 잡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한야.

우반희는 차해준을 응시했다.

백루찬이 차해준을 끌어안고 길쭉한 몸을 안아 올린다.

우반희는 놈을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라동 사건을 기억하고 차해준이 보여 준 반응이 계속 떠올랐다. 우반희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백루찬이 말했다.

“팀장님, 못다 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고요. 오늘은 이만 가 보죠. 아, 감전되진 않으셨죠? 저 때문에 맨날 보호 장비 입고 다니시는 건 아는데.”

“…오늘은 얌전히 그냥 꺼져라. 보내 줄 테니까.”

“‘우리’가 팀장님을 보내 주는 거죠. 저는 한솔이 못 말리는데. 해준 형이 이렇게 쓰러지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보내 주는 거예요. 그치, 한솔아?”

“나… 나는, 시, 싫어…!”

“안 돼, 한솔아. 이리 와. 형 옆으로 와.”

“으…!”

어깨를 움츠리며 날을 바짝 세웠던 정한솔이 백루찬의 말에 해준을 쳐다봤다.

일순간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육식 나비들이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정한솔은 터벅터벅 걸어 차해준 옆에 붙어 섰다. 툭 떨어진 손을 잡고 손바닥에 뺨을 부빈 정한솔이 우반희를 노려봤다.

“나, 나… 싫어…!”

“그래, 알겠어요. 나도 싫어해. 우리 같이 싫어하니까 나중에 해치울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백루찬은 태평하게 웃으며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정한솔이 무언가 각오한 듯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반희가 미친 것 같은 둘을 질색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미친 새끼들. 꺼져. 아니, 내가 꺼질게. 어우, 씨발… 소름 돋아.”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떤 우반희가 몸을 돌려 먼저 걸음을 옮겼다.

빌어먹을 오늘은 꼭 차해준을 붙잡아 신문하려 했는데.

“뒤통수 노리면 안 돼. 나중에, 나중에. 가자, 한솔아.”

뒤에서 백루찬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우반희는 성큼성큼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백루찬에게 가려진 차해준이 보인다.

우반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실 다시 만나면 말해 주려고 했었다. 처음에 나는 단지, 마주친 네 눈빛이, 너무 괴로워 보여서 말을 걸었던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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