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88)

23.

“심판이 자리 이탈하는 게 어딨어.”

“열아, 어디 가. 나도 같이 가.”

“나 차에서 내리기 전에 둘이 가위바위보 해.”

“애냐?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게.”

그게 양용배 네가 할 말이냐? 대차게 까고 싶었지만 실랑이만 길어질 것 같아 참았다.

“다 싫으면 셋이 앉아서 가. 보조 의자 펴서 앉아.”

“그치만, 열아.”

“최수호, 이것도 싫으면 나 내린다.”

“앉을게. 앉을 건데, 솔직히 객관적으로 누가 더 잘생겼는지…….”

“양용배, 엎어치기는 우리 형보다 내가 더 잘해.”

양용배가 보조 의자를 펴 앉았다. 처음부터 말 잘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아오, 짜증 나. 최수호 넌 얼굴 가리고 있어.”

“내 얼굴을 왜 가려.”

진이 다 빠져 창문에 기대는데 여전히 옆자리가 시끄럽다. 지치지도 않나. 심지어 최수호 쟨 쓰러지기까지 해 놓고 팔팔하다. 혈기 넘치는 개 두 마리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 심경이 이럴까.

“최수호 네 얼굴 가까이서 보면 짜증 나.”

“내 얼굴 보는데 짜증이 왜 나.”

“짜증 나게 생겼으니까 그렇지!”

“양용배, 나는 짜증 나게 생긴 게 아니고 잘생긴 거야.”

저 새끼 또 시작이네. 자기 얼굴에 대한 자부심은 알아줘야 한다. 본래 잘생기고 예쁜 애들도 ‘제가 잘생기긴요. 전 그런 생각 안 해요’, 뭐 이러면서 겸양을 떨던데, 최수호는 겸손은 옛날에 엿 바꿔 먹었다. 잘생긴 게 사실이라 뭐라고 하기도 뭐 하다.

“웃기시네. 너보다 내가 훨씬 잘생겼거든? 자의식 과잉 예방하고 건강한 삶 이룩하자. 정신 좀 차려라. 별로 잘생기지도 않았구만.”

저런 소리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양용배는 10년을 겪어 놓고 제자리다. 최수호는 도발은 그냥 안 넘어가는 성격이다. 그놈의 파이터 기질 때문에 중학교 때도 그 난리가 났던 거 아닌가.

“정말?”

아니나 다를까 득달같이 반응한다. 최수호가 양용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래도?”

최수호가 고개를 숙이자 닿을 듯 말 듯, 최수호의 얼굴이 양용배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사내자식이 징그럽게 뭐 하는 거야.”

양용배는 당황하며 얼굴을 뒤로 뺐다.

그리고 공기가 바뀐다.

연기는 잘 몰라도 최수호가 타고난 선수라는 건 알겠다. 유소년기부터 현장에서 자라서 그런지 최수호는 자기 몸과 얼굴이 남한테 어떻게 보일지 잘 알고 그걸 활용하는 방법에도 도가 튼 느낌이다.

말하자면, 사랑받는 방법을 평생토록 연구해 온 사람의 스킬이라고 할까.

최수호가 마음대로 분위기를 주물러 댈 때면 신기하다 못해 의아하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다가도 뒤돌아보게끔 하는 무언가가 최수호한테는 있다.

최수호 때문에 연예인들 볼 기회가 꽤 있었지만 최수호 같은 사람은 몇 못 봤다.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게 스타성이라는 거겠지.

최수호네 어머니도 그랬다. 세트장에서 등장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휘어잡았던 압도적인 존재감. 최상의 피지컬을 지닌 조지 포먼. 최수호 역시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겠다.

꿀처럼 달착지근한 미소가 최수호의 입가에 퍼져 나간다. 반쯤 접힌 눈이 예쁘게 일렁이고 아우라나 후광이라고 일컬어도 될 만한 어떤 독특한 분위기가 최수호의 얼굴을 밝힌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순간.

“…….”

양용배의 반응은 보기만 해도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꾹 다문 입술은 부들부들 경련하고 이마까지 온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진한 당혹감이 홍조와 함께 어렸다.

최수호는 그대로 굳어 버린 양용배를 재밌다는 듯 응시했다. 잡아 둔 쥐를 보는 고양이처럼 장난스럽고 느긋한 눈길로. 너쯤이야 한입 거리라는 듯이.

순간 속이 불편해졌다.

“야. 이, 최수호, 미친, 징그럽게 진짜…….”

“지금 잘생겼다고 생각했지. 패배를 인정해.”

“돌았냐?! 네가 뭔 요상한 짓을 하니까 이러지. 잘생겼다고 생각해? 어이가 없네. 와, 진짜 얘 어이가 없는 애네. 어? 아주, 어이없어…….”

“어이없다는 말을 몇 번 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잘생겼어?”

“미친놈이랑은 상대하는 거 아니라더니. 미친 새끼.”

“너도 내 얼굴 좋아하잖아.”

어깨의 통증이 근육 아래로 스미는 느낌이다. 혈관을 타고 바늘이 돌아다니는 듯 따끔거렸다.

‘내 얼굴 좋아하면서.’

‘열이는 내 말은 뭐든 들어주니까.’

최수호가 나한테 했던 말들이 굳이 겹치는 이유가 뭘까. 최수호가 저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건만. 주먹이 아니라 매력이 무기인 놈 아닌가.

평소엔 그냥 넘겨 왔던 게 왜 지금은 이렇게, 불유쾌할까. 속이 메슥거렸다. 원래 없던 멀미가 갑자기 생겼을 리 없으니 차멀미는 아니다.

차창 너머로 병원이 보였다. 건널목 두 개만 건너면 될 거리다.

“병원 저기 보이는데 저 내릴게요.”

상체를 바로 세우며 운전석을 향해 말하자 최수호와 양용배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병원 앞에서 내려 줄게.”

“걷고 싶어서 그래요. 돌아가서 식사하셔야 하잖아요. 여기서 내려서 갈게요.”

매니저 형이 만류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 찬바람이 쐬고 싶었다.

때마침 인도 옆이라 차를 갓길에 세우자마자 내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운전석에 짧은 인사만 하고 내리는 나를 양용배가 멍청히 쳐다보았다.

문이 닫히기 전 최수호가 나를 따라 내렸다. 세 발자국을 넘기기도 전에 팔을 붙잡혔다.

“나도 병원 같이 가.”

최수호가 한두 번 이런 것도 아닌데 왜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다.

“네가 왜. 너 아픈 것 때문 아니라 나 때문이면 따라오지 마. 촬영도 남았잖아.”

“너 진찰받는 동안 같이…….”

“병원 온 사람들 다 너 구경하러 몰려들 텐데 어쩌려고. 와서 뭐 하게. 네가 내 보호자냐.”

얘기하며 나는 턱짓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드문드문 보이는 행인들이 벌써 최수호를 힐금거리고 있었다. 조명탄 같은 놈이다.

“나한테 화났어?”

최수호가 머뭇거리며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섰다. 화가 났냐고. 내가 지금 화난 건가? 왜? 자문하는 동안 최수호는 조급하게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나한테 왜 화났는데?”

“모르겠다, 나도.”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더 복잡하다.

뱃속에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끓어오른다. 거기 있는지도 몰랐던 물질이 압박과 열을 받아 형태를 바꾼다. 고무 타는 냄새처럼 역한 냄새가 속을 뒤집었다. 부는 바람에서 느껴지는 건 맵싸한 추위와 나뭇잎 냄새뿐인데.

“내가 뭐 잘못했어?”

“몰라. 그냥 가.”

팔을 쥔 최수호의 손을 억지로 떼어 냈다. 눈도 마주치기 싫어 그대로 몸을 돌렸다.

“지금 너랑 있기 싫어.”

내가 한 말에 나 스스로 소스라쳤다.

나는 이 말이 최수호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알고 있었다.

내가 밀어내면 최수호가 무슨 반응을 보이는지 뻔히 안다. 알면서 했다. 최수호 대신 다쳐 주고 싶다고 바랐으면서 수호한테 상처를 줬다.

병원까지 나는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어깨보다도 다른 데가 아팠다. 위치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몸 안 어딘가가.

돌아서기 전 보았던 최수호의 표정이 더 아팠다.

* * *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피곤했다. 줄곧 등 뒤에 뭔가 달고 걸어 다닌 기분이다. 예를 들어서 커다란 덩치에 짜증 날 정도로 잘생긴 유기견 같은 거.

“다녀왔습니다.”

“수호 촬영장 간 거 아니었어? 혼자 들어와? 수호는?”

습관대로 인사하자 거실에서 엄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오자마자 최수호 안부부터 물으신다.

“최수호 아직 촬영.”

“늦게 끝나나 보네. 둘이 같이 올까 봐 밥 아직 안 했는데.”

“밥 내가 알아서 먹을게.”

식탁으로 향하는 나를 따라온 엄마가 내 손에서 약봉지를 낚아챘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소염 진통제다. 뼈는 안 상했는데 멍은 심하게 들 거라고 했다.

“열이 너 맞았니? 엄마 깽값 준비해야 해?”

“다친 건 난데 웬 깽값.”

“너 이렇게 됐을 정도면 상대방은 아주 죽사발이 됐을 거 아냐. 살아는 있는 거지?”

“박 여사, 재미없거든요. 나 일반인 안 때려.”

“어디서 얻어맞고 온 거 아니면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엄마는 얼버무리고 냉장고로 가려는 나를 순순히 놔주지 않았다. 박 여사 눈은 못 속인다.

“나 왜 이렇게 속이 좁지.”

“속이 좁아? 무슨 소리야.”

“최수호랑 싸웠어.”

“또? 설마 너 수호랑 주먹다짐한 건 아니지?”

“걔가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그냥 최수호한테 화풀이했어.”

화풀이라는 말에 엄마 눈이 동그래졌다.

“촬영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있긴 했는데 그거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니고, 모르겠어. 최수호하고 다른 애하고 노는 데 갑자기 짜증 나서……. 왜 그랬지.”

아무리 생각해도 최수호한테 짜증 낼 이유가 없었는데 왜 쓰러지기까지 한 애한테 그랬을까. 어머니 오셔서 안 그래도 심란할 텐데.

돌이켜 보면 한없는 찜찜함과 죄책감만 든다. 근데 또 당장 연락해서 사과하긴 싫은 거다. 나 이렇게 인성 파탄이었나.

“한동안 안 그러더니 다시 어릴 때랑 똑같이 구네, 정열이.”

엄마가 한숨을 폭 쉬었다. 뜬금없이 어릴 때는.

“내가 어릴 때 뭘 했는데.”

“수호 다른 애들하고 못 놀게 했잖아.”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내가 최수호한테?

“네가 지금처럼 인상 팍 쓰고 다니는 바람에 수호한테 말 걸고 싶어 하는 애들도 말도 못 붙이고 놀이터 뱅뱅 돌기만 하고, 다른 애들이 같이 놀라고 할라치면 네가 수호 손잡고 팩 가 버리고, 그랬잖아.”

“내 인상은 아빠가 물려준 거라 나도 어떻게 못 하고, 최수호 손잡고 데려간 건 애들이 최수호 자꾸 괴롭히니까 그런 거고.”

“수호가 다른 애하고 짝꿍이라도 되면 속상해서 드러누웠잖니. 소풍 가서 다른 애랑 도시락 먹었다고 퉁퉁 불어서 이불 뒤집어쓰고. 네가 그러니까 수호가 다른 애들하고 못 다녔지.”

“드러누워? 내가?”

충격의 도가니다. 내가? 최수호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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