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88)

38.

매니저 형이 안내한 곳은 촬영장 바로 옆의 공터였다.

얼마 둘러보지 않아도 곧장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그 사람도 나를 눈치챘다.

피우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옮기면서 여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지만, 나는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을 가렸더라도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백 명쯤 되는 인파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알아볼 수 있을 거다.

알아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서 있는 것뿐인데 주변만 유독 공기가 달라 보인다.

하지만 내가 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건 눈에 띄게 예뻐서도, 남들이 말하는 무슨 독특한 아우라 때문도 아니다.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니까.

“오랜만이네.”

선글라스를 벗으며 어머니가 내게 인사했다. 마른 꽃잎처럼 짙은 색깔 입술이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바닷물에 들어온 것처럼 발끝이 서늘했다.

* * *

어머니가 나타난 순간 재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모조리 저당 잡힌 거나 다름없다.

“잠깐 약속만 잡으려고 들른 거야.”

보통 촬영 들어가기 전 파우더 룸으로 삼는 조그만 방에 자리를 잡은 어머니는 남의 촬영장에 들른 사람이 아니라 방의 주인처럼 어엿했다. 요구하는 사람, 주도하는 사람, 어디서든 당당하고 모자란 게 없어 보이는 사람.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다.

“무슨 약속이요?”

“저녁에, 감독님하고 식사나 하자고.”

무슨 감독님인지는 안 물어봐도 안다. 양용배가 물어본 그 대형 프로젝트 영화의 메가폰을 쥔 감독이다.

회사 차원에서 계속되는 채근에도 하겠다는 확답이 없으니 어머니가 나서기로 한 걸까. 비록 주인공은 감독인 자리라 해도 어머니하고 같이 식사라니. 몇 년 만이더라. 같이 살던 유년기에도 함께 식사한 적이 드물다.

“저 오늘은 선약 있는데요.”

집에 열이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니 그래도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은 너무 급하지. 감독님하고 시간 조율해 보고, 심 매니저하고 데리러 갈게.”

어떤 날짜가 되든 나는 거기 맞추라는 소리다. 회사에서 내 담당 로드 매니저를 어머니한테 배정한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매니저 형은 요즘 나하고 어머니 사이를 분주히 오가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머니가 돌아오자 내 일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처음에는 이러려고 연기를 시작했었다. 바쁜 엄마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었고, 나는 어머니가 속한 세계를 알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어머니한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 영화요. 왜 저한테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회사에서 권하는 이유는 이해가 갔지만 어머니가 나를 설득하려는 건 왜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영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어머니는 자기 커리어에 치열한 사람이니까 처음으로 제작을 맡은 영화라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제가 어머니한테 필요해서요?”

이번에야말로.

영화 캐스팅 제안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 한편으로 나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당신이 떠나 있는 동안 열심히 했으니 나도 이제 조금은 당신한테 쓸모가 생기지 않았을까? 당신도 내가 필요해진 게 아닐까?

어머니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내 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눈이다.

어린 시절 보던 것과 달라진 게 없다.

“예전에 말했지. 사람한테 구걸하지 마. 그러면 천해져. 매달리다 보면 비참해지는 거야.”

어머니는 내 가족이 아니라 제삼자처럼 조언한다. 마치 나와 철저한 타인이 되는 게 원한다면 이뤄질 수 있는 일인 것같이. 어쩌면 이미 이뤄졌는데 나만 모르는 건가?

어머니와 타인이 되는 방법을 모르는 건 나뿐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 관계에서는 내가 남겨지고, 내가 빌게 된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은 모른다.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라면 누구에게 빌든 기도하고 비슷한 거 아닌가. 멀리 있는 신 대신 그 사람한테 빌고 있을 뿐이다.

“이 시점이면 너도 커리어 다시 돌아볼 때야. 오래 가고 싶으면 일찍부터 관리해야지. 이미지 소비 심했으니 큰 영화로 한 번 다잡고 다음 작품은 신중히 생각해. 배우로서 너는 이제부터야.”

아역으로 일하게 된 내게도 어머니는 같은 조언을 했었다.

‘배우는 언제 잊혀질 지 몰라. 그전까지 잘됐어도 일이 끊기는 건 순식간이야. 자기 살길은 자기가 마련해야 해.’

실제로 꼭대기에서 추락해 본 사람이니 충격이 컸으리라. 거장과 페르소나로 함께 합을 맞춰 왔던 감독인 내 친부가 배반한 후로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 했고, 내게도 똑같이 가르쳤다.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문을 열고 사라질 것처럼 몸짓이 가뿐하다.

“가세요?”

“너도 다시 들어가야지.”

“정말 일 얘기만 하러 오신 거였네요. 그래도 2년 만인데.”

어머니는 미국에서도 열렬하게 일에 몰입했다. 멀리서 소식을 찾아보는 내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재작년에는 할리우드에서 촬영한 드라마가 상승세를 타면서 해에 한 번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하긴 만나도 남보다 못한 서먹한 시간 정도가 전부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중요했었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읽기 힘든 복잡한 표정으로 침묵하다 선글라스를 꼈다. 눈이 가려지자 표정도 덮인다.

“수호야, 부모한테 연연하지 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돌아 나갔다. 다시 나만이 남겨진다.

저 사람이 하루 정도는 나를 보고 싶어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하지만 이제는 나 혼자만 그리워하는 게 익숙해서,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게 그냥 삶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촬영장은 슬슬 휴식을 마무리하고 촬영 준비로 분주했다. 조명판 근처에 서 있던 양용배가 휙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보통은 이러면 다가와서 미주알고주알 궁금하지도 않은 얘길 떠들어 대는데.

예전에도 그랬지. 첫 촬영이 끝나고 주눅 들어 있는 나한테 와서 이제부터 우린 라이벌이라고 소리치고 가 버린 이상한 애였다.

생각해 보면 딱히 괴롭힌 건 아니었나. 사탕 안 받아 주니까 소리 지르고, 눈 진짜냐면서 만져 보려고 하긴 했어도. 머리카락도 잡아당겼던가? 괴롭힌 거 맞네.

어릴 땐 내 주변의 애들이 다 지긋지긋했었다. 애들끼리는 다 서로 다투게 마련이라지만, 폭력에는 그런 말로 얼버무려지지 않는 날카로운 심지가 들어 있다.

아직 내가 나를 보호할 방법을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때, 껍질 없던 달팽이였던 시절을 내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리고 연약하게 태어나는데 그때 보호받지 못하면 너무 일찍,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깨닫게 된다.

스태프가 나를 향해 크게 손짓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헤매던 어릴 때와 달리 정해진 위치에 서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슛 들어갈게요. 수호 씨, 여기로.”

슬레이트가 내려가면, 조명이 켜지고 카메라가 돌아간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분리된 세계. 수면과 뭍의 경계점이다.

호흡마저 서늘해지는 순간이면 점점 숨통이 조여 온다.

카메라 앞에 서면 그것만으로도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든다.

진짜 나는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도 이 부근의, 만들어진 나는 좋아한다. 나는 겉모습을 속과 다르게 빚는 방법을 또래보다 빨리 터득했다. 싫어도 좋은 척, 실제보다 영리한 척, 연기의 본질은 가장에 있다. 내가 아닌 체하는 것.

만들어진 건 만들어진 채로 있어야 한다. 진짜가 돼서는 안 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나여서는 안 된다고.

화면에 비치는 게 진짜 내가 되는 순간, 나를 보는 눈들은 나를 외면할 게 분명하니까. 나는 너무 절박하고, 그리하여 약하고, 사람들은 약한 것을 깔보게 마련이므로.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옛날 내가 겪은 일들처럼.

조명이 뜨겁게 내리쬔다. 빛이 나를 세상에서 희미해지게 닦아 내고 있다. 카메라 렌즈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내가 세상과 화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물과 뭍 사이. 나는 이곳을 좋아하고, 그렇기에 언젠가 여기서도 버림받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두려워지면 습관처럼 열이를 생각했다.

열아, 언젠가 나를 버려야 하면 꼭 미리 말해 줘. 그러면 나는 네가 손을 놓기 전에 죽을 거야. 그러니까 꼭 미리 말해야 해.

기도문처럼 네 이름을 읊는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 죽는 순간에도 신이 아니라 네 이름을 부를 나를 알고 있다.

* * *

구걸하지 말고 매달리지 말라니.

“다른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해 봐.”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미안하다, 최수호. 나는 너하고 못 사귀어.”

네게 차이는 게 처음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아프다니 놀랍다. 별 기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다시 실연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했었다. 네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차피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면.

애걸하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 나는 태생이 그랬다. 빌지 않으면 얻지도 못하는 인간이다.

그러니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네 옆에 있을 수만 있으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도 누가 좀 나를 목말라해 주면 좋겠다. 누구라도 좋으니.

아니다. 이미 아무나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너여야 했다.

“그래서 너하고 사귈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아마 너는 절대로, 나를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원해 주지는 않으리라.

열이는 내게 설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 나를 원하지 않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하고 다정하게 얘기해 주고 싶었을 거다.

듣고 싶지 않았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거리가 벌어진다. 이번에는 따라오는 소리가 없다.

집 현관문 앞에 도착하자 비로소 눈물이 멎었다.

나는 이 집이 싫었다. 어머니가 출국 전 원래 둘이 있던 집을 정리하고 얻어 준 집이었다. 여기 있을 때는 언제나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가 나로 인해 한국에 남아 주기를 나는 조금쯤 기대했던 것 같다.

왜 내가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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