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장 꽃 (11/21)

10장 꽃

방 안의 불이 꺼져 있어 어두웠지만 그의 표정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나를 빤히 내려다봤다. 그가 젖은 옷을 천천히 벗었다. 마치 슬로모션을 보는 것처럼 느리게 옷을 벗은 그는 내 옆자리로 파고들었다. 차갑게 식은 몸이 나를 감싸 안았다.

“주무시죠.”

“……대답해 주세요.”

“늦었습니다.”

그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티 나게 주제를 회피했다. 무언의 긍정과 다름없었다. 참담한 기분을 느낀 채로 나는 눈을 감았다.

집사님은 악마를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대체 꿈속의 울리세와 어떠한 관계인 거지? 아니면 그 또한 악마를 소환했던 건가? 대체 어떠한 사연이 그에게 있는 걸까?

“안 힘드세요?”

“…….”

집사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 못하는 것일까. 문득 그 또한 어떠한 제재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조가비처럼 입을 다물고 그저 집사님을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저도, 사랑합니다.”

내 고백에 그는 나를 더 세게 안았다. 어쩐지 흐느끼는 것 같은 숨소리가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동시에 배가 알싸하게 아파왔지만 그 정도는 아주 미약한 복통이었기에 괜찮았다. 지금은 그 고통보다 그와 체온을 나누는 것이 더 시급했다.

침대에는 어둠만이 드리워져 있고 달빛조차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현실에서 유리된 기분으로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밤을 보냈다.

* * *

그날 이후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집사님과 나는 그날의 대화를 굳이 꺼내지 않았다. 나 또한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울리세와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집사님과 시간을 보냈다. 수업 또한 지속되었다.

하지만 평상시와 같은 일상에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으.”

배가 아파오는 강도가 조금씩 강해졌다.

그랬다. 처음에는 그저 알싸하게 아픈 정도였는데 지금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씨앗이 심어진 부위를 세게 꾹꾹 눌렀다. 그러자 조금은 고통이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에 올려두시죠.”

집사님은 나에게 뜨거운 탕파를 내밀었다. 그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아프냐는 말은 묻지 않았다. 그저 이런 식으로 챙겨주었다. 탕파를 배 위에 올려놓자 뜨거운 온기가 아픔을 달랬다. 집사님의 손이 올려진 기분이었다. 그의 다정한 행동에 마음이 들떴다.

“……집사님.”

“왜 그러십니까?”

“……저 그림이, 안 그려져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집사님은 정말로 잘 그려지고 있었다. 물론 그의 외모를 표현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남은 루비 가루까지 알차게 쓴 그림은 꽤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림을 핑계로 집사님과 키스하고 싶을 뿐이었다.

언젠가를 떠올리며 그를 향해 눈을 빛내자 바람이 빠지는 듯한 실소를 지은 집사님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더 잘 그리도록 이 집사가 도와드려야겠군요.”

“부탁드릴게요.”

조심히 눈을 감자 그가 내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아랫입술을 빨아들인 그는 내 목덜미를 단단히 잡고 혀로 핥았다. 그에 응해 입을 열려는 순간 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당연히 그것을 무시했다. 누가 이런 좋은 분위기에서 나가겠는가. 심지어 이 저택에는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으며 우리는 지인조차 없었다. 하지만 초인종이 계속해 울렸다.

띵동, 띵동.

“후우…….”

그가 나의 입술을 다시 한번 훑더니 애교 있게 살짝 깨물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의 목에는 핏대가 다 서 있었다. 그가 이만큼 화가 난 것도 꽤 드문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칼을 한번 쓸어 올린 후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나는 작업실에 홀로 남아 입술을 조용히 매만지며 여운에 잠겨 있었다. 손님이든 뭐든 중요하지 않다. 대체 왜 지금 방해하는 건지. 그 초인종만 아니었다면 분명…….

“요셉.”

“아, 으아, 네?”

망측한 상상을 한 덕분일까.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부끄러움과 놀람에 얼굴을 붉히고 그를 바라보자 집사님은 작게 웃으며 내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내가 곧 정신을 차리자 정중하게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요? 누구요? 저 친구 없는데.”

울리세의 학원을 마중 나가면서 가끔 눈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친구 같은 건 없었다. 친구가 없다니. 뭔가 굉장히 외로운 발언 같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친분이 아니었다. 하여튼 요지는 날 찾아올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마태오 후보자입니다.”

마태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갑자기 걔가 왜? 어째서? 농담이죠? 당황해 바라보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정말로 마태오가 찾아온 것이다.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현관까지 걸어갔다.

“아, 오셨군요. 안녕하십니까.”

“오……. 마태오 후보자. 어서 오세요.”

날 보며 반갑다고 미소 짓는 모습이 정말이지 낯설었다. 집사님에게 그가 찾아온 것을 들어 알았음에도 막상 보니 당황해 말을 더듬어 버렸다. 왜 갑자기 찾아온 거지? 떨떠름하게 대답했지만 상대방은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그나저나 다리가 아픈데…….”

너무 티가 났나? 대충 목적을 듣고 내보내려는 수작을 알았나 보다. 껄렁한 금발 호위가 마태오의 뒤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후보자가 저렇게까지 대놓고 말하는데 그대로 돌려보낼 수도 없고……. 사실 현관에서 용건만 얘기하고 끝내기엔 예의에 맞지도 않았다. 최소한 집사님이 가르쳐 준 예법에선 그랬다.

“이쪽으로 오세요. 집사님, 차 좀…….”

“알겠습니다.”

집사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작게 한숨을 쉬고 응접실로 안내했다.

응접실은 현관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고, 우리는 금방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잘 지내셨습니까?”

“……네.”

나도 모르게 손이 배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마태오는 오늘도 어김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 보아도 정말 종교화 같은 성스러운 미소였다. 어떻게 어린아이가 저런 분위기를 지닐 수 있는 걸까?

“아, 이건 흐말렌이군요.”

마태오는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책상 위에 있는 며칠 전의 신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문의 일 면에는 흐말렌에 대한 기사와 마태오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물론 악마에 대한 것은 언론 보도가 막혀 있기에 저 기사에 실린 내용은 대충 아동 납치 살해 사건으로 둔갑해 있었다. 그것을 해결한 것이 마태오로 되어 있었고. 그가 거론한 울리세의 이름 또한 간간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흐말렌은 괜찮은가요?”

야반도주를 하는 것처럼 급하게 떠났기에 그 마을이 진짜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 궁금해 물었다. 마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악한 존재를 하나 지웠으니 이제 그 도시는 괜찮을 겁니다.”

“아……. 네…….”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닌데. 마태오는 하수인을 죽인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난 그저 아이를 잃었던 사람들에 대한 복지 같은 게 궁금했는데 말이다. 가끔 마태오는 나이에 맞지 않는 분위기와 별개로 어딘가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많이 본 것이 아님에도 그 모습은 자주 목격됐다.

“드시지요.”

“고마워요.”

집사님이 어느새 다과를 준비해 앞에 놓아주었다. 그는 충실하고 빠르게 이행 후 내 뒤에 호위처럼 섰다. 그러자 나는 갑자기 무서운 것이 없는 든든한 상태가 되었다. 이게 바로 호가호위라는 건가.

마태오는 집사님이 따라준 차에는 손도 대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내 기분 탓일까, 그의 눈이 어쩐지 날카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듯 금세 자취를 감췄고 마태오는 그저 자애로운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 분은 여전히 사이좋군요. 보기 좋습니다.”

“하하하…….”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대체 언제 본론을 꺼내려는 거지? 집사님이 끓여 온 차가 미지근하게 식어갈 때까지 마태오는 이곳에 온 이유를 꺼내지 않았다. 이 숨 막히는 상황을 어서 벗어나고 싶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드디어!

“앞으로 이웃이니 잘 지내보자는 생각으로 인사차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울리세 후보자의 집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죠.”

“네?”

뭐라고요? 이웃이요? 내가 이웃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나? 하지만 내 머릿속의 이웃이라는 단어는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마태오는 내 어수룩한 얼굴을 보며 웃지 않고 태연히 말을 이었다.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공사 현장을 못 보셨나요? 그곳이 새로운 제 거처랍니다.”

“거기, 거기로요? 그렇구나. 하하…….”

왜 여기에 이사를 오는 건데?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이 목구멍에서 날뛰었다. 공기 좋고 인적도 드문 곳에서 지내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마태오냐. 마태오면 울리세랑 친하게 지낼 수가 없잖아.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 시무룩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더 관계가 친밀해졌으면 좋겠군요.”

“하하……. 잘 부탁해요. 어떻게, 인연이 이렇게 되네요.”

하지만 겉으로 티 낼 수는 없지. 눈앞의 마태오는 일단 나보다 한참은 어린걸. 과거의 일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어린애들에게 약했다. 그러고 보니 저렇게 어린데 먹을 건 잘 챙겨 먹고 있을까? 등 뒤의 저 남자도 좀 어려 보이는데. 나중에 한번 찾아가 볼까.

브렌다의 충고를 잊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 마태오가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태오가 말했다.

“시간이 늦었군요. 오늘은 인사만 하러 온 것이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아, 시간이 벌써…….”

나는 그들을 현관문까지 바래다주었다. 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있으니 찰칵하는 카메라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남성이 우리를 향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저게 뭐지? 인식하기도 전, 남자가 부리나케 달려 사라졌다.

“저건…….”

“실례를 끼쳤군요. 기자랍니다. 요즘 저를 많이 쫓아다니더군요.”

“으…… 음, 고생이 많네요.”

마태오는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저택을 떠났다. 기자가 찍은 사진이 걱정되었지만 도망간 것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마 뭔 일이 나겠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긴 것을 다음 날, 후회하고 말았다.

[마태오 후보자의 숨겨진 인맥.]

신문의 이 면에 어설픈 모자이크로 가려진 나와 집사님, 그리고 웃는 얼굴의 마태오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아니, 이 세계도 황색 언론이란 게 있어?

“…….”

몇 번을 눈을 비벼 확인해 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심지어 화질이 매우 좋은 사진이라 이 세계의 카메라가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알 수 있었다. 앗, 그러고 보니 그 카메라 가지고 다니기 좋아 보였지. 나도 사야겠다.

그나저나 이게 뭐라고 이 면에 올라가지? 그 정도인지 모르겠다. 물론 브렌다나 마태오 등 후보자들의 행보는 인기가 많아 기사가 엄청 많긴 했다. 생각보다 이 세계 후보자들은 사생활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내 일이 되니까 당황스러웠다. 남에게 벌어지는 일과 나에게 벌어지는 일은 체감이 다른 법이었다.

“음……. 하하……. 음, 하…….”

“……신문사에 항의를 해도 이미 나간 신문이라 회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론 인터넷 뉴스를 내리는 것보다 힘들어 보였다. 하긴 인터넷도 개인 캡처 파일 같은 건 못 잡아내니까. 어디든 간에 개인 소장이 가장 문제였다.

결국 신문을 반으로 접어 대충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놨다. 헛소문이 났으니 기자들이 저택에 몰릴 것이 걱정되었다.

“……울리세, 미안해.”

“뭐가?”

심각한 상황에 비해 울리세는 걱정이 없어 보였다. 평온한 얼굴로 맛있게 토스트를 먹는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해버렸다. 아이의 밥 먹는 모습만 보면 정말이지 행복했다. 아이가 조금 더 먹길 바랐기에 내 접시 위 식빵에 마멀레이드를 발라 건네주었다. 나를 보는 집사님의 눈이 날카로웠다.

“많이 먹어.”

“응.”

그런 눈초리를 보지 못한 것처럼 울리세는 옴뇸뇸 소리가 날 정도로 복스럽게 먹었다. 정말 귀여웠다. 집사님이 내 빈 접시에 다른 토스트를 놓아주었다. 그러곤 내 어깨를 한번 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언의 제스처에 어색하게 웃으며 빵을 먹었다. 그가 직접 굽고 만든 빵과 잼은 참 맛있었다. 그가 만든 음식 중에 맛없는 게 있나 싶다.

밥을 먹으며 한쪽으로 밀어냈던 걱정은 도로 밖으로 드러났다. 울리세가 학원에 가기 위해 마차를 타는 도중 또다시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쪽을 날카롭게 바라보자 집사님이 나보다 빠르게 달려가 카메라를 낚아챘다.

“허락 없이 사진을 찍지 마시지요.”

“으악!”

필름을 잡아 빼고 돌려주자 기자는 부리나케 사라졌다. 그 사건을 계기로 기자들의 접촉은 줄어들어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내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잘 지내셨나요, 요셉 씨.”

마태오는 손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 함을 든 채로 자애롭게 웃고 있었다. 찾아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다시 방문한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웃이라고 하더라도, 앞으로 잘 지내보고 싶다 하더라도 실제로 이렇게 친한 척을 하진 않잖아.

하지만 딱 봐도 저 나무함은 선물인 것 같은데……. 선물까지 들고 온 사람을 내쫓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마태오 후보자는 잘 지냈나요?”

그러자 마태오는 곧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 미안할 정도의 기색이라 크게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금발 남자는 오늘도 여전히 마태오의 뒤에서 날 노려보는 중이었다.

“정말이지 죄송합니다. 이거 먼저 받으시지요. 사죄의 선물로 약소하나마 챙겨 온 것입니다. 차를 자주 드시는 듯해 제가 즐겨 마시던 찻잎을 담았습니다. 부디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군요.”

약소하다기엔 너무나 비싸 보이는 상자였다. 결국 나는 버티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아니. 그게, 일단 들어오세요.”

안내하는 길이 정말이지 고행 길과 다름없었다. 나나 집사님, 울리세만이 자리했던 응접실이 요즘 마태오 일행 덕분에 붐볐다. 바라지 않았던 복작함이었다.

마태오가 계속해 미안해하는 모습에 분위기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말조차 쉽게 꺼낼 수 없어 가만히 있었다. 정체된 분위기가 지속되는 와중, 집사님이 차를 가져다주었고 그것을 기회로 나는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저 때문에 그런 기사가 나서, 정말…….”

급기야 그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허겁지겁 닦을 것을 건네주고 싶었지만 휴지도 손수건도 없었다. 집사님을 올려다보았지만 외면당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태오는 울먹일 뿐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뒤에 말없이 서 있던 호위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저…… 그…… 괜찮아요. 뭐 그게 마태오 후보자의 탓입니까. 기자 탓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마태오 후보자를 탓할 리가 없잖아요.”

그러자 마태오는 크게 안도한 듯 빵긋 웃었다. 반짝이는 햇살 같았다. 역시 어린아이가 우는 것은 심장에 좋지 못하다. 모든 아이는 웃으면서 지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럼 앞으로도 친밀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이제 우린 이웃이니까요.”

“하하……. 네.”

어쩐지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은 뭐 이웃끼리 사이가 좋아 나쁠 건 없을 테니까. 순간 머릿속에 이웃 간의 불화로 칼부림이 난 사건들이 주르륵 지나갔다.

어쨌든 그렇게 마태오와 한참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그는 되돌아갔다. 마태오는 돌아갈 때 기자가 또 찍을까 염려된다며 뒷문의 위치를 물었다.

“뒷문요? 앞문으로 나가도 괜찮은데…….”

“이미 나가 버린 기사는 어쩔 수 없지만…… 또 찍혔다간 면목이 없을 것 같군요.”

그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었다. 집사님은 그들을 뒷문으로 안내했다. 엄밀히 말하면 기사는 그들의 탓이 아닌데도 눈치를 보는 것이 미안했다.

“윽……. 으…….”

마태오가 가고 집사님은 울리세를 데리러 저택을 비운 오후, 배가 평소보다 더 아프기 시작했다. 고통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고 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 배를 꽉 누르고 고통을 참아냈다.

배 속의 내장을 벌레들이 갉작이는 불쾌한 기분과 함께하는 고통은 정말이지 버티기 힘들었다. 이 세계에 온 이후 평생 아플 것을 다 아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사님이 오기 전에 고통이 끝나야 하는데. 이 모습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빨리 고통을 털어내는 것. 그것만을 바라며 견디자 악마가 소원을 들어준 것인지 고통이 끝났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려던 그 순간, 나는 씨앗의 이변을 알았다.

“…….”

배꼽 위의 씨앗. 처음에는 마름모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마름모에 뿔이 난 것처럼 삐죽 자라 있었다. 마치 싹이 돋은 것처럼.

‘그래, 씨앗. 고통을 양분 삼아 자라나고, 영혼 위에 꽃 필 거야. 자라날수록 우리 자기는 고통에 시달릴 거고.’

영혼 위에 꽃 핀다는 것이 피부 위에까지 드러난다는 소리인 줄은 몰랐다. 점점 자라나서 몸에 무늬가 생겨난다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고 있는데 옷이 짧고 얇아지면 새까만 무늬를 가리기가 조금 힘들 것 같았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였으나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똑똑.

“요셉?”

“잠깐만……!”

마른 옷을 들고 챙겨 오지 않은 탓에 결국 엉거주춤 문양을 가리고 밖으로 나섰다. 그는 젖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마른 수건을 빠르게 어디선가 꺼내 들어 나를 감싸 안았다.

“괜찮은데…….”

“저에겐 당신을 보살피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옅은 미소를 띠며 말하는 집사님을 말릴 수는 없었다. 손으로 어떻게든 배를 가리려고 했지만 슬프게도 내 종잇장 같은 팔로는 그의 손을 막을 수 없었다. 씨앗의 변이를 본 그가 손길을 아주 잠시 멈췄다. 그의 눈에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깊은 슬픔이 머물렀다.

하지만 그것은 곧 사라졌고 비통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분노가, 종내에는 무감만이 남았다.

“……옷을 입혀 드리겠습니다.”

집사님은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도 긴팔을 가져다 입혀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집사님은 양말까지 단단히 신겨주느라 무릎 꿇고 있어 그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얼굴에 손을 슬며시 가져다 대자 집사님이 내 손에 뺨을 비볐다. 충직한 개가 애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결 좋은 피부에 손을 문지르자 그가 열띤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까까지의 구슬픈 눈빛은 흔적조차 찾기가 힘들었다.

그는 정말로 자기 자신을 숨기는 것에 능한 것 같았다. 그의 눈은 희로애락에 반짝거리다가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유리구슬 같은 눈을 한다. 그 빛에 홀린 듯 몽롱하게 말했다.

“……키스해 주세요, 집사님.”

“…….”

그가 느릿하게 나를 보며 일어섰다. 예상과 달리 집사님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눈에 서린 듯했던 열이 착각인가 싶어 다시 한번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푸른 눈에 조급함이 서려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제야 집사님이 자제하는 중이란 걸 알았다.

“분부대로.”

그는 내 목덜미를 오른손으로 가볍게 주무르더니 목선을 타고 척추를 쓸어내렸다. 오싹거리는 기분이 그의 손을 타고 올라 어질어질했다. 오른손으로 허리를 희롱하고 왼손으론 비어 있는 목덜미를 잡은 그가 내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재촉에 입을 벌리자 그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혀를 옭아맸다. 그가 나를 안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니,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쾌감에 허리가 덜덜 떨리고 다리가 흐느적거렸기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나를 놓칠 일은 없을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집사님…….”

“…….”

헐떡이며 그를 올려다보자 그 또한 가쁜 숨을 내뱉으며 나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눈에 서린 욕구를 확인했을 때, 나는 당연히 말은 안 했지만 진도를 더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사님은 눈을 질끈 감고 뒤로 물러났다.

“집사님?”

“……죄송합니다, 요셉. 이대로라면, 제가…….”

감정이 구현된다면 내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엄청나게 생겨났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당황한 상태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냐 말인가. 서로 하고 싶은데! 싫다고도 안 했는데! 내가 진도를 더 나가자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 같아서.”

얼굴을 한 손으로 가렸으나 미처 숨기지 못한 그의 귀는 시뻘게져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기에 나는 잠시 덜그럭 몸을 굳혔다. 지금 나에게서 떨어진 것이 엉망진창으로 해버릴 것 같아서 멀어진 거라는 건가?

……그는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는 매우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화를 내셨지 않습니까…….”

그의 의기소침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나보다 한참은 크고, 강하고, 스킨십에 능숙한 집사님이다. 그런 그가 저번에 사과하라고 화를 냈었던 것 때문에 저렇게 의기소침하고 조심스러워지다니. 그가 미안해하는 것을 은연중에 알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굴 줄은 몰랐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하하. 화내길 잘했네요. 집사님이 이렇게 귀엽게……. 하하하.”

“…….”

집사님은 내가 웃는 것을 한참을 보더니 내가 인지하기도 전,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림자가 드리워져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집사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풀 죽은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는 욕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어쩐지 사나운 기세에 제압되어 침을 꿀꺽 삼키자 그가 나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

“엉망진창으로 해도 괜찮은 겁니까?”

“…….”

아무 말 못 하고 바라만 보고 있자 그가 손을 올려 내 입술을 엄지로 쓸었다. 그 손길은 너무나 명백한 의도를 담고 있었다.

“괜찮은 거냐고 물었습니다.”

“……네.”

나는 거의 홀린 듯 대답했다. 그의 나른한 눈동자가 곱게 휘어졌다. 그의 짙은 푸른 눈이 번쩍이는 듯했다.

덥석 안겨 침대로 옮겨지고 나서야 나는 무서운 것을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너무 늦게 알아챘다.

“흡!”

집사님은 나를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아까까지의 느릿한 행동은 집어치우고 달려들 듯 다급히 입을 맞추었다. 입안을 장악한 혀에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바르작거리자 그는 내 손을 자신에게 두르게 했다.

지금까지 참았던 게 맞는지 그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내가 키스에 집중해 그를 붙들고 있는 것에 끝났다면, 집사님은 내 옷자락을 들쳐 맨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원을 그리며 배꼽을 만지던 손은 점차 위로 올라와 납작한 가슴을 문질렀다.

“으읏!”

“마르셨군요. 식사를 더 든든히 만들어야겠습니다.”

태연한 어조는 건조했지만 그의 손은 달랐다. 내 가슴을 만지다 못해 유두를 희롱하는 그 행위는 너무나 낯설었다. 간지러움에 허리를 비틀자 그는 방법을 달리했다. 내 허벅지를 손쉽게 옆으로 벌려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러곤 입혀주었던 바지를 도로 끌어 내렸다.

“집사님 뭐, 뭐, 뭐 하는 거예요!”

“요셉 님의 좆을 빨려고 합니다. 아, 이미 섰군요. 미리 알아차리지 못해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속옷까지 벗겨내고 허공에 노출된 내 성기를 만지작거렸다. 예의 바른 말투와 저속한 단어가 뒤섞여 내가 아는 집사님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내 성기를 가볍게 훑었기 때문이다.

반쯤 일어선 성기가 그의 손에 의해 단단해졌다.

“네?! 읏, 아!”

생각보다 빠른 진행에 잠시 그를 진정시키고자 손을 움직이는 순간, 그가 아무렇지 않게 입을 벌려 성기를 삼켰다. 예상치도 못한 터라 당황해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뱀처럼 능숙하게 움직이는 혀는 자극적이었고 나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타오르는 듯한 쾌감이 몸을 무자비하게 휩쓸었다. 발가락은 곱아들고 견디기 힘든 쾌락에 몸부림을 쳤지만 그가 단단한 손으로 허벅지를 붙들어 다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사정하려는 낌새를 알았는지 그가 더욱 깊숙이 삼켰다.

“하, 하지 마요! 저, 나올…… 읏!”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머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그는 아프지도 않은지 나를 올려다보며 황홀하게 웃었다.

“으, 아…… 하아, 하…….”

결국 그의 입에 사정하자 그제야 집사님이 내 성기를 천천히 뱉었다. 뱉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혀 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귀두를 한번 세게 빨았다. 덕분에 사정의 여운에 잠기기도 전 파들거리며 쓰러지듯 누웠다. 다행인 것은 머리카락을 잡던 손은 놓은 채였다.

“히익, 하……. 하아.”

헐떡이며 숨을 고르자 집사님은 그새 흔적도 없이 삼켜 버렸다. 놀라 바라보자 그가 느물느물 웃으며 허벅지를 역으로 쓸어 올렸다.

“집, 사님. 흐……. 그만.”

그는 대답 없이 내 다리를 만지작거렸다. 가슴은 정작 몇 번 만지지도 않았으면서 다리에만 유독 집요했다. 허벅지를 쓸어내리고, 무릎에는 입을 맞추고, 양말을 벗겨 복사뼈를 핥았다. 그의 혓바닥이 유독 붉어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왜 거길, 핥아요!”

“저도 제가 이런 취향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다리를 애무하는 집사님의 바지춤은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그는 정말로 내 다리에 진지하게 성욕을 느끼고 있었다. 예상 밖의 모습에 나 또한 음욕과 장난기가 솟아올랐다.

“윽.”

내 행동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그가 만지지 않은 왼쪽 다리로 그의 다리 사이를 지그시 눌렀다. 집사님의 성기가 내 발에 자극받아 더욱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보았다. 지금까지 중 가장 애타 하는 얼굴에 나는 발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흐……. 요셉.”

“왜요. 싫어요?”

장난스럽게 웃자 그가 이를 악물고 내 양다리를 잡아 벌렸다. 아플 정도로 잡아오는 손아귀에 그의 자제력이 바닥났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바지를 한 손으로 손쉽게 풀어 내렸다. 튀어나온 성기는 몇 번이고 끄덕거리며 얼마나 흥분했는지 보여주었다. 심지어 쿠퍼액은 이미 질질 흐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욕을 불러일으켰다.

집사님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내 허리와 등을 잡곤 들어 올려 허벅지 위에 앉혔다. 마주 보는 자세가 된 나는 집사님에게 몸을 기댔다.

“잡으세요.”

나지막하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흥분이 넘실거렸다. 멈칫거리는 내 손을 이끌어 자신의 성기에 가져다 대었다. 옷 너머로 느껴지던 성기와 방해 없이 직접 잡은 성기는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맥박이 뛰는 그것은 너무나 뜨거웠고, 미끌미끌한 감촉은 낯설었다.

“후…….”

그는 내 손이 닿자마자 눈을 감고 나른히 한숨을 흘렸다. 그저 단순한 접촉에도 크게 흥분한 것 같았다. 눈가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핥고 싶어 입을 맞췄다.

그는 가늘게 눈을 뜨고 웃으며 내 성기에도 손을 댔다. 내가 소심하게 건들고만 있는 것과 다르게 그는 큰 손으로 빈틈없이 감싸 쥐었다.

“요셉도, 해주세요.”

“아, 으읏!”

대답을 바라지 않은 것인지 엄지손가락으로 귀두 바로 밑을 지분거렸다. 파드득 몸을 떨자 기대했던 모습이었는지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기가 생겨나 처음의 주저함을 버리고 그의 성기를 쥐고 흔들었다. 축축하게 흘러내리는 쿠퍼액이 움직임을 수월하게 해주었다.

“하…… 아……. 하아. 큭…….”

“아, 아아아, 으읏.”

집사님은 내 손길에 신음을 계속 흘렸다. 그것에 우월감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쾌감에 속절없이 무너져 그의 품에 기댔다. 쥔 손을 움직일 정신조차 없어 멈추었다. 그러자 집사님이 내 성기를 자극하던 손을 그대로 내 손 위에 얹어 두 개의 성기를 한 번에 쥐었다.

“무, 무슨.”

“하아……. 손이 멈춰 계시잖습니까.”

쿠퍼액이 질척이며 성기에 흘렀고 두 개의 성기는 거친 손 밑에서 쉴 새 없이 마찰되었다. 그저 손으로 만지는 것보다 두 배, 세 배는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그는 단순하게 쓸어내리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귀두를 뭉근하게 문질렀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집사님은 내가 사정하려 하자 바로 막아버렸다.

“집, 사니이임, 힛…… 아, 왜.”

그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결국 그의 품에 기대 경련하듯 몸을 떨며 재촉하는 의미를 담아 그의 목덜미를 갉작거렸다. 그의 목에는 옅은 짠맛이 감돌았다.

“놔주, 힛, 세요오!”

“하아……. 싫습니다.”

계속해서 기둥이 마찰되었다. 치밀어 오르는 사정감이 내 몸을 덮쳤고, 머릿속은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괴로웠다.

결국 수 분 뒤, 그를 재촉하는 입질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히끅거리며 침을 질질 흘렸다. 처음인 나에겐 도를 지나친 자극이었다. 전류 자극을 받는 것처럼 쾌감이 계속해서 나를 찔러왔다.

“하아…….”

그는 내가 녹초가 되고 나서야 귀두를 막던 손을 치웠다. 맞붙어 있는 집사님의 성기가 더욱 부풀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둘 다 사정했다. 그와는 달리 나는 정액을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졸졸 끊이지 않고 쏟아냈다.

“후……. 요셉.”

사정의 여운에 잠긴 것은 집사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쾌락의 잔재에 푹 잠겨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듯 나를 부르고 더듬으며 끌어안았다. 목덜미로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때까지도 나는 잔물결처럼 덮쳐오는 쾌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내 입가를 개처럼 핥고 입을 맞췄다. 바보처럼 입을 헤벌리고 있었기에 혀의 침입은 쉬웠다. 맞닿아 있는 그의 성기가 다시 꿈틀거리며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하아……. 집, 집사님. 저…… 하아……. 힘든, 데.”

“…….”

집사님은 열망으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익어버릴 것 같은 열기에 흠칫 몸을 떨자 그가 방금과는 다른 부드러운 손길로 몸을 쓸어 올렸다. 눈빛과는 다른 아주 상냥한 손길이었다.

“처음이신데…… 제가 무리를 시켰군요.”

흐느적거리는 몸을 그가 단단히 들어 올려 욕실로 향했다.

안아 든 채로 온수를 틀고 어느 정도 물이 차 찰랑거리자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달칵거리며 여러 가지를 서랍에서 꺼냈는데 홀로 목욕할 때는 쓰지도 않는 것들이었다.

“만족스러우셨나요?”

“……만족?”

마치 서비스가 어떻냐고 물어보는 직원 같은 말투였다. 냉정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몸이 경직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만족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덕분에 흠칫 놀라고 말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의 눈은 아까와 다를 바 없는 애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제야 차가운 말투가 극도의 긴장 때문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이 뺨에 닿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움찔거렸다.

“……싫지 않으셨습니까?”

목이 졸린 것처럼 숨죽여 말하는 그는 평소와 크게 달랐다. 거대한 몬스터 앞에서도 태산과 같은 위세를 보이던 그였다. 주눅 들지 않고 언제나 고고한 모습이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지금 내 곁에 왜소하게 서 있었다.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두 손을 모은 채로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자니…….

“집사님.”

“……네.”

두 눈을 질끈 감은 그는 아까와는 정말 다른 사람 같았다.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속눈썹을 쓸자 나비의 날갯짓처럼 파들거리며 그가 눈을 떴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그 눈은 빛을 받아 수면이 반짝이는 바다 같았다.

“같이…… 씻어요.”

그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웃자 그제야 안심한 듯 그의 얼굴이 편안하게 풀렸다. 폭신한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웃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에이, 이럴 땐 다 끝나고 같이 씻는 거랬어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그의 눈에 순간 안광이 서렸다. 뱀의 앞에 있는 쥐처럼 깜짝 놀라 얼자 그는 다시 상냥한 눈동자를 하고 나를 어루만졌다.

“누가 그랬습니까?”

“네? 그, 그냥 다른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놀란 탓에 말을 더듬자 그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렇군요. 하지만…….”

“하지만?”

그는 태양처럼 빛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천장의 전등 때문일까, 그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일순간 환해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그런 것, 저하고만 하셔야 합니다.”

* * *

강렬했던 그 날. 집사님의 부드러운 손길로 목욕 시중을 받던 나는 체력이 고갈되어 결국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내심 조금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눈을 뜨니 저녁이었고, 나는 침대 위에 곱게 눕혀져 있었다.

“헤헤.”

“울리세?”

“응.”

옆에는 웅크리고 누워 나를 올려다보는 사랑스러운 울리세가 있었다. 아이는 발그레한 뺨을 한 채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푹 쉰 덕분에 조금 나른한 것 빼곤 멀쩡한 몸을 움직여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는 키득거리며 품에 안겼다. 울리세는 흐말렌에서의 사건 이후로 곧잘 내 침대로 와 품에 안겼다. 아이의 몸에서 향긋한 장미 향기가 풍겼다. 집사님과 비슷하지만 다른 달콤한 향기였다.

“형이 자느라 마중도 못 갔네……. 잘 다녀왔어?”

“응.”

“집사님이 잘 데리고 왔어?”

“응.”

어린 짐승이 애교를 부리듯 울리세는 그 조그마한 고개를 내 품에 비볐다. 나는 북슬북슬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은 여전히 자르지 못한 탓에 이젠 꽤 길었다. 머리카락을 묶고 핀을 꽂아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긴 머리칼이 울리세에게 잘 어울렸고, 아이는 불편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아 잘라주는 것도 거의 흐지부지되었다. 사실 요즘 아이의 머리카락을 묶어주는 것이 즐거웠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어줄까?”

“건, 국 기사.”

“또 그 책? 안 지겨워?”

울리세는 이 나라의 건국 신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아이가 검을 좋아해서일까? 이야기 속의 기사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었다. 덕분에 나조차 그 동화의 이야기를 외울 정도였다.

“응. 좋아.”

“그래. 또 읽어줄게.”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끌어안은 채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쪽, 쪽. 그러자 아이가 경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종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어여쁜 존재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한참을 시시덕거리며 침대에서 시간을 보낼 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집사님이 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은은한 미소를 띤 그는 곧바로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곧 내 옆에 있는 울리세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도련님, 여기에 계셨군요.”

“응.”

그는 침대에 함께 있는 울리세를 처음 본 것이 아님에도 유독 기분이 나빠 보였다. 하지만 찡그린 것도 잠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가 자리에 곧게 서 우리를 향해 말했다.

“저녁을 드실 시간입니다. 도련님도 요셉도 일어나세요.”

사실 마음 같아선 그냥 자고 싶었다. 하지만 집사님의 솜씨를 생각하니 식사를 한 번이라도 놓치는 게 죄악처럼 느껴졌다. 몸이 아프지는 않지만 나른했던 탓에 앓는 소리를 내자 듬직한 손이 등 뒤로 쑥 들어왔다.

“조심해서 일어나셔야 합니다.”

“……고마워요.”

엄살에 가까운 행동이었는데 그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울리세와 집사님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받으며 조심조심 일어났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집사님은 나를 품에서 놔주지 않았다.

“나 혼자 갈 수 있는데…….”

“안 돼. 집사랑…… 가.”

“안 됩니다.”

집사님뿐만 아니라 울리세까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대로 기대 있었다. 사실 몸이 멀쩡한 건 아니었기에 부축을 받으니 편했다.

그렇게 우리는 도란도란 대화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군침 도는 음식 향기가 코를 간질였고 맛 또한 여전히 끝내줬다.

“죄송합니다. 찻잎이 최근 다 떨어졌는데 새로 준비해 놓지 않았더군요.”

“저는 커피도 좋아요.”

“안 됩니다. 저녁이지 않습니까.”

그깟 커피 한 잔으로 잠을 못 자진 않는데. 아쉬움에 앞에 놓인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머금었다. 사실 난 차보단 이런 주스가 좋았다. 그때, 최근 마태오가 선물로 가져온 찻잎이 생각났다. 통이 꽤 커 보였는데 그게 벌써 사라졌나?

“마태오가 선물로 가져온 건요?”

사랑스러운 왕자를 위하여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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