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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여행이 끝난 뒤 (7/21)

7장 여행이 끝난 뒤

마차는 정말 쉼 없이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저택에 되돌아가고 싶은 우리의 의견 탓이 컸다. 그 때문에 말은 크게 혹사당했지만 우리는 늦은 밤이라도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헥헥거리는 말은 거품을 물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미안해진 나는 돈을 조금 더 챙겨 주었다. 그 돈은 마부가 가져가겠지만 부디 그가 말을 조금 더 챙기길 바랄 뿐이다.

“아, 드디어.”

저택의 큰 문을 열자 그동안 쌓인 먼지가 우릴 먼저 반겼다. 하지만 그 짧은 여행 동안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인지 먼지마저 반가웠다.

“청소부터 해야겠군요.”

“내일 해요, 내일. 우리 마차 타느라 고생했잖아요.”

내 말을 듣고도 집사님은 눈을 번뜩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졸린지 눈을 비비는 울리세를 데리고 방에 갔다.

이제는 제법 아이가 지내는 방다워진 공간이 나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역시 조금 더 좋은 방을 주고 싶은데. 나중에 집사님과 상의해야지. 침대에 덮어놓은 흰 천을 벗기며 울리세에게 말했다.

“어서 씻고 와. 자야지.”

“응.”

아이는 타박거리며 욕실로 사라졌다. 나는 아이가 입을 잠옷을 꺼내놓고 이불 정리를 끝냈다. 울리세는 야무지게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곧 밖으로 나왔다. 탈의를 도와주기도 전, 울리세는 혼자서 척척 모든 것을 해냈다. 참으로 대견했다.

“요셉…… 잘 자…….”

“응. 울리세도 잘자.”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울리세가 침대에 눕는 것까지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내가 쉴 차례였다. 내 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축축 늘어지는 몸은 물에 젖은 솜 같았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고 방에 도착해 침대 위에 덮인 흰 천을 치울 생각조차 못 하고 그 위에 쓰러졌다.

“피곤해…….”

내 체력은 울리세를 보살핀 것으로 끝났다. 이 이상은 한계였다. 인어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일기장이 신경 쓰였지만 당장 볼 기력이 없었다. 나는 결국 씻지도 옷을 벗지도 못한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흰 천 위에 그대로 쓰러졌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 침구에 묻는 일은 방지했다. 침구보단 재질이 거칠어 뻣뻣했지만 천만다행이었다.

“요셉 님.”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그러나 피로함으로 곤죽이 된 뇌는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얼핏 대답한 것 같지만…… 말을 갓 배운 아기보다 어눌하게 말했을 것이다.

“이대로 주무시면 안 됩니다.”

거센 힘이 나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다시 눕고 싶었지만 나를 잡고 있는 손에 흔들거리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비몽사몽 주변을 둘러보려고 노력했다. 나를 껴안아 세운 사람은 등 뒤에 있는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 알고 있다. 이렇게 수발들어 주는 사람은 집사님뿐이라는 것을. 사실 이 적막한 저택에서 나를 이렇게 번쩍 들 만한 사람은 그밖에 없다.

정신을 차리든 말든 집사님은 내 옷을 하나하나 벗겼다. 두꺼운 겨울옷들은 그의 손에 훌렁훌렁 사라졌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푹신한 침대 위에 나를 눕혔다. 아무래도 부드러운 것이 그가 흰 천을 벗긴 모양이다.

주변을 멍한 눈으로 둘러보자 저 멀리에 벗겨진 천이 보였다. 욕실에 다녀온 건지 곧 집사님이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나를 닦아 내렸다. 그 조심스러운 손길에 경직되었던 몸이 부드럽게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은 수마에 빠져들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 정신은 완전히 암전되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얼굴에 닿았던 것도 같지만 잘 모르겠다. 그날 나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은 채 깊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모두 집사님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이었다.

* * *

집사님이 이상하다.

“요셉 님, 일어나셨습니까?”

“어…….”

나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편이다. 울리세와 함께하는 아침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과는 다르게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울 일이 없으니 제시간에 일어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자, 그럼 세안을 하시죠.”

“어……. 네…….”

멍하니 그의 손에 이끌려 욕실에 들어갔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나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집사님이 내 방에 있는 거지? 예전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었지만, 내가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 집사님은 특이 사항이 없다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늘이 그 무언가의 일이 있는 날인 걸까? 예전 연말 연회 때처럼 말이다.

물에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골똘히 생각했지만 생각나는 일정은 없었다. 들어오기 전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욕실 문을 열었다.

집사님이 욕실 바로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문을 연 나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문제는 욕실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세수를 하느라 튄 물을 밟고 주르륵 미끄러져 버린 건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 웅크렸다. 즉각적인 생존 본능에 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픔은 찾아오지 않았다.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뜨자 내가 집사님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 사님?”

“조심하셔야지요, 요셉 님."

집사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나를 제자리에 세운 뒤 구겨진 잠옷을 툭툭 털어주었다. 얼마나 여상한 말투였는지, 내가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던가 하고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멍하니 있자 집사님은 내 허리를 잡고 다시 침대의 앞으로 안내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건 그가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을 때였다.

“아, 아니. 집사님, 왜 갑자기 또 옷시중을 드시려고 해요. 저는 저번에 싫다고…….”

“제가 하고 싶으니까요.”

집사님은 평온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거부감을 보임에도 집사님은 과거처럼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왜 내 옷시중을 들고 싶어 하는 거지. 당황해 물러나려고 했지만 뒤에는 침대가 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침대에 걸려 주저앉았다. 폭신한 매트릭스에 앉은 덕에 뒤로 도망가기도 애매했다.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저는 시중을 들고 싶을 뿐이니까요.”

“왜, 왜요? 갑자기 왜요?”

집사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 흐릿한 미소는 치명적인 매혹으로 다가왔다. 이럴 때는 내가 얼굴에 약한 것에 통탄할 뿐이다. 나도 모르게 그의 미소에 홀려 넋을 놓았다. 집사님은 내가 본 그 누구보다도 능력이 좋았고 틈을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바지를 벗겼다.

“헉.”

놀라서 바둥거리든 말든 그는 자신의 할 일이 정해진 듯 손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일상복을 차려입을 수 있었다. 조금 슬픈 것은 내가 혼자 입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옷 태가 살았다.

“보기 좋군요.”

집사님은 정말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의 내 후줄근한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처음에야 거부하긴 했지만, 그의 손길로 나온 결과물을 보니 무작정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다 큰 성인이 옷시중을 받기엔 좀 많이 민망했다.

“그건 그렇지만…… 앞으로는 괜찮아요, 집사님.”

“그렇군요.”

집사님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했다. 어쩐지 이대로라면 내일도 집사님이 쳐들어와 옷시중을 들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그가 내 허리를 잡더니 부드럽게 방 밖으로 이끌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야 식당이지요. 아침인데 배고프시진 않습니까?”

마치 크림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집사님이 낯설었다. 지금까진 그냥 식사 시간 때 종을 울리기만 했으면서 갑자기 이렇게 안내하다니. 내가 놀라 눈을 개구리처럼 끔뻑거렸지만 집사님은 알 수 없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기왕 식당 가는 거면 울리세도 같이 가요.”

“도련님은 이미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벌써요?”

그럼 울리세는 내가 씻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혼자 식당에 있었다는 소린데. 그건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조급한 나머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집사님은 당황하지도 않고 자연스레 빨리 걸음을 옮겨 나와 함께 식당으로 걸어갔다. 울리세를 걱정하느라 그와 나의 친밀한 거리감은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요셉.”

울리세가 널찍한 식탁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반색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날걸. 나는 미안함에 빠르게 달려가 앉아 있는 울리세를 껴안았다. 폭신한 털옷을 입은 울리세는 포근했다. 울리세 또한 나를 마주 안았다.

“미안해. 형이 좀 늦었지?”

“아냐…….”

내 품에 얼굴을 비비던 울리세는 곧 떨어져 나왔다. 아이는 나를 향한 호감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모습에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꼈다. 애초에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몸임에도 말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울리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내 자리에 앉았다.

그러는 와중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자 집사님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냉철한 모습으로. 따갑다고 생각한 시선은 아마도 내 착각이었나 보다.

집사님은 우리가 자리에 앉자 금세 요리를 식탁으로 날랐다. 평소와 비슷한 메뉴였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의 음식은 유독 맛있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 나는 울리세가 한동안 학원을 쉬었으면 했다. 그러나 울리세는 의젓했다.

“나 빨리…… 강해질 거야. 괜찮아.”

한 치의 떨림도 없이 굳세게 말하는 울리세에게선 사건의 여파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정말이지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아이를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는 힘찬 발걸음으로 마차를 타러 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련님은 요셉 님의 생각보다 강합니다.”

뒤늦게 쉬게 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던 나에게 위로하듯 건넨 집사님의 말에 힘을 얻었다. 하지만 역시 약간의 염려가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같이 갈래요.”

“좋은 생각입니다.”

마차에 먼저 올라타 있던 울리세는 뒤따라온 나를 보고 크게 기뻐했다.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학원으로 향했다. 이 평온한 기분이란. 여행지에서 있었던 사건 사고 모두 어딘지 먼 이야기가 된 것 같았다.

“나, 다녀올게.”

“잘 다녀와.”

울리세가 내 볼에 뽀뽀를 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창문가로 본 울리세는 기운차 보였다. 학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친구를 만났는지 다른 아이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홀로 남은 마차 안은 어쩐지 쓸쓸했다. 마부가 따로 있었다면 집사님과 함께라 괜찮았을 텐데.

집사님은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매우 꺼리는 듯했다. 하긴 저번에 일어난 마부의 성추행 사건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여행이야 마차를 끌고 가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는 집 밖에서 이동할 때는 검은 선글라스를 꼈다. 아마 마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경계하는 것 같았다. 조금 신기한 점은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면 잘 안 보일 것 같은데 정말 잘 다니는 것이다. 평범한 선글라스는 아닌 듯싶었다. 마법적인 요소가 걸려 있는 걸까.

“내리시지요.”

“아.”

생각이 길어졌던 모양이다. 집사님이 문을 열고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에스코트였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없었던 행동. 하지만 내민 손을 거절하기도 민망했다.

결국 집사님의 손을 잡았다. 집사님은 매우 자연스럽게 나를 마차에서 내려주었다. 정말로 이상했다. 오늘따라 집사님이 다정했다. 이상하다는 눈으로 집사님을 살폈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굳이 짚자면 그 눈이, 옅은 검은색의 선글라스로 가려진 그 두 눈에 녹아내릴 듯한 다정함이 고여 있을 뿐이었다.

“오늘 왜 이러시는 거예요?”

집사님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어리둥절한 표정까지 지었다. 분명 그것은 계산된 표정이리라. 하지만 그 모습에 나는 순간 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버렸다.

그런 내 상태를 아는 듯 집사님은 뒤에 서 있지 않고 옆에 달라붙듯이 다가왔다. 아침과 같이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간격이었다.

“들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 날씨가 춥습니다.”

“아, 아니. 이렇게 행동하시는 거 너무 당, 황스러워요.”

하지만 집사님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했다. 그는 불쑥 손을 뻗어 내 허리를 낚아챘다. 그는 왕년에 사람을 여럿 홀렸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스킨십이라니. 나는 볼을 붉히고 말았다.

“괜찮습니다.”

“아니, 안 괜찮은데…….”

“괜찮습니다.”

벽을 보고 대화해도 이것보단 답답하진 않을 거다. 치밀어 오르는 의문에 다시 한번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나, 그가 선수를 쳤다. 나를 내려다보며 처연한 표정을 지은 것이다. 그야말로 잡아먹히기 전의 초식동물 같았다. 평소의 위압적인 모습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푸른 눈에 애수가 흘러내릴 듯 고여 있었다.

“싫으십니까?”

그야말로 파괴적인 행동이었다. 말 그대로 상대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아는 자의 행동이었다.

집사님은 내 약점이 본인의 외모라는 것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행동은 나올 수 없다. 아니, 애초에 그의 외모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사람이어도 방심할 모습이었다. 미인의 슬픔이란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에 박히게 마련이니까.

“아…… 니요.”

“그럼 어서 집에 돌아가시지요. 도련님이 오기 전까지 저와 시간을 보내주시지 않겠습니까?”

집사님은 희미하게 웃으며 나에게 시간을 청했다. 그 전에도 집사님과 시간을 보내긴 했는데 이렇게 다정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같이 있는 것이야 평소와 같은데 나는 어쩐지 설레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그 요청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슬며시 고개를 드는 부끄러움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집사님은 크게 만족한 것 같았다.

“그럼 다과를 준비하겠습니다.”

어쩐지 제대로 휘말린 것 같다. 여우에게 홀리는 게 이런 걸까. 그렇다면 난 여우에게 홀린 사람들을 백번도 이해할 수 있다. 분명 그들도 얼굴에 약한 사람들이었겠지. 아름다운 외모로 속삭이는데 누가 그것을 이겨낼까.

나는 집사님에게 부드럽게 이끌려 식당으로 향했다. 벽난로의 불은 훈훈하게 타올라 차게 식은 몸을 데워주었다. 노곤하게 늘어지는 몸을 집사님이 어느새 다가와 꼿꼿하게 교정해 주었다.

“그렇게 앉으시면 허리 다치십니다.”

맞는 말이었다. 집사님의 손길에 곧게 앉은 나는 어쩐지 말 잘 듣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어쩐지 조금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집사님은 식탁에 다과를 세팅하다 내 모습을 보곤 물었다.

“갑자기 왜 시무룩해지셨습니까?”

“아……. 그냥 좀.”

가타부타 말하기 좀 부끄러워 얼버무리자 집사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조심히 내 어깨를 쥐었다. 부드러운 손길에는 염려가 담겨 있었다.

“제가 요셉 님의 걱정을 덜 수 있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어…….”

“저는 유능합니다. 요셉 님의 걱정을 충분히 덜어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든든해 보여서 부끄러웠다. 내 고민은 고작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서였으니까. 집사님이 이렇게 마음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데. 해서,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집사님의 눈빛을 보니 어쩐지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내 입은 의사와 달리 멋대로 움직였다.

“그, 냥…… 제가 어린애처럼, 군 것 같아서. 그것뿐이에요.”

“그렇습니까?”

별것 아닌 고민이었지만 집사님의 눈에 들어찬 염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손길은 차츰 등줄기로 이동했다.

어깨를 토닥거리던 때와 달리 음험함이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어린애라니…….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네, 네?”

집사님은 염려가 사라진 매혹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손이 등을 타고 내려와 허리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눈빛에 넋을 잃는 바람에 뒤늦게 알아챘다. 검은색의 장갑을 낀 손은 그 색처럼 짙은 속내를 드러냈다.

“어린애면 제가 이렇게 행동하지도 못했겠지요.”

“어…….”

그의 의도가 선명했지만 이해할 수 없어 멍청하게 대답했다. 나를 만지던 집사님의 손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이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어 멍청하게 눈을 끔뻑였다. 집사님이 보기에도 웃겼을 모양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고 내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드시죠.”

그러곤 본인도 자리에 앉았다. 내가 먼저 마시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듯 집사님은 집사다. 즉,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그는 내 아랫사람이다. 게다가 나는 일단 기사 작위가 있는 준귀족 같은 거니까. 뭐, 그렇게 따지면 이렇게 함께 앉아 있는 것도 이상한가? 평민과 귀족이 동석이라니……. 계급 사회에선 본래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나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향기를 맡고 홀짝거리며 홍차를 마셨다. 홍차에서는 새콤한 유자 향기가 났다.

“맛있어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집사님은 나와는 다르게 기품을 뽐내며 차를 마셨다. 그림으로 그린 듯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래. 마치 고고한 난 같았다. 교양이 부족한 내가 봐도 감탄할 정도인데 예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보면 얼마나 놀랄지 조금 궁금해졌다.

“무슨 문제라도……?”

“앗. 아뇨, 맛있네요.”

또 넋을 놓고 집사님을 봐버렸다. 집사님이 의아하게 물어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눈앞에 놓인 과자를 야금야금 먹었다. 과자에는 집사님이 손수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잼이 발려 있었다. 달콤한 것이 맛있었다.

잠시 그렇게 고요한 시간을 공유했다.

집사님은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그야말로 집사다웠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철저한 고용인의 입장. 모든 것에 철저하고 선을 긋는 그가 나를 친구라고 말해준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순간 꿈속의 누구보다 왕족 같았던, 파티장의 샹들리에보다 빛나던 그 찬란한 모습의 후보자님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상념에 막 빠져들려는 찰나, 집사님의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요셉 님은 취미가 없으신가요?”

“취미요?”

취미라. 그러고 보니 내 취미는 게임이었다. 게임과 그림. 그림이 전공이 되었고 게임은 취미로 남았는데 어쩌다 보니 전공인 그림보다 게임으로 먹고살게 되었다. 사람 앞날은 모르는 일이다.

그 게임을 하다가 이런 세계에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사람이 앞날을 알 수 없다지만 그 누구도 게임 속에 들어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 이 세계에서 게임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컴퓨터라는 것이 있을까? 게임 속 세계에 왔으니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결국 강제로 못 하게 된 게임을 빼고 남은 것은 그림뿐이었다.

“음…… 그림 정도?”

그림이 취미라고 하기에도 좀 웃겼다. 전공으로 차가운 실패를 맛본 나는 그림을 한참이나 놓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거의 평생을 붓을 잡고 있었는데 싫을 리가 없었다. 다만, 하기가 괴로웠을 뿐. 결실을 맺지 못한 꿈은 내게서 즐거움을 앗아 갔다.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만.”

“뭐, 그러고 보니 한동안 그리질 않았네요.”

언젠가는 그저 그리는 것만으로 즐거웠는데. 목표가 생기고 그것이 좌절되니 행복과 즐거움은 미련 없이 나를 떠났다. 매정하기 그지없었다. 침울해져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런 나를 유심히 보던 집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오시죠.”

“네? 아직 남았는데.”

남은 음식을 아쉽게 봤지만 집사님이 도로 자리에 앉는 일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를 따라 걸어갔다.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고 저택의 어딘가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일단은 서재입니다.”

“일단은?”

“지금은 그곳밖에 적당한 곳이 없군요.”

적당한 곳? 의아했지만 뒤를 졸졸 따라갔다.

서재에는 여전히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집사님은 방을 둘러보더니 이리저리 책이 쌓인 책상을 정리했다. 엉망으로 어질러진 책상은 마법처럼 깨끗해졌다.

“여기에 앉아주세요.”

“어……. 네.”

집사님이 해가 되는 것을 시킬 리는 없단 생각에 나는 얌전히 책상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는 어디론가 가서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집사님이 이 집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위치한지 모를 리가 없다 보니 얼마 걸리지 않아 돌아왔다.

“……?”

내 앞에 놓인 것은 질 좋아 보이는 하얀 종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연필이 있다. 네모난 지우개까지.

“그림이 취미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지금 그리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어색하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적이자 집사님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으면서 왜 본인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습니까?”

“하고 싶은 건…….”

“그렇게 표정에서 미련이 뚝뚝 흐르는데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도련님도 믿지 않을 겁니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매만졌다.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버석한 피부만이 만져질 뿐이었다.

“그랬어요?”

“네.”

어색하게 연필을 쥐었다. 흰 종이가 나를 응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종이를 앞에 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못해도 일 년은 지났다. 그림은 하루만 손을 놓아도 티가 나는데 일 년이나 되었으니 어색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선을 죽 그었다. 웃음이 나왔다. 곧아야 하는 선은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우글우글했다.

“하하. 진짜 못 그리네.”

“오랫동안 안 그리셨나 보군요.”

“네. 일 년 정도지만…….”

손을 풀기 위해 죽죽 선을 그었다. 그래도 십 년 넘게 잡은 그림이었기에 선은 점점 똑바르게 그어졌다. 그제야 나는 아무거나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라미 같은 단순한 도형 등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낙서였다.

“재미있네요…….”

“취미니까요.”

아무런 의미 없는 낙서. 돈을 벌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들. 하지만 너무나 재미있었다. 진작 현실에서도 그림을 그릴 걸 그랬다. 그만 도망치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돌아올걸.

“재미있다…….”

중얼거리며 연필을 멈추지 않았다. 흑연으로 만들어진 연필은 거무칙칙한 검은색만 쓸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쉰 그림은 투박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손이 나아가지 않았지만 즐거웠다. 어느새 내 입에는 짙은 미소가 걸렸다. 집사님은 그런 나를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 * *

단언컨대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물론 울리세에게 한정해선 조금 더 건강해지기를, 조금 더 환하게 웃기를, 그런 사소한 것을 원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선 단언컨대 과한 것을 바라지 않았다. 뭐 굳이 따지자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 정도?

“앞으로는 이곳을 화실로 쓰시지요.”

“네?”

집사님은 무려 나를 위한 공간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꿈에도 바란 적이 없는 작업실이었다.

커다란 창문으론 환한 햇빛이 들어왔고 널찍한 책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구가 있었다. 한쪽에는 이젤이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는 캔버스가 호수별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그림을 위한 장소였다.

“제가 써도…… 괜찮나요?”

“물론입니다. 이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요셉 님뿐이니까요. 쓰지 않으면 먼지만 쌓일 뿐입니다.”

나는 멍하니 책상으로 다가가 화구를 살펴보았다. 집사님이 준비한 것이 분명한 그것은 크레파스부터 색연필, 파스텔 등.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온갖 종류가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엄청 비싸 보였다. 분명 내가 지금까지 썼던 물건들은 비교도 안 될 것이다.

“진짜 제가 써도 괜찮은 거예요?”

감격에 차 나도 모르게 재차 물었다. 집사님은 귀찮아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환희가 차올랐다. 기뻤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중 그 누가 이 광경을 바라지 않을까. 좋은 재료를 쓰고 싶어도 그것들은 비싸기 그지없다. 미술 용품 중 싼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심지어 모두 소비품이었다. 쉽게 손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부자가 아닌 이상.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집사님에게 달려가 그를 꼭 껴안았다.

“고마워요, 집사님! 정말로 마음에 들어요!”

“……요셉 님의 돈으로 구매한 겁니다만.”

“그래도요!”

치트로 생긴 돈으로 산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만든 것은 집사님이었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림은커녕 연필 하나 잡지 않았을 테지. 나는 다시 한번 그를 꼭 껴안았다.

“진짜로 감사해요, 집사님.”

“…….”

떨어지려는 순간, 집사님의 팔이 나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안았다. 평소에 허리를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것과는 다르게 소심한 면이 있는 태도였다.

“요셉 님이…… 기뻐하시니 다행이군요.”

“이걸 받고 기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의 품에서 웅얼거리듯 말했다. 집사님은 나를 신중하게 어루만지다 놓아주었다. 나를 소중하게 보듬은 손길과 다르게 그의 얼굴은 냉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런 행동에 더 이상 상처 입지 않았다.

“앞으로 열심히 그릴게요.”

“요셉 님이 원하실 때 그리면 됩니다.”

집사님이 작업실을 차려준 이후. 나는 울리세가 학원에 가고 난 빈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어떻게 그림을 놓고 살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내 안의 열정이 피어올랐다.

집사님은 그런 나를 등 뒤에서 보거나 간식을 가져다주곤 했다. 보통 뒤에서 작업하는 것을 보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그가 워낙 인기척이 없어서인지 집중하고 있으면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미안했지만 그는 나를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그런 집사님의 행동에 점점 익숙해졌다.

“집사님……. 꼭, 옷시중하셔야 해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집사님의 옷시중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겨울 바캉스 이후, 집사님은 옷시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 또한 그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의 처연한 얼굴을 보자면 입 밖으로 나온 거부도 주워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집사님, 다리…… 그…….”

하지만 옷시중을 들 때마다 집사님은 내 다리를 유독 오래 어루만졌다. 매번 그 손길에 당황한다는 걸 분명 알 텐데 그는 모른 척했다. 아니, 모른 척이면 다행이지. 횟수를 거듭할수록 손길이 닿는 시간이 늘어났다. 분명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기분 나쁘십니까?”

“아뇨, 아뇨. 그건 아니지만…….”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문제죠!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집사님이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발을 마사지하는 것뿐일 거야. 속으로 거듭 되뇌었지만 그렇다기엔 손길이 어쩐지 은밀했다.

다행인 것은 종아리 위로는 올라오지 않는다는 걸까. 속으로 애국가를 몇 번이나 제창하고 나서야 그의 손이 물러났다. 체크 무늬 양말과 단화를 신겨준 그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나는 옷시중이 드디어 끝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 *

울리세가 학원에 간 시간, 나와 집사님은 다과를 먹으며 대화했다. 테이블 위에는 아침에 읽었던 신문이 곱게 접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겨울이 끝나가는군요.”

“그렇네요.”

벌써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신문을 뒤덮었던 마태오에 관한 기사도 이제 슬슬 주춤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신문 한구석에는 그의 선행에 관한 기사가 실리곤 했다. 띄엄띄엄 브렌다에 관한 이야기 또한 있었다.

인식하지 않았을 땐 몰랐는데 후보자들의 이야기는 신문에서 끊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있긴 했지만 모두 지면이 아주 적었다. 그나마 눈길을 끄는 기사는 어느 도시의 아동 실종 사건이었는데 그것도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후보자들의 기사인 듯했다. 저번의 열차 사고처럼 큰 사건이라든가 왕실의 성명 같은 것 외에는 지면을 차지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이런 정보 편중화 괜찮은 걸까.

“원래 이렇게 후보자에 관한 기사가 끊이질 않나요?”

“보통은 잘나가는 후보자에 한해서 그렇습니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후보자가 대체로 영광을 쥐기는 하지요. 아닌 경우도 있지만.”

집사님은 잠시 상념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였고 그는 곧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은 폐하의 비들이 출생한 자식들이 주목을 받습니다. 그들은 대개 대단한 외척을 가지고 있으니 높은 자리에 앉을 확률이 높지요. 실제로 브렌다 공녀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 하긴. 공녀도 자주 나오더군요.”

신문에 난 브렌다 후보자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 어떠한 성취를 얻었다 하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스토킹에 가까운 기사였다. 유명한 후보자란 사생활 보호가 없는 모양이다.

“울리세는 그런 거 없었으면 좋겠네요.”

“도련님이…… 영광을 잡는다고 결정하시면 이런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이건 너무 고생이잖아요. 이왕이면 다른 걸 했으면 좋겠어요.”

신문 속의 어린아이들이 해낸 일들을 읽어보았다. 아직은 놀아도 될 시기인데 오직 왕좌에 앉겠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하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요셉 님, 곧 도련님의 생신입니다.”

“네?”

“머지않아 2월의 끝자락이지요. 2월 21일. 도련님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충격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은 2월 20일이다. 그렇다. 집사님의 말에 의하면 내일이 바로 울리세의 생일이었다! 아이의 생일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그걸 알게 된 셈이다. 어떻게 아이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을 수 있지!

“아니, 그걸 하루 전에 알려주면 어떻게 해요! 제가 모르는 것 같았다면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걱정하시지 마시죠. 저에게 무얼 살지 결정 후 말씀해 주시면 사 오겠습니다.”

울리세가 학원에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 소리는 돌아오려면 몇 시간 남았다는 뜻이다. 그사이에 어떻게든 준비를 끝내야 했다. 나는 당장 마을에 가기 위해 문을 향해 걸었다.

“집사님, 빨리 나가죠.”

“굳이 그러실 필요는…….”

“무슨 소리예요, 집사님. 선물은 직접 골라서 사는 거예요. 학원 끝나기 전에 빨리 갔다 와요! 얼른!”

집사님은 내 재촉에 마지못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는 별말 하지 않고 앞장서 마차를 끌고 왔다. 평소와 다르게 오래 쉬지 못하고 끌려 나와서인지 말이 피곤해 보였다.

“어디로 갈까요.”

“일단 상점가를 둘러봐요.”

마차에 난 자그마한 창으로 집사님에게 말하고 창을 닫았다.

사랑스러운 왕자를 위하여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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