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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이혼을 위한 신혼생활-51화 (51/100)

51화

“아… 네. 이름이 참 멋지네요.”

이렇게 진부할 수가. <한번 The 숙려해 보세요> 앱을 처음 접했을 때도 가벼운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 프로그램명은 더했다. 아마도 가족 건강부 윗선에서는 대단히 흡족해했을 테지… 끙.

“우선은 다음 주에 8시간 인정 프로그램이 실시될 예정입니다. 참여하면 좋으실 것 같은데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이지운이 묻자, 감독관이 [뻔뻔한 캠핑]이라 적힌 팸플릿을 하나 건넸다.

“부부 캠핑입니다. 숙려 커플들이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요, 캠핑 내내 전문 강사 지도하에 레크레이션이 진행될 거예요. 재미있을 거라고 보장합니다. 이쪽은 재결합 진행 중인 분들만 오시니까 확실히 분위기가….”

“분위기가…요…?”

“너무 좋습니다.”

감독관이 음흉하게 웃는 듯했지만, 이지운은 기분 탓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서태천은 말없이 듣고 있다가 손을 들었다.

“부부 캠핑이면 외부에서 잔다는 건데, 프라이버시는 보장됩니까?”

“네. 당연하지요. 저희 목적이 뭔데요.”

이지운은 두 남자의 대화가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저기요, 대체 그 목적이 뭔데요…?

“음. 다행이군요. 그럼 안심하고 참여하겠습니다.”

서태천이 이지운의 손등을 살짝 덮었다. 펜을 쥐여 주려는 동작이었지만, 이지운은 그 사소한 동작에서마저 두근거림을 느꼈다.

“서명해요. 지운 씨.”

“네… 태천 씨도요.”

서로를 하염없이 바라보느라 정작 참가 신청서에 서명하지도 않고 멍때리는 두 사람이었다. 감독관은 서태천과 이지운을 번갈아 보며 아주 흐뭇하다는 듯 웃었다.

***

“창문 그렇게 열면 춥지 않습니까?”

“가을바람이 너무 시원해서요. 기분 좋네요.”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이지운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수하기 힘들었다.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도, 청명한 햇빛도, 그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제 알파도 다 좋았다.

이제 나는 태천C와의 진정한 결합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간 거야. 우린 더 이상 이혼을 향해 달려가는 커플이 아니라, 결혼을 향해 나아가는 커플이니까.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노래 잘하네요.”

“아, 드… 들렸나요?”

“그렇게 크게 흥얼거리면 다 들립니다.”

“흠흠.”

너무 들뜬 티를 냈나? 하지만 진짜 재밌을 것 같단 말이야. 맛있는 것도 해 먹고 캠프파이어도 하고, 어둠을 틈타서 이렇고 저런 짓도….

“그런데 지운 씨. 우리 집에 가기 전에 어디 좀 들르죠.”

“네? 어디요.”

“가 보면 압니다.”

서태천이 차를 몰고 간 곳은 대형 백화점이었다. 서태천과 이지운은 발렛 요원에게 차를 맡기고 내렸다.

“뭐 쇼핑할 거 있으신가 봐요.”

백화점 입구로 들어가며 이지운이 묻자, 서태천이 고개를 저었다.

“난 아니고 지운 씨한테 사 주려고 합니다.”

“저요? 어… 왜요? 저 생일도 아니고,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데….”

“그렇게 해 주고 싶으니까요.”

오늘은 서프라이즈가 쏟아지는 날이로구나. 이지운은 놀람과 동시에 조금 들떴다.

“같이 올라가죠.”

“네!”

두 사람은 의류 매장이 있는 층까지 올라왔다. 이지운은 평소에 접근할 일 없는 값비싼 명품 매장이 늘어서 있었는데, 일부 매장에는 열띤 웨이팅 행렬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기도 했다.

이지운으로서는 살아생전 이런 곳에 올 줄 몰랐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막연하게 줄 끝에 가서 서면 되려나 싶었는데, 정장을 입은 사람이 다가와 서태천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본부장님.”

“매니저님도요.”

한 브랜드 관계자로 보이는 남자와 서태천이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이쪽은 제 배우자입니다.”

서태천이 이지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배우자?

이론상으로야 자신과 서태천이 부부임도 알고 있지만, 남에게 이야길 꺼내니 이지운은 기분이 좀 묘했다. 불쾌는 아니고 설렘과 떨림, 어색함이 차례로 찾아왔다.

맞아. 이 알파는 내 남편이었지. 나의 하나뿐인 애인이기도 하고.

입 안에서 달달한 사탕을 굴리듯, 이지운은 계속해 배우자라는 말을 곱씹었다.

“그러시군요. 제가 오늘 쇼핑 도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리로 오시죠.”

브랜드 매니저가 멀끔하게 웃어 보이며 두 사람에게 별도의 통로를 안내했다. 이지운은 멀쩡한 척 걸었지만, 제 어깨 위에 놓인 서태천의 손이 신경 쓰여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왜 이렇게 손이 크고 또 뜨거운 거야…!

혼자 핫팩이라도 만지고 왔나 싶을 정도로 알파의 손은 따뜻했다.

이윽고 매장으로 들어선 이지운은 멋지고 화려한 옷에 넋이 나갔다. 어느 벽면을 봐도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옷들이 즐비했다.

“이분한테 잘 어울리는 코트 좀 추천해 주십시오.”

“네. 이번에 새로 나온 라인이 반응이 좋은데,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한번 걸쳐 보시겠습니까?”

매니저가 이지운에게 물었다.

“아… 안 그래도 코트 하나 필요했는데.”

추위를 잘 타는 이지운은 남들보다 한 달 정도 이르게 겨울옷을 꺼내 입는 편이었다. 안 그래도 두툼한 겨울 코트 하나 사야겠다고 며칠 전 지나가듯 말했는데, 그걸 또 서태천이 귀담아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지운이 타깃으로 노리는 브랜드는 이 층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캐주얼한 가격대의 브랜드였다. 사 입어 본 적은 없어도 여기 옷이 비싸리란 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이곳은 과하게 유명하고 럭셔리한 브랜드였다.

“태천 씨, 근데 여기 너무 비싸지 않아요? 저 다른 데서 사 입어도 되는데.”

이지운이 서태천의 귓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서태천이 피식 웃으면서 이지운에게 귓속말을 돌려주었다.

“내가 이거 하나 못 사 줄 남자로 보이진 않겠죠. 애인 찬스 둬서 뭐합니까. 이럴 때 써 먹어요.”

얼굴이 살짝 달아오름과 동시에 이지운은 가슴이 간지러웠다. 너무 기분이 좋아 머릿속이 핑그르르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자상하고 여유로운 알파가 내 알파라니. 지나가는 서울시민 여러분, 이 멋진 알파가 제 애인인 것도 모자라 심지어 저한테 박력 넘치게 선물을 한다고 합니다. 아시겠어요?

아무도 묻는 사람은 없지만, 이지운은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하나하나 설명하며 자랑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이거 한번 입어 보시죠. 피부 톤이 환하셔서 이런 부드러운 그레이빛이 잘 받으실 것 같거든요.”

매니저가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마감이 돋보이는 회색 코트를 가져왔다. 딱 보기에도 깔끔하고 디자인이 잘 빠져, 이지운은 바로 이 옷이다 싶었다.

“입어 볼게요.”

이지운은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탈의실 앞 거울로 향했다. 코트를 입고 거울에 비춰 보니 과하지 않은 광택에 세련됨이 묻어나는 디테일이 맘에 들었다.

“아주 멋지세요. 착용감도 괜찮으시죠?”

매니저의 물음에 이지운은 곧이곧대로 좋다고 답했다.

“네! 몸에 감기는 느낌도 너무 부드럽고 따뜻하네요. 무겁지도 않고요.”

“소재가 워낙 좋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엄청 포근하네요.”

뭘로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코트가 가벼우면서도 차르르 밑단이 예쁘게 떨어질까. 이지운은 워낙 소재가 좋으니 옷값이 많이 비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 의류니까 한… 200만 원, 300만 원 이상이지 않을까. 나 신입 직원 때 한 달 치 월급 정도…?

“헉,”

태그에서 가격 표시를 발견한 이지운이 돌처럼 굳었다.

“왜 그러십니까, 고객님.”

“저… 저 매니저님. 이 옷에 가격 표기가 잘못된 것 같아요. 0이 하나 더 붙어 있는데요.”

이지운이 바들바들 떨며 가격표를 보여 주자, 매니저가 곤란한 듯 이마를 짚었다.

“죄송합니다. 태그를 제거하고 드렸어야 했는데 저희 실수네요.”

“아니, 제거가 문제가 아니라 가격이 잘못 기재….”

“가격은 이게 맞습니다.”

“네?!”

이지운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1년 연봉의 절반을 몸에 걸치고 있다니 겁이 나서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살살 벗어서 돌려줘야 하나. 혹시라도 단추 하나라도 뜯길까 겁이 나 이지운은 옷을 조심스레 벗었다. 그때 서태천이 다가와 이지운을 마주 봤다.

“보기 좋습니다.”

“어… 그래요?”

“잘 어울립니다. 사실 뭘 입어도 제 눈엔 멋지고 귀엽지만, 연회색이 유난히 잘 받는 건 사실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서태천이 이지운의 뺨을 살짝 쓸었다.

“본, 아니 태천 씨….”

“완벽해요.”

“그럼 저 이거 입어도 돼요?”

“입어도 되는 게 아니라 입으세요. 절 위해서라도.”

서태천이 그렇게 말해 주니 이지운은 입이 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님, 그럼 저 이거 할게요.”

“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것도 천천히 둘러 보지 그래요. 오늘 사 주고 싶은 게 아주 많은데.”

“진짜요? 그래도 되나요?”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인데 그래도 되고 안 되고가 있습니까.”

“알았어요. 그럼 이 코트랑 어울리는 바지랑 셔츠도 같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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