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검날이 시퍼렇게 빛을 냈다. 그와 함께 하얀 한기가 퍼진다.
[얼어붙은 칼날(Lv.99) 발동]
얼어붙은 칼날은 빙룡종 나탈리스를 죽이고 나서 얻은 스킬이었다. 한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준다.
숨을 내쉬니 얼어붙은 칼날 스킬 덕분에 하얀 입김이 나왔다.
케르베로스가 울부짖을 때마다 입에서 불꽃이 터졌다.
저놈과 나는 속성 차가 분명하다. 어느 쪽이 더 데미지를 받을지도 그만큼 분명했다.
물론 내가 약하면 저놈이 내뿜는 브레스에 몸을 뒤틀며 괴로워해야겠지만….
나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이젠 아예 하얗게 물든 검기가 케르베로스가 내딛는 앞다리에 박혔다. 쩍 갈라지는 살갗이 보인다.
“내가 인마, 인간 대표 랭킹 1위라 이 말이야.”
괴로운 건 네놈이라고! 하하하!
나는 미친놈처럼 속으로 웃었다. 내 오른손의 흑염룡- 아니, 한야가 날뛰었다!
공동에 파진 여러 개의 구덩이 안에서 번견들이 틈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나는 놈들의 중앙으로 몸을 날렸다. 이형환위 스킬로 손쉽게 날아온 나는 동시에 새로운 스킬을 사용했다.
붙잡는 암흑(Lv.99).
달려들던 번견들이 무언가에 잡힌 듯 발이 걸려 넘어지고, 바닥에 코를 박고 쓰러진다.
붙잡는 어둠은 이름처럼 스킬 시전자가 원하는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었다.
깨갱거리는 개새끼들 위로 뛰어오른 나는 체조를 하듯 공중에서 몸을 돌리며 검기를 흩뿌렸다.
순식간에 번견들이 도륙 났다.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다시 앞으로 쏘아졌다.
번견들은 물밀듯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야, 미친 졸라 재밌다!
상태 이상이 없으니 아주 날아갈 것 같구나!
“이 새끼들아, 작작 처나와!”
그렇게 소리쳐도 내 목소리엔 흥분이 가득했다. 신나 뒤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신나게 개새끼들을 썰어 버리며 케르베로스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중간중간 브레스를 내뿜어 이글대는 화염을 가볍게 피하고, 다시 이형환위 스킬을 사용했다.
공간을 접듯 날아가 케르베로스의 세 머리 중 하나를 향해 한야를 휘둘렀다.
----!!!
고막을 따갑게 하는 울부짖음과 함께 머리 하나가 종이 잘리듯 가볍게 잘려 떨어졌다.
으, 단면이 좀… 과하게 징그럽긴 하다.
나는 바닥에 다시 발을 딛자마자 몇 발자국 뛰어서 다시 도움닫기를 해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와 동시에, 평평한 바닥에서 지반을 뚫고 얼어붙은 창살이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번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꿰뚫렸다. 빙룡종을 죽이고 얻은 두 번째 스킬, 얼음 가시 숲(Lv.45)이다.
레벨이 높지 않아 이 정도밖에 활용을 못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훌륭했다.
케르베로스가 머리 하나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며 팔짝팔짝 뛰어 댔다.
나는 이형환위를 연속으로 사용하며 발작하는 놈을 피해 내고, 케르베로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너무….”
몸의 반동에 따라 한야를 뒤로 빼면서 다시 자세를 낮췄다. 입술이 비틀리고 집중한 눈이 부릅떠졌다.
“쉽잖아, 개자식아.”
[속삭이는 밤(Lv.99) 발동]
순식간에 사방이 무채색으로 물들면서, 모든 것이 느려졌다. 느리게 입을 벌리는 케르베로스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였다.
시간이 늦게 흐르는 공간 안에 홀로 몸을 던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로모션을 건 듯한 번견 떼를 검기를 날려 조지고, 단번에 케르베로스 앞에 도착했다.
놈이 앞발을 들어 올려 후려치려 했지만 하품 나올 정도로 느리다. 상체를 조금 트는 것만으로 공격을 피하고 한야를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
케르베로스가 귀 아픈 비명을 지르고, 그와 동시에 무채색 공간이 다시 쩡- 하면서 깨져 나갔다. 나는 다시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왔다.
케르베로스가 붉은 피를 흘리며 포효하다가 무너져 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이 넘어갔다. 바닥은 얼어붙은 지 오래라 먼지도 일지 않았다.
“…하….”
나는 습관적으로 손목을 돌리곤 내 앞의 한야를 땅에 박아 세웠다.
내 주변은 온통 폭격을 맞은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동강 난 사체들로 가득 뒤덮인 동공 한가운데서, 나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X발, 미쳤네. 랭킹 1위.
마 이게 헬 조선 랭킹 1위다…. 위엄 어디 안 간다…. 존나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올 만큼, 나는 순식간에 케르베로스를 잡아냈다.
“…….”
진짜, 생각할수록 어이없네. 미친 거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칼 찍찍 몇 번 긋기만 했는데…. 아니 물론 스킬도 썼지만.
마른침을 삼키며 쩍쩍 갈라져 죽은 케르베로스를 보면서 속으로 감탄에 빠져 있을 때였다.
-소란이 크구나.
…나는 뚝 움직임을 멈췄다.
-내 귀염둥이를 모두 죽이다니.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미친, 여기 아무도 없는데.
묘한 느낌을 풍기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귀에 들리는 게 아니고 머리에 직접적으로 울린다. 나는 눈을 굴려 주변을 돌아봤다. 아무리 봐도 널브러진 케르베로스의 사체와 번견들뿐.
그때 시스템창이 눈앞에 떴다.
[게이트 ‘악몽의 참견’을 연 주인, 데빌루데스가 던전 안을 지켜봅니다.]
- 이제 누굴 귀여워해 줘야 할까?
으윽. 나는 몸을 살짝 떨었다. 목소리가 숨결까지 다 느껴져서 소름이 돋는다.
미친놈, 목소리 존나 느끼해. 바닥에 꽂아 넣었던 한야의 손잡이를 잡았다. 피부 위를 기어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아무도 없는데 시선이 훑는 느낌이 선명했다.
[데빌루데스는 마계의 후작입니다! 그는 애완 인간을 기르기도 하니 주의하세요! 잡혀가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잡혀…. 애완 인간…. 소름이 또 쫙 돋았다. 그나저나 이런 것도 상큼한 척하며 알려 주지 말란 말이야!
나는 다시 건물이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뒤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또다시 데빌루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한 인간이야.
-네놈을 길들이는 건, 얼마나 재밌을까?
[데빌루데스가 애완견 케르베로스를 처치한 차해준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퀘스트 클리어!
악몽의 참견을 지키는 수문장 ‘케르베로스’의 목을 땄습니다!
이제, 다시 건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생존자들과 귀환하세요! 이제 곧 게이트가 닫힙니다!
보상: 생존(13/13)
제한 시간: 04:43]
시간이 오 분 남짓밖에 남질 않았다. 와, 오 분 만에 케르베로스를 처치한 거야?
차해준 미쳤다. 감탄하며 여유를 즐길 시간은 없어서 나는 바로 움직였다. 나는 쿡쿡대며 변태처럼 웃기 시작하는 데빌루데스를 무시하고 이형환위를 펼쳤다.
혈관이 얽힌 징그러운 통로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데도 데빌루데스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나의 애완견들을 모두 도살하다니, 그대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아주 재밌는 게 생각이 났다. 들어 보겠는가, 흥미를 유발하는 인간아.
“뭐래냐!”
개소리는 그만 지껄이라고!
음흉한 기운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건물 앞으로 달렸다.
시간은 벌써 2분이 지났다. 그리고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형!”
“으아악!”
“살려 줘!”
도살한 번견들의 사체가 제멋대로 합쳐진 듯한 크리처 같은 놈이 건물 밖으로 도망친 생존자들을 쫓았다.
민형이와 한솔이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발견했다. 그 뒤로 괴물이 뛰어오른다.
-이것도 그리 쉽게 해치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인간. 네가 모든 것을 이겨 낸다면…. 내 애완 인간으로 삼아 마계로 데려오겠다.
데빌벨루스가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어서 나자빠진 번견들의 사체가 저들끼리 엉겨 붙어 괴생물체를 만들어 낸다.
이게 저 마족 새끼의 작품이야?
[생존자 (12/13)]
[생존자 (10/13)]
시스템이 줄어든 생존자의 숫자를 알려 준다.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내 쪽으로 도망치던 한 남자의 머리를 물어뜯은 괴물이 아그작 씹으며 포효했다.
약국은 막아 놨던 창문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아이들이 뛴다.
나는 아이들을 덮치려 달려드는 괴생물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악-!”
“조민형!”
간발의 차였다. 스킬을 써 막아서려 했지만, 괴생물체가 아이들을 덮치는 게 더 빨랐다.
민형이의 발목을 붙잡은 놈 때문에 둘 다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재빨리 민형의 다리를 잡은 괴물의 팔을 잘라 버리고 발로 몸통을 차 밀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일으키려 하는데.
-푸욱!
“윽-!”
괴물이 잘린 팔에서 무언가를 쏘아 보냈다. 뼈 같았다. 송곳처럼 튀어나온 그것이 내 옆구리를 꿰뚫었다.
몸을 돌려 피할 수 있었지만, 내 앞엔 민형이가 있어서 피하지 못했다. 고통이 끔찍하게 올라온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바로 몸을 돌려 덮쳐드는 괴물을 반으로 갈랐다. 툭- 쓰러지는 몸뚱이가 심각하게 징그럽다.
민형이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앞으로 기어갔다. 한솔이가 일어나서 그런 민형이를 일으켜 세웠다.
옆구리가 금세 붉게 물들었다. 나는 절반 이상 쑥 박힌 하얀색 물체를 붙잡았다.
빼내려니 손이 조금 떨린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눈앞에서 시스템창이 제한 시간을 계속 띄워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내 뒤에 서.”
한야를 빼 들고, 잠깐 호흡을 골랐다. 3초 정도 짧은 시간 안에 통로 안을 훑어보곤 몸을 날렸다. 건물 앞에 늘어져 있던 사체들이 합쳐져 괴물이 만들어진다. 데빌루데스의 웃는 소리가 머릿속을 날카롭게 울렸다.
-조잡하지만, 쓸모는 있구나. 내 애완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하다니.
미친 새끼. 끔찍하다. 애완 인간은 무슨, 개새끼가….
나는 이를 악물고 사람들을 잡아 뜯으려는 괴물들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벌써 생존자가 9명으로 줄어들었다.
잡아먹히는 사람과 물어뜯겨 너덜너덜해진 시체가 괴수와 융합한다. 와, 진짜 충격적인 비주얼이다. 토할 것 같다.
[띠링! 게이트 입구를 찾아야 합니다! ]
게이트 입구, 게이트 입구…. 시스템이 하는 말을 읊조리다가, 다시 덤벼드는 괴물을 베어 냈다.
“허억… 헉….”
그 괴물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피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나를 본다.
약국에서 만났던 여자였다. 쇠 파이프를 아직도 꾹 손에 쥐고 있는데, 쇠 파이프는 별반 소용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약사 할아버지가 저 멀리 쓰러져 있다.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니 살아 있어서, 나는 이형환위 스킬로 그 앞으로 가 입을 쩌억 벌린 괴물 놈의 목을 잘랐다.
[제한 시간: 02:34]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게이트 입구를 찾으라 했는데, 거기가 어디지.
나는 아이들과 생존자들을 추스르며 사방을 살폈다. 건물엔 입구가 두 개가 있다. 앞쪽은 다 확인했고, 뒤쪽은…. 아까 번견들 정리할 때 마력 파장이 이는 부분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 거기다!
“달려요!”
나는 절뚝대는 민형이를 들쳐 엎고 한솔이와 사람들에게 건물 반대편을 가리켰다. 내부에 일자로 쭉 이어진 복도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반대편 입구.
-쉬우면, 재미가 떨어진단다.
빌어먹을 데빌루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지나온 통로 끝에서, 붉은 눈이 번쩍인다. 그리고, 검은 형체가 몸을 드러냈다.
기괴한 형상으로 조합된 케르베로스의 사체가 삐걱거리며 나와 사람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주춤대던 사람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건물 입구가 저놈의 몸이 들어오기엔 작으니까 들어가면 괜찮을 거다.
나는 앞서서 건물을 가로막고 있는 괴물들을 치우고 길을 뚫었다.
1층 복도를 가로지르다가, 나는 반대쪽 입구를 보고 침음을 삼켰다.
거기는 내가 1층 음식점에서 끌고 온 테이블과 상으로 막아 놨었다. 거참 돌겠네. 한시가 급한데!
시간은 어느새 1분이 줄어들었다. 뒤에서 케르베로스가 아닌 괴물이 괴성을 토해 냈다.
“빨리, 이거 내려요!”
다급하게 테이블을 옆으로 밀고 가로막아 놨던 잔해들을 치웠다.
하얗게 질린 사람들이 나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민형이를 한솔이에게 맡기고 한야를 세웠다.
“잠깐! 옆으로!”
-콰쾅!
새파란 검기가 한곳을 막아 놓은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마력을 좀 더 많이 담아서 그런가, 입구가 터져 나가면서 먼지가 일었다.
그리고 예의 혈관이 박힌 통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연결되지 않은 TV처럼 지지직대는 마력 파장이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손짓했다.
“저기로 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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