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악마들의 다과회
“아, 재미있었다~!”
악마는 즐겁게 웃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런 악마를 보며 다른 악마가 물었다.
“이번 계약은 즐거웠나 보지?”
“변덕의 각성자인 네가 그러는 건 처음 보는데.”
히죽거리며 웃는 악마는 변덕의 악마인 것을 증명하듯 이미 몸이 수도 없이 바뀐 채였다. 자신의 생김새조차 질려 금방 몸을 바꾸는 악마는 이번 계약이 정말 즐거웠다.
요셉. 그가 분명히 먹히지 않을 ‘치트’로 오류를 일으켜 수십 가지의 변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형 정원의 벽에 구멍을 내는 바람에 튕겨 나온 마력이 그의 몸에 깃들고,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돈을 얻기도 했다.
심지어는 설정해 놨던 외형을 튕겨내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매혹의 눈이 통하지 않는 것 또한 유쾌했다. 악마는 수만 번 반복했으니 한 번쯤은 이런 오류를 그냥 둬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결국 게임에서 져 계약은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악마는 내심 계약에 숨겨졌던 비밀 조건을 그들이 달성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했다.
이제 사라진 울리세의 계약서에는 조각과 본체 둘 다 모두 ‘진정으로’ 사랑할 것이 기재되어 있었다. 눈에 건 저주로 인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요셉의 조건은…….
“정말 즐거웠어. 우리 자기가 얼마나 통통 튀던지.”
요셉의 숨겨진 조건은 꽃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꽃은 두 송이 이상 피어나지 않도록 조치되어 있었다. 만약 요셉이 꽃을 사용했다면, 악마의 손 위로 곱게 이동되었을 거다. 악마는 차원의 너머에 존재했으니 잘못된 이동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쉬운 일이었어.”
요셉이 이타심과 애정으로 울리세와 조각만을 보냈다면, 악마는 둘 모두를 손상 없이 얻어냈을 터였다. 혹은 꽃을 사용해 집사와 요셉 둘만이 이동한다면, 울리세의 계약서 두 명 모두를 사랑할 것이라는 조건을 어기게 되는 셈이다. 한쪽을 버리게 되는 거니까. 물론 애초에 요셉은 마지막까지도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그럴 일은 없었지만.
앞뒤 모두에 함정을 깔아놓은 변덕의 악마는 아쉽다는 듯 웃었다.
악마들은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악마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쉽게 질려 계속해서 이야기의 주제를 바꿨다. 그런 자가 어떻게 계약 한 개를 오래 끌고 있었는지, 악마들은 내심 그 계약자란 사람을 대단하게 느꼈다.
악마들은 변덕의 악마가 그렇게 구는 데 너무나 익숙했기에 흥미 있는 이야기는 집중하고 아닌 이야기는 흘려들었다. 어쨌든 변덕의 악마는 주제를 수십 번 바꿀지언정 울리세와 요셉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그 모형 정원의 이름이 <가장 아름다운 왕자를 위하여>였나?”
“자기, 정말 기억력이 좋네. 맞아. 아마도 그런 이름이었어. 어휴. 너무 오래 반복해서 그런가 안에 넣은 내 부하들도 좀 망가졌지 뭐야. 뭐, 오류 탓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
악마는 이제 파기할 장난감을 추억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가지고 놀았던 것이기에 조금 아쉬울 법도 하건만 그에겐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왕자야? 들어보니까 그 계약자는 왕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우움……. 왜였더라?”
악마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었다. 또한 생각하는 것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흥미를 잃고 손장난을 하자 질문을 했던 악마는 웃으며 그 입에 케이크를 잘라 넣어주었다.
악마들은 개체 수가 적었다. 그들의 주인인 신은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있지만, 그들끼리는 대체로 사이가 좋았다. 영원이라는 기간에서 오는 외로움을 버티기에는 동족끼리의 친분밖에 답이 없었다. 가끔은 그러지 않은 악마 또한 있었으나 그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그래도 조~ 금은 아쉽긴 해. 우리 자기들 오래간만에 반짝거리는 영혼이라…… 가져갔으면 주인님이 아주 좋아하셨을 텐데.”
“영혼은 강가의 모래알처럼 많고, 그중에 또 괜찮은 게 있겠지.”
악마의 주인인 신들은 반짝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다. 악마들은 신들을 위한 박물관에 진열할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왔다. 계약 또한 영혼에 상처 나지 않게 하려는 수작 중 하나였다.
악마들은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자신들이 모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자는 영혼을 모았고 어떤 자는 비명을 모았다. 신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기준은 아주 다양했기에 정해진 종류는 없었다.
그들의 삶은 무한하며 나눌 이야기 또한 무한했다. 사소한 이야기부터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는 와중, 변덕의 악마가 뜬금없이 작게 소리 질렀다.
“아!”
“왜 그래?”
악마의 입에 케이크를 잘라 넣어주었던 악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변덕의 악마는 그런 때조차 늘어난 세 개의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기괴하기 짝이 없었으나 악마 모두가 개성이 넘쳤기에 그 모습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그도 그럴 듯 촉수로 늘어지는 악마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변이한다고 해도 인간의 몸에 한정되는 변덕의 악마는 특별할 것도 없었다.
“기억났다.”
“뭐가?”
다정스럽게 묻는 악마의 눈에는 끝없는 공허가 들어가 있었고 그 눈에서 흘러내린 검은 연기가 찻잔에 담겼다. 변덕의 악마는 그것을 태연하게 들이켠 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자기가 만든 차는 언제 마셔도 맛있네.”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어.”
악마의 얼굴에 검은색 홍조가 띠었다. 그림자의 수족인 그는 정말이지 행복해 보였다.
“왕자 말이야. 내가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기억났어.”
“뭔데?”
“자기가 엄청나게 엄~ 청나게 왕자가 되고 싶어 하더라고. 그것뿐이었어.”
악마는 빨리 질려 버릴 뿐 기억력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울리세는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영혼. 그 영혼은 어두운 욕심으로 탁하게 빛났다.
악마의 손을 잡지 않아도 혼자 이루어낼 수 있었을 지위를 탐하느라 계약을 제안한 걸 보며 악마는 즐거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울리세는 손아귀에서 오랫동안 발버둥 칠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나에게서 이길 수 없을 테니, 우리 자기는 영원히 왕자가 되지 못할 거잖아? 그럼 호칭이라도 왕자라고 불러주면 어떨까 싶었어.”
“저런. 그래도 그 인간은 네게 이겼잖아?”
“새로운 자기가 그렇게 재미있게 플레이해 줄지는 몰랐지~ 결국 왕자 자리를 걷어차고 차원을 넘어갔잖아? 역시 내가 왕자라고 불러준 건 너무 착한 것 같아, 그치?”
그림자의 악마는 방긋 웃는 변덕의 악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차를 타 주었다. 그를 향한 사랑으로 달콤해진 연기는 변덕의 악마가 아주 좋아하는 음료였다.
악마는 새로 만들어진 차를 마시고 곧 울리세와 요셉을 깨끗이 잊었다. 오랫동안 즐겁게 해준 장난감이었지만 이제 잊고 새로운 것을 찾을 때였다. 그렇게 즐거운 목소리와 함께 다과회는 이어졌다. 인간들은 모를 장소에서 끝없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