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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이혼을 위한 신혼생활-63화 (63/100)

63화

“후… 개운하다.”

씻고 나와 거실로 나와 보니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식탁 위에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나 볼 법한 호화로운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와! 이걸 다 만드신 거예요?”

“지운 씨 배고플까 봐 좀 만들어 봤습니다.”

“반찬이 대체 몇 개야. 하나, 둘, 셋… 열 개도 넘는데요?”

눈이 휘둥그레진 이지운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서태천은 이지운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에 얹힌 수건을 가볍게 걷어 냈다.

“일단 머리 말리고 밥 먹어요.”

“아, 네.”

“내가 해 줄게요. 이리 와요.”

서태천이 이지운을 데리고 안방 옆에 딸린 파우더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드라이어를 켜 이지운의 머리를 살살 말려 주었다. 머리 사이를 헤집는 손길이 부드럽고 섬세했다.

“안 뜨겁습니까.”

“괜찮아요.”

바람은 안 뜨거운데, 절 이렇게 뒤에서 껴안고 있어서 몸이 뜨거워요…!

서태천은 이지운을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머리를 말리는 중이었다. 그의 단단한 몸과 맞닿을 때마다 이지운은 지난밤이 떠올라 괜스레 민망해졌다.

“머릿결이 좋아요.”

“그, 그런가요.”

“…안 부드러운 데가 없지만.”

서태천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이지운은 이마를 긁으며 민망함을 달랬다. 그를 로봇이라고 칭했던 지난날에 대해 취소. 서태천은 약간 느끼한 면도 있고, 과하게 다정다감하며, 애정 표현도 솔직하게 하는 편이다. 다만 몰랐을 뿐이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죠.”

“네.”

이지운은 자꾸만 달아오르려는 뺨을 손등으로 식히며 주방으로 향했다. 밥상을 보자 다시금 식욕이 돋아나며 기분이 들떴다. 그가 식탁에 앉으려는 찰나, 미묘한 부분에 뭐라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올라왔다. 허리는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 같았고.

“헉.”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차마 댁에게 어제 당한 일 때문에 내가 지금 죽겠소, 말할 순 없었기에 이지운은 능청을 떨며 의자에 앉았다. 아이고, 나 죽네.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꾹 참고 수저를 쥐었다.

“먹어 봐요. 입에 맞을 겁니다.”

“안 그래도 맛있어 보여요.”

이지운은 가장 먼저 더덕구이를 집었다. 참기름과 고추장을 섞어 바른 더덕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그런데 입 안에 한입 넣자마자 살살 녹아 사라졌다.

이, 있었는데 사라졌다. 녹아 버렸어.

“말도 안 돼. 너무 맛있어요.”

“좋아해 주니 고맙네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요. 와, 소불고기는 또 언제 했어요?”

“양념 재워 둔 게 있어서 간단하게 볶아 봤습니다. 지운 씨가 좋아하는 표고버섯하고요.”

서태천은 맛있는 반찬이란 반찬은 다 모아 이지운 앞으로 몰아 주었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진짜 요리 잘하시는 것 같아요. 요리사 뺨쳐요.”

이지운이 싱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요리 실력이랄 건 없습니다. 지운 씨 입맛에 잘 맞는 거겠죠.”

서태천이 이지운의 밥숟가락 위에 고기를 한 점 얹어 주었다.

“하지만 그게 핵심이겠네요. 지운 씨 입맛에 맞는 게 저한테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의 말투는 따지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저가 없고 목소리는 묵직하며, 들뜨는 일이라곤 없었다. 그러니 이지운이 그를 가리켜 감정이 없는 로봇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깨달아서일까. 이지운은 그의 낮고 담백한 목소리도, 크게 호들갑 떨지 않고 덤덤한 말투도 한없이 다정하게만 느껴졌다.

“후아, 다 먹었어요.”

밥공기를 깨끗하게 비우고 이지운이 배를 두드렸다.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맙군요. 차 내올 테니 잠시 쉬고 있어요.”

“네.”

서태천이 그릇 정리를 하는 동안, 이지운은 소화를 위해 집안을 서성였다. 저 방에 갔다가 발코니에 갔다가, 안방에 가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새로운 메시지가 한 통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는 송 팀장이었다.

뭐지? 아까 쉬어도 된다고 했는데… 할 말 있나?

송팀장

이제 좀 괜찮아졌나요.

아, 안부 묻는 거구나. 팀원들 잘 챙긴다더니 진짜네.

이지운이 손을 놀려 괜찮다고 답장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답장이 도착했다.

송팀장

괜찮을 때일수록 더 쉬어야 해요. 제가 너무 걱정이 돼서 그러는데 문병 좀 가서 살피고 싶습니다.

우리 이 주임 어디 살죠?

“응? 뜬금없이 왜 찾아온다는 거야?”

다소 당황스러워 이지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중병에 걸려 입원한 것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잠깐 아프다는데 웬 문병인가 싶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이게 이상한 행동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니에요, 팀장님.

괜찮아지고 있으니 문병은 안 오셔도 됩니다.

송팀장

아니야. 내가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래요.

“아니, 진짜 왜 이래?”

송 팀장의 속내는 다음과 같았다. 이지운이 어느 동네에 사는지, 집은 어떤 곳인지 알아내고 싶다.

이지운을 부유한 집안의 귀한 오메가 아들로 생각하고 있는 팀장 입장에서는 이지운의 집안 수준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거기에다가 아플 때 찾아가서 자상한 모습을 보인다면 확실하게 점수를 따낼 수 있지 않을까. 송 팀장은 이지운이 아프다는 사실보다 오직 자신이 잘 보일 생각에만 집중했다.

만약 그가 이지운의 인사 기록 카드를 봤다면 그가 조실부모하고 혈혈단신이며, 집도 회사 근처의 원룸으로 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서태천의 집으로 옮겨 오기야 했지만 아직은 회사 전산망의 개인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아, 이지운은 평범한 동네의 작은 원룸에 혼자 사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팀장급은 인사 기록 카드 열람 권한이 없기 때문에, 그는 이지운의 집주소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어떤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저 진짜 괜찮아요, 팀장님.

이지운이 식은땀을 흘리며 송 팀장을 말렸다.

실은 집에 누가 계셔서 문병은 좀 곤란합니다.

집에 있는 사람이 본부장을 가리킨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팀장은 부모님이 계시나 보다, 생각하며 뜻을 접었다. 그러면서 꼴에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송팀장

알았어요. 그럼 푹 쉬고 내일 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이제야 겨우 대화가 끝나 가네. 이지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방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마침 서태천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차 식겠습니다. 뭐 해요?”

“아, 그게….”

이지운은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 액정을 끄면서 고개를 저었다.

팀장님이 문병 오려고 했다고 하면 좀 이상해 보이겠지? 별로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좀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태천 씨가 알아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까.

“그냥 아는 사람이랑 잠깐 문자 중이었어요.”

“이 아침부터 메시지를 주고받습니까?”

서태천이 은근 싸늘하게 물었다. 상당히 못마땅하다는 말투였다.

“아, 제가 아프다고 해서 친구가 걱정해 줬어요.”

“음… 그런 거였습니까. 일단 나와요. 차가 다 식겠습니다.”

이지운은 서태천을 따라 나가 티 테이블용 소파에 앉았다. 작은 테이블 위에 고급스러운 마카롱과 마들렌, 키슈 등이 소담하게 담겨 있었다.

“우와. 너무 맛있겠어요.”

“좋아해 주니 고맙군요.”

안 그래도 간밤에 격렬한 운동을 했더니 아까 먹은 밥으로는 부족한 참이었다. 이지운은 마카롱을 깨물어 먹으며 싱긋 웃었다. 서태천은 그런 그를 테이블에 턱을 괴고 쳐다보다가 간간이 홍차를 따라 주었다. 향이 그윽하면서도 산뜻해 마시기 좋았다.

“잔뜩 먹었더니 졸려요.”

“한숨 잘래요?”

“…네.”

이지운은 서태천이 입가의 과자 부스러기를 떼어 주는 대로 멍하니 있다가,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서태천은 그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고 이지운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히트 사이클의 여파인지 체온이 올라가 있었다.

“좋아….”

이지운이 작게 중얼거리며 잠투정을 했다.

“뭐가 좋습니까.”

“태천 씨가….”

서태천은 피식 웃으며 이지운이 더욱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낮췄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이지운이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위였고 실내는 어둑어둑했다. 좋은 냄새가 난다 했더니 서태천이 이지운을 끌어안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태천의 조각 같은 얼굴이 보이자, 이지운의 가슴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

이지운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서태천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예전에는 만져 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아낌없이 쓰다듬어도 된다니 꼭 꿈 같았다.

어쩌면 이렇게 다 잘생겼을까. 눈썹도 콧대도, 그리고 입술도.

이지운이 서태천의 입술을 살짝 건드려 보던 순간이었다. 서태천이 갑자기 눈을 떴다.

“아,”

깜짝 놀란 이지운이 손을 떼려 하자, 서태천이 그의 손목을 힘 있게 낚아챘다. 그러고는 손목을 침대에 눌러 꽉 고정시키고는 이지운의 몸 위로 올라와, 서태천은 이지운의 입술을 찾았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키스에 이지운은 넋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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