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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이혼을 위한 신혼생활-39화 (39/100)

39화

아니야, 나한테 깍듯하다기보다는 그냥 호텔리어들 특징일 수 있지.

호텔 리조트 그룹에서 일하다 보니 서비스 마인드로 제대로 무장한 멋진 호텔리어와 지배인들을 많이 봤다. 저 사람도 그들 중 하나겠거니 하고 이지운은 잡념을 지웠다.

“잠깐 걷죠.”

“아, 네. 본부장님.”

“안쪽 동선을 확인합시다. 도보로 이동하기 편리한지, 혹시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있다면 문턱에 걸리진 않을지 그런 부분도 살피겠습니다.”

역시 시찰이 맞구만. 주말을 이용해서 기습적으로 리조트 관리 현황을 살피는 거야. 혼자 오는 것보다는 부하가 한 명 있어야 기분이 살겠지, 휴.

…그래도 여기 참 좋다.

이렇게 숲을 통째로 활용하면서도 자연을 해치지 않고 조성된 리조트는 처음 보는 것이라 이지운은 좀 신기했다. 정원은 전체적으로 유럽풍이었고, 일부는 미로처럼 또 일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처럼 길이 이어져 안채로 걸어갈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진짜 신기하네요. 건축 비용이 엄청나게 들었다더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자연을 멋대로 가공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꾸미느라 더 힘든 거였군요.”

“마음에 듭니까?”

서태천이 묻자 이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천국 같아요.”

솔직한 표현으로 그랬다. 지상 낙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가을 숲은 아름다웠다.

“흠. 그래요.”

“어?! 저기 결혼식…! 야외 웨딩이네요.”

마침 메인 정원 한구석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와. 멋있다.”

눈부시게 하얀 예복을 입은 주인공들이 꽃길을 걸으며 입장 중이었다. 삼십여 명 하객들은 소담하고 에스닉한 의자에 앉아 커플에게 힘찬 박수를 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볼까요?”

“네.”

둘은 피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몇 걸음 더 결혼식장 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멀찍이서 보는 것인데도 그 풍경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알파오메가 커플로 추정되는 주인공은 둘 다 남자였는데, 새하얀 예복만큼이나 눈부신 미소를 띠고 서로에게 입을 맞추는 모습에 이지운은 감탄하고 말았다.

“저런 데서 결혼하면 좋겠다.”

“야외 웨딩 좋다고요?”

“네?”

“저런 웨딩 스타일 좋냐고 물어본 겁니다.”

“아… 뭐. 네, 잔디밭에 저렇게 자연광 맞으면서 키스하니까 너무 아름답잖아요.”

이지운이 조그맣게 박수를 치며 주인공들을 바라보았다. 서태천은 그 모습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코스도 세화 그룹 소속의 리조트였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입지로, 지금 이 땅을 사려면 수백억 원은 가뿐히 호가하는 곳이었다. 경기도에서 가장 비싼 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은 교통까지 편리해, 호텔그룹 내에서 황금 리조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와… 아까 거기도 멋졌는데 여긴 더 대단하네요. 엄청 화려하고요.”

이지운은 세화 그룹에 입사한 지 2년이 되었지만, 본사 사무직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통해서만 현장을 접했다. 그런데 실물로 보자니 규모며 아름다움이 사진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저 나무 진짜 크다.”

이지운의 시선이 정원 정중앙의 아름드리나무로 향했다. 수령이 아주 오래된 듯 신비로운 외관의 나무였다.

“가만 보니까 나무를 참 좋아하네요.”

“네. 저 식물 좋아해요.”

“집에선 안 키우잖아요.”

“그거야, 책임질 수 없으니까요. 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햇빛도 안 들어오는 원룸에 살았잖아요.”

화분을 길러보고 싶었지만 좁고 어두운 방에서 키우기가 미안했다.

“음… 그럼 지금은요? 우리 집에서 키우면 되지 않습니까.”

“네? 지금 집에서요?”

곧 떠날 집인데 어떻게 개인 화분을 키운다는 거지. 그건 말이 안 됐다. 가져갈 때 짐이 될뿐더러, 언제 집을 나갈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생명을 키우고 싶진 않았다.

“아, 괜찮아요. 나중에 혼자 살게 되면 키우죠.”

“나중에?”

“네. 나중에요.”

이지운의 대답에 서태천은 길게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일단 레스토랑으로 식사하러 가죠. 밥을 먹어 봐야겠습니다.”

“직접 레스토랑 메뉴 체크를 하시는군요.”

“뭐. 그런 셈입니다.”

서태천과 이지운이 리조트의 메인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쉐프와 총지배인이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그들에게 화답한 다음, 서태천이 자리에 앉았다.

“미리 부탁드린 음식들은 준비되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미리 음식을 주문했다고? 여기서만 파는 특별한 메뉴라도 있나.

이지운은 뭐가 뭔지 몰라도 맛있을 것이 틀림없다며, 신이 나서 테이블에 앉았다. 곧 지배인이 새하얀 플레이트에 음식을 새 모이만큼 담아서 가져오기 시작했다.

“전채는 베이징덕 말이입니다. 강원도 고랭지에서 나는 대파와 오이로 맛을 돋웠습니다.”

굉장히 고급스럽고 또 화려한 비주얼이었지만 인간적으로 양이 너무 적었다. 또 이국적인 향신료의 맛이 과하게 강렬했다.

“전채가 이거 말고 또 뭐 준비돼 있죠?”

“스페인식 토마토 스프가 있습니다.”

“흠. 이 베이징덕도 그렇고… 외국 스타일 토마토 수프는 하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릴 텐데요. 무난한 한식 코스는 없습니까?”

“당연히 준비돼 있습니다. 퓨전 한식 코스입니다만, 지금 바로 서빙 시작하겠습니다.”

하객들의 호불호란 말에 이지운이 한 박자 느리게 말을 알아들었다.

그냥 메뉴가 아니라 결혼식 코스 요리인가 보다. 그걸 체크하러 여기까지 온 거였어. 하긴, 자기가 마케팅 본부장인데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도 직접 먹어 보고 요리 비주얼도 체크하고 그래야겠지.

“송이버섯으로 만든 냉채입니다.”

“우와. 끝내준다.”

“이건 가리비와 문어로 만든 숙회고요. 웨딩 와인과 마리아쥬가 조화롭습니다.”

잠시 뒤 지배인이 단정하면서도 먹음직스러운 한식 코스를 하나씩 내왔다. 예전에 팀원 결혼식 때 먹었던 코스 요리랑 구성이 비슷했는데 맛이 다 괜찮았다.

“맛은 어떻습니까, 이 주임.”

“완전 최고요.”

“한식 스타일이 더 무난하죠, 아무래도?”

“음… 세화 호텔 마케팅부 주임으로써 이야기하자면 그렇죠.”

“순수하게 하객 입장이 되어 본다면 어떤데요?”

“그래도 한식이 나아요. 양식이나 중식, 일식은 본부장님 말씀대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서요.”

“그렇다면 이 주임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한식으로 하죠.”

“네…?”

이지운이 인상을 쓰며 귀를 후볐다. 방금 한 말은 좀 이상했다. 왜 내 의견을 존중하지? 내 결혼식에 나올 코스 요리도 아닌데 내가 한식을 좋아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훌륭한 결혼식 코스 메뉴를 개발하려면 지배인이랑 주방장, 그리고 서태천이 합작해서 만들면 그만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야외 웨딩 그리고 한식 코스 요리. 두 가지 사안 모두 이 주임 의견 따르겠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시는….”

이지운이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잠깐, 설마 이거 내 이야기야?

아까 들렀던 리조트에서의 야외 결혼식, 그리고 자꾸 여긴 어떻냐고 물어대는 서태천. 게다가 지금 서빙되어 나오는 이 음식과 하객의 호불호 어쩌고….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결론을 시사하고 있었지만, 그게 뭔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서태천이 자신에게 ‘결혼식 구상안’을 논의하고 있다고는 믿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침에 서 회장님하고 전화 통화를 했었지…? 오늘 뭔가를 결정해서 말씀드리겠다고 했었어. 그게 식장을 결정하겠다는 말이었던 걸까?

궁금증과 위화감,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와 이지운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끙끙 앓느니 묻기로 했다.

“저기, 본부장님. 저 질문 좀 드릴게요.”

우아하게 송이버섯을 커팅하고 있던 서태천이 그 말에 이지운을 쳐다보았다.

“뭡니까?”

그가 수저와 나이프를 모두 내려놓고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우아하면서도 남자답기 그지없는 턱선이 강조되었다.

“그… 그게,”

이지운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용기를 모았다.

“여기 단순히 회사 일 때문에 오신 거 아니죠?”

“네. 맞습니다.”

서태천은 망설이지 않고 대꾸했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오늘 여기 온 목적이 뭔가요?”

이지운이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땀 때문에 손바닥이 축축했다.

“결혼식장 알아보러 온 겁니다.”

“네? 뭐라고요?”

이지운은 제 귀를 의심했다. 결혼이라고? 맺을 결에 혼인할 혼… 내가 아는 그 결혼? 영어로는 메리지, 아니다. 웨딩인가?

“아….”

이지운이 벙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벌리고 있자, 서태천이 물잔 밑동을 매만지며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식장을 선정하기에 앞서 과연 내 결혼식을 치르기에 적당한 곳인지, 음식은 어떤지 또 교통편은 좋은지 확인하기 위해 온 겁니다.”

“음식… 교통….”

“네. 아무래도 결혼식이라는 게 워낙에 중요한 일이다 보니,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잖아요. 주차장처럼 직접 와서 봐야 알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하, 어이가 없다 못해 가출하겠네. 이지운의 턱이 가늘게 떨렸다. 손도 벌벌 떨리려는 걸 필사적으로 주먹을 쥐어 참았다.

“지금 서태천 본부장님, 본인 결혼식 이야기하는 거 맞으시죠?”

“맞습니다.”

“허,”

이지운이 허공에 대고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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