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9 광신도의 종말
역겨운 자의 목이 날아갔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악마의 계약자를 처단함으로써 교단의 이름을 드높였다. 드디어 광휘에, 목표한 꿈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이상에 다가감을 느끼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호이레가 나를 향해 씩 웃었고, 나 또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아.”
하지만 눈을 깜빡하자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좁은 참회실. 훌쩍 커버린 손과 발.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참회실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내 뒤를 따라다니던 호이레는 존재하지 않았다. 복도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지나가던 사제가 나를 보고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호이레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호이레? 호이레 사제는 몇 년 전에 죽었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모든 것이 기억났다. 밀물처럼 빠르게 차오르는 기억은 나를 허망하게 만들었다. 나는 보잘것없는 후보자며 브렌다 후보자에게도, 심지어 ‘울리세’ 후보자보다도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나를 위해 충성스럽게 키워진 호이레조차 내 명령을 수행하다 죽었다.
손안에 쥐어졌다 생각한 것이 모두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갔다. 사제가 멍하게 넋을 잃은 나를 향해 측은함과 성가신 눈빛을 보낸 후 떠나갔다.
그래. 지금의 나는 결국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내가 이뤘다 생각한 영웅적인 업적은 모두 허상이었다. 신기루를 보고 달려간 사막의 여행자 같았다. 처음부터 다시 해내야 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이룬 적이 있던 걸까.
“울리세……. 울리세……!”
누구에게나 아름다움과 능력으로 칭송받는 그 푸른 눈의 후보자. 이제 사라져 버린, 꿈과도 같은 그 세계에선 집사였지만 이 세계에선 브렌다 후보자와 유일하게 대적하는 후보자였다. 그리고 내 기사, 호이레를 죽인 자 또한 울리세 후보자였다.
‘성가시게 구는군.’
과거 민간 시찰을 나갔을 때, 기회를 잡으려 드는 내 곁에 있는 호이레를 그가 죽였다.
채점하는 감시관들은 민간인을 죽일 경우 제재를 가하고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지만, 후계자 경합 때 후보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달랐다. 타 후보자가 이루어낸 것을 가로채도 후보자의 부하를 죽인다 해도 시민에게 걸리지 않고 포장만 할 수 있다면 정당한 것으로 치부된다. 후계자의 도덕성을 살피는 것이 아닌, 능력을 보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호이레 또한 나를 위해 울리세 후보자에게 범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으니 어찌 보면 정당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분노와 악연은 쌓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 역겨운 계약자는 울리세 후보자 곁에 있었지…….”
내가 아는 다 큰 울리세 또한 본인의 어린 모습인지 비슷한 모습의 아이인지 후보자 꼬마 곁에 있었다. 그 점을 미루어 보아 울리세 그 자식 또한 악마와 관련이 있을 거다.
“또 못 할 것도 없지.”
처음도 잘해냈으니 두 번째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른다. 보다 더 빠르고 제대로 크게 부풀릴 수 있을지도. 누명과 선동.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실패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교단 밖으로 나섰다. 일단 언론으로 기선을 제압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았다.
“마태오 쥬피터.”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간 순간, 나지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분홍색의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이 나부꼈고, 내 가슴에 날카로운 것이 관통했다. 가슴을 관통한 칼날에 내 일그러진 얼굴이 비쳐 보였다. 곧이어 참지 못하고 울컥, 붉은 피를 토해냈다.
“어……?”
검은 로브를 쓴 여자.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앙칼진 외모. 분노와 증오로 불타오르는 두 눈동자.
“브렌……다 샬라메……?”
꿈속에서의 익숙한 그 어린 모습이 아니었다. 장성해 훌쩍 큰, 권좌와 가장 가깝다는 평을 가진 검의 귀재. 그자가 내 가슴을 검으로 꿰뚫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샬라메 가문의 공녀와 원한을 쌓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어, 째서?”
“내 친구의 원수를 갚았다, 광신도.”
차가운 돌바닥에 형편없이 쓰러진 나를 브렌다 후보자가 냉정하게 내려다보았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눈을 굴렸지만, 어두운 뒷골목은 그가 통제하는 모양이었는지 쥐새끼 하나 지나다니지 않았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호이레가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진 않았을 텐데. 나를 향해 무조건적인 맹신을 보내던 호이레가 그리웠다.
분노와 슬픔으로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건가. 눈부신 광휘가 멀어져만 갔다.
신이시여, 당신의 종을 맞아주시옵소서.
하지만 생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에게 신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외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