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번견
집에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아프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상태 이상에 두 번 걸려 봤는데 오랜만이라니, 체감상 두 번이 아니라 이백 번은 걸린 것 같았다.
두통도 없고 이명도 없고 속이 뒤집힐 것 같은 고통도 없이 아주 푹 잠을 자고 그다음 날, 나는 어제도 본의 아니게 재낀 학교에 갔다.
나름 학교라고 애들이 시끌벅적 떠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범수 안 째고 나왔다?”
“이제 정신 단디 챙겨야 졸업하지….”
“아영아!”
“…….”
그리고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뻘쭘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서 애꿎은 전공 책을 꾸깃꾸깃 접었다.
제각기 인사하고 소통하는 대학생 무리 사이에서 나는 홀로 핀 절벽의 꽃마냥 앉아 있었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어떻게 아무도 말을 안 거니….
물론 대학 생활에 고딩 때처럼 하하호호 안녕, 어 안녕 하며 인사하고 지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3년 동안 다닌 학교에 그것도 전공 수업이면 아는 체하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차해준이 말도 안 하고, 인사는 안 받아 주고 수업만 듣고 맨날 쌩하니 가 버리는, 얼굴에 그늘진 음울한 자식이었다지만……. 큼, 생각해 보니 이럴 만도 하네…. 나는 차해준의 과거 기억을 더듬다가 이내 포기했다. 원래 힘숨찐은 외롭고 고독…. 안 울어. 안 운다고.
나는 결국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고 말았다.
X성 휴대폰이 화면을 번쩍 키웠다. 친구는 무슨…. 송류진만 있으면 됐다, 이거야. 진정한 친구는 인터넷 세상에 있다고!
나는 이전 세계의 내 불알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어젯밤에 알아낸 각성자 헌터 사이트를 눌렀다. 사이트 이름은 헌터X헌터로, 유명한 모 만화의 연재 주기에 절망하며 만들어 냈다고 하던데, 사실인진 모르겠다.
이 사이트는 각성자 헌터 관련해 주요 이슈를 모아 놓은 곳이었다. 용병 헌터로 활동하는 놈들이 따로 모이는 게시판도 있었는데, 마치 게임 속 모험가 길드에서 퀘스트를 받아 내듯 자연스러운 구인 구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주요 이슈가 올라온 게시판을 확인했다. 보통 주로 국산 피카츄, 아기 사슴과 태자마마 등등 익숙한 명칭들이 자주 보였다. 화광 같은 모르겠는 별칭들도 보이긴 했는데 모르니까 그냥 넘어갔다.
베스트 게시물엔 어제 서울에 뜬 게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지방에서도 3급이 하나 터져서 밤사이 난리가 났다는 얘기도 있었다.
나는 하나씩 검색하며 게시 글들을 탐방했다. 대한민국 5대 길드(뉴)라고 뜬 게시 글에 반박 답글이 잔뜩 달린 것을 주르륵 읽다가 랭커 순위에 대해 쓴 게시 글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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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랭커 순위 목록(변동ㅇ)]
1위 말해 뭐 해 한느님
2위 카오루쨩
3위 국산피카츄
4위 찰떡코훌쩍
.
.
8위 태자마마
10위 화광
매우 주관적
혹시 내가 잘못 알았을 수도
내가 미처 몰라뵈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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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다 별칭으로 불러 젖혀서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알아보는 건 1위와 국산 피카츄, 송류진 정도였다.
랭킹 제도는 세계 공용으로 이용하는 마력 탐지 시스템으로 등록한 각성자의 정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등록 안 한 각성자는 랭킹에 채점되지 않는다. 마력 또한 각성자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기에 확실한 것도 아니라서, 보통 랭킹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활약상 등을 보고 정했다.
마력 탐지 시스템은 제로 웨이브가 터지고 난 후 전 세계적으로 필수가 되어 버린 시스템이다. 그걸로 각성자들 호출도 한다. 제작자 스킬을 가진 각성자가 만들었다는 것을 어디서 본 것 같았다.
호출기가 있으면 편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등록 안 한 나에겐 필요 없는 얘기였다. 무엇보다 나는 이 세계의 ‘신’이 구동하고 있는 시스템창을 직접적으로 보고 있으니까.
어쨌든, 내가 일 위였다.
그거 말고 뭐가 중요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힘숨찐인 나를 알아봐 주다니, 자꾸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는데, 내 웃는 얼굴을 보고 옆자리에 앉았던 동기가 흠칫 놀랐다.
나도 더불어 흠칫 놀랐다. 가뜩이나 아싸 중의 아싸인데 정신머리까지 이상하다고 소문날까 봐 나는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는 동기 놈에게 살짝 웃었다. 친하게 지내자, 동기야. 그러자 놈이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웃다가 돌처럼 굳어 버렸다. 뭐지, 이건. 이런 개무시는….
때마침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나는 간신히 동기 놈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어휴 날이 더워서 그런지 눈에 땀이 차네…. 하하하하….
인마 친구가 웃으면 너도 웃어 줘야지…. 서럽다 서러워.
***
오늘은 3월 28일.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시작 날짜였다. 나는 학교와 가까운 번화가 인근 거리로 나왔다. 시나리오엔 오래된 PC방이라고만 나와서, 일일이 오래되어 보이는 피시방을 찾아봐야 했다.
아니 위치도 정확히 알려 줘야 할 거 아냐. 서울에 피시방이 몇 개인진 아냐?
괜히 시스템에 짜증을 부려 봤지만 시스템 놈은 대답도 없었다. 간간이 이모티콘 하나씩 날려 주더니 왜 갑자기 말이 없냐.
조금 걱정되는 마음으로 거리를 둘러보다가, 적당히 낡고 후미져 보이는 건물 지하에 딸린 피시방에 들어갔다. 뭐든 일단 자리에 있어 보자. 그럼 시간 되면 뭔가 터지겠지. 안일한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계산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조금 놀라고 말았다. PC방 겉모습은 졸라 후져서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나 싶을 정도였는데, 컴퓨터는 최신형 게이밍 모델로 싹 맞춤이 되어 있었다.
“…….”
그치. 진정한 게이머라면 인테리어에 투자 안 하지. 그렇지.
나는 일단 컴퓨터 전원을 켰다. 모르는 게임들이 가득 나와서, 옆자리에 앉은 초딩으로 보이는 아이가 하는 게임을 켰다.
“와, 뭐 해요? 거기 아니지. 여기! 이걸 지켜야 된다고!”
“…….”
“아니 저기 죽잖아! 형, 힐 해야죠, 힐!”
“…….”
“형! 한조! 한조라고!”
“…….”
“형 왜케 좆밥이야?”
“…알겠으니까 좀 조용히 말해.”
나는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움직이며 속삭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는 시간이 끝나고 나서부터 내가 게임하는 걸 힐끔 보더니 아예 눌러앉고 훈수를 두는 중이었다. 하얀 얼굴에 달덩이 같은 볼을 한 초딩은 생긴 거답지 않게 험악하게 말을 했다.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와 형 진짜 게임 못한다.”
옆의 달덩이 같은 볼을 가진 아이의 친구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이가 한마디 날렸다. 조용히 관전하던 애가 이러니까 더 마상을 입었다.
화면에 아웃된 내 캐릭터가 보였다. 채팅창에 낱말이 잔뜩 올라왔다. 저거 분명 욕하고 싶은데 안 돼서 저러는 거야.
나는 울적한 기분으로 우리 팀이 상대방 팀에게 발리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힐도 못 하면서 메X시는 왜 잡아여?”
“시간 다 끝났으면 이제 가라, 애들아….”
형 좀 혼자 있고 싶다, 엉?
내 말에도 두 아이는 꼼짝하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이거 감도 문제야. 이 형 좆밥이라 설정 안 해 놓은 거임.”
“키보드 안 먹혔던 거 아냐? 아까 힐 안 나가고 질주하던데.”
“그건 그냥 잘못 누른 거고.”
“예이이, 그 정도로 못한다고?”
그래, 이것들아! 나는 그만하라며 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꼬맹이들의 귀는 소중하니까. 나는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가게여?”
“시간 남았는데.”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는 두 꼬맹이가 내 컴퓨터를 노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마실 거 사려고 그런다, 마실 거.”
“주문하면 오는데.”
“…….”
“형 피방 첨 와요?”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어.”
깜피의 남자애가 킥킥대며 웃었다. 이런 간단한 것도 까먹고 있을 만큼 구석기 사람은 아닌데, 이게 좆밥이라는 카운터에 넋이 나가서 그래….
꼬맹이들은 이제 가려는 건지 나를 뒤따라왔다. 저들끼리 학원을 짼다, 어쩐다 하는데 한 소리 뒤지게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좆밥이니까…. 씨발…….
피시방 화장실은 입구로 나가서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다.
입구를 남기고 몇 걸음 앞에서, 웃고 있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나는 걸음을 멈춰 섰다.
대화하며 걷던 꼬맹이 하나가 내 등에 부딪혔다.
“아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여!”
“쉿.”
“네?”
꼬맹이 두 명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지나치려는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나는 둘을 내 등 뒤로 숨겼다.
“형?”
“왜 그래요?”
트인 귀로 우우웅거리는 소음이 들린다. 컴퓨터 본체가 돌아가는 소리가 아닌 다른 무언가. 그리고 피부를 따갑게 만드는,
살기.
그와 동시에, 쿠쿵-! 하며 지반이 무너지듯 바닥이 흔들렸다. 나는 휘청대는 아이들을 붙잡아 줬다. 그제야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아이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형…?”
“둘 다 이름이 뭐라고?”
“…한솔이요.”
“민형이요.”
“한솔이는 형 손 잡고. 민형이는 한솔이 손 잡아.”
-쿵!
다시 건물이 흔들리며 큰 충격음이 들렸다. 피시방에서 게임하던 사람들이 당황한 눈초리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둥댔다. 한솔이와 민형이가 영문도 모른 채 내 말을 따라 손을 잡았다.
나는 다른 손을 옆으로 뻗었다.
-컹-! 컹컹!
모니터 화면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즉시 그림자에서 한야를 꺼내 들었다. 기다란 검이, 뽑아내듯 등장하며 검신을 드러냈다. 이제 울 것 같은 눈으로 변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웃어 주었다.
“지금부터 게임 한 판 더 할 거야. 쫄지 말고 눈 가려. 어허, 손가락 벌리지 마.”
게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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