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최수호는 몸도 예쁘게 생겼다. 자라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피지컬도 타고난다는 걸 느꼈다. 키는 물론이고 골격부터 잘 빚어진 신체다.
가운 밑으로 드러난 다리가 길쭉하고 곧다. 어깨는 넓고, 목은 길고, 커다란 손에 마디만 살짝 도드라진 손가락까지. 그냥 허술하게 앉아 있어도 그림이 된다.
타고난 미인은 얼굴뿐만 아니고 몸까지 그냥 완성형으로 나오는구나.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게 이기적인 유전자지.
지금껏 그렇게만 생각해 왔는데.
“옷 여며라.”
왜 쳐다도 못 보겠지.
발가벗고 한 욕조에서 놀던 사이에, 왜.
“옷? 이거?”
“네가 걸친 게 가운밖에 더 있어?”
“열아, 어떻게 알았어?”
“뭘 알아.”
“나 속옷 안 입은 거.”
갑자기 얼굴이 뜨뜻하게 달아올랐다. 아, 진짜. 정열, 미쳤나. 이런 데 왜 반응하냐고.
“지금이라도 입어, 미친놈아.”
“뭐 어때. 우리 둘밖에 없잖아.”
“내가 불편하니까 입어.”
“불편해? 왜?”
순진하게 묻는 게 왜 이렇게 얄미울까. 다 알면서 의뭉 떠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열아, 얼굴 빨개.”
“……방이 더워서.”
“방은 덥고 나는 잘생겼어?”
“병원 가면 네 그 왕자병도 고쳐 주냐?”
“나 그 표정 잘 알아. 네가 지금 나 보면서 짓는 표정.”
최수호가 느긋하게 웃었다.
“사람들이 나랑 자고 싶어 할 때 하는 표정인데.”
숨이 턱 막혔다.
“……미친 새끼가.”
침대에서 한 발 떨어지려 들자 최수호가 내 팔을 붙잡았다.
“자고 가자며.”
“그, 뜻으로 말한 거 아니다.”
눈빛만 봐도 자기랑 자고 싶어 하는지 파악이 된다니, 최수호의 연예계 생활은 내 생각보다 무지막지했던 걸까.
여기가 최수호가 수십 번 싸워 본 링이라면, 방금 링에 올라온 나는 막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초짜인 셈이다. 최수호가 저따위로 그윽하게 쳐다볼 때마다 휘청거리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거다.
최수호의 눈이 샐쭉 가늘어졌다.
“그럼 왜 자고 가자고 한 건데, 응?”
“눈빛이 음란하다. 눈 돌려.”
“마음은 더 음란해.”
아주 가지가지 한다. 들어 준다고 아무 말이나 하고 있다.
이러다가 오늘에야말로 일 치겠다.
이번에야말로, 최수호가 아니라 내가.
“이왕 나온 김에 너랑 같이 있으려고 자고 가자고 한 거지.”
난방이 갑자기 세진 것도 아닐 텐데 열이 오르는 기분이라 고개를 돌렸다. 최수호 얼굴을 보고 있으면 더 더워질 것 같아서.
“나는 이제 훈련 들어가고 넌 촬영 준비해야 할 텐데, 당분간 서로 만나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정말이다. 흑심 때문에 자고 가자고 한 게 아니다. 최수호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 약간, 아주 약간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까 연락 드렸더니 사범님이랑 관장님도 당분간 못 쉴 테니까 잘 놀고 오라고 하시더라고. 선전 포곤지, 뭔지.”
체육관 돌아가면 아마 기초부터 시작해 경기 일정까지 촘촘하게 잡힌 계획표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안 그래도 ‘정열 훈련표’ 프로토타입을 오늘 아침에 흘깃 봤는데 어마어마했다.
빡빡한 훈련 일정에 불만은 없다. 다만 최수호하고 보기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자 섭섭했다.
훈련하느라 최수호랑 붙어 있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신경 쓰이고 아쉬웠다. 어릴 때부터 최수호는 촬영, 나는 운동, 각자의 일로 바빠지는 건 일상처럼 흔한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 최수호의 눈길이 의식돼 아예 침대에 누워 버렸다.
최수호는 아직도 내 팔을 잡고 있었다. 잡히지 않은 팔로 눈가를 덮어 버렸지만,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닿은 부분에 더욱 신경이 쏠렸다.
“사람들이 너랑 양용배랑 아주 이참에 사귀었으면 좋겠다더라.”
“……그거 봤어?”
최수호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못 봤겠냐? 인터넷만 켜면 그 소린데.”
“사람들끼리 그냥 하는 우스갯소리야.”
“누가 모르냐.”
말을 고르는지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내 팔을 쥔 손아귀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더 적나라하다.
“또 물어볼까 봐 미리 말해 주는 건데, 질투 안 해.”
양용배랑 엮이면 뭐 맨날 질투하는 것처럼 되는데, 사실 진지하게 질투하기엔 최수호는 날 너무 좋아하고, 양용배는…… 양용배다.
양용배가 들었더라면 내가 뭐가, 어때서 그러냐고 목에 핏대를 세웠을 게 뻔하다. 그래도 용배는 용배니까.
양용배한테 진지하게 질투를 하기는 좀.
“그냥 너랑 내가 생각보다 멀리 있구나, 싶어서.”
소식을 접하고 들었던 감정은 질투보다는, 씁쓸함이나 쓸쓸함에 가까웠던 것 같다.
“네 직업도, 상황도 알고는 있었는데 이럴 때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네 세상이 있구나, 싶어서…… 그냥, 그게 좀.”
모르던 것도 아닌데 이제는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수호는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뜨거운 손으로 내 팔을 단단히 쥔 채로.
“학교 다닐 때는 너나 나나 그래도 학생이었잖아. 바쁠 때 말고는 학교에서 계속 얼굴 보고, 같이 시험 치고 집에 가고.”
“응.”
“근데 이제 아니니까, 그게 좀 낯설기도 하고. 하여간…… 사는 세상이 다르구나, 점점 달라지겠구나 싶으니까…….”
단순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뻔했다.
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운동하다 학교 가서 최수호하고 같이 밥 먹고, 하교하고, 그저 의구심 없이 나아가던 시절, 최수호와 껴안아도 아무 떨림도 없던 단순 명료한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형과 그랬듯, 최수호하고도.
“몰라. 기분 이상해.”
친구일 때하고는 다른 거구나.
좋아하는데 어떻게 친구를 하냐는 최수호의 말이 이렇게 절절하게 이해가 갈 줄이야.
확실히 이런 마음으로는 친구는 못 하겠다.
“열아.”
언제 들어도 최수호는 발음이 좋다. 어떤 복잡한 대사를 해도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발성이다.
힘주어 내 이름을 부를 땐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 내 존재를 지금, 여기로 데려다 놓는 느낌마저 들었다.
“열아, 너도 나를 다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
최수호가 내 손을 잡았다. 손가락을 사이사이 엇갈려 깍지를 낀다.
“네 앞에 있을 때만이 아니라, 너한테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내 전부를 다 만지고, 갖고 싶다는 생각이, 너도 들어?”
한마디씩 들으면서, 최수호의 손가락이 하나씩 얽히는 걸 느끼면서, 가운으로 덮인 몸이 만져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옷섶 안으로 손이 들어와 살갗을 어루만지고 몸의 가장 연한 부분들을 지그시 쥐는 것 같았다.
“너도, 네가 만질 수 없는 부분들이 슬퍼?”
“…….”
“나 좋아해?”
최수호에게서 수십, 수백 번은 더 들었을 질문이다.
“……어.”
더불어 수백 번은 했던 대답이기도 했다.
팔을 내리자 어느덧 내게로 쏟아지듯 기울어 있는 최수호가 보였다. 시트를 짚고 상체를 숙여 나를 들여다보면서, 최수호는 내가 자기를 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열아, 나는 네가 너무 좋아서, 네가 숨 쉬는 소리만 들어도 손발이 저릿저릿해. 좋아서.”
최수호와 깍지 낀 손이 시트에 눌린다. 나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알싸한 경련을 맛보며 최수호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가운 앞섶을 대뜸 움켜쥐자 최수호의 눈이 커졌다. 침대로 최수호를 뒤집어 넘기자 놀란 신음이 들린다.
어느새 내 아래 누운 채 최수호가 둔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매트 위였다면 엎어치기 한판승 정도는 받아 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쉰 지 오래됐지만 방금 기술은 내가 보기에도 깔끔했다.
“나도 그래, 최수호.”
끌어당기느라 흐트러진 최수호의 가운이 활짝 벌어져 흉곽을 드러냈다. 최수호가 숨 쉴 때마다 가슴팍이 오르내리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최수호가 그랬듯 상체를 한껏 숙여 최수호를 내려다보며 나는 귓전에서 큰북처럼 쿵쿵, 울려 대는 심장 소리를 견뎠다.
“만지고 싶어.”
“…….”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