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부모님께 동성인 소꿉친구하고 사귈 예정이라고 말씀드리기 알맞은 장소는 과연 어떤 곳일까.
최수호네 어머니가 선택한 호텔 레스토랑은 어째 금방이라도 돈 봉투가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긴 했어도 본새 나긴 했다. 보통은 조용한 식당이려나.
뭐가 어쨌건 간에 닭갈빗집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다.
“옛날에는 수호가 매운 거 못 먹어서 내가 일일이 씻어 줬는데. 기억나?”
“이제 잘 먹어요.”
그것도 중학교 때부터 무시로 드나들었던 단골 닭갈빗집.
최수호가 모자를 벗고 밥을 먹어도 사장님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철판에 닭 볶느라 정신이 없어 그런지 이상하게 이 집에서는 연예인인 최수호한테 아는 척하는 사람을 별로 못 봤다.
“닭갈비 더 달라고 할까? 볶음밥도 먹어야지.”
이건 뭐, 분위기가 안 잡힌다.
철판에 닭갈비를 볶아 주러 계속 드나드는 주인 할아버지는 물론, 옆 테이블에서는 애들이 뛰어다녔다. 노란색 장판에 황토색 쿠션을 깔고 앉아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서 커밍아웃할 타이밍을 재자니 비장미가 영 떨어진다.
분명 처음 계획은 여기보다는 조용한 데서 만나는 거였다. 아빠가 닭갈비가 먹고 싶다고 했다며 엄마가 대뜸 약속 장소를 통보하지만 않았더라도,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은 철판 닭갈빗집에 오진 않았을 거다.
“넌 왜 안 먹어. 식단 조절 때문에?”
“대회 막 끝나서 한 끼 정도는 괜찮아. 그게 아니고, 나 할 말이…….”
“그러면 볶음밥 말고 막국수 시킬래? 너 막국수 좋아하잖아.”
분위기 잡으려다 시간 다 가게 생겼다. 닭갈비에 막국수까지 다 먹고 막걸리도 한 사발 마셔야 커밍아웃할 기회 생기겠네.
“수호야, 우리 술도 한잔할까?”
“여보, 다 먹고 무슨 술이야.”
“저 내일도 촬영이라 많이는 못 마시는데.”
“저기요. 박 여사, 정 사장. 나 말하잖아. 좀 집중해 주라.”
“집에는 못 들어와. 엄마랑 아빠가 허락해도, 진이가 너 매일 운동하느라 들락날락하는 걸 두고 보겠어?”
“누가 집에 들어간대? 오라고 해도 안 들어가거든? 나도 천 관장님 댁에서 훈련하는 게 더 편해요.”
깻잎에 닭갈비를 싸면서 투덜거리자 맞은편에 앉은 엄마가 갑자기 입술을 앙다물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너는, 애가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니?”
역시.
내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방방 뜨기만 하던 분위기가 엄마의 촉촉한 음성 한 방에 눅눅하게 가라앉았다.
감수성 예민한 박 여사님은 둘째 아들이 또 원수 같은 복싱을 하겠답시고 짐 싸서 나가 버리는 바람에 지금껏 심란하신 듯했다. 가출한 지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났건만 익숙해지시긴커녕 아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여전히 가슴이 싸해질 만큼이나. 내 죄가 크다.
“아, 엄마. 그게 아니고.”
“열이가 어머니 계속 걱정했어요.”
나하고 최수호가 쩔쩔매도 엄마는 입술만 삐죽였다.
“정열 너 이 자식, 내 여자 섭섭하게 하지 마라.”
아빠가 누가 봐도 오버하면서 식탁에 수저를 탁, 내려놓았다. 박 여사의 영원한 내 남자, 정 사장이 나설 타이밍이라고 예상은 했다.
“역시 아들보다는 여보야.”
예상했는데, 막상 당하니 황당하다. 지금 제가 두 분의 알콩달콩한 애정 행각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요.
“아무리 아들이라도 우리 연숙이 속상하게 하면 못 참아.”
“의철 씨.”
나야말로 못 참겠다. 이러다 닭갈비만 맛있게 먹고 헤어지게 생겼다.
“박연숙 씨, 정의철 씨. 저도 얘기 좀 합시다.”
“너는 왜 또 눈을 부라리고 그래.”
“진지하게 할 말 있으니까 들어 봐.”
“듣고 있어. 언제 안 들었다고.”
“막국수 지금 시킬까?”
“아, 좀! 나 최수호랑 사귈 건데 허락해 줘.”
막판에 버럭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내가 말해 놓고도 아차 했다.
다행히 주변 데시벨이 나보다 한참 높아서 살았다. 특히 주인 할아버지가 틀어 둔 트로트 방송에서 울리는 구슬픈 곡조가 큰 도움이 되는 중이다.
그래도 맞은편의 닭살 커플한테 들리기에는 충분한 성량이었다.
“어머.”
엄마가 드디어 말을 멈췄다.
아빠도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이제야 분위기가 조금쯤 잡히는 것 같았다. 물론 우리 테이블만 조용해졌지, 옆에서는 여전히 애들이 양팔을 휘저으며 제트기 놀이 중이고 가게 TV에서는 트로트 경연이 한창이지만.
내가 머릿속에서 연습했던 장면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홀딱 망한 것 같기는 한데, 겨우 시합 종을 울렸으니 어떻게든 남은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할 말 있으면 해도 돼.”
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일부러 목소리를 깔았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면 나도 내 최수호한테 뭐라고 하지 말라고 할 각오다.
아빠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와 최수호를 번갈아 바라보며 얘기했다.
“일단 막국수는 몇 인분 시킬까.”
* * *
아이스크림이 차고 달다. 닭갈빗집 입구에 무료로 설치된 기계에서 뽑은 아이스크림은 좀 묽었지만 먹을 만했다.
“나머지 너 먹어.”
콘에 고스란히 남은 아이스크림을 최수호에게 건넸다. 부모님이 계산하면서 사장님하고 떠드는 사이, 우리는 가게 앞에 나란히 서서 밤거리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한 입밖에 안 먹었잖아.”
“식단 조절.”
“불쌍한 열이.”
최수호가 콘을 받아 들었다. 새하얀 아이스크림이 최수호의 입술 사이로 사라져 간다.
“최수호, 묻었어.”
최수호의 입가에 녹은 아이스크림이 맺혔다. 닦아 주려고 손을 뻗자 최수호가 내 손에 머리를 기댔다.
손등에 머리카락이 닿아 간지럽다. 날 쳐다보는 최수호의 눈빛은 더 간지러웠다.
“뭐 해. 놔 봐, 닦아 주게.”
당장 떨쳐 내고 하던 걸 하려고 해도, 최수호는 내 손을 가만히 두질 않았다. 아예 붙잡아서 스스로 입술을 가져다 댔다.
끈적거리는 입술이 손바닥 안쪽에 닿는다. 닦아 주는 게 아니라 최수호가 닦아 내는 꼴이다. 혹은 다 묻혀 놓고 있다고 해야 하나.
쪽.
최수호가 손바닥에 입술을 댔다 뗄 때면 낯 뜨거운 소리가 났다. 어디까지 하나 보려고 둬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여 엄지와 검지로 최수호의 입술을 잡아 버렸다.
“하여간 말 안 듣지.”
“웅.”
최수호는 오리처럼 입술을 잡힌 채로도 열심히 대꾸했다. 귀여우라고 일부러 이러는 건가?
“귀여운 짓 하지 마.”
새 부리처럼 튀어나온 최수호 입을 붙잡아 좌우로 흔드는데, 최수호가 내 쪽으로 점점 더 고개를 숙였다. 귀여운 짓 관두랬더니 바로 못된 짓을 하고 있다.
“야, 그만…….”
나는 밀어내려고, 최수호는 엉겨 붙으려고, 둘이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출구에서 부모님이 걸어 나왔다. 하필이면 이런 때 나오고 난리다.
후다닥 떨어진 나와 최수호를 부모님은 흘깃 보더니 혀를 찼다.
“한창때다, 한창때야.”
장난스러운 탄식에 순식간에 귀까지 열이 올랐다. 한창때인 거 맞기는 한데요.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을 부모님하고 같이 걷기가 영 어색하다. 음식점은 집 바로 근처였다.
“수호는 집에 들어가니? 열이 너는?”
“난 최수호네 집.”
오늘은 최수호네서 자고 내일 촬영장에 같이 가기로 했다. 같은 동네인 우리 형네 체육관이 촬영지라 가능한 일정이다. 영화 촬영이 아니라 그냥 아는 사람끼리 하는 동네 행사 가는 기분이다.
“잘 들어가.”
엄마하고 아빠는 갈라지는 길목에서 미련 없이 손을 흔들었다.
“나랑 최수호한테 뭐 더 할 말 없어?”
“오늘 밤에 비 올 지도 모른다니까 창문 닫아 놓고 자.”
아무래도 우리 엄마랑 아빠는 아들이 남자를 사귄다는 사실보단 오늘 밤 날씨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런 거 말고.”
“수호가 다 받아 준다고 수호 괴롭히지 말고.”
“무슨 내가 최수호를 괴롭혀.”
최수호가 날 괴롭히면 모를까. 하여간 뭘 모른다. 엄마나 아빠나 최수호는 날개 없는 천사인 줄 알지, 악독하게 굴면 쟤 거의 악마거든요.
“제가 잘할게요.”
최수호가 말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낯간지럽게 들리는지. 잘하긴 뭘 잘해.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사이에 두고 최수호랑 우리 부모님만 평온했다.
“진심으로 그게 다야? 뭐 더 없어, 진짜로?”
“뭐를 자꾸 캐물어. 시간 늦었다. 둘 다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서 자기나 해. 수호, 나중에 우리 집 와서 반찬 가져가.”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가서 주무세요.”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최수호 옆에서 나도 설렁설렁 손을 흔들었다. 팔짱을 끼고 서로 기댄 채 사라지는 엄마랑 아빠는 좋아 보이다 못해 깨가 쏟아진다.
사귈 거라고 고백한 건 나하고 최수혼데, 척 봤을 때 알콩달콩 연애 중인 건 단연 우리 엄마, 아빠였다.
“뭐 이러냐.”
허탈한 마음에 최수호와 나란히 걸으며 중얼거려 봤다.
이래서야 평소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냥 닭갈비에 막국수나 먹고 헤어진 거 아닌가.
“가서 반대해 달라고 부탁드릴까?”
최수호가 장난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약간 서늘했다. 그렇다면 최수호한테는 내 손이 따뜻할 테니까, 만족스러운 온도다.
“그게 아니라 하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니까 그렇잖아. 제대로 들은 건 맞나 싶다고.”
최수호 어머니에 이어서 우리 부모님까지 반응이 아주 뜨뜻미지근하다. 그나마 우리 형이 혼자서 오해하고 삽질하던 게 제일 격한 반응일 줄이야.
“열이 네가 너무 비장해서 더 그러신 거 아닐까.”
“내가?”
“응. 시합 나가는 줄 알았어.”
그랬나? 가게 들어가면서 언제 말해야 하나 계속 타이밍만 재긴 했어도 티가 날 정도인 줄은 몰랐다.
“사실 닭갈비 처음 시킬 때부터 되게 티 났어.”
“진짜로? 내가?”
쪽팔린다. 내가 이 깍, 깨물고 떨고 있다는 걸 나 빼고는 다 알았다는 게.
“그렇게 티가 나는데 왜 닭갈비에 막국수 얘기만 하고 있냐.”
“너 원래 시합 직전에 주변에서 같이 떨면 더 힘들어하잖아.”
“아닌, 데.”
급하게 부정하느라 혀를 깨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