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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3화 (3/201)

3화

하늘이 우르릉 울부짖었다. 거리의 수많은 간판이 깜박이며 점멸했다가 켜지길 반복했다.

번쩍거리는 번개를 품은 구름들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내 앞에서 웃고 있는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이건 사실 쳐다보려고 쳐다보는 게 아니라, 눈을 뗄 수 없어서였다.

서늘한 회색빛 눈이 나를 빤히 보며 웃고 있었다. 랭킹 1위의 시력이 그의 홍채가 아주 옅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남자를 향해 초월자의 눈을 사용했다.

[‘초월자의 눈’ 스킬 발동!]

[상태창

이름: 백루찬

칭호: 하늘의 야수

클래스: 낙뢰의 무법자(Outlaw of lightning)

등급: S+

주요 스킬: 낙뢰(Lv.99), 비구름(Lv.42), 천둥의 발걸음(Lv.83), 번개(Lv.99)….]

등급이 S+…. 쩌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시스템창이 눈앞에 떴다.

[‘초전 박살 게이트’의 최고 등급은 S++입니다.]

[각성자 차해준의 등급: S++]

미….

미친! 나는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랭킹 1위라더니, 미친 거 아냐? 그럴 때가 아닌데 대박적으로 설레서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하지만 좋아했던 것도 잠시, 또 목구멍에서 핏덩이가 올라왔다.

※!주의!※: ‘초월자의 눈’ 사용으로 최소의 확률로 상태 이상이 발생합니다!]

[상태 이상: 각혈]

“쿨럭-!”

하, 뭐가 최소의 확률이야, 100%면서! 나는 손바닥을 적시는 피를 확인하고 허리를 숙였다.

내장이 꼬이는 건지, 뭐가 뒤집힌 건지 속이 역하고 울렁거려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와, 머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어서 고개를 휘휘 저으며 눈을 깜박였다.

진짜 세계 최강으로서 자존심이 안 서는구나. 연속으로 쿨럭이며 기침하다가, 겨우 고개를 다시 들었다.

우산을 씌워 주던 백루찬이 고개를 모로 꺾으며 미소 지었다.

“이상하네.”

뭐가, 인마.

“이 정도로 약한 사람이 아닌데.”

뭔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한 말투다. 그리고 묘했다. 희한하게 발랄하면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말투.

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가 화려하게 휘어진다.

미친놈 존나 잘생겼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등급이 S+급이면 랭커라는 뜻이고, 각성자 중에 톱급이라는 얘기인데, 이놈은 또 전기 관련 특수 능력자다.

이름도 백루찬. 얼굴도 남다르다. 여태껏 봤던 과거의 모든 미인을 합쳐도 얘가 최고였다. 사람이 이럴 수 있나.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쇠 맛이 잔뜩 느껴져 금방 인상을 찡그렸지만, 입가를 대충 훔쳐 닦고는 내 뒤에 있던 학생들에게 손짓했다.

“위험하니까 역으로 가든, 피신해.”

내 말에 아무런 답이 없다. 이상해서 뒤를 돌아봤지만, 넘어져 있던 학생 1과 그를 부축하던 학생 2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둘 다 멍한 얼굴로 백루찬을 보고 있었다.

“배… 백루찬….”

“와….”

흐음, 내 손짓 따윈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얼굴이로구먼. 나는 허허롭게 웃으며 그들 앞에 손을 흔들었다. 헤이, 거기 친구들? 구해 주고 피 토한 사람 누구게? 나야, 나. 이놈들아!

“저기 얘들아? 정신 차리자. 여기 아직 위험해.”

그제야 학생 1이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흐어억…! 정말 감사합니다!”

“끄아아아! 감사합니다!”

학생 2가 그제야 내 손에 들린 한야를 발견한 건지 질겁하며 머리가 땅바닥에 닿을 것처럼 허리를 숙였다.

그러곤 학생 1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각성자가 익숙한 세상에서도 이런 걸 무서워하는구나. 하긴 누구라도 사람의 몇 배만 한 괴수와 맞서고 제 몸만 한 검을 들고 있으면 무서울 만도 했다.

“그렇게 노려보면 무서워요.”

내 뒤에 서서 아직도 우산을 받치고 있던 백루찬이 말했다. 목소리가 참 나긋나긋했다. 근데 노려봐? 난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단 말이다.

나를 보며 또 눈꼬리를 예쁘게 접어 웃는 백루찬을 마주 보며, 나는 일단 붙잡고 있던 한야를 손에서 놓았다.

바닥으로 떨어져야 할 검은 그림자에 삼켜지듯 사라졌다.

이것 참 편리하구먼.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건 차해준이 가진 ‘어둠의 포식’이라는 스킬이었다. 랭킹 1위답게 레벨은 99.

이렇게 한야와 같은 무기를 보관하다가 어디서든 어둠만 있다면 꺼낼 수 있다.

물건은 물론 내 손에 닿으면 사람까지도 가능하다. 공간 이동처럼 어둠 속에서 어둠으로 이동도 가능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신기했다.

나중에 한번 실험해 봐야지. 속으로 생각하다가 내 앞에서 나를 빤히 보며 눈을 깜박이는 백루찬을 보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하, 멍청하게 웃을 뻔했다.

나는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서 건물 사이로 사라지는 학생 1과 학생 2의 뒷모습을 끝까지 보다가, 백루찬에게 말했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습니까?”

“음.”

“…….”

“나는 본 적이 있는데, 형은 없는 것 같죠?”

백루찬이 실실 웃었다. 뭐야, 그 웃음. 그리고 형은 뭔데. 나보다 어리냐, 너?

아니 그보다 나를 봤다고? ‘초전 박살 게이트’를 겨우 다섯 편밖에 보지 못해서 차해준의 인간관계가 어떤지 전혀 모르는 나는 혹시 하는 눈으로 백루찬을 쳐다봤다. 봤다니, 어디서? 학교에서?

빙의할 때 컴퓨터에 정보가 입력되듯 새겨졌던 기억은 뜨문뜨문 이어져 있었다. 온전한 기억은 아니었으니까 백루찬에 대해 기억이 없는 건 이해가 갔다. 그래도 솔직히 이 정도 미모면 지나가는 엑스트라라도 뇌리에 남았을 텐데, 무려 놈은 S+급 각성자였다. S+급이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이상하네. 왜 ‘차해준’은 이놈을 모르지?

백루찬은 나를 살피듯 훑어봤다.

“이렇게 가까이서 실물 보는 건 처음인데.”

멀리서 봤다는 얘기인데… 차해준은 힘숨찐이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뿐이다.

“좀 설레네요. 형.”

어투가 참…. 미묘했다. 설렌다면서 전혀 감흥 없는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그리고 설레긴 뭐가 설레. 물론 나도 네 얼굴 처음 보고 헉 하긴 했지만.

백루찬은 나탈리스를 잡은 ‘차해준’을 본 거다. 그것도 본 거로 치면 그럴 수 있다. 근데 차해준은 베일에 가려진… 힘숨찐 아니었나? 얼굴 모를 텐데? 나는 의심 어린 눈으로 백루찬을 보며 모자를 꾹 눌러썼다.

그러자 백루찬이 싱긋 웃었다.

하, 생긴 건 꼭 무슨 연예인 해 먹을 것처럼 생겨 가지고……. 라고 생각하자마자 어느 빌딩에 달린 광고판에 놈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진짜 연예인이었나. 혼자 머쓱해서 큼 목을 가다듬었다.

“형! 팬이에요!”

“백루찬! 사인 좀!”

“루찬아 안녕!”

괴수가 번갯불에 익은 물고기가 되어 버리자 사람들이 안심했는지 백루찬과 내 주위로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루찬아아아악! 너라면 감전사해도 좋아아아악!”

멀리서 외치는 소리에 나는 작게 쿨럭이며 헛기침했다. 아, 웃을 뻔했어.

백루찬도 주위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인식했는지 내게 씌워 줬던 우산을 도로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 쟤는 젖지도 않았다. 코트에 물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의뭉스럽게 웃던 얼굴이 본래 안색을 되찾듯 무심하게 변했다. 뭔가 흥미진진하게 보다가 지겨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백루찬이 말했다.

“한강에 열린 3급 게이트는 닫혔어요. 나온 몬스터는 저게 다고요. 제가 닫고 뒤쫓아 왔거든요.”

“아, 음… 그렇구나.”

“형도 이만 가 보셔도 돼요. 이제 곧 귀찮은 사람이 찾아올 텐데, 그 사람 싫어하시잖아요.”

“어… 내가?”

싫어해? 누구를? 되묻기도 전에 백루찬은 부드럽게 웃더니 내게서 등을 돌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코트 자락이 날리기 시작했다. 백루찬은 몇 걸음 걷더니, 살짝 무릎을 굽혔다. 금방이라도 훌쩍 뛰어오를 수 있게 도움닫기 하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은 놈을 보며 나는 몸을 움직였다.

이놈이 메인 캐릭터인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모른다. 그걸 알아내야 하는데 이렇게 대충 인사만 하고 끝난다고! 뭐라도 접점을 더 만들어야 한다!

나는 뒤돌아선 백루찬의 한쪽 팔을 붙잡아 세웠다.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 같은 몸이 흠칫하며 내 쪽으로 살짝 쏠렸다.

“야- 백루찬!”

나의 다급한 부름에 백루찬이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봤다. 왜 인마, 인상을 쓰고 그래. 이름 불러서 기분 나빴냐? 나빴다면 미안.

하지만 메인 캐릭터 중 한 명일 가능성이 큰 놈을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아니, 이 정도 임팩트라면 이놈은 확실히 메인 캐릭터 중 한 명이다.

나는 잠깐 그 얼굴을 보며 큼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너 살려 주겠다고 하는 짓이야. 응? 너도 스토리대로 죽는 것보단 살아서 세계를 구하는 편이 좋지 않겠니. 너도 살고 나도 살고. 그러니까 고깝게 들으면 안 된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놈에게 말했다.

“너 내 피카츄 할래?”

“…….”

“아니면 그거… 그 이브이?”

[ -(゜Д゜;)-ン! ]

아…. 이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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