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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이혼을 위한 신혼생활-46화 (46/100)

46화

이지운은 돌처럼 굳었다.

지금 무슨 일어난 거지? 눈앞을 가득 메운 서태천의 얼굴은 조각처럼 황홀했고, 숨 막히도록 좋은 향기가 났다. 그리고 맞닿은 체온. 그건 마치 꿈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얼마나 굳어 있었을까. 서태천이 이지운의 젖은 입술을 엄지로 쓸어 주며 물었다.

“놀랐습니까?”

“어….”

너무 당황스러우면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이지운은 멍하니 눈만 끔뻑였다.

“놀랐나 봐요.”

“네, 놀랐… 헐.”

뽀뽀했어. 태천C랑 나랑 첫 키스…? 아냐, 깊게 한 건 아니니까 키스라고 하긴 어렵고 첫 뽀뽀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입술하고 입술이 닿았는데 첫 키스로 쳐줘야 하지 않아?

이지운의 얼굴에 다양한 의문과 감격, 설렘이 차례로 떠올랐다. 서태천이 그런 그의 뺨을 찾아 다시 쪽, 하고 입 맞췄다.

“여긴 밖이니까 더한 짓은 참을게요.”

“네? 더, 더한 짓이요?”

“야외잖아요. 나중에 제대로 하겠습니다.”

확, 이지운의 얼굴이 뻘게졌다. 이대로 펑 하고 터져 버린다 해도 놀랍지 않을 만큼.

어떻게 남은 음료를 다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지운은 대리 기사가 모는 차의 뒷좌석에 서태천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칵테일 한 잔에 위스키 한 모금이었으니 심하게 과음했다고 하기도 어려웠으나, 머리는 어지럽고 심장은 울렁였다.

이게 다 뽀뽀 때문이다. 그리고 더한 짓을 할 것이라는 태천C의 예고 탓이야.

“그렇게 멀리 있지 말고 이리 와요.”

“네? 네.”

서태천이 손을 뻗어 어색하게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이지운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깨와 어깨가 빈틈없이 맞닿게 되었다. 향기와 체온이 확 다가오자 이지운은 아까의 스킨십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과장 조금 보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편하게 기대요.”

서태천이 이지운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가 자신에게 편하게 기대도록 했다.

희미한 향수 냄새와 섞인 알파 향… 너무 좋다….

이지운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상황에서도 이 순간을 한껏 음미했다. 어떡하지, 너무 좋은데. 길이 왜 이렇게 뻥뻥 뚫려 있는 거야?

집으로 가는 길이 좀 더 길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맞닿은 체온은 기분 좋았다.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살펴 가세요.”

집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대리기사를 보내고 대문 앞으로 갔다. 이지운은 여전히 헤롱헤롱한 상태였으므로 문은 서태천이 열었다.

“걸음 조심해요.”

“네!”

정원을 가로질러 본채에 다다랐을 때, 이지운은 당연히 서태천이 바로 문을 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태천은 우뚝 멈춰 서더니 현관문에 손을 대고 이지운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세요?”

“약속 지금 지키려고요.”

“네?”

“이젠 야외 아니죠.”

서태천이 이지운의 양 뺨을 쥐고 그대로 고개를 내렸다. 뜨거운 숨결이 여지없이 느껴져, 이지운은 심장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네… 네.”

“그럼.”

이지운은 자신도 용기를 낼 차례라는 것을 깨달았다. 벌벌 떨리는 손을 뻗어 서태천의 목에 팔을 둘렀다.

할 수 있다. 해내야 해! 난 어른이잖아.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서태천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대니, 서태천이 이지운의 허리를 휘감았다.

다, 닿았어…! 입술 닿았다!

키스라기보다는 입술 맞대기에 가까운 상황이었지만, 이지운은 자신이 먼저 스킨십에 성공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

“하아….”

숨이 딸려서, 이지운은 다시 땅으로 발뒤꿈치를 디디며 입술을 뗐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서태천이 바로 이지운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

“읍…!”

맞물린 입술 사이로 뜨거운 것이 가르고 들어와 열기를 남겼다. 진하게 숨결이 얽혀 이윽고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게 하나가 되었다. 이지운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 아찔했다. 붙들 데라고는 서태천의 단단한 목덜미와 가슴팍, 돌 같은 어깨뿐이라 하염없이 그것들을 붙잡고 또 어루만졌다.

입술은 불에 타는 것만 같았으며 입술에서 시작된 쾌감이 허리를 타고 내려와 발끝까지 짜릿하게 퍼져 나갔다. 맹세컨대 이렇게 황홀한 감각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연애 안 해 봤다며. 그런데 태천C 왜 이렇게 키스를 잘하는 거야, 연애 안 해 본 거 맞아? 응?

“딴 생각하지 말아요.”

잡생각에 빠진 이지운의 속내를 읽었는지, 서태천이 이지운의 허리와 등을 휘감은 팔에 더욱 힘을 꽉 줬다.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껴안는 힘과 동시에 몰아치는 키스의 쾌감에, 이지운의 머릿속은 어느덧 새하얗게 날아가고 말았다.

현관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한 몸처럼 얽혀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쾅, 닫히자 이지운의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당연하게도 이 집안에는 서태천과 자신뿐이다. 그 말은 연인끼리 무슨 짓을 벌인다 해도 아무도 모른단 뜻이었다.

“자, 잠시만.”

숨이 너무 막혀 와 이지운은 필사적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아주 잠깐 입술이 떨어진 사이 서태천과 입술을 지척에 두고 헉헉거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눈이 마주쳤다. 코앞에서 본 서태천의 얼굴에는 처음 보는 낯선 눈빛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알던 본부장님이 아니야.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건….

“태천 씨….”

마치 육식 동물 같아. 그간의 신사적인 모습은 다 가짜였다는 것처럼 무서워 보여.

서태천이 이지운을 밀치며 계속 키스했다. 엉겁결에 신발이 벗겨지고, 넘어지기 일보 직전으로 위험천만하게 스텝을 밟으며 이지운은 뒷걸음질 쳤다. 전신이 뜨겁고 뇌가 녹아내릴 것 같아 이지운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서태천의 움직임은 급하고 또 거칠었다. 그에게 몰려 어느 순간 현관을 벗어나게 되자 덜컥 겁이 났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지만 한 줄기 남은 이성이 이지운에게 위험 경보를 보냈다.

설마, 오늘 선을 넘는 건가?! 지금 이 분위기, 찐한 키스, 날 잡아먹을 듯한 본부장 아니 태천 씨, 설마….

이지운의 가슴이 심각한 수준으로 빠르게 뛰었다. 기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다.

섬의 민박집에서 패기 넘치게 서태천을 덮치려고 생각했을 때에는, 사실 막연한 감이 있었다. 어른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만용을 부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공기부터가 달랐다. 이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것 같아서 오는 기대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있었다.

안 되는데, 이대로 휩쓸려가기는 너무 무서운데. 하지만 그냥 마구 휩쓸려 가고 싶다…!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이지운의 가슴에 펌프질을 했다.

“잠깐만요, 잠깐!”

부부 침실 문에 거의 다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이지운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서태천을 떼어 놓으려 했다. 일단 대화할 시간을 가지며 머리를 식히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지운의 손이 딱딱한 물건을 팍 치면서 그게 바닥으로 우당탕 떨어졌다.

요란한 소리에 이지운은 번쩍 정신을 차렸고, 서태천 또한 이지운을 놓아주었다.

“뭡니까. 다친 데 없어요?”

“전 괜찮아요. 아… 저게 뭐지.”

이지운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살폈다. 그것은 작지 않은 크기의 택배 상자였다.

“택배네요.”

그러고 보니 부부 침실 옆 장식장 위는 집안일을 봐 주시는 아주머니가 항상 택배를 올려놓는 곳이었다.

“제가 손으로 쳐서 떨어뜨렸…네요.”

이지운과 서태천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와장창 무드가 깨지고 나니 찾아오는 것은 뻘쭘함과 어색함이었다.

“하하. 택배… 택배다! 택배가 왔네요.”

이지운은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하며 급하게 말했다. 이왕 망한 분위기를 이용해 야릇함을 흐트러뜨리고 싶었다. 왜냐? 이대로 침실 안으로 끌려가면 아주 위험한 짓을 당할 것 같았고, 급하게 일을 치르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택배는 나중에 봐요.”

서태천은 이지운을 일으켜 세워 다시 그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이지운은 허둥지둥하며 서태천을 밀어냈다.

“열, 열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급한 택배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말해 놓고도 말이 안 된다. 세상에 급한 전화도 아니고 급한 택배가 어디 있어…!

그러나 한번 터진 입에서는 아무 말이나 나오는 법. 이지운은 주방에서 칼을 가져와야겠다, 테이프가 여간 질겨 보이는 게 아니다 난리를 쳤다.

“흠. 그래요. 그렇게 급한 택배라면 뜯어 봐요.”

“네… 네.”

서태천이 이지운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이지운은 눈을 내리깐 채 침만 꼴깍 삼켰다.

촉. 이지운의 이마에 서태천이 입술 자국을 남겼다.

“다음에는 안 봐줄 겁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지운의 팔뚝에 닭살이 돋아났다. 그 감각은 두려움이 기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쾌감과도 닮아 있었다. 이지운의 가슴 안에서 묘한 기대심이 고개를 들었다.

어서 날 봐주지 않는 그날이 찾아왔으면…!

그런데 오늘은 좀 무서워요. 양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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