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엄마가 대놓고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왜.”
“왜는. 기특해서 그러지.”
“나 기특한 거 이제 알았어? 이러다 최수호 못 나가겠네. 나 쟤 바래다주고 올게.”
엄마가 더 뭐라고 하기 전에 서둘러 현관으로 갔다. 부랴부랴 최수호를 등 떠밀다시피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내려가면서 평정을 찾으려 애써 봤다.
뭐, 그까짓 입술, 닳는 것도 아니고 입 몇 번 맞췄다고 어색해할 필요가 없지. 아무렴, 그까짓 키, 키스…….
“다시 일하러 가냐? 병원부터 가야 하지 않나.”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말을 하기로 했다.
“형 만나서 얘기하고. 나 때문에 회사 시끄럽다는데.”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던 최수호가 미간을 만졌다. 피로가 다시금 최수호의 얼굴에 얼룩진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며 최수호가 다시 마스크를 썼다. 그것만으로 표정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너 괜찮아진 거 맞아?”
최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대답을 받고도 안심이 안 된다. 왜 다 그만두고 싶어졌다는 건지 결국 자세히 듣지 못했다.
“힘들면 말 좀 해라. 별 시답잖은 걸로 징징댈 땐 언제고 왜 철든 척인데.”
퉁명스러운 말에도 최수호는 웃는다.
“열아, 진짜 좋아해.”
또다. 좋아한단 소리.
일부러 입을 다물고 손만 흔들었다. 최수호는 잠시 나를 보다 걸어갔다. 최수호의 등이 건물에 가려 사라질 때까지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돌아서서 아파트로 들어오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괜찮은 척했지만, 실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머리가 좀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소꿉친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키스하는 건 내 상식에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최수호한테 말리는 게 일상이라지만 이번 일은 좀 많이, 아주 많이 심한 거 아닌가. 키스라니. 더군다나 현재 진행형이다. 또 할 수도 있다고, 그 짓을.
분명 또 하겠지. 최수호가 조르기 시작하면 내가 그걸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벌써 막막하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1층에 도착해 입을 벌리는 엘리베이터를 보고도 나는 주저앉은 채 꼼짝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남자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힐끔거리고 지나간다.
보든, 말든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 남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니까. 최수호 생각만으로 머리가 터져 나간다.
남한테 신경 안 쓰는 게 별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왜 최수호는 다를까.
하긴 애초에 내가 다른 사람한테 신경 쓸 겨를도 없게 만들어 준 게 최수호긴 하다. 모든 길이 다 최수호한테로 통하네.
엘리베이터에 타 내 지난 인생을 되돌아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 최수호 이름이 붙은 부분이 너무 많다.
그게 문제다. 최수호의 고백이 어떤 식으로 결판나든 나한테 최수호는 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정열, 들어왔으면 손 씻고 호떡 먹어.”
“어.”
“수호랑 화해했구나?”
집에 들어가기 무섭게 최수호 이름이 나를 반긴다. 이것 봐.
“……어.”
그걸 화해라고 불러도 될까. 어떻게 보면 화해라고 볼 수 있기는 하다.
“왜 대답이 시원찮아. 열이 너, 부끄러워서 그러지?”
“엄마.”
“응?”
“나 최수호랑 어쩌다 이렇게 됐지.”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봐도 도통 모르겠다.
“웬 뜬구름 잡는 소리야, 갑자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너 수호하고 친해진 거야, 네가 허구한 날 수호 집에 데려오다 그런 거잖아.”
그랬지. 밥 제대로 못 먹는다는 말에 최수호가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애인 줄 알고 밥은 우리 집에서 먹으면 된다고 손 꼭 붙잡고 끌고 오던 시절이 있었다.
알고 보니 최수호는 우리 집보다 잘 사는 집 도련님이었다. 심지어 밥은 입맛이 까다로워서 잘 못 먹는 거였다.
“그때 너 수호하고 결혼하겠다고 그랬는데.”
“그 얘기 하지 마, 좀.”
“그럴 수도 있지. 수호가 그때 좀 예뻤니? 지금이야 남자 다 됐어도 그때는 착각할 만했지.”
그것도 맞는 말이다. 솔직히 어릴 적 최수호는 착각할 만했다.
최수호와 내 첫 만남은 오해로 시작됐다.
* * *
때는 일곱 살. 일찌감치 형을 따라 운동을 시작한 내가 본의 아니게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다니던 때다.
어릴 때 급하게 자라는 게 아빠 집안 내력이라더니 당시 나는 다른 애들보다 한 뼘은 훌쩍 컸다. 눈은 지금하고 다름없이 사나웠고. 곧잘 붙어 다니는 형은 나보다 배는 험상궂은 운동선수였으니, 또래 애들 기죽이기엔 여러모로 적당한 조건이었다.
최수호는 나하고 정반대였다. 수호는 또래보다 훨씬 몸집이 작고 가늘었고, 늘 혼자 지냈다. 거기다 눈에 띄게 귀엽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표적이 되기 쉬웠다.
‘너네 엄마 배우라며?’
‘아빠는 없다며.’
처음 최수호를 만난 건 도장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놀이터 한구석이 떠들썩했다.
‘아빠 진짜 없어?’
‘너 외국인이야?’
네댓 명 정도 되는 애들이 둥그렇게 모인 중심에 최수호가 있었다. 색이 밝은 머리카락을 장난처럼 쓰다듬다가, 종내에는 머리를 치거나 잡아 뜯을 것처럼 움키는 손길을 최수호는 조용히 인내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였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동물을 보면 손을 뻗어 보는 것처럼. 개중엔 최수호하고 친해지고 싶은 애들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어린애들은 서투르니까.
어떤 이유로든 그 애들은 최수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최수호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대답하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돌아볼 수밖에 없을 만큼 뚜렷한 얼굴을 비스듬히 숙인 채 빛이 들지 않은 눈을 묵묵하게 내리깔던 최수호를 기억한다.
무시가 불을 지폈는지 손길이나 말이 점차 거칠게 변했다. 수위가 높아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무시당한 게 기분 나쁘기도 했을 거고, 잠잠한 최수호가 슬슬 우스워 보이기도 했을 거다. 어린애들이라 오히려 괴롭힘의 양상은 더 적나라하다.
‘어, 아빠 없어.’
나를 놀라게 한 건 그 목소리였다. 애써 표정을 지운 얼굴과는 달리 먹먹하게 떨리는 음성.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최수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만해.’
내가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형하고 관장님이 약한 애들을 괴롭히는 건 나쁜 짓이랬으니까.
‘여자는 때리는 거 아니야.’
그리고 여자애는 절대 괴롭히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꼭 최수호의 그 목소리가 측은해서만은 아니었다.
‘때리려고 한 거 아니야!’
‘괴롭히는 것도 하면 안 돼.’
씩씩거리는 남자애와 한 판의 눈싸움을 벌인 끝에, 내 인상에 지레 질린 상대가 먼저 놀이터를 떠났다. 입고 있던 유도 도복도 한몫했으리라고 본다.
‘너, 집 어디야.’
나는 최수호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그러다, 이렇게 된 이상 집까지 바래다줘야겠다고 결심하고 최수호를 돌아봤는데…….
‘와.’
진짜 예뻤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때마침 쏟아지는 햇빛에 머리카락은 금실처럼 반짝거렸고 유독 커다란 눈은 머리카락 색보다 좀 더 짙은 황금색이었다. 젖살이 있기는 한 건지 갸름한 뺨은 새하얬다.
피가 몰리는 바람에 머리가 핑 돌았다. 비틀거리는 나를 최수호가 부축했다.
‘괜찮아?’
목소리도 예뻤다.
만화 영화에서 나오는 공주님이 눈앞에 있다면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한눈에 반하면 종이 울린다고 했나.
나는 정말로 귓가에서 종 치는 소리를 들었다.
땡, 땡, 땡.
머리가 웅웅 울리고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멋모르고 얼굴에 홀린 것까지 친다면 내 첫사랑은 최수호인 셈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난 건강한 애였다. 그 흔한 감기도 제대로 걸려 본 적 없다. 길 한복판에서 맥을 못 추는 날 발견한 우리 형도 어지간히 놀랐을 거다.
이게 바로 내가 최수호하고 얽힌 어릴 적 기억 중에 두 번째로 쪽팔린 장면이다.
비틀대면서 말 한마디를 못 하는 나를 발견한 우리 형은 당황한 나머지 나와 최수호를 데리고 곧장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최수호한테 그때 왜 따라왔냐고 물어본 적 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 집이더란다.
빨래를 개던 우리 박 여사는 혼비백산한 형과 나, 최수호를 보고는 내 증상에 태평한 진단을 내려 주었다.
‘더위 먹었나?’
옛날부터 우리 엄마가 진단에는 소질이 좀 있었다.
얼음을 넣은 사과 주스가 석 잔 나왔고, 우리 셋은 졸지에 사이좋게 쪼르르 앉아 주스를 마셨다.
‘근데 넌 누구니? 처음 보는데. 열이 친구야?’
‘아…….’
최수호는 눈만 동그랗게 떴다. 내 이름도 몰랐을 테니까 그럴 만하다. 처음 보는 얼굴이니 형은 내 친구인가 보다 했고, 나는 정신이 없었다. 대답을 못 하는 최수호에게 우리 엄마는 선뜻 제안했다.
‘마침 밥 다 돼 가는데. 밥 먹고 갈래?’
그 말을 시작으로 최수호는 우리 집에서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왜 이렇게 말랐어. 밥도 얼마 안 먹네. 세상에.’
‘이름이 수호라고?’
‘멸치 먹을래?’
‘정진! 너 싫어하는 거 동생들 주는 버릇 고치랬지.’
‘멸치 먹으면 키 큰다며. 수호는 작잖아.’
‘말은 잘해. 수호야, 뭐 좋아하는 반찬 있어? 더 줄까?’
‘괜찮아요.’
‘옆 동에 산다고? 이웃사촌이네. 자주 놀러 와. 그나저나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집에 전화해 줄까?’
‘괜찮아요. 집에 아무도 없어요.’
‘집에 아무도 없어?’
‘아빠는 안 계시고 엄마는 집에 잘 안 들어오세요.’
‘…….’
‘…….’
‘그래서 집에서는 밥 잘 안 먹는데……’
최수호는 우리 집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그날뿐만 아니라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다음 달, 그다음 달에도.
매일 최수호를 데리러 가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운동이 끝나면 곧장 최수호네 아파트로 달려갔다. 엄마가 수호하고 같이 먹는 건 어떠냐고 넌지시 권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최수호한테 홀딱 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난 뭐랄까, 공주를 지키는 기사 노릇에 푹 빠져 있었다.
알고 보니 최수호가 괴롭힘당한 건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