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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6 칠전팔기(七顚八起) (18/21)

외전6 칠전팔기(七顚八起)

아늑하고 큰 집에서 살게 된 지 며칠이 지났다. 나는 서울의 부촌에 당당히 자리한 단독주택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지금도 약간은 믿기지 않았다. 단언컨대 내가 바랐던 꿈의 집보다 몇 배는 더 좋았다.

울리세는 따로 외출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돈을 마련하는 건지 정말 알 수 없었다. 뭐…… 신분을 만들 정도이니 돈 정도는 문제없겠지. 하여튼 그 문제는 이제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의 내가 지금이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한 건 취소한다. 나는 하루하루 그 전날보다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치 방송을 끝내고 방 밖으로 나오자 울리세가 반짝이는 눈을 한 채로 나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와…….”

식탁에는 싱그러운 장미가 유리 화병에 꽂힌 채로 장식되어 있었고, 요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맛있었다. 드라마에서 봤던 레스토랑도 이보단 덜 로맨틱했다. 나는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 울리세의 눈에서는 옅은 흥분과 기대가 느껴졌다.

“요셉, 어떠십니까?”

“맛있어요. 오늘도 역시 최고예요. 최고.”

행복하게 식사를 끝내자 울리세는 나를 정중하게 에스코트했다. 평소보다 부드러운 손길에 기분이 상기되었다.

“이리로. 제가 목욕물을 준비했습니다.”

볼을 붉히며 그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향했다. 원룸과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욕실은 이 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장소 중 한 곳이었다. 욕실은 평소의 모습과는 달랐다. 무려 물에 빨간색의 예쁜 장미 꽃잎이 뿌려져 있었다.

“…….”

“이쪽으로.”

그가 작정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노골적인 행동이 싫지는 않았다. 얼마 전 좋은 분위기가 허무하게 박살이 났던 것을 나 또한 기억했고 아쉬웠기에. 연인이 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제대로 된 관계를 가지지 못한 것이 나 또한 마음에 걸렸다.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옷이 허물처럼 벗겨지고 물에 몸을 담았다. 향기로운 입욕제가 욕조에 풀어졌다. SNS에서 자주 보았던 동그란 고형의 물건이 아닌 액체로 된 것이었는데 저택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향은 어떠십니까?”

“좋아요…….”

뜨끈한 물에 몸이 노곤하게 풀리자 목소리가 늘어졌다. 배부르고 따뜻한 물, 거기다가 마사지까지. 달아오른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은 끔뻑끔뻑 감겼다. 울리세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시중을 이어나갔다.

몸에 향긋한 입욕제의 향기가 밸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그가 얕게 잠에 빠졌던 나를 건져내서 커다란 타월에 감싸 물기를 닦아냈다.

“응……. 끝났어요?”

“네. 기분이 좋으신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는 울리세가 더욱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으레 목욕이 끝나면 입히던 옷을 단 한 장도 입히지 않고 침대로 데려갔다. 그쯤 되니 꾸벅꾸벅 졸던 나도 잠에서 번뜩 깨어나 볼을 붉혔다. 이 상황이 영상 매체에서 자주 보았던 첫날밤 상황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의 정석적인 상황이었다.

“요셉…….”

그는 나를 품에서 떨어뜨리기 싫은지 끌어안은 그 상태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모로 누운 그의 품은 안락했지만 뜨거웠다. 그는 이미 흥분했는지 바지 너머로 발기한 것이 느껴졌다. 그의 들뜬 숨이 내 목가에 다가왔다. 그가 맛을 보듯 핥았다.

“흣…….”

“당신이 기분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품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손에 몸을 맡겼다. 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대담하게 몸을 주물렀다. 이미 그는 내 몸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나는 그가 만지는 족족 신음을 흘렸다.

“힛, 울리, 아!”

범람하는 쾌락에 나도 모르게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밀려나긴커녕 더욱 손속이 집요해질 뿐이었다. 뽀송하게 닦인 몸은 달아올라 땀으로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더욱 달라붙듯 피부를 쓸어 올렸다.

“여전히 민감하시군요. 정말이지…….”

그가 내 목을 가볍게 물었다. 그 행위에 파드득 몸을 떨자 그는 기쁜 듯 웃으며 허리선을 쓸어 올렸다. 그 손길에 그대로 허리가 휘었다.

“흐으읏! 아…… 그, 그만……!”

예전에도 그랬지만 자신 또한 한계치까지 발기했음이 분명한데도 자신의 욕구를 풀기보단 나를 주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또 나만 녹초가 될 것이 분명해 그를 자극하기로 마음먹었다.

“요, 셉?”

“나, 나만…… 싫어.”

힘이 들어가지 않아 덜덜 떨리는 다리를 벌려 그의 허리를 감싸 당겼다. 축축하게 젖은 하반신이 뜨겁게 발기한 그의 하반신과 맞닿았다. 그와 동시에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응? 빨리…….”

“큭…….”

그가 아플 정도로 강하게 나를 자신에게서 떨어뜨렸다. 흉흉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욕으로 불타는 시선이 나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었다. 쾌락으로 인해 흐물흐물해진 머리가 피식거리며 웃음을 만들어냈다.

마침내 그가 내 다리를 잡아 벌리는 순간, 여느 때와 다른 통통 튀는 멜로디가 핸드폰에서 울렸다.

“……무시하세요, 요셉.”

“…….”

다른 때였다면 무시했을 거다. 저 벨소리가 평소의 그 벨소리였다면 말이다. 지금 울리는 멜로디는 내가 직접 지정한 특정 인물에게서 전화가 올 때만 울리는 벨소리였다.

그랬다. 가족 지정 벨소리였다.

“요셉…….”

울리세의 눈썹이 팔자로 축 처졌고 애원하듯 울먹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까까지의 흥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몸으로 그를 가볍게 밀자 그가 처량한 모습으로 밀렸다. 평소라면 나에게 절대 밀리지 않을 사람이니 그가 불쌍한 척을 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첫째 형]

“하아아…….”

핸드폰에 뜬 화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긴 한숨을 내뱉은 후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형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형. 무슨 일이야?”

-어. 요셉아. 혹시 바쁘니?

“아니. 괜찮아. 왜?”

울리세가 불퉁한 얼굴로 나에게 이불을 감싸며 그대로 끌어안았다. 그 모습은 토라진 어린아이 같았고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향수에 사로잡혀 전화하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 울리세의 머리에 나 또한 얼굴을 비볐다.

“하아…….”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자 어쩐지 다급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셉? 요셉? 내 말 들리니?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형의 말에 대답했다.

“아, 형 미안해. 내가 잠깐. 응, 뭐 말했어?”

-……형이 네 집 근처인데 잠깐 만날 수 있을까 해서.

갑자기? 아니, 잠깐. 형이 알고 있는 내 집 주소는 예전의 원룸이다. 지금의 나는 원룸에선 멀리 떨어진 이 집에서 산 지 꽤 오래되었다. 나는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형. 그게…… 내가 지금 다른 곳에 와 있는데.”

-……요셉.

형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딱딱해졌다. 긴장되어 꿀꺽 침을 삼키고 있으니 울리세가 나를 달래듯 쓰다듬었다.

-시간을 내서 좀 만났으면 하는데.

“지금은…… 좀.”

-……그래. 지금 무리라면 내일 만나자.

“응.”

결국 내일 당장 아침부터 원룸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태산같이 커져만 갔다. 자라나는 것은 걱정뿐만이 아니었다. 불안, 초조.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들이 몸을 불려 나갔다.

“요셉, 불안해하지 마세요.”

“하지만…… 형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는 뭔가 심각한 이유가 있어서예요.”

우리 가족은 모두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 예를 들어, 우리 집은 외박이 쉽게 허용되었다. 친구의 신원이 확실하면 며칠이고 다녀올 수 있었다. 성적 또한 간섭하지 않았다. 꼴등을 하더라도 내가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

방임은 아니었다. 가족들은 내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 달려와 주었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엄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어떠한 선을 넘으면 그들은 차갑고 매섭게 화를 냈다.

아직도 기억이 났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외박했을 때였다. 바빠서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형과 누나가 모두 모여 거실에서 내가 돌아오길 기다렸던 그날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방금 통화에서의 형의 목소리가, 바로 그때의 목소리와 같았다.

그들이 나를 때리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형과 누나에게 물리적인 체벌을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차라리 때렸다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아픈 것은 잠시니까. 도망치면 되니까.

형과 누나는 나를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 그것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려웠다.

“괜찮습니다, 요셉.”

“…….”

“제가 있습니다. 여기 당신의 울리세가 있어요.”

“……울리세…….”

나를 양팔로 단단히 껴안은 그는 정말이지 든든했다. 따뜻한 그의 품에 안겨 있자면 걱정이라곤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세상 모든 풍파가 이곳에서만큼은 위세를 부릴 수 없었다. 그가 나의 행복이며 평화였다. 그 작은 울리세를 보호했던 시절이 있다는 걸 잠시 떠올리면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식은 분위기는 다시 처음처럼 달아오르진 않았지만 나는 한껏 평온한 분위기에 몸을 맡겼다. 급격한 긴장과 이완을 겪은 터라 정신이 피곤했는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깨운 울리세 덕분에 다음 날 나는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 * *

“다 끝나면 연락해 주셔야 합니다.”

“응. 알겠어요.”

울리세가 운전한 차를 타고 약속한 장소 근처까지 왔다. 그가 운전하는 차는 정말이지 편했다. 마차를 몰았던 솜씨가 사라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보다 더 완벽하게 현실에 적응하는 것 같아 가끔은 묘할 때가 있었다.

“후우우우…….”

걸어가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자 조금은 답답한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 이미 닥쳐온 것.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심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카페 안에 들어가 음료를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형!”

“요셉, 잘 지냈니?”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목소리. 평소와 똑같았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제야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응. 형은 갑자기 어쩐 일이야?”

“못 본 지 한참은 되었기도 했고, 또…….”

형은 답지 않게 잠시 말을 주저했다. 그 모습에 나는 재차 긴장했다. 손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니?”

“아, 어…….”

형의 얼굴에는 묘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런 형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돌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형과 누나는 그 누구보다 내 거짓말을 잘 알아챘다. 게다가 나 또한 거짓말을 잘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응…….”

“그럼 최근 다른 장소에서 방송하는 건 애인네 집이고?”

“……응.”

방송 장소가 바뀐 것을 알았구나. 목이 타 음료를 벌컥 마셨다.

“애인이 아까 그 남자니?”

“……어?!”

마시던 음료를 뱉을 뻔했다. 크게 놀란 나를 보며 형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내 심장은 덜컥 떨어졌다.

“말해두는데 형도 누나도 그런 거로 차별하는 사람은 아니야.”

목소리에는 화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고 평소와 같은 담담함이 있어 나는 겨우 형을 마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 부자인 것 같은데, 네가 경제적으로 너무 의지하지 않을까 형은 좀 걱정돼.”

“……응. 나도 그건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

“그래. 너도 어른이니까 형이 더 이상 간섭하는 것도 좀 우습지.”

그렇게 형은 자신의 몫으로 나온 음료를 한 번에 쭉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요셉,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도록 해. 네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네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도우러 올 거야.”

“……응.”

“또 연락할게. 다음에 보자.”

형은 바람같이 카페를 떠났다. 차갑게도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나를 깊이 사랑함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와 눈을 비볐다. 그런 내 손을 누군가가 부드럽게 잡았다.

“요셉, 그러다간 눈이 붓습니다.”

“울리세? 어떻게?”

“얌전히 기다리려고 했는데…….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여상스럽게 말하는 그는 내 손을 잡고 일으켰다. 나는 그대로 이끌려 차에 태워졌다. 그는 운전석에 앉은 후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괜찮은가요, 요셉?”

“……네. 그냥 안심해서…….”

그는 내 손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세게 쥐었다.

“사실, 조금 나쁜 생각을 했습니다.”

“나쁜 생각이요?”

그는 자조하듯 웃었다. 그 표정은 강한 불안감을 일으켰고, 나는 강하게 그의 손을 쥐었다. 울리세는 그런 내 행동을 거부하지 않고 손을 맞잡곤 꽉 쥐었다.

“당신이…… 가족에게 버림받아 혼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그의 표정에서 아주 희미한 희열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그러진 않았다. 지독한 고독감이 깊은 골짜기가 되어 그에게 상흔으로 남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처받은 어린 울리세의 모습이 환상처럼 그의 얼굴에 겹쳐졌다.

“정말 역겹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데. 물론 저 또한 요셉, 당신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울리세.”

“하지만 저에게서만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이기심이 제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울리세.”

자신을 탓하는 그 모습에 나는 재차 강하게 그를 불렀다. 말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그는 어린 울리세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연인의 모습이었기에 어린 울리세를 보며 느꼈던 책임감과 보호심이 아닌 기쁨이 피어올랐다.

“우리, 집에 가요.”

“……네.”

“그리고 어제 못했던 것도 해요.”

“…….”

울리세가 천천히 손을 놓고 내 쪽으로 몸을 숙여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었다. 그의 몸에서 끓어오르는 열기가 훅 내게 향했다.

“꽉 잡으세요.”

반사적으로 안전벨트를 꽉 잡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야말로 황야를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차를 운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운전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종횡무진이었다. 운전을 모르는 내가 봐도 무법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경찰이 쫓아올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집에 도착했다.

“울, 울리세. 진정해요.”

“못 합니다.”

그는 차에서 내리려는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말하는 어투는 평이했지만 행동은 조급했다. 나 또한 감화되어 귀가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침실로 걸어갔다.

“신발요, 신발!”

“괜찮습니다. 청소는 제가 합니다.”

그야 그렇지만……. 조급하게 굴길래 침대에 던져지려나 했는데 예상과 달리 그는 나를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러곤 내 앞에 무릎 꿇고 천천히 옷을 벗겼다. 신발과 양말, 속옷조차 벗겨진 나는 부끄럽게도 셔츠 한 장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 그냥 빨리하면 안 돼요?”

“싫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하곤 내 다리를 가볍게 벌렸다. 종아리부터 입을 맞추며 황홀한 눈으로 무릎에 이마를 기댔다.

“당신에게 봉사하는 기쁨을, 당신은 모를 겁니다.”

순간 목구멍에서부터 변태라는 단어가 치솟았지만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내 떨떠름한 반응을 모르는 건지 아는 건지 그는 천천히 위로 올라와 허벅지를 쓸고 입을 맞췄다. 그의 손길에 기대돼 나도 모르게 다리가 가늘게 떨렸다.

“흣.”

여린 살을 자극당하니 나 또한 함께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나른하게 웃으며 내 성기를 입에 머금었다. 그의 혀가 능수능란하게 애무했다.

“하아, 읏, 힉!”

할짝이다 못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목구멍으로 삼켰고, 뜨거운 점막이 주는 감각에 몸이 무너져 내렸다. 팔로 몸을 지탱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세게 빨고 핥는 울리세의 행동에 결국 사정해 버렸다.

“하아……. 하아…….”

나는 그저 헐떡이며 숨을 고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내 다리를 잡아 벌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손대지 않았던 곳을 핥기 시작했다.

“으, 거긴……! 더러워요!”

필사의 만류에도 그는 대답 없이 구멍을 정신없이 핥았다. 외설적인 소리가 나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걷어차야겠다고 생각해 다리를 움직인 찰나, 그가 더욱 단단하게 다리를 잡아 고정했다.

나는 그런 부위로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흐읏, 아!”

정신을 다잡기도 전, 그가 한껏 핥아 녹진해진 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침과 온갖 애무로 인해 부드러워진 구멍은 처음임에도 무리 없이 그의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을 들이켰다.

“힘을 푸세요.”

“어, 읏. 어떻게…….”

울리세는 몇 번이고 내게 힘을 풀라고 했지만 솔직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힘을 풀겠는가. 결국 그는 노선을 바꿔 손가락으로 내 뒤를 계속 쑤셔댔다.

“읏, 그, 그만…….”

전의 관계와는 다르게 답답하고 고통이 수반되는 것 같아 거부하려는 순간, 울리세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눌렀다. 그러자 지금까지 중 가장 강렬한 쾌락이 내 몸을 후려쳤다.

“아!”

막을 새도 없어 벌려진 내 입에서 큰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비음이 섞여 낯설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손가락으로 그 부분만을 자극했다. 허리를 뒤틀고 허벅지를 꿈틀거리며 쉼 없이 넘나드는 쾌락의 파도에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 응! 읏……!”

파드득거리며 헐떡거리던 것도 잠시, 결국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두 번째 사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내 체력은 바닥나 침대 위에 축 늘어졌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울리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절경이군요.”

태연하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그의 성기 또한 발기한 채였다. 도끼눈을 뜨며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키득거리며 바지 버클을 풀었다. 속옷 밖으로 튀어나온 성기는 핏대까지 흉흉하게 치솟아 흉악해 보일 정도였다.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태연하게 말한 것과 대조적으로 성난 성기는 저 혼자 꺼덕거리기까지 했다. 그는 내 다리를 벌리곤 구멍에 성기를 강하게 밀어 넣었다.

“흐으읏!”

“큭…….”

불타오르는 뜨거운 기둥이 내장을 헤집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었기에 나는 어쩔 줄을 모르며 허우적거렸다. 울리세의 봉사에 안 그래도 멍해졌던 뇌는 아예 녹아버렸는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으, 아…….”

그의 성기가 내장을 꿰뚫어 구멍이 난 것 같아 멍청하게 배를 더듬었다. 얇은 뱃가죽으로 불룩하게 성기의 윤곽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뭐…… 으, 지? 이상…….”

멍청하게 더듬거리자 울리세의 시선이 흉악해졌고 내 다리를 쥐어 잡은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어디서, 그런 행동을, 배우셨습니까?”

“아, 아! 흣! 아아……! 아!”

아까까지는 배려받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그는 무자비하게 느껴질 정도로 성기를 내 안에 처박았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한 허리 짓에 나는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이대로라면 죽겠다 싶어 양팔을 벌렸다.

“힉……. 그, 안아, 안아주세요.”

“…….”

올바른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허리 짓을 느릿하게 멈추고 몸을 내게로 숙였다. 그의 목을 끌어안자 그 또한 내 상체를 끌어안았다. 빈틈없이 달라붙은 몸으로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전달되었다.

“조금, 만 천천히…….”

“…….”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자극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겨우 말한 그 순간, 그가 강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극점을 바로 자극한 탓에 나는 자지러질 수밖에 없었다.

“힉!”

“천천히는, 하아, 무리일 것…… 같군요.”

빠르게 허리를 움직이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있는 힘껏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하, 아, 으응, 아…… 아!”

“후…….”

그가 내 안에 파정했고, 정액이 퍼져 나가는 기분에 더욱 쾌락에 취했다.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있었을까. 칠칠맞지 못하게 흘린 침을 울리세가 슥 핥으며 말했다.

“제가 요셉을 만족시켜 드렸나요?”

“하아……. 하아……”

그 목소리는 나른했고, 배부른 포식자의 만족감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대답할 겨를도 없어 힘겹게 눈을 뜨자 그가 다시 허리를 느릿하게 움직였다.

“힉!”

“제가, 만족을 못 시킨, 모양이군요.”

“아, 아니. 으읏…….”

극점을 뭉개는 그의 행위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는 내 얼굴 곳곳에 키스하며 웃었다.

“우리에게 시간은 기니까.”

“앗! 응!”

“천천히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날 하루를 꼬박 울부짖었다. 너무 오래 참았던 걸까. 그는 내 허리를 녹여냈고 녹초가 된 나를 행복하게 간호했다.

밤새 울어대며 혹사당한 탓에 그의 행복한 얼굴을 보자 울컥 화가 나기도 했지만, 번쩍대며 빛나는 그의 외모를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렇듯 그의 외모는 물이 올라 번쩍거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분도 좋았고…….

아마도 내가 그의 외모에 지지 않을 날은 없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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