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푹 눌러쓴 모자에 마스크, 선글라스로 무장한 최수호가 나를 멀뚱히 본다. 가린다고 열심히 가렸는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하긴 최수호가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난 알아볼 거다. 그냥, 느낌이란 게 있다.
“화낼 거야?”
선글라스를 벗으니 그 아래 침울한 눈이 보인다.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거라니.
“내가 왜.”
“오지 말라고 했는데 또 너 보러 오고…… 일하다 나와서.”
“뭘 잘못했는지 알긴 아네.”
“화내지 마.”
기죽은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진다. 거의 자동 반사다.
“일단 들어와.”
현관문을 열자 최수호가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고 열심히 집 안을 두리번거리는 최수호가 누굴 찾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엄마 나갔어.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인사할 필요 없어.”
“응.”
우리 부모님한테만은 워낙 깍듯하니까. 자기 회사 사람들한테도 이 정도로 살뜰했으면 기영이 형이 나한테 우는소리로 하소연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최수호도 자연스럽게 내 뒤를 쫓았다. 이럴 땐 어찌나 말을 잘 듣는지.
“앉아 있어.”
대충 침대를 가리키고 핸드폰을 꺼냈다. 최수호는 얌전히 앉는 대신 내 근처에서 고개를 기웃거린다. 말을 잘 듣긴. 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데.
“뭐 해?”
“너랑 연락됐으니까 기영이 형한테 전화하려고.”
“안 하면 안 돼?”
안 되지. 생각하면서도 핸드폰을 든 손이 저절로 내려간다.
“진짜 잠수 타게? 대표님 만나러 안 가도 돼?”
도주 중인 범죄자 숨겨 놓는 기분이다. 비슷한 상황이긴 하다.
“너 원래 이런 땡땡이 안 치잖아.”
그게 제일 신경 쓰인다. 천하의 최수호가 말도 없이 일정을 빠지다니.
하루에 얼마 자지도 못하고 온갖 스케줄에 시달려도 최수호는 쉬겠다는 말조차 한 적 없다. 쉬기는커녕 쫓기는 사람처럼 아등바등 일했다.
가끔은, 바쁜 게 걱정스러운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하는 최수호가 걱정스러웠다. 즐겁기보다 절박해 보여서.
“이제 다 관둘까 싶어.”
그 최수호가 이런 말을 하다니.
“너 나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 있냐. 왜 그래?”
“네가 이유진이랑 사귀어서.”
또 그거냐. 정말 그게 전부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맥 빠진다.
“뭐래. 됐다, 말하기 싫으면 관둬.”
피하고 싶은 화제였다. 이유진 얘기가 아니라, 사귀자느니 뭐 하느니 하는 얘기가 다시 안 나왔으면 했다.
“진짠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최수호가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나를 응시한다.
“이유진은 되고 나는 안 되는 이유가 뭐야? 왜 항상 나는 안 돼?”
항상이라니. 뭐가 항상이야. 투덜거리려다 급하게 말을 삼켰다.
최수호가 언제 또 저런 소릴 하는지 생각났다.
아주머니하고 만나고 난 뒤면 최수호는 대체로 말도 못 붙이게 울적해졌는데, 위로라도 하려고 말을 붙이면 자주 저런 소릴 했다.
‘이번에도 안 됐어.’
‘열아, 나는 왜 안 될까.’
‘나로는 안 되는 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런 말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
“나한테는 너밖에 없는데…….”
최수호가 내게로 쓰러졌다. 어깨에 머리가 눌린다. 최수호에게 가까이 가면 맡을 수 있는 익숙한 체취, 달고 향긋한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몸이 느슨해진다.
“밀어내지 마.”
연약한 중얼거림이 가슴을 푹 찌른다. 최수호가 약해지면 나는 더 약해진다. 정말이지 싸울 상대로는 상성이 최악이다.
“최수호.”
건드려도 최수호는 반응이 없다. 대답 대신 최수호의 무게가 내 품으로 기우뚱 쏟아졌다.
“야, 최수호. 야.”
어깨가 뜨겁다. 어깨에 닿은 최수호의 이마 때문이다. 옷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열이 펄펄 끓는다. 이마뿐만 아니라 온몸이 다 뜨거웠다.
* * *
“지금 저하고 있긴 한데, 어디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네. 열도 너무 심하고……. 아뇨. 병원은 아직 안 갔는데 일어나면 데려가려고요. 네, 이쪽으로 오실 때 연락 주세요.”
- 그래. 열아, 고맙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기영이 형의 인사를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로 눈을 돌리자 최수호가 부리나케 눈을 감았다.
“깼냐.”
아까부터 뒤통수가 따끔거리더라니. 말을 걸어도 최수호는 눈을 뜨지 않는다.
“아직 자는 중인데.”
최수호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눈까지 꼭 감은 얼굴이 잠자는 숲 속의 왕자가 따로 없다.
“장난치지?”
“깼다고 하면 쫓아낼 거잖아.”
“아픈 애를 왜 쫓아내냐?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만드네.”
“너 나한테 화났으니까…….”
최수호가 실눈을 떴다. 가느다란 틈 사이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눈치를 살핀다. 저걸 귀엽다고 생각하는 내가 싫다.
“안 쫓아내.”
고개를 저으며 침대 앞에 앉자 최수호가 비로소 제대로 눈을 떴다.
“요즘 계속 몸 안 좋았다며.”
“응.”
“왜 말 안 했어.”
“너 힘들어 보여서.”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만 벙긋거렸다.
지난 1년이 벅찬 시간이긴 했다. 최수호가 정신없이 앓는 것도 모를 만큼.
“그래도, 응급실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한마디를 안 하냐.”
괜히 답답하고 미안해 목소리가 불퉁해졌다. 주변에 달리 제대로 말할 사람도 없으면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매니저 형이 얘기했어?”
“너 요즘 상태 내내 안 좋았다고 하시던데. 회의 취소됐고 회사에서 얘기 끝나면 너 보러 오겠대.”
“엄청 깨지고 있겠네.”
최수호가 힘없이 웃었다. 말도 없이 빠졌으니 당연히 기영이 형이 죽어나고 있겠지. 알면서도, 기영이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 신나게 깨지는 중일 형보다 지금 내 침대에 늘어진 최수호가 걱정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네가 일 빠지는 걸 다 보고.”
“이제 다 싫어졌어.”
최수호가 중얼댔다.
“배우 그만둘까 봐.”
“왜.”
생각보다 말이 더 먼저 나왔다. 심장이 고장 난 승강기처럼 덜컥거렸다.
“왜 그러는데, 최수호.”
내 채근에 최수호가 느리게 입술을 움직였다.
“그냥 다 부질없는 것 같아서…….”
덧없는 한숨이 추락의 예고 같았다. 덜컹덜컹, 심장 소리가 불길하다.
“뭐가 부질없어. 국민 배우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너 좋다는데. 나랑 같이 체육관 다니는 누나도 너 나오는 작품은 다 챙겨 본다더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 안 좋아하잖아.”
“헛소리한다. 우리 엄마, 아빠랑 형이 그 소리 들으면 섭섭해한다.”
“너는?”
최수호가 곧장 물었다. 이런 사소한 순간 싫어도 알게 된다. 최수호의 우선순위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걸. 내가 최수호한테 끝까지 매정해질 수 없는 이유다.
“나도 너 좋아해.”
쉽게 나온 내 대답에 최수호가 음울하게 미소 지었다.
“나만큼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
“…….”
“나처럼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
정말로 최수호를 좋아한다. 쟤가 어디가 잘못돼서 신장 같은 게 필요하다면 기꺼이 떼 줄 의사도 있다. 최수호가 잘되면 기쁘고 힘들어하면 덩달아 힘들어진다. 소중한 사람을 꼽으라면 최수호 이름이 빠질 일은 없을 거다.
최수호를 좋아한다. 가족만큼. 가족처럼.
최수호가 원하는 ‘좋아해’는 이런 게 아니겠지. 이유진이 내가 다른 방식으로 자길 좋아해 주길 원했던 것같이.
“항상 나는…… 제일 바라는 건 잘 안 돼.”
최수호가 얼굴을 쓸어 올렸다. 베개에 눌린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얽혀 헝클어진다.
“네가 이유진하고 사귀기 전까지는 너하고 같이 있을 수만 있으면 다 괜찮았는데…….”
피하고 싶었던 고백이 다시 돌아와 훅을 날린다.
“네가 나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 참을 수가 없어. 너만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잖아.”
“…….”
“난 너 없으면 안 되는데.”
최수호가 눈가를 짓누른다.
끝에는 거의 흐느끼듯 먹먹해진 목소리가 나를 두들겨 패 댔다. 주르르 흘러내리는 손가락 위로 드러나는 얼굴이 전보다 말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새낀 왜 아프고 난리냐. 키도 큰 게 덩칫값 못 하고. 사람 마음 아프게…….
“나 버리지 마.”
꺼질 듯 연약한 날숨이 귀에 선명히 박혔다. 날아오는 창보다 더 예리하고 힘 있게 가슴에 꽂힌다.
“내가 너를 왜 버리냐.”
삼세번이라고, 앞에 두 번은 어떻게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성질이라도 내 봤다만 이번에는 차마 밀어낼 엄두조차 못 내겠다.
무너지기 직전의 최수호라니. 평소의 최수호에게도 이기기 힘든데, 승산이 없는 상대다.
“다른 여자애하고 사귀면 나보다 그 애가 우선일 테니까.”
“그게 왜 버리는 거…… 알았다고, 안 사귈게. 됐냐? 어차피 당분간 누구 사귈 마음도 없었어. 여유도 없고.”
“지금이 아니라도 나중에는 다른 사람 좋아하겠다는 거잖아.”
“계속 말꼬리 잡을래.”
“나중엔 나 두고 결혼해서, 너 닮은 애도 낳고.”
“순식간에 어디까지 가냐.”
아직 스물인데 결혼은 무슨. 까마득하다. 하여간 최수호, 앞서 나가는 버릇은 알아줘야 한다.
기막혀하는 나와 달리 최수호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잖아.”
목소리는 무거워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아까부터 최수호의 말은 절대 가볍지 않다.
“나 아닌 사람하고 결혼해서, 그 사람하고 같이 살겠지.”
정작 나는 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내 까마득한 미래를 최수호는 이미 수백 번 그려 본 듯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나. 다른 사람하고 결혼한 나. 최수호가 읊조리는 내 모습이 내게는 생소하다.
그러나 최수호의 말대로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막연히 짐작하던 미래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좋아하는 여자하고 결혼하겠지. 우리 부모님처럼 지내겠지.
“그러지 마, 열아.”
최수호의 속삭임에는 별 열의가 없다.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에는 이미 체념의 색이 강하다.
미치겠다. 제일 미치겠는 건 이제 도저히 사실을 외면할 수가 없게 됐다는 거다.
최수호가 진심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