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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이혼을 위한 신혼생활-50화 (50/100)

50화

한 손으로 샌드위치를 쥐고 입에 가져다 대는 서태천의 모습은 화보가 따로 없었다. 마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한 무명의 쉐프처럼, 이지운은 긴장 상태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만들어 보기는 했지만 맛에 확신은 없단 말이지.

이지운은 샌드위치를 씹는 서태천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한입을 베어 문 후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설마 별로인가? 맛이 없어?

바로 위축된 이지운의 눈망울이 울먹울먹해졌다.

“어… 어때요?”

“…굿.”

“와! 진짜요?”

굿.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감탄사인가. 서태천이 진심으로 맛있다고 느낄 때만 뱉는 단어에 이지운의 광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지운 씨도 드시죠.”

“네.”

이지운도 안심하고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그런데 샌드위치는 객관적으로 맛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엄청나게 맛이 없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미묘하게 간이 안 맞고 정체 모를 쓴맛이 났으며, 사과가 너무 많아 에그 샌드위치가 아니라 사과 샌드위치 같았다. 마치 탄 빵과 마요네즈 묻힌 사과를 한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 기분이랄까. 이 샌드위치는 묘하게 재료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서태천은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내 생각해서 맛있다고 해 주는구나. 사실은 더럽게 맛없을 텐데.

이지운은 살짝 감동했다. 역시 이 알파다,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야.

“그나저나 태천 씨, 문자 받으셨죠?”

마침 시간이 여유로우니 이지운은 숙려 기간에 대해 상의해야겠다 싶어 이야길 꺼냈다.

“예. 숙려 기간 연장 문자 말씀이시죠?”

서태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동으로 1개월 연장된다고 연락 와 가지고요. 저야 연장…이 되면 좋지만 태천 씨는 어떠신지….”

이지운이 눈을 굴려 서태천의 표정을 살폈다.

“저도 당연히 좋습니다.”

아, 역시. 나만 좋은 게 아니었어. 이지운은 활짝 웃었다.

“하지만.”

“네?”

서태천이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우리가 제대로 결혼식을 치르려면 절차를 밟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절차…? 어떤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 설명 좀 해 주세요.”

“알아봤는데, 숙려 기간을 철회하려면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아. 그냥 관두면 되는 게 아닌 거예요?”

“네. 이것도 국가 사업이고 세금으로 진행되는 부분이다 보니 임의로 코스를 이탈하긴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센터에 한 번 면담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처럼 이혼이 아닌, 신혼을 시작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이지운도 생각해 보건대 행정 절차가 있긴 있어야겠다 싶었다. 서태천과 이지운은 이혼 서류를 접수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진짜 가서 제대로 상담해야겠네요. 이러다가 얼렁뚱땅 이혼당할 순 없으니까요.”

“네. 세상에서 이혼이 제일 무섭습니다.”

서태천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며 커피를 마셨지만, 이지운의 심장은 빠르게 두근거렸다.

나와의 이혼을 끔찍이도 두려워하는 알파라니. 당신 나한테 제대로 반했구나!

이지운 혼자 신이 났다가 자아도취의 세계에 빠졌다가 아주 난리였다.

“직장인 부부들을 위해서 주말에도 센터 운영 한다고 알고 있어요. 전화해 볼까요?”

“좋습니다.”

“제가 연락해 볼게요.”

이지운은 시곗바늘이 9시를 가리키자 바로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센터의 통화 연결음은 숙, 숙, 숙려해 보아요. 한, 한, 한 번 더~ 이따위 촌스러운 로고 송이었다.

-네. 서울강남 숙려 센터입니다.

“안녕하세요. 숙려…중인 커플인데요, 방문 상담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 드렸습니다.”

-어떤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재결합 건이에요.”

-재결합이요…! 두 분 숙려 철회하시는 건가요?

여자 상담원은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다. 이지운은 바로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 자신을 쳐다보는 서태천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어쩌면 재결합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우린 헤어진 적이 없을지도….”

-아, 네. 그럼 2시 전까지 방문하셔서 철회 절차 안내 받으실게요.

감상적이고 아련한 이지운의 목소리에 공무원이 정색했다. 듣기에 못 견디게끔 느끼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관할 지역은 강남센터였는데, 지난번에 드로잉 수업을 하러 갔던 바로 그곳이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이지운과 서태천은 아침 10시경 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는 진짜 이혼할 생각으로 왔었는데, 어떻게 단 몇 달 만에 상황이 이렇게 달라졌을까. 사랑이란 건 정말 신기해. 죽어서라도 신혼집을 탈출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다.

“들어갈까요?”

“네.”

서태천이 이지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단단하게 손을 잡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접수 데스크의 민원 담당 공무원들은 사뭇 놀라는 기색이었다.

‘손…!’

‘손잡았다!’

‘아까 전화했던 재결합 커플 아닌가?’

직원들이 숙덕거리더니, 개중 선임으로 보이는 직원이 입구까지 걸어 나왔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까 전화 드렸었는데… 실은 숙려 철회를 하려고요.”

이지운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때 마침 사무실 안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드로잉 수업 강사이기도 했던 감독관이었다.

“감독관님! 안녕하세요.”

“이게 누구신가. 선생님들, 정기 방문일도 아닌데 이 주말에 웬일이십니까.”

평소 영상통화 등으로 자주 얼굴을 봤기 때문에 그들은 바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철회… 신청 하러 왔어요.”

“뭐? 철회요?”

감독관은 크게 놀라며 서태천과 이지운을 번갈아 보았다.

“아니! 두 분이 다시 재결합을 하시기로 했다니 정말 기쁩니다. 이럴 때 숙려 센터에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지요.”

감독관이 우렁차게 박수를 쳤다.

“일동 박수! 주무관님, 주사님. 어서 박수 쳐요.”

“네.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실내에 있던 다른 공무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이지운은 쑥스러웠으나, 서태천이 이지운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서류 준비는 안쪽에서 하시죠. 제 방으로 오십시오.”

“네.”

서태천과 이지운은 감독관의 전담 상담실로 따라 들어갔다. 아담한 방 안에 컴퓨터와 책상, 그리고 상담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서태천이 이지운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먼저 그를 들여보냈다. 맨 처음 숙려 제도를 시작할 때 이 소파에 이 구도로 앉아 앱 사용방법과 프로그램 참가법을 안내받았었는데, 이 자리에서 역으로 의사를 철회하게 되다니. 이지운은 이 상황이 자꾸만 실감 나지 않았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재결합 결심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이게 또 절차가 있어서, 그렇게 간단하게 행정 처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 왜죠?”

“이게… 중간에 숙려 코스를 그만두겠다고 했다가 또 이혼하겠다고 말을 번복하는 분들이 좀 많았어요. 특히 지난 분기에 우리 지역만 해도 열 쌍이 넘게 발생해서 행정에 굉장한 혼란을 야기했거든요. 본인들 감정도 크게 상하시고요.”

감독관의 설명에 의하면 기분이 좋을 때는 ‘우리 재결합해요.’ 하고 다시 싸우면 ‘역시 당신과 나는 갈라서야 해’ 하면서 오락가락하는 커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세금 낭비를 막으면서 또 진중한 숙려 제도의 발전을 기하기 위해, 강남 센터는 그런 번복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게 감독관의 설명이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지금 바로 철회는 안 되시고요. 4주간 숙려 상태가 유지됩니다.”

“그러면 숙려 과제도 수행해야 합니까? 점수가 올라가 버릴 텐데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철회 의사를 밝힌 커플들을 위해서 저희가 특별 코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특별 코스라면 어떤 거죠?”

서태천이 묻자, 감독관이 태블릿 피시를 켜 두 사람 앞에 화면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경험하신 코스는 숙려, 즉 배우자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고 이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는 코스였습니다. 이제부터는 프로그램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요, 두 분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 코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침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코스가 하나 있는데… 그걸 정상 이수하시면 됩니다. 그때부터는 두 분의 혼인 관계는 정상 상태로 돌아옵니다.”

이지운은 대강 알아들었지만,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교육을 무사히 수료하면 저희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거죠? 그냥 결혼한 부부 사이로 남게 된다는 거네요. 별다른 행정 절차는 밟지 않아도 되는 건지 궁금한데요.”

“이 코스에 접수하는 순간 이혼 숙려 감독관인 제가 두 분의 서류 처리까지 담당하게 됩니다. 이지운 씨가 말씀하신 대로 코스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혼인 신고 상태로 돌아갑니다.”

“코스는 얼마나 진행되나요?”

“20시간짜리 교육입니다. 여기 안내 책자가 있으니 읽어 보시죠.”

감독관이 태블릿 피시 안에서 문서를 하나 열어 주었다. 그런데 문서의 타이틀이 가히 경악스러웠다.

“이게… 뭔가요?”

“저희 내부에서 공모해서 뽑은 코스 이름입니다. 멋지지요?”

[재결합 희망 커플을 위한 특별 코스- FUN하고 편하게, 뻔뻔하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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