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최수호는 자주 이사했고, 어디를 가나 눈에 띄었다.
그건 최수호 탓이기도 했고 수호의 엄마 탓이기도 했다. 나중에 최수호가 말하길 동네를 옮길 때마다 괴롭힘당하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고 했다. 다만, 그때는 나를 만났다는 게 달랐다고.
생각해 보면 입고 다니는 옷이나, 기사 딸린 차를 타고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점이나, 교복까지 정해진 사립 유치원에 다녔다는 것까지, 최수호가 가난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아무 데도 없는데 나는 왜 최수호 집이 어렵다고 확신했던 걸까.
아마 최수호의 표정 탓이었을 거다.
수호는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 침울함은 수호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쉽게 마이너스적인 종류로 바꾸었다. 애들이 놀리거나 괴롭혀도 수호는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런 취급은 익숙하다는 것처럼.
내가 손을 잡고 데려가면, 종종 울었다.
‘왜 가만히 있었어? 너도 뭐라고 하지.’
‘그냥.’
‘앞으로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
‘말해, 꼭.’
‘너는 나한테 왜 잘해 줘?’
최수호가 대뜸 물었을 땐 좀 놀랐다. 우리 집을 드나든 지 며칠 지났지만, 그때껏 최수호는 내게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너 좋아서.’
어릴 땐 뭘 믿고 그렇게 직설적이었는지.
내 대답을 듣고 수호는 울었다.
항상 별 표정이 없던 얼굴이 일그러지고, 쏟아질 것처럼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 금세라도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아 재빨리 눈가에 소매를 대 줬던 게 기억난다.
미지근한 눈물이 내 손가락으로 흘러내렸다. 손톱 밑에서부터 손등까지 찌릿한 기운이 퍼졌다.
‘울지 마.’
최수호는 자꾸만 울었다. 그 애가 울면 체한 것처럼 뱃속이 욱신거리고 어지러웠다.
‘왜 울어.’
‘…….’
‘수호야.’
수호야, 이름 부르는 순간 혀끝에서 퍼지던 그 달콤한 기운. 첫 키스는 레몬 맛이니 딸기 맛이니 하는데, 내게는 그보다 훨씬 달았다.
우는 최수호의 손을 잡고 입 맞췄을 때 세상엔 최수호하고 나 단둘이었다. 지구가 최수호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나중에 크면 나하고 결혼할래?’
이게 바로 최수호하고 얽힌 어린 시절 기억 중 첫 번째로 쪽팔린 부분이다.
* * *
내가 미쳤었지. 그땐 걔가 여자앤 줄 알았다고.
최수호가 남자라는 걸 알았을 때는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했다. 엄마한테 최수호하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표정이 묘해지는 게 이상하다 했지.
우리 집 식구들도 진짜 너무하다. 나 빼고 다 알았으면 귀띔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빠 말로는 맨 처음 아빠가 말을 꺼냈을 때 내가 저렇게 예쁜 애가 남자일 리 없다고 우겼다는데, 아니라고 믿고 싶다.
최수호가 진짜 여자였더라면 어땠을까. 계속 좋아했을까.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운동 중에는 딴생각하는 거 아닌데. 지금이니 망정이지 훈련할 때 이렇게 넋 놓고 있었으면 벌써 어디 정신 빼고 있는 거냐는 소리 골백번은 듣고도 남았다.
로프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로프 드릴을 하다 말고 나는 로프에 몸을 기댔다. 잡생각 많을 때 무리하게 움직이면 다치기 쉽다.
“지원 누나,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뭐?”
열심히 스피드 볼을 치던 지원 누나의 주먹이 멈췄다. 튀어 오른 볼이 누나의 눈앞에서 흔들거린다.
“만약에 여자가 누나한테 고백하면, 누난 어떨 거 같아요.”
“어떤 조건의 여잔데. 재산은 어떻게 돼? 내 어디가 좋대.”
지원이 누나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넉살도 좋다.
“그냥 운동이나 하죠.”
“정색하고 그러냐, 사람 민망하게?”
“누나가 정색하게 하잖아요. 진지하게 물어봤더니.”
“난 진지한 줄 몰랐지. 둘이서 좋으면 뭐, 어때. 나는 남자가 더 좋긴 한데 고령의 갑부나 김혜수가 나 좋다고 하면 좀 흔들릴 자신 있다.”
흔들릴 자신 있는 건 또 뭐야. 인상을 구기자 지원 누나는 보란 듯 더 너스레를 떨었다.
“만약에 내가 남자였어도 최수호가 사귀자고 하면 고민해 봤을걸.”
지원 누나가 낄낄거렸다. 누나가 내 사정을 알 리도 없는데 뜨끔했다. 제가 그 최수호가 사귀자고 한 사람인데요. 고민 중이긴 합니다.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보고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뇨.”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근데 그런 중요한 얘기를 왜 나한테 물어봐, 형 두고.”
“별로 중요한 얘기 아니라니까……. 그리고 우리 형한테 이런 걸 왜 물어봐요.”
“너 요즘도 관장님이랑 말 잘 안 하냐.”
“…….”
“아직도 냉전 중?”
“그런 거 아니에요.”
싸운 건 아니다. 불편한 거지.
형이 내 체대 입학을 적극 반대하면서 인생 처음으로 형한테 언성을 높여 싸웠을 때부터, 화를 내는 내 앞에서 형이 울었을 때부터, 형하고 예전처럼 얘기할 수가 없다. 벌써 몇 달째다.
곧잘 형한테 조언을 구하던 것도 이제 옛말이 됐다. 둘이 있으면 할 말이 별로 없다.
“형제끼리 그럴 때도 있는 거지. 힘내라, 우리 열이!”
지원이 누나가 요란하게 내 등을 두들겼다. 건드리지 않아도 될 곳엔 구태여 깊이 들어오지 않는 지원이 누나의 이 거리감이 편안하다. 스파링을 볼 때도 느끼지만 풋워크의 균형이나 주먹을 피하는 스웨잉이 기가 막힌다. 난 맷집을 믿고 피할 수 있는 것도 맞거나 막아 버릴 때가 있으니까, 그런 면은 배우고 싶다.
뭐든 복싱 위주로 흐르는 이 사고방식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자각할 때면 맥이 빠진다. 평생 복싱만 생각하고 살았으니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는 없지만, 이젠 적당히 해야 하는데. 복싱하고 내 삶을 분리하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다.
“손님 오셨네. 지금 관장님 없는데.”
링에 팔을 걸고 건들대던 지원이 누나가 입구를 향해 고갯짓했다. 나도 덩달아 하던 일을 멈추고 문가에 시선을 집중한다. 아직 정식으로 체육관 열 시간이 아니라 누가 올 리 없는데.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튕기듯 일어섰다. 지원이 누나도 덩달아 꼿꼿하게 허리를 폈다.
“관장님.”
우리 형이 아니다.
“관장님이 여긴 웬일로 오셨어요?”
눈앞에 있는 사람은 내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복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얼굴일 거다.
국내 유일한 헤비급 세계 챔피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WBA 라이트헤비급과 헤비급 챔피언, WBC 크루저급 챔피언, IBF 슈퍼미들급 챔피언까지. 네 체급 석권에 빛나는 한국 복싱의 살아 있는 전설. ‘괴물’ 천수관.
“아이고, 우리 정열이 간만이다.”
일명 천 관장님.
“진이 지금 없나 봐? 얘기 좀 하러 들렀는데. 이거 참 난감하게 됐네 그래. 여보가 일찍 들어오랬는데……. 주전부리 좀 사 왔는데 좀 먹을래?”
천 관장님이 웃으며 비닐봉지를 들어 올린다. 커다란 손과 비교하니 아담해 보이는 봉투가 허공에서 흔들거렸다.
웃느라 눈이 파묻혀서 보이질 않는다. 앞에 붙은 화려한 타이틀이 무색하게 축 처진 눈으로 웃는 모습은 거대한 곰 인형 같다. 덩치가 어마어마한데다 키가 2미터에 육박하는데도 별 위협감이 안 든다.
여전하시네. 픽, 웃음이 나왔다.
전에는 매일같이 보던 얼굴인데 이젠 너무 오랜만이라 그리운 기분마저 든다. 못 뵌 지 슬슬 반년은 됐나.
“연습은 할 만해?”
봉지를 신발장 옆에 내려놓은 천 관장님이 내 쪽으로 왔다. 몇 개월 만인데도 어제 만난 양 친근한 말투가 기분 좋다.
“취미 삼아 하는 거죠.”
내 대답이 마음에 안 찼는지 천 관장님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취미로 하기에는 아까운 실력인데.”
“아깝고 말고 할 게 뭐 있어요, 관뒀는데.”
“아이고.”
이제는 아예 대놓고 다 죽어 가는 시늉이시다.
“너 복싱에 죽고 못 살았던 거 내가 아는데. 주니어 국가대표로 메달까지 따 놓고, 한창나이에 접는 건 너무 아깝지 않냐.”
“그때 재밌었죠.”
“당연하지. 나는 아주 우리 여보랑 같이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니까. 세미파이널에서 스페인 애랑 너랑 붙었을 때 경기 끝날 때까지 아주 긴장이 장난 아니었다고.”
기억난다. 청소년 국가대표로 올림픽 나갔을 때. 국제 경기는 긴장감이 달라서 라운드마다 진이 다 빠졌다. 고전했던 준결승전이 어제 치른 경기처럼 생생하다.
“막판 어퍼컷이 제대로였는데. 유리 턱이라더니 진짜 한 방 맞으니까 뻗더라고요.”
“그래! 그래애! 내 말이 그거야! 동양인이라고 걔나 걔 코치나 너 우습게 보더니 고꾸라지는 게 아주……!”
흥분하셨는지 주먹까지 휘두르던 천 관장님이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내 손을 덥석 잡는 천 관장님을 나는 웃으며 마주 봤다. 진짜 여전하시네.
“열아, 나는 너 진심으로 열심히 가르쳤다. 너 프로 전향 서둘러 안 시키고 아마추어 경기부터 차근차근 경험치 쌓게 한 이유가 뭐였는데. 너나 진이나 나는 진짜 내 새끼처럼 키웠어. 너도 알지, 응?”
“사랑으로 키우셨죠.”
그 흔한 체벌도 없이, 가끔은 자기 일도 팽개치시고 형하고 내가 철들기 전부터 먹이고 재워 가면서 키우셨으니, 내 새끼처럼 키웠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형하고 나도 천 관장님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오죽하면 아빠가 섭섭해했을 지경이니까.
이제는 다 옛날 일이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요즘엔 다른 애들 키우느라 바쁘시죠?”
우리나라 복싱계에 무한한 관심을 가지신데다 인재 양성에 혈안이시니 아마 그렇겠지. 당연한 건데 어째 좀 섭섭하다.
“진이하고 너만 한 애들이 없어.”
“형하고 제가 흔한 인상은 아니긴 하죠.”
“너희 형제 처음 봤을 때 나는 하나님이 진짜 있구나, 싶었는데 말이다. 내가 젊을 때 좋은 일한 보람이 있구나. 나한테 이런 복덩이들을 다 내려 주시는구나, 싶었다고. 그것도 둘이나.”
“왜 오버를 하시고 그래요.”
눈이 글썽글썽하신 게 곧 울기라도 하실 태세다.
“너 복싱 계속하기만 하면 세계 챔피언 자리는 꿈도 아니야. 난 확신한다. 지금 웰터급에 너만 한 인재 아무도 없고, 너는 미들급까지 키워서 나가도 챔피언 노려볼 수 있어. 기술이 되잖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