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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5 행복한 하루 (17/21)

외전5 행복한 하루

울리세가 내가 사는 이 세계로 넘어온 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이제 이름을 부르는 것도 익숙해졌다. 가끔 작은 울리세가 보고 싶었지만, 큰 울리세가 되어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리움을 어느 정도 삭힐 수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내가 그에게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의 능력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그는 본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 신원 불명의 사람이었다는 거다. 어느 나라로 가나 신원이 없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어찌하나 싶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이 세계에 온 지 일주일 후, 울리세는 나에게 별것 아니라는 듯 신분증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제 신분증입니다.’

놀라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로 대한민국 국적의 주민등록증이었다. 심지어 검은색 머리카락의 울리세가 떡하니 찍혀 있었다. 염색한 건가? 증명사진은 대체로 못생기게 마련인데 여전히 외모가 빛났다. 아니, 근데 어떻게 이걸 얻은 거지?

‘그, 어떻게 이걸……?’

울리세는 그야말로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빙긋 지으며 나를 보았다. 말을 안 해도 그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음, 애초에 합법적인 방법으론 정당한 신분을 취득하기 힘들었겠지.

‘……그래도 걱정했는데 해결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 문제도 해결했으니 요셉의 문제도 해결할 차례입니다.’

‘네? 제 문제요?’

내 문제? 내 문제라니 금시초문이었다. 나에겐 문제랄 것이 없었다. 인간관계도 멀쩡하고 고친 컴퓨터로 방송도 멀쩡하게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울리세가 내 식생활을 챙겨주기까지 하니 그 어느 때보다 완벽했다. 오죽하면 시청자들이 얼굴에 윤기가 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나에게 문제? 내 인생 중 지금이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데?

‘이 집…… 말입니다’

그는 집이라고 차마 말하기도 싫은 것처럼 느리게 말했다.

‘……집이요?’

‘취침 공간과 근로 공간, 심지어 취사 공간과 식사 공간까지 동일한 집이라니. 요셉은 괜찮을지 몰라도 제게는 그냥 감옥 같아 보입니다.’

‘어…….’

그의 눈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생각보다 지금의 거주환경을 엄청나게 큰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곳을 구하기엔 돈도 없고…….’

‘그럼 가실 수만 있다면요? 옮기고 싶으시긴 합니까?’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는 이 원룸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공간이라지만 나도 방이 두 개쯤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아니, 두 개는 바라지도 않으니 부엌과 방이 분리된 공간으로.

하지만 이 꿈은 소박하지만 이루기 힘든 꿈이기도 했다. 지금은 이 원룸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방송 전용 스튜디오를 마련하는 것도 좋을 텐데…….

‘그렇기야 하죠. 크게는 안 바라고 부엌하고 자는 공간만 좀 분리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긴 해요.’

‘고작 그거로 되겠습니까?’

‘뭐…… 크게 바라봤자 이루기도 힘들 거고.’

‘그래도 한번 말씀해 보세요.’

‘음…….’

나는 머릿속으로 이상적인 집을 그렸다. 아담한 벽돌집에 작은 정원이 귀엽게 꾸며진 집을.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집은 그야말로 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현실감이 없었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집이었다. 아니지, 가끔 티브이에서나 볼 법한 집이었다.

‘벽돌집이 아담하고…… 거실에는 푹신한 러그가 깔려 있고, 침대는 세 명이 누워도 컸으면 좋겠고…… 욕조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택에서 목욕할 때 정말 좋았거든요.’

‘그리고요?’

‘그리고…… 음……. 맞아, 작업실도 있으면 좋겠네요. 그때 저택에서의 작업실은 정말 꿈에 그린 것 같은 공간이라…….’

채광이 환하게 들어오는 작업실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져본 완벽한 공간이었다. 다시 얻는다고 해도 그만큼 좋은 장소를 얻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 수입으론 불가능에 가깝겠지. 요즘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도 집을 구하기가 힘들지 않은가. 로또에 당첨되어도 힘들 거다.

‘지금도 나쁘진 않아요. 울리세도 이렇게 같이 있고. 행복해요.’

‘그렇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의 불만 어린 모습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당신과 함께라서 행복해요, 라는 말이 그에게 통했나 싶어 나는 기쁘게 웃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가 해준 밥을 먹고, 방송하고, 기쁘게 울리세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금, 난생처음 보는 공간에서 눈을 떴다.

“……?”

포근한 아이보리색의 천장은 내가 살던 원룸의 천장이 아니었다. 모르는 공간에서 눈을 떴다는 충격에 단번에 잠이 깨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살던 원룸은 생활 가구가 포함된 집이었다. 그런 터라 썩 좋은 가구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방에 있는 가구들은 지식이 없는 내가 보아도 확연하게 좋았다. 때깔 좋은 가구들이 넓은 방 안에 있었다.

납치당한 건가? 아니면…… 설마, 또 다른 세계로 온 건가? 밀려오는 두려움에 눈알조차 굴리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을 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마 옆을 보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자니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와 벌떡 일어났다.

“요셉, 일어났나요?”

“울리세?!”

그가 나를 향해 몸을 숙이고 있었던 것인지 빠르게 몸을 일으키다 머리가 부딪칠 뻔했다. 그가 순발력이 빨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새로운 집입니다.”

“네? 새로운 집이요?”

갑자기요?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부축해 일으켰다. 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기에 가벼운 공황 상태에 빠졌고, 그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정신을 조금 차렸을 때는 푹신한 소파 위였다. 발바닥으로 보드라운 융단의 결이 느껴졌다. 앞에는 커다란 티브이까지 있었다. 아마도 내가 있는 곳은 거실 같았는데 이전의 원룸 두 배는 될 정도로 큰 공간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새로운 집입니다.”

울리세가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차가운 얼음이 담긴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이가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움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요셉이 원했던 작업실도 있습니다. 방은 당연히 따로 있고요.”

“아, 아니. 그게 갑자기요? 제가 살던 집은요?”

“계약을 해지할 순 없더군요. 그대로 있습니다. 짐은 이미 옮겨 왔고요.”

나는 머리가 아파와 손으로 이마를 문질렸다. 도대체 이런 집은 어디서 난 걸까. 아니, 나를 어떻게 여기까지 데려온 걸까? 내가 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이 공간으로 옮겨질 때까지 깨지 않았다니 너무나 놀라웠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뿌듯하기 그지없어 마치 공을 주워 온 개 같았다. 욕의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대형견 같았다. 주인님에게 칭찬을 바라는 그 모습이란.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전, 이런 곳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제가 요셉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울리세가 내 양손을 소중하게 꼭 쥐었다. 은은한 미소가 감도는 모습은 싱그럽게 피어난 작약마저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니 차마 내가 살던 장소로 되돌아가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저도요.”

결국 긍정의 답을 뱉었고, 그가 더욱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 건 당연했다. 정말이지 눈이 부셨다.

생각해 보면 나쁠 것은 없었다. 원룸보다야 이런 집에서 사는 것이 단언컨대 더 좋았다. 없던 신분도 만들어낸 능력이 있는 그다. 이 집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법에 걸릴 일은 없을 거다. 놀라긴 했지만, 연인과의 동거라고 생각하면…….

그래, 그렇게 합리화를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식사하세요, 요셉.”

아름다운 연인과 편안한 집. 맛있는 음식. 모든 것이 완벽했고 나쁜 것이 없었다. 나는 고민과 걱정을 털어내고 부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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