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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3 재회 (15/21)

외전3 재회

집사님, 울리세와의 생각지도 못한 재회는 내게 정말 큰 기쁨을 주었다. 그의 손을 잡고 거리를 나란히 걸으니 나를 괴롭혔던 증상들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울리세가 내게 만병통치약이 되었다는 게 현실에서도 적용돼 정말 신기했다.

우리는 느긋하게 그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며 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온 그는 당황스러운지 눈알을 굴려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이렇게 좁은 곳이 집입니까?”

물론 저택에 비하면 좁은 것은 맞다. 하지만 고작해야 사회 초년생의 나이에 서울에서 이런 멀쩡한 원룸을 구해 살기란 쉽지 않았다. 누나와 형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마저도 구하지 못했겠지. 뭐, 아무리 그래도 역시 그렇게 큰 저택에 살았던 그의 눈에는 창고보다 못할 테다.

나는 일부러 뻐기듯 방어적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궁전이죠. 궁전.”

“……그렇습니까.”

“그럼요. 여기 집값도 집값이고 멀쩡한 곳을 찾는 게 기적일 정도니까요.”

고시원에서 자취하며 출근을 하는 사람도 널리고 널렸다. 반지하에서 자취를 시작하는 사람 또한 많았고. 그러나 나보다는 훌쩍 큰 그가 원룸에 있으니 좁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도 나를 따라 들어왔다. 그대로 신을 신고 들어오려다 나를 보고 신발을 벗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일단 씻으시죠.”

“아.”

반가움에 잊고 있었지만 내 상태는 엉망 그 자체였다. 정신없이 뛰어다녀 땀을 흘린 데다가 숨어 있던 곳이 뒷골목인 탓에 시큼한 냄새가 뒤섞여 역겨운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심지어 흙먼지가 묻어 지저분하기까지 했다. 심하지는 않지만, 상처까지 있었다. 말 그대로 엉망인 꼴이었다.

“욕실은 어딥니까?”

“음. 욕실은…… 없지만.”

나는 부엌 옆에 작게 붙어 있는 화장실을 보았다. 그는 내 시선이 향한 곳으로 지체 없이 걸어가 문을 열었다. 아마도 저택에서처럼 시중을 들어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자마자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화장실을 바라보았다. 평소 단정했던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놀라 입까지 벌리고 있었다.

“하하. 욕실은 없고 화장실은 있어요.”

그렇게까지 충격 먹을 일인가 싶다. 나는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는 성격이라 곰팡이가 슬지도 않아 깨끗했다. 샤워기도 멀쩡하게 달려 있고, 수압 또한 괜찮았다. 느긋하게 씻기에는 그래도 나쁘진 않은 편이었다.

“……그렇군요. 혼자 씻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죠! 제가 뭐 어린앤가. 집사님이 맨날 저 씻겨줘서 모르시나 본데 저 어른이라고요.”

묘하게 실망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어쩌겠는가. 화장실은 작았고 같이 들어갈 수는 있어도 시중을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넓지 않았다. 문을 막고 있는 그를 옆으로 살짝 밀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그가 내 손목을 잡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요셉.”

“갑자기 왜 그래요, 집사님?”

“……전 이제 집사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는 이제 집사가 아니고 진짜 이름인 울리세가 있었다. 하지만 그를 울리세라고 부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작은 울리세와 동일인임을 납득했지만, 납득한 것과 입으로 뱉는 건 다른 일이었다.

“앞으로, 꼭, 울리세라고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그, 알겠어요……. 울, 울리세.”

어쩐지 내가 몇 년 동안 키운 새파랗게 어린애와 연애하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아니, 그게 맞구나……. 기묘한 배덕감에 휩싸인 나와 달리 그는 행복한 미소를 띠며 손목을 놔주었다. 그야말로 후련하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그는 오랜 기간을 본명으로 불리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부르도록 노력해야지. 붉게 달아오른 볼을 손으로 부채질해 식혔다.

울리세……. 울리세……. 속으로 이름을 몇 번 되뇌니 어딘지 가슴가가 싸해져 왔다. 눈을 질끈 감아 생각을 털어내며 옷을 훌렁훌렁 벗고 샤워를 시작했다. 상처가 조금 쓰린 것도 잠시, 따뜻한 물로 몸을 씻어내니 개운해 온몸이 광이 나도록 닦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수건과 겉옷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

그가 내 알몸을 몇 번이나 봤던 것을 알고는 있다. 알고는 있는데, 긴장이 되고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대로 화장실에서 시간을 계속 보낼 수는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그를 부르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나에게 말했다.

“요셉? 다 닦으셨습니까?”

“아, 그, 네!”

“나오세요.”

그 말에 주저했던 것도 잊어버린 채 문을 열고 나섰다. 문을 열자 그가 수건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물은 잘 나오는 모양이군요.”

“그럼요. 제일 먼저 체크한 걸요.”

“다행이군요.”

그는 수건으로 꼼꼼하게 내 몸을 닦아냈다. 볼을 붉히며 긴장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사무적인 모습이었다.

그새 집을 다 살폈는지 수건에 이어 능숙하게 옷을 찾아 나에게 입혔다. 게임이 아닌 현실, 그것도 집에서 편하게 입었던 옷을 이렇게 태가 나게 입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나에게 옷을 입힌 후 그는 내 어깨를 살폈다. 총을 맞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이제, 아프지 않습니까?”

“……네.”

이제는 흔적조차 없는 그 상처. 순간 가슴을 옥죄는 고통이 침습했다. 감옥에서 느낀 고통. 절망은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괴롭혔다. 안온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진창으로 처박혀 나는 숨을 쉬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요셉!”

“힉……. 히익…….”

기껏 입혀준 옷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그가 다급히 나를 안아 들고 다정히 토닥이자 다행히 금세 진정이 되었다.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빠른 회복이었다. 나를 안아 든 그를 올려다보니 놀랍게도 그는 울고 있었다.

“아, 아니. 왜 울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집사, 아니, 울…… 하여튼 쏜 사람은 따로 있잖아요!”

“충분히.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순간 원망이 가슴속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보니 그를 향한 안 좋은 감정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속으로 자조했다. 나는 울리세에게 너무 약했다. 화를 내려고 노력했지만, 울상이 된 작은 울리세가 생각나 피어오르려 했던 화마저 사그라들었다.

그는 소리 없이 울며 내 몸을 매만졌다. 이제는 없을 상처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듯했다.

“당, 당신이 포기하고…… 저와 함께 도망가기를 원했습니다.”

“네?”

“요셉 당신은 연약한 사람이니 금방 포기하고, 그런, 쓸모없는 조각 따윈 버리고, 나와 단둘이, 함께 가줄 거라고.”

“하…….”

“도망간다면 그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요셉의 배에 있었던 꽃은 가짜가 아니었으니까.”

그의 말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서글퍼 화도 나지 않았다. 언제나 강하고 못 하는 것이 없는 아름다운 남자. 너무나 완벽해 가끔은 인간 같지 않을 때가 있는 조각상 같은 남자. 그것이 내가 가진 그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품에 안고 있는 이 남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서진 노인 같아서 그의 고통을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럼 사과해요.”

“……사과?”

나는 너른 품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그의 어깨를 짚고 말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표정이 애간장이 타듯 간절했다.

“나에게 사과하면, 용서해 줄게요.”

그의 표정은 정말이지 이상했다. 기쁜 것 같기도 했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뒤죽박죽의, 이도 저도 아닌 괴상한 표정의 그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미안, 미안합니다.”

“그래요. 용서할게요.”

그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상태로 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팔다리가 저릴 정도가 되어서야 그는 울음을 멈췄고, 나를 조심스럽게 안아 침대에 내려놓아 주었다. 벌겋게 부어오른 그의 눈은 이 상황에서조차 어여뻤다.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의 눈가를 만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하……. 요셉은 제 외모를 정말 좋아하는군요.”

“그럼요. 이건 당연한 거예요……. 울, 울리세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지구상에 몇 없을걸요.”

내 주책 어린 말에 그는 작게 웃었다. 아까까지의 울적한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내가 그의 눈가를 만지듯 두 손을 내 얼굴에 올려 소중하게 보듬었다. 눈가를 섬세하게 매만지고 밑으로 내려가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그가 만진 자리가 열이 오른 것처럼 간지러웠고 그의 시선이 부끄러워 눈을 슬며시 감았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그가 입 맞췄다. 설렘과 동시에 배덕감이 아스라이 발끝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그때-

지이이잉.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에는 키스에 집중해 몰랐다. 하지만 끊임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에 집중이 깨지고 전화가 왔음을 알았다.

“잠, 잠깐만.”

“……그건 뭡니까?”

그는 핸드폰이 뭔지 모르는 듯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광고면 무시하려 했으나 앞자리가 010인 것을 보니 광고는 아닌 듯했다. 짧은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자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컴퓨터 수리 기사인데요. 김요셉 고객님 맞으신가요?

“아…… 네.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내 컴퓨터는 망가졌었다. 힘없이 대답하자 기사님은 바로 오겠다고 말했고, 알겠다는 대답을 하자 전화는 끊겼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조급한 손길이 다가왔지만, 그에 응해줄 수 없었다.

그의 아름다운 푸른 눈이 불만으로 가득 찼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오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탈 수는 없지 않은가. 나 또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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