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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이혼을 위한 신혼생활-93화 (93/100)

93화

“저기, 대리님.”

“응.”

“괜찮으시면 결혼식 때 부케 받아 주세요.”

“뭐? 내가?”

민 대리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 꼭 대리님이 받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야… 뭐, 괜찮지. 좋지!”

민 대리는 얼떨떨해하다가 활짝 웃었다. 내가 점찍은 사내 커플이 결혼에 골인하는 것도 모자라 부케를 날 준다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지운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도 하고 말이다.

그였다. 카운터 쪽에서 한 무리의 직원들이 걸어오며 이지운을 쳐다봤다. 그들은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저 오메가 맞다니까.”

“눈이 딱 알파 꼬실 눈이네.”

“저 눈꼬리 좀 봐. 입술 한번 새초롬하다, 새초롬해.”

조금씩 수다를 떨다가, 그들은 나중에 이지운의 테이블에 들릴 것처럼 수군댔다. 대놓고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저기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여기 캐럴 송 때문에 방해가 돼서 안 들리네.”

민 대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상대방들은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무 말 안 했는데요.”

“그래? 그럼 이 자리가 탐나서 쳐다보나? 창가 자리 저기도 있네. 저기 가서 앉든가.”

“아, 네… 네.”

민 대리가 눈을 부라리며 말하자, 수다를 떨던 인간들은 조용히 사라졌다. 

“민 대리님….”

“저런 인간들은 입방아를 못 찧게 그냥 확,”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걸요.”

“어쩔 수 없긴. 혼을 내줘야지!”

“근본적으로는 해결이 안 될 거예요. 저희가 정식으로 관계 알리고 결혼식 올리기 전까지는 계속 루머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지운이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에 비하면 사소한 고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남들의 입방아와 곱지 않은 시선이 마음 쓰이긴 했다. 이지운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지운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소파에 앉아 서태천이 깎은 과일을 집어 먹던 그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지운의 옆자리에 앉아 과일과 음료수를 대령하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며 온갖 수발을 들던 서태천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왜 그럽니까. 고민이라도 있어요?”

“아, 아니요. 그냥 망고가 잘 있는지 염려돼서 그랬어요.”

아무 말이나 둘러대자, 서태천이 이지운을 뒤에서 가볍게 끌어안고 그의 배에 손을 올렸다. 아직은 초기라 마른 배는 판판하기만 할 뿐 전혀 임신한 티가 나지 않았다.

“잘 있네요.”

“어떻게 알아요?”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서태천의 말에 이지운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닌 게 아니라 서태천이 밤마다 알파 페로몬을 듬뿍 내어 준 덕분에 아기는 잘 자라고 있었다. 그건 이지운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배 속 아기는 이지운에게도 서태천에게도 엄청나게 사랑받고 있었고, 페로몬 균형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라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제 야간 진료 때도 망고가 잘 크고 있다고 이야기 들었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요. 발육 상태도 좋고 염려할 것 없다고.”

“그러니까 한숨 쉬지 말아요.”

배를 조심스럽고 또 부드럽게 쓰다듬는 서태천의 손길에, 이지운은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이렇게 있다 보니 솔솔 잠이 왔다. 꾸벅꾸벅 조는 이지운을 서태천은 조심히 안아 들어 침실로 데려갔다. 

침대에 이지운을 눕히고,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자 이지운이 웅얼거렸다.

“더 해 줘요….”

잠에 취한 와중에도 키스를 조르는 이지운이 귀여워, 서태천은 피식 웃었다.

“얼마든지 해 줄게요.”

서태천이 이지운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양 뺨과 콧등에 차례로 짧은 키스를 남겼다. 그게 기분 좋았는지 이지운이 입꼬리를 올렸다. 서태천이 이지운의 뺨을 감싸고 그대로 입술과 입술을 맞물렸다. 뜨거우면서도 촉촉한 감촉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으음….”

키스가 깊어지자 이지운이 서태천의 목에 팔을 감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몸에서는 페로몬이 흘러나와 얽혔고, 숨이 점차 가빠졌다. 키스만으로는 모자란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상대방을 만지는 손길이 점차 다급해졌다.

“안정기까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서태천이었다. 그가 이지운의 몸 위에 드리워진 제 상체를 걷어내려 하자, 이지운이 그를 덥석 껴안았다.

“조금만 더요.”

“이 이상 하면 못 참을 것 같습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그, 안… 하면 되잖아요.”

“뭘 안 한단 소리입니까.”

서태천이 이지운의 귓가에 속삭였다.

“알면서….”

수치심과 기대심으로 이지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참기 힘들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죠.”

서태천이 피식 웃고서 옆으로 누우며 이지운과 마주 봤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

이튿날, 서태천은 여느 때처럼 이지운과 함께 출근길에 올랐다.

“저 여기서 내려 주세요. 버스 타고 갈게요.”

회사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이지운이 말을 꺼냈다.

“이제는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요. 그냥 같이 타고 가죠.”

“아니에요. 저 따로 갈게요.”

“홑몸도 아닌데 어떻게 버스를 태웁니까. 안 돼요.”

“같이 출근하면 직원들이,”

“직원들이 뭐요?”

아차 싶었으나 이미 말이 나가 버린 후였다. 이지운은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무마하고자 했다. 직원들이 루머를 만들어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린다는 사실을 서태천이 알아봤자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슨 고민 있습니까?”

“아뇨, 그냥… 일단 가요.”

이지운이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 서태천은 수상쩍은 기운을 감지했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이지운은 주춤거리질 않나 머뭇대질 않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엘리베이터 놓치겠습니다. 어서 가죠.”

“아? 저, 따로 타고 가면 안 될까요.”

“뭐하러 그래요. 같이 가죠.”

서태천이 이지운을 먼저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뒤따라 탔다. 그때 몇 명의 직원이 후다닥 달려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직원들이 서태천을 발견하고 꾸벅 인사했다. 그런데 그들의 시선이 곧장 이지운을 향했다. 흠칫 놀랐다가 곧바로 이지운을 곁눈질하는 직원의 행동에, 서태천은 감을 잡았다. 이지운이 순간 위축되는 듯 몸을 웅크리며 제게서 멀리 떨어지려 했기 때문이었다. 

뭔가 있구나. 의심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사무실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확신으로 바뀌어 나갔다. 

이젠 대놓고 같이 출근하네? 알파 잘 잡았다. 비결이 뭐래 나도 좀 배우자. 비결이 따로 있겠냐, 작정하고 덤볐겠지.

복도 곳곳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태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좌우를 훑자 복도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나란히 걷던 이지운은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간격을 벌린 상태였다.

사내에 루머가 도는 건가. 그것도 아주 질 나쁜 쪽으로. 

서태천은 흘러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럼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이지운 주임.”

그가 집무실로 향하기 전 말을 걸자 이지운은 약간 놀란 듯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본부장님도요.”

이지운은 제 자리로 걸어와 팀원들에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침나절부터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망고와 태천 씨를 위해서 힘내야지. 

이지운은 살짝 배 위에 손을 얹으며 웃었다.

“모레 회식 다들 참석할 거죠?”

부 서무가 마케팅 1팀 쪽으로 걸어오며 파일철을 흔들었다. 모레는 한 해 중 가장 큰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송년의 밤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가족과 보내라는 것이 세화 호텔 그룹의 문화였으므로, 이들은 일찌감치 연말 회식을 가졌다. 그래서 12월 하순에 접어들면 곧장 세화 서울 호텔에 모여서 샴페인 잔을 기울이고는 했다. 

“네. 참석합니다.”

“저도요.”

“이지운 주임은요?”

“저도 참석이요.”

올 한 해 수고한 자신을 치하하고, 또 고마운 동료들에게 인사를 해 주고 싶은 게 이지운의 마음이었다. 악마 같은 팀장이 없는 회식 자리라면 입맛도 돌 테고, 일단 세화 호텔은 뷔페가 맛있다. 

그리고 이틀 뒤, 송년의 밤 행사가 개최되었다. 업무를 끝내고 모인 직원들은 호텔로 향했다. 여느 팀처럼 마케팅1팀도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은 본사 사람 전체가 연회장에 모였기 때문에 뷔페 규모도 컸고 참석자도 많았다.

이지운은 먼발치에서 이따금 자신을 훔쳐보거나, 아예 근처 테이블을 지나가는 척하며 자신을 관찰하는 불쾌한 시선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동료들과 재미있게 즐기는 날. 부정적인 감정은 갖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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