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1. 같이 놀아요 (8/28)

2부-1. 같이 놀아요

재강의 핸드폰은 퍽, 소리를 내며 주차장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명선의 발치 앞쪽까지 작은 조각이 날아와 떨어졌다.

명선은 흠칫했다가 그대로 서서 재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깨는 위아래로 들썩이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코로 떨리는 숨을 세게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가 명선이 서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재강은 한동안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서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재강의 호흡이 차츰 잦아들고 들썩대던 어깨도 평정을 찾아갔다.

재강은 그러고 나서도 얼마간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다가 곧 몸을 숙여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 근처로 흩어진 파편들도 느릿느릿 줍다 몸을 돌린 재강이 명선을 발견하고는 동작을 멈췄다.

“…….”

그대로 선 채 재강을 바라보던 명선은 자신의 발치에 있던 조각을 주워들고 들여다보다 다시 재강을 바라봤다.

“드라이브할래?”

“…….”

재강은 물끄러미 명선을 보다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파편을 주웠다.

명선이 재강 가까이 다가갔다.

“말 안 시키고 운전만 할 테니까 그냥 버스 같은 거 탄다고 생각해. 기분 꿀꿀할 때 드라이브가 꽤 좋아. 아무 생각 없이 밖에 풍경 지나가는 것만 보면서.”

명선이 재강의 손에 자신이 주웠던 조각을 내려놨다.

“한 시간 정도 돌고 다시 여기로 데려다줄게. 자전거 타고 집에 가.”

재강은 말없이 손안에 모인 핸드폰 파편들을 내려다봤다.

“진짜 말 안 시킨다니까. 네가 좋아하는 음악 있으면 들어도 되고.”

“…….”

“버스도 싫으면 무인 자동차 탔다고 생각하든지.”

곧 재강이 스르르 일어서더니 주차장 한쪽으로 가 쓰레기통에 파편들을 집어넣었다.

재강은 엉망이 된 핸드폰을 배낭에 넣으며, 자전거가 아닌 명선 쪽으로 왔다.

명선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돌아서서 자신의 차 쪽으로 갔다.

“음악 틀어 줄까? 뭐 들을래?”

조수석에 올라타는 재강에게 명선이 시동을 걸며 물었다.

“아니.”

짧게 대답한 재강이 배낭을 발밑에 두고 안전벨트를 맸다.

“알았어.”

명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차장을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재강은 좌석에 머리를 기댄 채 바깥만 바라보고, 명선은 말없이 운전만 했다.

고요한 차 안은 평화로움마저 감도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간 달리던 명선은 곧 익숙한 길로 들어섰다. 멀리, 짓다 만 건물이 보였다.

카섹스 피플의 성지.

명선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차가 스르르 속도를 늦추다 비포장길로 꺾어져 들어가는데도 재강은 그저 같은 자세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넋이 나가셨네.

명선은 재강을 힐끔거리며 건물 뒤쪽으로 가 공터 한쪽 구석에 차를 댔다.

오늘은 먼저 온 차 한 대가 다른 쪽 끝에 서 있었다.

시동을 끄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잠시 후 재강이 문득 고개를 들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명선을 쳐다봤다.

“여기서 좀 쉬다 가든으로 가자. 여기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좋아서, 나도 정신 사나울 때 가끔 와서 앉아 있다 가거든.”

명선이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

재강은 앞 유리 너머로 빼곡하게 서 있는 나무숲을 보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도로 좌석에 머리를 기댔다.

물론 나는 저 소리에 좆도 관심이 없지. 여기 섹스하러 오지 저거 들으러 오게 생겼냐. 나무가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명선이 그 소리를 들으며 섹스 후의 호흡을 진정시킨 적은 있어도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시킨 적은 없었다.

그래도 바람이 불 때 나뭇잎이 저희끼리 몸을 스치며 내는 소리가 꽤 좋다고 느낀 적이 있긴 하니 거짓말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명선은 옆쪽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인 재강의 옆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훑어봤다.

목과 어깨, 데인 자국이 여기저기 있는 팔과 손, 자연스레 벌리고 앉은 다리, 청바지에 감싸인 허벅지와 무릎의 선.

“사람 마음이 참 내 맘 같지가 않지?”

명선의 말이 정적을 깼다.

재강은 그대로 있다가 명선을 향해 스르르 고개를 돌렸다. 미간이 살짝 찡그려진 채였다.

“말 안 시킨다며.”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잖냐.”

“너 따위가 사람 마음에 대해서 뭘 그렇게 잘 안다고 계속 마음 타령이야?”

“내가 아는 게 있고, 네가 아는 게 있고. 각자 아는 게 다 다른 거 아닌가?”

“쉬어 빠진 소리 그만하고 이제 운전해. 집에 가게.”

“난 내가 네 첫 남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

“이쪽이면 이쪽이라고 얘길 하지. 지금까지 계속 헤테로인 줄 알았잖아.”

재강은 명선의 얼굴을 바라보다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보며 명선은 속으로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상 도망간 남자 애인과의 대화로 들리긴 했으나 그래도 통화 내용만으로 확신할 순 없어 일단 던져 봤는데, 드러나는 재강의 표정이 확인 사살을 해주고 있었다.

“……내 성향 같은 걸 네가 알 게 뭐야.”

“같은 부류끼리의 연대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너 같은 거랑 연대할 생각 없어.”

“연대란 게 별게 아니야.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명선이 재강의 허벅지에 슬쩍 손을 올렸다. 재강이 흠칫하며 그 손을 내려다봤다.

“서로 위로해 주기도 하고.”

명선의 손이 재강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쥐었다가 깊숙한 쪽으로 들어가려 하자 재강이 그 손을 홱 쳐냈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냐?”

재강이 명선을 노려보는 순간,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거칠게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옆쪽 끝 차체가 흔들리는 소리였다.

“…….”

둘은 얼마간 그 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소리만으로, 한 쌍의 젖은 몸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 채 벌이는 격하기 짝이 없는 섹스가 연상되며 명선은 서서히 아랫도리가 뜨거워지는 듯했다.

“애인도 떠났는데.”

명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도 좀 즐기면서 살면 어때.”

“…….”

“성감대도 버젓이 있고, 욕구도 충만한데 말이야.”

“…….”

“애인은 네 뜻대로 안 되지? 나는 네 뜻대로 해도 돼.”

명선이 다시 재강의 허벅지에 손을 슬며시 올렸다. 재강의 허벅지가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만져 주고, 빨아 줄게.”

“…….”

재강이 눈만 내리깔아 자신의 허벅지에 놓인 명선의 손을 바라봤다.

재강이 손을 쳐내지 않자 자신감이 붙은 명선은 최선을 다해 아주 부드럽게 그 허벅지를 어루만지다가 점점 위쪽으로, 그리고 안쪽으로 옮겨갔다.

“네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게. 너는 그냥 박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내 뒤에 박아도 되고, 아니면…….”

명선의 손이 재강의 바지 앞섶을 가볍게 쥐고 살살 쓰다듬었다. 쥐는 순간 뜨끈하고 조금 단단한 느낌이 들어 명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 입에 박아도 되고.”

명선이 능숙하게 재강의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끌어 내리는 동안 재강은 뻣뻣하게 앉은 채 잔뜩 미간을 찡그리고서 명선의 손만 내려다봤다.

호흡이 거칠어지는 걸 간신히 참고 있는 게 보였다.

명선은 눈을 바쁘게 움직이며 재강의 바지 앞섶과 그 표정을 열심히 살폈다.

거의 다 됐어. 거의 다.

열린 바지 앞섶을 풀어 헤치자 이미 제대로 발기해 두둑해진 속옷이 드러났다.

명선이 그것을 감싸 쥐니 재강이 배를 움찔하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봉인이여 풀려라.

명선은 속으로 주문을 외듯 하며 재강의 속옷에 감싸인 성기를 그대로 가볍게 물었다.

재강은 곧장 흡, 하고 숨을 들이켜며 명선의 머리를 붙잡았지만, 꽉 잡았다가도 밀어내진 못하고 머뭇머뭇 손을 뗐다.

그래야지. 넌 내 입 거부 못 해.

명선은 입술만을 이용해 정성껏 재강의 성기를 애무했다.

살짝 세게 물었다가 놓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다 다시 입에 물고 굴리거나 뜨거운 숨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재강의 허벅지도 계속 함께 어루만졌다.

재강의 배가 흠칫흠칫 떨렸다. 조금씩 뒤트는 발의 신발 밑창이 바닥과 마찰해 작게 소리가 났다.

명선이 어루만지며 슬쩍 밀자 재강의 허벅지는 주저하면서도 좀 더 넓게 벌어졌다.

잘하고 있어, 권명선.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나 실력을 갈고닦아 온 거였어.

명선은 이제껏 거쳐 온 수많은 남자를 떠올리며, 가장 중요한 실전을 위한 연습 상대라도 된 듯한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재강은 시트에 등과 머리를 바짝 붙인 채 시트 가장자리를 꽉 쥐고 있었다.

명선이 그때까지 채워져 있던 재강의 안전벨트를 부드럽게 풀어내고, 아주 자연스럽게 재강의 티셔츠 아래로 손을 미끄러뜨려 집어넣었다.

아까처럼 또 얻어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어차피 각오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재강은 제지하지 않았다.

가슴 촉감 죽이네, 새끼.

명선은 감탄하며 재강의 가슴을 주물러댔다.

자신의 성기도 이미 바짝 선 채라, 어서 빨리 하의를 모두 벗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성기가 바지 앞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이제 슬슬 본 게임으로.

명선은 축축해진 재강의 속옷을 살짝 끌어 내리고 그 밖으로 성기가 나오자마자 입 안 깊숙이 집어넣었다.

아오, 산해진미.

재강의 성기를 물고 그 가슴을 주물러대고 있자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닭 다리를 뜯으며 다른 손엔 다음 닭 다리를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세 때문에 허리가 좀 아프고, 아까 맞아서 터진 입술 옆이 벌어지며 좀 쓰라렸지만 먼 미래를 위해 이 정도의 수고는 얼마든지 들일 수 있었다.

어떠냐, 숯불. 내 실력 죽이지 않냐.

네가 진작 마음만 열었으면 지금쯤 모텔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내가 내리는 은총을 누릴 수 있었는데 말이야.

앞으론 맘 편하게 나랑 섹스 좀 하면서 지내보자. 내가 얼마든지 위로해 줄게.

성기를 더 깊숙하게 빨아들이고 그 주변도 건드리며 제대로 맛을 보여 주고 싶었으나, 여전히 골반에 걸쳐진 채인 재강의 속옷과 바지 때문에 제약이 있었다.

일반적인 상대였다면 능숙하게 하의를 그러잡아 끌어내리며 ‘엉덩이 잠깐 들어 볼래?’ 하고 젠틀하게 꾸며낸 목소리로 물었겠지만, 재강은 그들과는 달랐으므로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무조건 모든 상황이 물 흐르듯 흘러가며 재강이 거기에 쓸려내려 오듯 보이게 만들어야 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 하게 된 듯 느껴지도록.

에휴, 이건 뭐, 다루기는 더럽게 힘들고 예민하기까지 하니, 원…….

아니야. 집중하자, 권명선. 이 고비만 딱 넘기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착하는 거야. 고비를 제대로 잘 넘기는 게 중요해.

명선은 아픈 허리를 달래가며 재강의 단단한 유두를 열심히 문지르고 성기를 정성 들여 빨았다.

“아…… 더 깊이 넣고 싶다.”

명선이 성기 끝에 입을 댄 채 더운 숨을 훅훅 섞어가며 속삭였다. 그리고 깊숙이 물면서 세게 빨았다가 다시 성기 끝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목구멍 끝까지 숨이 턱턱 막히게.”

재강은 명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숨만 씨근대는 중이었지만 곧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옳지, 옳지.

“그렇게 해도 돼?”

“…….”

“특별히 대답 없으면 예스의 의미로 받아들일게.”

명선은 계속해서 재강의 성기에 입술을 이리저리 미끄러뜨리며 속삭였다.

재강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명선이 재강의 바지 허리춤을 잡고 슬금슬금 끌어내리자 재강이 엉덩이를 슬쩍 들어 벗기기 좋게 만들어 주었다.

으이구, 이 앙큼한 자식.

새침한 놈을 조련하는 맛이란 게 또 있었네.

명선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재강의 하의를 허벅지까지 끌어내리고는 성기를 목구멍 깊숙이 꽂아 넣었다.

목이 자극되어 숨이 막히고 눈물이 배어 나왔다.

밖에서 삐걱삐걱 울리던 소리는 어느새 멈춘 채였고, 차 안은 명선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헐떡이는 소리만이 크게 울리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재강이 움찔거리며 뱉어내는 떨리는 숨소리도 들려왔다.

맛있어, 씨.

명선은 실제로도 눈물을 흘리고 정신적으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재강의 것을 열심히 맛보고, 가슴과 배도 열심히 애무했다.

저 머리는 똑 떼어 버리고 이 몸만 내 방에 갖다 놓고서 맨날 물고 빨고 핥고 주무르고 박고 박히고 했으면 좋겠다. 그런 자위기구가 나오면 진짜 대박일 텐데.

명선의 머릿속으로 행복한 상상이 날아다녔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이 정도면 일단 몸에 불은 잘 붙인 것 같고.

명선이 입을 떼고 축축한 눈가와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숨을 참고 있기라도 했던 듯 재강이 그제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은 여전히 꿋꿋하게 옆에 있는 창 쪽으로 돌린 채였다.

명선이 재강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조수석 쪽으로 넘어갔다.

몸을 최대한 구기고,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그리고 행여나 재강에게 무게를 싣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명선이 불쑥 위쪽으로 다가오자 재강이 당황한 얼굴로 명선을 올려다봤다.

그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어색함, 민망함 말고도 흥분 역시 가득한 게 명선의 눈에 들어왔다.

“야, 뭐…….”

명선이 곧장 등받이를 젖히는 바람에 재강은 포물선을 그리고 뒤로 벌렁 누우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명선은 재강의 다리 사이에 자신의 한쪽 무릎을 끼워 넣은 채 엎드려 재강을 내려다봤다.

한쪽 손은 시트 가장자리를, 다른 손은 재강의 가슴을 움켜쥔 채였다. 그 아래에서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게 느껴졌다.

아후, 몸 좀 봐. 미치겠네.

명선이 재강의 목으로 돌진하려는 순간 재강이 명선의 턱을 콱 잡아 밀쳤다.

“켁.”

명선은 차 천장에 뒤통수를 바싹 붙인 채 하관이 다 구겨진 얼굴로 재강을 내려다봤다.

“뭐…… 왜. 왜 올라타서, 씨발.”

재강이 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에효, 내숭 좀 그만 떠세요. 좆은 다 빳빳하게 서서 그런 말을 하면 진정성이 안 보이잖아요.

“이가 악고 힙흘 걱 가턔셔.” (네가 박고 싶을 것 같아서.)

명선이 턱을 잡힌 채 웅얼거렸다.

재강은 명선을 노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쎠, 아쎠, 거염 니가 이로 아. 내가 느으께.” (알았어, 알았어. 그럼 네가 위로 와. 내가 누울게.)

명선이 서둘러 덧붙였다.

재강은 얼마간 계속 명선을 노려보다가 얼굴을 놓아주었다.

“아, 근데 이 상태에서 위치를 바꾸는 건 네가 좀 불편하겠지? 내가 뒷좌석으로 갈까. 그게 낫겠다.”

명선은 최대한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목소리를 꾸며내며 다시 몸을 바싹 구기고 뒷좌석 쪽으로 넘어갔다.

좁은 차 안에서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자니 너무나 힘들었지만, 미래에 맞이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했다.

“네가 원하는 체위로 해. 콘돔이랑 다 구비돼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명선은 운전석 뒤쪽에 앉아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리며 무의식중에 턱짓으로 글로브 박스 쪽을 가리켰다.

일어나 앉은 재강이 그쪽을 바라봤다.

아, 내가 미리 꺼내서 이쪽으로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저 새끼가 꺼내 줄 리가 없잖아.

잠시 아차 싶었지만, 글로브 박스를 보고 있던 재강이 놀랍게도 손을 뻗어 박스를 열었다.

그렇지. 저 새끼도 욕정 앞에선 어쩔 수 없구만.

명선은 속으로 환호하며 하의와 신발을 다 벗어 던지고 얼른 운전석 시트를 앞쪽으로 밀어 공간을 좀 더 만들었다.

재강이 박스 안을 뒤적이는 동안 밖에서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차가 떠났다.

와, 오늘 무슨 날인가? 타이밍이 진짜 제대로네.

역시 카섹스 즐기는 인간들이 최고야. 꺼떡꺼떡 섹스 소리 내면서 분위기 쫙 깔아 주더니 지 역할 끝나니까 곱게 떠나면서 오붓한 자리도 마련해 주고.

이제 여기 우리 둘만 있는 거 아니까 얘도 긴장이 좀 풀리겠지.

“엎드려.”

재강이 바지와 속옷을 더 끌어 내리고 자신의 것에 콘돔을 씌우며 말했다.

엎드리면 몸을 잘 볼 수가 없는데.

명선은 아쉬워하면서도 얼른 몸을 돌리고 엎드렸다.

혹시 모르니까 다음엔 사방에 거울이 있는 모텔로 가서 해야겠어. 엎드려도 거울로 볼 수 있잖아.

곧 뒤에서 재강이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좁아터져서…….”

재강이 비틀거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치? 네가 새침하게 굴지만 않았어도 바로 모텔로 갔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담부턴 마음을 좀 열어. 그럼 몸도 편해지잖냐.

바짝 다가온 재강은 바로 명선의 엉덩이 사이에 침을 탁 뱉었다.

그러고는 성기 끝을 대고 문지르며 펴 바르듯 하다 쑥 밀어 넣었다.

“아흐윽……!”

명선이 재강에게 밀려 시트 구석으로 고개를 처박으며 소리를 삼켰다.

몸이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 강렬한 쾌락 역시 동시에 존재했다. 그 두 감각이 명선의 몸 안에서 거세게 뒤섞이며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으, 흐윽, 윽, 흐크윽.”

재강이 몸을 쿵쿵 부딪쳐댈 때마다 명선의 악문 이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차체가 거세게 흔들리고 명선의 몸 역시 들썩였다.

명선은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잔뜩 오그라든 채 눈을 꼭 감고 헐떡였다.

한동안 그렇게 거세게 박아대던 재강이 동작을 멈추고 자세를 조금 가다듬는가 싶더니 한 팔로 명선의 배를 휘감아 들어 올리며 엉덩이를 좀 더 높이도록 했다.

재강의 것이 더 깊숙이 들어오고 둘의 다리가 뒤엉켰다.

“아하아아아윽…….”

명선이 시트를 움켜잡으며 신음했다.

배를 단단히 안은 재강의 팔은 뜨거웠다. 둘의 몸에 난 땀 때문에 맞닿은 살이 계속 미끄러졌다.

미칠 것 같아. 아니, 씨발, 죽을 것 같아.

명선은 무아지경 속에 재강이 미는 대로 밀리며 흔들렸다. 목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는 더 참지 않고 그대로 내질렀다.

재강의 몸짓이 더 빠르고 격해지는 것이, 곧 사정할 것 같았다.

명선은 재강이 성기를 박아 넣는 박자에 맞춰 자신의 것을 잡고 세게 문질러댔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배를 잡은 재강의 손과 팔을 어루만졌다. 그 골격과 힘줄, 젖은 피부를 세세히 느끼며.

명선의 목은 이상한 각도로 꺾여서 차 문 쪽에 처박힌 채였다. 온몸이 불편하고 아프면서도, 아찔하고 황홀했다.

어느 순간 재강과 명선의 손에 힘이 더 꽉 들어가고, 둘은 동시에 사정했다.

그와 함께 동시에 길고 거친 신음도 뱉어냈다.

헐떡이며 몇 차례 더 성기를 깊숙하게 꽂아 넣는 재강의 아래에서 명선은 등과 허벅지를 부르르 떨어댔다.

명선은 재강의 피부가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땀이 끈적이면서 찔꺽대는 그 느낌에 집중하며 숨을 골랐다.

간질거리고 쫀득거리고 찰진 감촉이었다.

고요해진 차 안에서 얼마 동안 둘이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이 울렸다.

곧 재강이 명선의 배에 감고 있던 팔을 빼냈다.

그때까지 그 팔을 꽉 쥐고 있던 명선의 팔이 툭 내쳐졌다.

재강이 성기를 빼내고 물러나자 명선도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다 쑤시는 듯했다.

명선은 바지를 깔고 시트 구석에 털썩 앉았다.

재강은 조수석의 등받이가 걸쳐진 뒷좌석 구석에 불편하게 앉아 콘돔을 정리 중이었다. 바지와 속옷은 발목에 그대로 걸쳐진 채였다.

명선은 몽롱한 눈으로 재강의 종아리와 무릎, 허벅지, 번들거리는 성기를 훑어봤다.

이번엔 내 앞에서 끝까지 갔네.

하긴, 모텔 화장실처럼 도망갈 데가 없기도 했지.

한 번 쌌으니까 다음에도 안 도망가고 싸려나. 서로 몸에 싸기도 하면서 놀면 좋을 텐데.

재강이 몸을 일으켜, 열린 채인 글로브 박스에서 물티슈 팩을 꺼냈다.

그러는 동안 드러난 엉덩이와 허벅지 뒤쪽을 명선은 탐욕스럽게 바라봤다. 한 대 찰싹 때리고 길게 훑어 내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재강은 물티슈를 몇 장 뽑고 팩을 명선 쪽으로 던졌다. 명선도 물티슈를 뽑아 몸을 닦았다.

명선은 시트에 묻은 자신의 정액을 닦고 옷을 입었다.

재강도 말없이 몸을 닦고 옷을 끌어 올려 입었다.

나불대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명선은 재강이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일단은 도망간 애인 때문에 절망적일 순간을 잘 파고들었고 그 심리도 잘 이용했지.

뜻대로 안 되는 애인 대신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가 여기 있다고 어필한 게 잘 먹힌 것 같달까.

후후, 권명선. 똘똘했어.

재강은 옷을 다 추스른 후에도 얼마간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탁, 하고 문이 닫히자 차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명선은 차 문 옆에 얼마간 서 있다가 느릿느릿 걷는 재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재강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은 채 공터 끝까지 가 서서 그 앞쪽의 나무숲을 바라봤다.

야, 숯놈. 너도 지금 머리가 꽤 복잡하지? 근데 그럴 거 없어. 네 애인은 떠났고 내 몸은 여기 있단다.

너 같은 거한테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부터가 놀랍긴 한데, 어찌 됐든 그 사람은 똥차 버리고 잘 떠난 거니까 행운을 빌어 주고, 너는 이제 나랑 재밌게 지내보자.

명선은 신발을 신고 양옆의 문을 연 후 차 밖으로 나와 운전석과 조수석의 문도 열었다. 쓰레기들을 모으고 글로브 박스도 정리한 후 시트를 원위치시켰다.

후끈했던 차 안으로 바깥 공기가 들어오며 온도를 좀 식혀 주었다.

명선은 한쪽 다리를 차 밖으로 빼고 운전석에 비스듬히 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SNS 따위를 훑으며 돌아다녔다.

아직도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미약하게 짜릿짜릿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의 몸을 꽉 잡고 있던 재강의 손과 팔뚝, 뒤에 와 엉덩이를 두들겨대던 그 몸의 감촉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 환상적인 섹파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아?

멍하니 있던 명선의 코에서 떨리는 숨이 스르르 새어 나왔다.

그러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재강의 발소리에 명선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했다.

재강은 차 옆으로 와 잠시 서 있다가 뒤쪽의 문을 모두 닫고 조수석에 올라앉아 문을 닫았다.

명선이 헛기침을 작게 하고 핸드폰을 껐다.

재강은 말없이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다 안전벨트를 맸다.

“가자.”

재강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금 쉬어 있었다.

명선이 고개를 끄덕이고 시동을 걸었다.

가든으로 돌아가는 동안 재강이 입을 다문 채 창밖만 보고 있자 명선의 머리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대화를 지금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대로 그냥 바이바이 하고 헤어지면 다음에 또 이런 식으로 공을 들여야 되는 건지, 그냥 모텔로 불러도 군말 없이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

확실히 하고 나서 헤어지고 싶다고. 지금 안 하고 나중에 또 꼬치꼬치 물어보면 짜증 낼 거 아냐. 가뜩이나 예민한 놈이…….

가든에 가까워질수록 명선은 속이 탔지만 재강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갑자기 또 엉뚱한 길로 빠지며 드라이브를 더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는 속절없이 달려 가든에 다다랐다.

주차장 앞쪽에 차가 멈추자 재강이 안전벨트를 풀고 발치에 있던 배낭을 집어 들었다.

“야.”

재강이 문을 열려는 순간 명선은 더 참지 못하고 재강을 붙잡았다.

팔을 잡는다는 게 허벅지를 붙잡는 바람에 명선은 흠칫하며 손을 뗐다가 재강의 팔을 슬쩍 잡았다.

재강은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명선의 손을 바라보다 눈을 맞췄다.

명선은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내일…… 일 끝나고 또 같이 놀래?”

“…….”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늘처럼.”

재강은 한동안 말없이 명선의 눈을 쏘아보는 듯하다가 자신의 팔을 잡은 명선의 손을 떼어내더니 시트에 등을 기댔다.

앞 유리 너머를 바라보던 재강이 천천히 입을 뗐다.

“너…….”

“…….”

“나랑 섹스하는 거에만 관심이 있는 거라고? 딴마음 있는 게 아니라?”

“딴마음?”

“……날 좋아한다거나.”

명선은 저도 모르게 구역질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내가? 너를? 연애 감정으로?”

“…….”

“연애할 마음 자체도 없지만 너랑은 더더욱 아닌데? 나도 비위라는 게 있지.”

속에 있는 말을 다 해놓고 명선은 문득 아차 싶었다.

혹시 나랑 사귀고 싶어서 그런 걸 물어본 건 아니겠지? 나한테 반했나? 내 대답에 마음 상해서 섹스 안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아니. 으. 설마 그럴 리가.

나한테 반한 사람이 워낙 많긴 하지만, 얘 같은 인간까지도 그럴 것 같진 않아.

그래도 말이 너무 심했나? 기분 정도는 맞춰 줘야 되는데.

“아니, 그러니까, 네 몸은, 좋지. 나는 네 몸만 좋다는 거지. 말하자면.”

명선이 서둘러 덧붙였다.

“말했잖아. 네 몸이 완전 100퍼센트 내 타입이라고.”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멋있는지 칭찬해 줘야 하나? 근데 그걸 일일이 다 어떻게 설명하냐고, 그냥 느낌인데.

빌어먹을, 까다로운 새끼 어쩌다 잘못 만나가지고 이게 뭐야.

“너도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근데 일단 섹스는 할 만했던 거고. 그런 거야. 연애는 필요 없고 섹스는 필요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득만 취하는 거랄까. 게다가 너는 나한테 뭐든지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수 있다는 개이득까지 챙긴 거고. 난 그런 거 좋아하거든. 누가 나한테 막 대하는 거.”

그런 걸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재강을 공략하기 위해 명선은 아무렇게나 말을 지어냈다.

“야, 그리고 솔직히 연애 그런 거, 좀 싫지 않냐? 이것저것 신경 써 줘야 되고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감정 소모되고, 그게 뭐야. 그냥 필요한 것만 제공하고 챙기는 관계가 훨씬 효율적이고 재밌지. 나는 연애 하도 해봐서 이제 질린다.”

연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역시나 재강을 공략하기 위해 명선은 계속 말을 지어냈다.

재강은 명선이 그러는 동안 시선을 앞쪽에만 둔 채 말이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이대야 되겠냐, 이 새침한 새끼야.

“네가 나랑 놀아 준다고 하면 모텔비랑 콘돔 같은 기타 비용은 다 내가 댈 수 있어. 술이 먹고 싶다고 하면 사주고, 차로 실어다 주고 실어 오고, 뭐 그 외에 네가 일 끝나고 드라이브하고 싶다면 그런 것도 가능해. 카섹스는 말할 것도 없고.”

“…….”

“그럼 어떻게…… 내일도 나랑 놀래?”

명선이 재강 쪽으로 고개를 살짝 들이밀며 은근하게 물었다.

곧 재강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봐서.”

재강은 짧게 말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 * *

늦은 오후, 가든 주차장에 차를 댄 명선이 밖으로 나와 문을 쿵 닫았다.

어제 재강에게 얻어맞아 피까지 났던 그 입술 옆은 여전히 좀 벌겠고, 팔엔 밴드가 몇 개 붙어 있었다.

명선은 햇빛에 부신 눈을 살짝 찌푸린 채 서서, 텅 비어 있는 재강의 자전거 주차 자리를 바라봤다.

어젯밤 재강이 떠나며 남긴 말이 다시 떠올랐다.

“봐서.”

뭘 보겠다는 건지.

내 벗은 몸을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라고 하겠지만, 뭐 당연히 그런 건 아닐 거고.

근데 그런 대답이 어딨어?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물론…… 아니라고 했다면 나는 설득하기 위해서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긴 했겠지만.

명선은 여전히 이마를 조금 찌푸린 채 느릿느릿 정원을 지나 뒤뜰 숯불 방으로 향했다.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고 조심스럽단 말이야. 100퍼센트라 그런가. 무슨 끝판왕도 아니고.

뭐, 공략하기 힘드니까 끝판왕이라고 볼 수도 있긴 하지.

명선은 고요한 숯불 방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다 의자에 앉았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놀다 보니 곧 건물 모퉁이에서 재강이 나타났다.

아이고, 끝판왕 행차하시네.

명선이 핸드폰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숯불, 일찍일찍 좀 다녀라.”

“안 늦었거든.”

“우리끼리 나눌 담소가 있는데 그 시간 정도는 계산해서 더 일찍 왔어야지.”

“뭔 담소. 쉰 소리 하지 말고 꺼져.”

재강은 벽에 배낭을 걸고 앞치마를 입었다.

불판 세척기 앞으로 가는 재강의 뒤를 명선이 따라가 바짝 붙어섰다.

“좀 봤어? 결론은?”

재강이 한 발짝 물러나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긴 뭘 봐? 무슨 결론?”

명선은 재강이 물러난 만큼 다가섰다.

“어제 차에서 내리면서 그랬잖아. ‘봐서.’ 그래서 그 결론이 어떻게 났냐고.”

재강이 명선의 얼굴을 바라보다 팔뚝으로 가슴팍을 밀었다.

“일할 거니까 꺼지라고.”

명선이 그 팔을 붙잡았다.

“결론이 뭔데.”

재강이 명선의 눈을 노려봤다.

“안 놔?”

“결론.”

“놔.”

“결론.”

재강이 뒤쪽을 슬쩍 보고 팔을 홱 뿌리치면서 명선의 몸을 밀쳤다.

명선은 옆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가 재강이 세척기 앞에 서는 순간 앞치마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양 가슴을 꽉 쥐었다.

“이거 좋아하지?”

“죽, 고 싶……!”

재강이 팔꿈치를 세워 뒤쪽을 향해 날린 순간 명선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숙이며 피했다.

“…….”

명선을 향해 돌아선 재강이 눈을 크게 뜬 채 그 얼굴을 노려봤다.

몸을 숙이고 재강을 쳐다보던 명선이 킥 웃으며 허리를 펴고 섰다.

“야, 나도 싸움 좀 해본 놈이야. 맨날 맞지는 않는다고.”

“…….”

재강은 명선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발만 움직여 정강이를 걷어찼다.

“크옥!”

명선이 걷어차인 다리를 쥐고 잔디를 깨금발로 뛰어다녔다.

재강은 한숨을 쉬며 돌아서서 불판을 세척하기 시작했다. 뒷모습에 짜증이 가득해 보였다.

아휴, 정말.

명선은 얼얼한 다리를 문지르다 절뚝대며 옆 칸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아무리 그래 봐라, 내가 포기하나.

이럴 때 엄마의 기독교적 가르침을 떠올리는 거지.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계속 두드리면 열리는 거야. 열리게 돼 있어.

곧 세척을 끝낸 재강이 기계를 끄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명선은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재강이 신경질적으로 목장갑을 벗어 선반에 던졌다.

“어쩌자고, 씨발. 원하는 게 뭔데.”

“일단 오늘 끝나고 한 판 어때.”

“넌 지치지도 않냐?”

“한 번 할 때 네다섯 번씩 쌌으면 물론 나도 지쳤겠지. 근데 생각해 봐. 할 때마다 딱 한 번씩만 쌌어. 내 나이에 그 정도로 지치는 건 말이 안 되지.”

“…….”

“진짜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만들고 싶으면 두 시간 동안 다섯 번 정도 싸게 만들어 주든가.”

재강은 명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느릿느릿 앞치마를 벗었다.

명선의 눈이 자연스레 재강의 몸을 훑었다.

“너한테.”

재강이 입을 열자 명선은 다시 재강의 얼굴을 바라봤다.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된다며.”

오호.

명선이 슬며시 미소를 띠면서 눈썹을 한 번 들어 올렸다 내렸다.

“그렇지.”

“오늘 카운터 볼 때 바지 벗고 있어. 그 뒤에 앉아 있을 때.”

미간을 살짝 찡그린 명선의 얼굴에서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음?”

“그 카운터 뒤에 앉아 있을 땐 무조건 바지를 이만큼 내리고 있으라고.”

재강이 자신의 무릎 쪽을 가리켰다.

포스기와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있는 카운터 책상은 앞쪽이 다 막혀 있어서 그 뒤에 앉아 있으면 상대에게 하체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굳이 그 안쪽으로 들이밀지 않는 한.

“팬티까진 그대로 입고 있게 해줄게.”

“야, 뭔 소리야, 그 위에 CCTV 있어.”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 정도도 못 해? 그럼 관두고.”

“…….”

“담소 끝난 거 같으니까 이만 꺼져라.”

재강이 다가와 명선을 일으켜 세우려 하자 명선은 얼른 팔을 휘저었다.

“잠깐, 잠깐.”

“…….”

“그냥…… 무릎까지 바지만 내리고 있으면 된다고? 그 뒤쪽에 앉아 있을 때?”

카운터 뒤에 안 있고 계속 앞에 나와 있으면 되지, 뭐.

“그렇다고 해서 그 뒤쪽에 안 앉고 계속 밖에 나와 서 있으면 무효야.”

“쳇.”

은근히 치밀하잖아.

“그러고 있다가 손님들이나 직원들한테 들켜도 무효고, 그 뒤에 앉아 있을 때 바지 안 내리고 있어도 무효다. 계속 오가면서 확인할 거야.”

“흠…….”

명선이 팔짱을 끼고 눈을 깜박였다.

모든 CCTV는 사각지대가 있지. 정 안 되면 내가 몰래 각도를 좀 틀어놔도 되고.

일단 그건 어떻게든 될 것 같고…… 또 뭐가 있지? 옷?

오늘 입은 바지는 버클이랑 지퍼가 있는 타입이라 후다닥 올리고 내리기엔 용이하지가 않아.

그래도 티셔츠가 박시한 편이라 좆 부위를 가릴 정도는 내려온단 말이지.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확보된 셈이랄까.

아, 그리고 오늘 입은 팬티!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예쁜 거로 탑 파이브에 드는 거잖아.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예쁨이라고.

진짜 만에 하나 누가 이걸 본다고 해도, 어쩌면 예쁘다고 생각만 하고 그냥 지나갈지도 몰라.

그래. 변태로 보일 수가 없지.

변태라면 이런 예쁜 팬티를 입지 않을 거야. 아예 팬티를 안 입겠지.

명선이 그러는 동안 재강은 느긋한 얼굴로 명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명선이 재강과 눈을 맞추며 일어섰다.

“해보지, 뭐.”

“…….”

재강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들키면 무효랬으니까 들키지 않기 위해서 하는 짓은 뭐든 상관없는 거지? 다급하게 신문으로 그 위를 덮는다든가.”

재강은 말없이 있다가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제대로 하면 오늘 끝나고 같이 모텔 가는 거다.”

“그러든가.”

“앞으로도 나랑 계속 같이 노는 거고.”

재강은 명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갑자기 킥 웃었다.

“알았다.”

“뭘 웃어?”

“알았다고. 이제 꺼져.”

“아, 왜 웃는데? 뭐가 웃겨?”

“비웃는 거야. 하도 멍청해 보여서.”

“그 멍청한 짓을 시킨 게 누군데.”

명선이 입을 비죽거렸다.

“암튼, 저녁 장사 시간만 하는 거지? 정확히 4시 반부터 10시까지. 오케이?”

재강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서 가라는 손짓만 휘휘 내저었다.

“이따 보자. 아, 그리고 내 덕에 의자 새로 샀더라. 고맙지?”

명선이 의자를 가리키고는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뒤뜰을 지났다.

그 멍청함으로 얼마나 좋은 걸 얻어낼 수 있는지 내가 똑똑히 보여 주마.

* * *

저녁 장사 개시 후, 재강이 첫 숯불을 가지고 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명선은 바지를 내린 채 카운터에 바싹 붙어 앉아 있다 재강과 눈이 마주치자 이쪽으로 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재강은 무시하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가 빈 쇠막대를 들고 나왔다.

“숯불.”

명선이 작게 불렀지만 재강은 무시하고 쌩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 쟤 뭐야. 왜 저래?”

명선은 불평하면서도 그대로 앉아 재강을 기다렸다.

그 후로도 재강은 카운터 앞을 계속 오가는 동안 명선을 무시했다.

꿋꿋이 앉아 있던 명선은 결국 바지를 올려 입고 카운터 바깥쪽으로 나와 섰다.

홀에서 나오는 재강의 곁에 명선이 후다닥 따라붙어 팔뚝을 잡았다.

“야, 뭐 하는 거야. 검사를 해야 할 것 아냐.”

“무슨 검사.”

“바지 벗고 있는지 확인.”

“내가 확인하고 싶을 때 하는 거지, 그걸 왜 네가 정해서 오라 가라야?”

“아, 짜증 나는 새끼.”

명선이 툴툴거리며 다시 카운터로 갔다.

재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곧 저녁 시간이 무르익어 손님도 많아지고 명선과 재강 둘 다 바빠졌다.

명선은 뻣뻣한 자세로 카운터 책상에 바싹 붙어 손님들을 상대했고, 재강은 여전히 눈길도 주지 않고 그 앞을 지났다.

명선은 부모나 손님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온몸이 경직되는 기분이었지만, 평소의 능청스러움을 최대한 발휘해 위기를 넘겼다.

손동작을 크게 하고 더욱더 생글거리며 말을 많이 하는 게 나름 도움이 되었다.

평소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상냥한 명선의 모습을 보는 정식과 양자의 얼굴에서 얼핏 흐뭇함이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재강이 발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명선은 카운터 안쪽에 앉아 있는 자신의 훤히 드러난 허벅지를 틈틈이 영상으로 찍어두기도 했다.

영상 안에 손목시계를 노출해 시간을 명시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거 보고서도 딴소리하면 진짜 사기꾼이지.

조금이나마 한산해질 무렵, 명선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홀에서 누군가 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불이 거의 다 꺼진 숯 통을 막대에 꿰어 든 재강이 다가오고 있었다.

명선은 얼른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눈만 굴려 주변을 둘러봤다.

재강이 카운터 옆쪽으로 들어오자 명선은 그를 끌어당겨 CCTV의 사각지대 위치에 오게 하고는 회전 스툴을 재강 쪽으로 돌려 앉았다.

명선의 바지는 무릎에 걸쳐진 채였고 양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속옷 부분은 티셔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

재강은 명선의 허벅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말없이 돌아섰다.

“봤으면 뭔 말이라도 좀 하든가.”

그대로 나가 버리는 재강의 뒤통수에 대고 명선이 낮게 툴툴거렸다.

암튼 맘에 안 들어. 몸 빼고는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명선은 다시 카운터 책상 안으로 벗은 허벅지를 밀어 넣고 핸드폰을 켰다.

잠시 후 재강이 양손에 숯 통 하나씩을 꿰어 든 채 안으로 들어왔다.

명선과 짧게 눈을 맞춘 재강은 오늘 내내 그랬던 것처럼 무심히 홀 안으로 들어갔다.

“흥.”

명선은 그 뒷모습을 한 번 노려봐 주고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러다 손님들이 나오자 얼른 과장되게 생글거리며 일어섰다.

계산을 끝낸 손님들이 떠날 무렵 홀 밖으로 나오는 재강이 보였다.

빈 쇠막대를 든 재강은 손님들의 뒤를 이어 입구로 나가는 듯하더니 우뚝 멈췄다가 돌아봤다.

명선은 턱을 괸 채 재강을 보다 그가 다가오자 천천히 허리를 폈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던 둘은 동시에 눈만 굴려 주변을 살폈다.

재강이 카운터 옆쪽으로 오자 명선은 아까처럼 의자를 돌려 훤히 드러난 허벅지를 보여 주었다.

그 허벅지를 내려다보던 재강이 쇠막대를 명선 쪽으로 들이밀었다.

명선은 움찔하며 아래쪽을 내려다봤다가 그 쇠막대 끝이 자신의 티셔츠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자 다시 재강을 쳐다봤다.

들린 티셔츠 아래로 명선의 속옷이 드러났다.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재강의 얼굴을 보다, 명선은 문득 몸이 서서히 뜨거워짐을 느꼈다.

곧 재강이 쇠막대를 치우고 물러섰다.

재강의 눈이 명선의 허벅지에서 배와 가슴을 훑으며 위로 올라왔다.

명선의 시선은 계속 재강의 그 얼굴에 고정된 채였다.

재강은 명선과 짧게 눈을 마주치더니 무심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멀어지는 재강의 등을 보며, 명선은 자기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숯불 좀 넣어 주세요』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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