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88)

47.

“너넨 왜 그렇게 서로 죽고 못 사냐.”

“갑자기 뭐래.”

“아주 자기들만의 세계 나셨어. 너 오늘 나 불러낸 것도 최수호 때문이지.”

“피해망상 있냐. 가깝고 만만해서 불렀다.”

“만만해하지 마. 나 톱스타야.”

이러니까 만만해 보인다는 생각은 안 하나. 더 투덜거릴 것 같더니 양용배는 곧 원래 화제로 돌아왔다.

“최수호 진짜 걔네 어머니가 제작하는 영화 찍나 보더라? 어제 어머님이랑 매니저랑 같이 감독 만나러 갔다고 그러던데.”

“그래?”

“그 자식, 그거 안 찍을 줄 알았는데.”

확신이 섞여 있는 투라 의아했다. 왜 안 찍을 것 같았는데. 눈으로 묻자 양용배는 알아서 주절주절 대답을 내놓았다.

“그냥 척 봐도 걔가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지 않냐? 떼거리로 나와서 떼거리로 죽는 거. 뭐, 그림은 되겠다.”

“너 찍고 싶었다며.”

“엥?”

“기영이 형이 그러던데. 네가 하고 싶어 한다고.”

“그거는……. 최수호만 물망에 올랐다고 하니까 짜증 나서 그랬지.”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수호 때문이었다는 건가. 양용배도 어지간하다.

“양용배 넌, 최수호 왜 그렇게 좋아하냐.”

“야이씨, 자꾸 그딴 소리 할래? 오해 살 소리는 하지도 마. 내가 무슨 최수호를 좋아해. 그 새끼 졸라 재수 없어.”

매일 졸졸 따라다니면서 오해는. 누가 봐도 얜 최수호를 너무 좋아한다. 최수호가 죽도록 긁는데도 이러는 걸 보면.

하긴 기영이 형도 그렇고, 최수호 주변엔 은근히 최수호 성질 감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만 최수호 곁에서 살아남은 걸 수도 있고.

자주 다행스러웠다. 최수호의 필드에서 믿을 만한 최수호의 지원군이자 아군이 있다는 게. 내가 운동을 할 때 옆에 형이 있었다면 최수호는 양용배가 있었던 셈이다.

“말은 그래도 네가 최수호 챙기는 거 모르는 사람 최수호밖에 없을걸.”

“그 새낀 은혜를 모른다. 정열밖에 몰라. 둘이 쌍쌍이 재수 없어. 사귀어라, 그냥.”

너야말로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걔가 정열밖에 모르는 바람에 안 사귀기로 했거든.

“수호도 너 나름 챙겨.”

“정열. 먹힐 거짓말을 해라.”

“그래, 미안하다.”

최수호가 양용배한테 무심한 건 사실이라 뭐라고 두둔할 수가 없다. 애초에 최수호는 아닌 척하면서 뒤에서 실은 걱정하는 짓하고는 거리가 한참 먼 인간이다. 걱정할 거면 앞에서 하겠지. 그것도 코앞에서.

“그래도 10년을 넘게 여기저기서 부대껴 가며 일했는데 그 새낀 어떻게 사람을 친구 취급도 안 해 주냐. 소시코패슨가.”

양용배가 감자튀김으로 케첩 더미를 마구 찔렀다. 종이에 튀는 케첩이 흡사 유혈 사태다. 열 내는 중에 끼어들긴 그렇다만 이 얘긴 해야겠다.

“용배야, 소시오패스겠지.”

“이거나 그거나. 야, 소시코패스도 따로 있어.”

“그건 사이코패스…… 됐다.”

“되긴 뭐가 돼. 이 자식이, 자기는 재수 학원에서 낙제받아 와 놓고 똑똑한 척하네.”

“무식해도 뭐 어때. 연기만 잘하면 됐지.”

“무식? 어디 톱스타한테.”

눈을 부라리는 양용배를 보니 세상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수호 같은 경우는 흔치 않다. 사람이 다 잘할 수는 없지, 암.

“틈만 나면 투덜거리면서도 너 그 소시오패스 최수호한테 잘하잖아. 가끔은 신기하더라.”

가끔 옆에서 보면 최수호는 자기 신경 밖의 사람들한테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신경할 때가 있다. 양용배도 상처받았을 법한데 참 한결같다.

“적이자 라이벌은 곧 친구라는 말이 있으니까.”

양용배가 어깨를 으쓱했다. 적의 적은 곧 친구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가. 그냥 얘기하게 내버려 두자.

“걔 덕분에 계속 연기할 수 있었던 것도 쪼오끔은 있고.”

“최수호 덕분에?”

“아역 하다 힘들어서 슬슬 때려치울까 싶었던 시기에 옆에서 비슷하게 하는 애가 있으니까 좀. 할아버지가 뭐라고 혼내든 라이벌한테 지는 건 참을 수가 없어서 나도 그냥 했지.”

양용배가 라이벌이랍시고 사소한 데서도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바람에 어리고 섬세했던 최수호는 적잖이 마음고생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양용배 기억 속에는 소년 만화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나 보다.

이래서 둘이 안 친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양용배가 나쁜 애는 아닌데 최수호랑은 종이 다르다. 양용배가 불이라면 최수호는 물 정도.

“그리고 걔 어릴 때 예쁘게 생겼었잖아.”

양용배가 시선을 피하며 수줍게 덧붙였다. 이 자식도 최수호의 어린 시절 저세상 외모가 낳은 피해자였군.

“암튼 간에 친구랍시고 챙겨 줘 봐야 그 새낀 정열 타령만 하고, 연락은 맨날 씹고. 내 톡은 죽어도 보지도 않아요. 억울해서 나도 모른 척하면서 살든가 해야지.”

양용배는 최수호 욕만 나오면 할 말이 끊이지 않는다는 식이다. 메시지 화면을 보여 줄 기세로 핸드폰을 들어 올린 양용배가 눈썹을 올렸다.

“엥, 읽었네.”

양용배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답장도 했네?”

“뭐라는데?”

“토했다는데.”

이번 소식에는 내가 놀랐다. 먹던 감자튀김이 목구멍에 걸렸다. 제대로 못 씹은 튀김 덩어리가 목구멍을 긁으며 내려갔다.

“최수호 아프대?”

“몰라. 오타가 하도 많이 나 있어서.”

핸드폰을 덥석 뺏어서 문제의 톡을 읽었다. 뭐 하냐는 양용배의 말 밑으로 자음과 모음이 분리돼서 제대로 읽기도 힘든 최수호의 답이 와 있다. 최대한 해석한 결과, 토했고 죽겠다는 내용이다.

최수호, 이 허접한 자식아. 열나서 쓰러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아프냐.

촬영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못 하겠다. 그나마 일할 때는 주변에서 보살펴 주기라도 하지, 집에서 쓰러졌으면 십중팔구 날 새도록 혼자 골골거리고 있을 거다.

“기영이 형한테 말해야 하나?”

“최수호 매니저 형? 그 형 바쁠걸. 그리고 나한테 얘기했을 정도면 매니저한테도 연락하지 않았겠어?”

내가 초조해하는 게 보였는지 양용배가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잠깐만. 아프냐고 전화 걸어 보게.”

신호음이 여러 번 이어지고도 남을 시간 동안 양용배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만 있었다.

“전화 안 받는다.”

불길했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최수호 집에 쳐들어가서 상태 확인하고도 남았다. 내 입으로 당분간 보지 말자고 선언하고 나온 게 바로 어제만 아니었더라도.

햄버거 포장지 옆에 뭉쳐 있던 냅킨을 잘게 찢기 시작한 나를 양용배가 한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가자.”

“뭐. 어딜.”

“최수호네 집.”

멋지게 말하며 양용배가 트레이닝복 상의 지퍼를 잠갔다. 새카만 트레이닝복이 아래턱을 덮는다.

“둘이 싸웠나 본데 걱정되면 걍 내 핑계 대고 같이 가. 진짜 혼자 쓰러져 있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싸운 거 아니야.”

이 대답만 몇 번째인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내가 최수호 얘기만 꺼내도 걔랑 싸운 줄 안다.

“안 싸웠으면 네가 직접 전화해 봤겠지.”

“…….”

“니들은 하도 한 몸처럼 붙어 다녀서 바로 티 나.”

예리하네. 동네 사람들이 호들갑인 게 아니라 그냥 최수호랑 내가 뻔한 거였나.

“콜라는 니가 사라.”

톱스타가 멋지게 선언하고 매대로 향했다. 아주 대단하고 어려운 이미지가 절로 생긴다.

핸드폰과 함께 넣어 뒀던 체크카드를 꺼내며 몰래 확인해 봤지만, 내 전화에는 최수호한테서 온 연락이 단 한 통도 없었다.

* * *

벨을 몇 번씩 눌렀는데도 문 앞은 조용하다. 불길하기 짝이 없다.

“집에 없나.”

빨대로 콜라를 쪽쪽 빨면서 양용배가 제법 심각하게 말했다. 추리 드라마 연기하던 바로 그 톤이다.

“안에서 쓰러졌으면?”

“에이, 설마…….”

양용배는 피식거렸지만, 내가 진지해 보이자 덩달아 표정이 굳었다. 도어 스코프에 눈을 바짝 가져다 대는 양용배 옆에서 나는 문을 두드렸다. 훈련할 때처럼 허리를 이용해 두들겨 패다시피 세차게. 이래도 안 열어 주면 비번 누르고 들어갈 기세로 아주 거칠게 말이다.

가열한 주먹질에 응답이라도 하듯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확 열리는 문을 피하려 뒤로 넘어지는 양용배를 겨우 받아 안았다. 본의 아니게 바람을 느끼는 <타이타닉>의 연인들처럼 되어 버린 우리 둘 앞에 남자가 나타났다.

“아이, 씨바. 누구야.”

걸쭉한 욕설과 함께 최수호의 집에서 나온 건 최수호가 아니었다.

이마를 왕창 구기고 있는 중년 남자 입가엔 침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위로 뻗쳤고 어깨가 남는 티셔츠는 틀림없는 최수호 거다.

문제는 저 사람이 내가 전혀 본 적도 없는 인물이라는 거였다. 최수호의 주변인은 속속들이 꿰고 있는 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최수호 옷을 입고 최수호 집에서 자다가 나왔다.

“누구……세요?”

양용배가 내 심경을 백 퍼센트 대변한 말을 중얼거렸다.

“나…… 읍.”

수수께끼의 인물은 답을 주지 않고 급작스럽게 안으로 사라졌다. 집안에서 희미하게 구역질하는 소리와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

여전히 내 품에 몸을 기댄 채 양용배가 목소리를 깔았다. 추리물의 형사 톤으로.

“혹시 최수호 아빤가?”

“아빠겠냐?”

어이가 없어서. 안고 있던 팔을 놓자마자 양용배가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야, 콜라 쏟을 뻔했잖아.”

“장난치지 말고. 너도 저 사람 누군지 몰라?”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어디서.”

“몰라.”

됐다. 너한테 뭘 바라냐.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아직도 욱욱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컴컴한 현관으로 들어서는 것.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듯, 최수호를 보려면 최수호 집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거실에 들어서자 바로 최수호가 보였다.

정확히는 최수호의 등짝이.

범죄 현장의 피해자처럼 등이 보이게 엎어진 최수호는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 양용배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죽었나?”

얼굴과 목소리만은 훌륭한 양용배의 저음이 음산하게 울렸다.

“죽었겠냐.”

하여간 말을 해도. 양용배와 내 대화에 응답이라도 하듯 최수호의 등판이 꿈틀거렸다.

“윽…….”

욕실에서 신나게 울려 퍼지는 구역질과 비슷한 소리가 최수호에게서 흘러나왔다. 최수호가 바닥을 짚고 찡그린 얼굴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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