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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8 조각의 짧은 기억 (20/21)

외전8 조각의 짧은 기억

나는 이제 죽는다. 아니, 죽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분리되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거니까. 나야말로 있어선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손이 희미해지는 것이 보였다. 내 앞에 있는 브렌다가 나를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즐거웠, 는데.”

요셉이 나를 위해 악을 행세할 때 본체가 나를 챙길 턱이 없었다. 그는 요셉에게 온 신경이 팔려 있었으니까.

처분을 어찌할지 모르게 된 아이를 신경 써준 건 샬라메 가문이었다. 브렌다는 고작 조각인 나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는 버릴 생각 따윈 하지 못하는 올곧은 사람이었다. 본체가 원래의 브렌다와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는 정반대에 위치한 사람이었으니까.

“울, 울리세? 이게 무슨……. 마법사를 불러야 하나? 이게 무슨 일이야!”

“브렌다, 사람을 불러오겠다.”

평소 표정의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는 프리실라 샬라메 또한 사색이 되어선 밖으로 뛰쳐나갔다. 높은 점수를 받은 후보자인 내게 문제가 생긴다면 샬라메 가문, 아니, 브렌다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방에는 나와 브렌다 단둘만이 남았다.

“괜찮아. 내가,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브, 렌다.”

사색이 된 브렌다는 초조하게 방을 돌아다녔다. 나는 그런 브렌다의 부산스러움을 멈추기 위해 그를 불렀다. 그러자 브렌다는 화들짝 놀라며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브렌다.”

“응. 왜 그래?”

평이함을 가장하고 멋들어지게 웃었지만, 그 목소리는 어찌할 바 없이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유망주라고 하더라도 어린아이였기에 완벽함을 가장하기엔 힘들었으리라.

“나는, 너랑 놀아서…… 즐거웠어.”

“어?”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을까. 브렌다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 내가 조각으로 떨어진 후에도, 전에도 브렌다와 친해진 것은 이번 회차가 처음이었다. 세기도 힘들 만큼 무수히 반복됐던 많은 삶. 버려지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나의 삶.

모든 플레이어는 저주로 인해 본체에게 홀려 나를 방치했다. 방치당한 나는 죽거나 좋지 않은 엔딩을 맞이했다. 본체가 어느 정도 방법을 찾아 삶이 나아졌을 때도 삭막함은 그대로였다.

플레이어들은 수치를 중요시했다.

‘아, 이거 좀 모자란데? 좀 더 올려야 되니까…… 휴식 시간을 빼고 학원을 보낼까.’

차가운 눈은 마치 정육의 등급을 매기는 것 같았다. 삶이 반복될수록 나는 말을 잃어갔다. 주변과 비명도 대화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친구가 생길 리가 없었다. 학원에선 공부만 했다. 성적은 올랐고, 실력도 좋아졌다. 그러나 입 한번 벙긋하지 않는 나에게 마음을 나눌 친구가 생길 리가 없었다.

그런 내게 요셉은 신기한 플레이어였다. 그는 나를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를 대하듯. 그렇게, 조심스럽고 상냥하게.

그래서 나 또한 평범한 어린아이가 되었다.

요셉은 나를 위해 본체와 대립하고, 나를 위해 몸을 날렸다. 본인을 방어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나를 껴안은 채 위협을 등졌다. 연약하지만 단단한 그 품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친한 아이가 생기면 좋겠네.’

나도 본체도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그 기대에 보답하고 싶었다.

학원의 아이들과 바로 친해지긴 힘들었다. 말이 어눌한 나를 바보 취급하는 녀석도 있었다.

‘말더듬이.’

하지만 그런 녀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초급반치곤 잘하는 나를 보고 다가오는 아이도 있었고, 나를 놀리는 녀석에게 화를 내주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는 그저 요셉에게 이야기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런 아이들과 진짜로 친해진 건 그날이었다. 스케이트장에 갔던 날.

‘말더듬이가 여길 와서 뭐 해! 병원이나 가라고!’

항상 나를 놀리는 녀석이 뒤에서 세게 밀어버린 탓에 얼음판에 넘어져 버렸다. 안 되는데. 요셉이 나를 보고 있는데. 사이좋은 걸 보여줘야 하는데. 그때였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이 똘추 같은 게!’

‘뭐라고?!’

‘그냥 울리세가 잘하는 게 부러워서 그러는 거잖아!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나 대신 싸워주는 여자아이. 그 말이 정곡이었던 듯 괴롭히던 아이가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정말 어려 보였다.

‘울리세, 괜찮아? 저 녀석은 무시해.’

‘……고마, 워.’

‘뭘. 다음에 같이 검술 연습하자. 너 정말 잘하더라.’

수줍게 웃는 여자아이를 선두로 다른 아이들도 왁자지껄 떠들었다.

‘뭐야. 너 치사하게! 나도! 나도 같이하자!’

이렇게 순수하게 나를 대하는 아이들이 처음이라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 하고 웃은 아이들은 나를 이끌고 얼음판에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탔다. 친구. 나도 친구가 생겼다. 웃고 떠들고 다 같이 신나게 놀았다.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하고. 어린아이로 지내는 건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브렌다가 다가왔다.

‘안녕. 나 알지?’

모를 수가 없었다. 브렌다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태어나길 고귀하게 태어난 그는 내가 바닥을 기는 엔딩을 맞이하든 좋은 엔딩을 맞이하든 언제나 빛나고 있었다. 본체는 브렌다를 싫어했다. 그와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서 있던 라이벌이 바로 브렌다였다.

반면 나는 싫어한다기보단 언제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검술 학원에서 잘 봤어. 너 대단하더라.’

그렇기에 그가 나를 대단하다며 눈을 빛내니 놀라고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우리는 검술 학원에서 친하게 지냈다. 시간을 내서 연습을 같이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즐거웠다. 브렌다는 그렇게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다른 수많은 친구가 있었지만, 브렌다가 유독 특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브렌다와의 시간은 즐거웠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요셉과는 다른 의미로 소중했다. 비록 이 세계는 모든 것이 가짜인 모형 정원임에도 나는 눈앞의 브렌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다.

“너는, 재미있었어?”

끝을 예감한 것일까? 브렌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내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은 이미 사라져 없었기에 그는 눈을 거칠게 문질러 닦고 나를 끌어안았다. 브렌다의 몸은 두려움에 차갑게 굳어 있었다.

“응! 즐거웠어!”

“…….”

“그러니까, 그러니까 가지 마!”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외치는 브렌다의 말은 안타깝지만 나로선 들어줄 수 없는 바람이었다. 내가 본체에게 흡수되고 나면 이 세계 또한 무너질지 모른다. 물론 이 세계를 만든 자의 변덕으로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계가 유지된다 한들 본체의 몸으로 돌아가면 난 자아를 유지할 수 없겠지. 본체가 부러웠다. 나는…….

그래도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원래라면 아무런 말도 없이 또다시 10살 때로 되돌아갔을 테니까. 나는 브렌다를 꼭 안으며 말했다.

“미안해. 나, 가야 해.”

“으……. 으우…….”

본체로 돌아가기 위해 몸이 완전히 빛으로 산화했다. 그 직전까지도 브렌다는 흐느낌을 참지 못하며 나를 놓지 못했다. 이 세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가 나를 어서 털어내 줬으면 좋겠다. 내 소중한 친구가 오랫동안 괴로워하지 않기를.

“가지 마! 울리세!”

비통한 외침에 나 또한 눈물을 흘렸다.

안녕. 잘 있어. 내 소중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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